영혼이 자유로운 사람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샘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어린이는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어린 시절 가슴을 부풀게 한 어린이날 노래이다. 크리스마스와 함께 아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날 어린이날은 계절의 여왕 5월의 꽃이자 선물이다. 아이들의 손목을 잡고 꽃과 신록이 어우러진 거리와 들판을 거니노라면 이보다 더한 기쁨이 또 있으랴 싶다. 올해는 여느 해 보다 봄꽃이 만발하고 물 오른 나뭇잎이 더욱 푸르러 햇살 아래 눈이 부시다. 어버이날과 부부의 날이 함께 들어 있는 가정의 달 5월. 우리나라의 결혼율과 출산율이 사상 최저를 기록하고 있다는 보도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어린이는 나라의 보배요 희망이기에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제도가 조성되었으면 좋겠다.

채이식교수 정년기념호인 한국해법학회지 발간식이 지난 4월 한국해법학회 봄철정기학술발표회에 앞서 열렸다. 채이식 교수는 고려대 법과대학 행정학과와 런던정치경제대학교(LSE) 대학원을 졸업한 후 영국사법연수원(Middle Temple) 과정을 거쳐 영국 법정변호사(barrister) 자격을 취득하였다. 고려대 법대교수가 된 그는 문하생 7명 중 4명을 대학교수로 키울 정도로 제자들을 잘 지도했는데, 그중에 한명이 한국해양대학을 나온 선장 출신 김인현 교수이다. 대외활동도 활발하여 국제유류오염보상기구(IOPC Fund) 집행위원장과 IMO 법률위원장을 역임하였으며, 러시아 미국 프랑스 러시아 독일 이탈리아에서 연구교수와 방문교수직을 맡기도 하였다. 특히 한국해법학회 상무이사와 회장으로서 우리나라 해상법 개정과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한때 이利자를 리로 발음하여 채리식으로도 불린 채이식 교수는 해법학회 최종현 회장으로부터 기념호를 전달받고 소감을 묻자, 아래와 같이 말했다.

“나는 딱딱한 자리나 격식을 싫어하는 편이다. 사실, 오늘 이 자리도 고마우면서도 피하고 싶었다. 우선 별로 한 일도 없음에도 정년기념호를 만들어준 해법학회 회장을 비롯한 회원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아직도 마음은 청춘인데, 벌써 은퇴할 나이가 되어 정년기념 논문집을 받게 되니 만감이 교차한다. 프랑스 엑스-프로방스(마르세유) 대학의 연구교수로 있을 때, 은퇴한 프랑스인들을 많이 만났는데, 프랑스에선 일찍 은퇴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한가롭게 사는 사람들을 성공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하나도 재미없을 것 같은 뻬땅이라는 동전 따먹기를 하며 소일하는데, 우리로선 이상하지만 프랑스인들은 이것을 행복한 생활이라고 한다. 둘째로는 자칭 국보라고 하던 동국대 양주동 박사가 한 말로, 행복이란 “시골 변두리 외딴집에 소실을 두고 가끔 들러 마루에서 작은 마나님이 먹여주는 상추쌈을 먹는 것”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뜻은 아니니까 오해 없기를 바란다.

세 번째는 따스한 봄날 느티나무 아래 벌렁 누워 만화책을 보고 있는 어떤 사람을 본 적이 있었는데, 참 행복해 보였다. 이것은 나도 한번 시도해보려고 한다. 프로방스 지역은 따스하고 습기도 적어 벌레가 없어 살기가 참 좋다. 그곳은 햇빛이 얼마나 강렬한지 방에 커튼을 치지 않으면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을 정도다. 한적한 마을, 여유로운 주민들, 아름다운 경치, 훈훈한 이웃 간의 정........ 그런 조용한 곳에서 책을 보며 여유가 생기면 해상법 책이나 쓰며 살고 싶은 것이 나의 소박한 꿈이다. 그러나 1년만 지나면 이런 생활이 심심해지고 주변사람들의 성화에 못 이겨 변호사 일을 다시 시작할 지도 모르기 때문에 장담은 안하겠다. 경상북도 오지 상주에서 태어난 촌놈으로 바다도 못 보고 썩은 생선이나 먹고 자라 20세가 넘어서야 겨우 놀잇배를 타본 게 전부인 내가 해상법 교수가 된 것은 천운이다. 그야말로 행운이 아닐 수 없는데, 제대로 공부한 분들에겐 송구하고 미안한 마음까지 든다. 그 후 이게 한이 되어 프랑스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할 때 한진해운의 컨테이너선을 타고 마르세유에서 싱가포르까지 왔는데, 그게 유일한 밑천으로 기회만 나면 잘 써먹고 있다.
 
나는 외국에 나갈 기회가 비교적 많은 편이었는데, 그 나라를 제대로 알려면 그 나라 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에 머물 때 그곳 사람처럼 살았더니 말만 통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 통할 수 있었다. 두서없이 이 얘기 저 얘기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갔다. 나는 그저 평범한 보통사람이다. 혹시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인양 들렸다면, 널리 이해해주기 바라며 지금 기억에서 지워 달라. 다시 한 번 이 자리를 만들어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지금까지도 자유인이었지만, 이젠 직장에 얽매이지 않은 진짜 자유인이 된  채이식 교수. 그의 뜻대로 발이 가는 대로 가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유유자적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를 둘러싼 에피소드도 많지만, 그중 하나를 소개하면, 학교 조교에게 “이젠 시집이나 가야지?”라고 말했다가 “선생님이 제 결혼식 주례를 서주셨잖아요?”라는 대답에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며, 빙그레 웃던 모습이 떠오른다. 국제회의에서 너무 조용조용히 발언하여 속기사들이 받아 적느라 애를 먹을 정도로 차분하고 격식이 없는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 우리 해상법계의 마지막 선비이자 기인의 반열에 추가하고 싶다. 좋아하는 청국장과 산채비빔밥을 즐기며 바람처럼 구름처럼 자유롭게 살기를 바란다.

5월 콤파스엔 좀처럼 모시기 힘든 분을 강사로 모셨다. 바른경제동인회 회장인 KSS해운 박종규 고문이다. 오래 전 제주도에서 맑은 물과 공기나 마시며 말년을 보내겠다며, 우리 곁을 훌쩍 떠났기에 만나는 기쁨은 배가되었다. 3백년 존속하는 모델 컴퍼니를 위한 조건 중의 하나인 이익공유제에 대한 취지와 동기가 자못 궁금했는데, 직접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 
 

1. 이익공유제란?
현재는 기업이 모든 경제와 사회의 중심이다. 기업에서 받은 임금으로 가계를 꾸려 나가고 정부도 기업이 내는 세금으로 국가살림인 재정의 큰 부분을 충당한다. 이렇듯 기업은 가계소득의 원천이지만, 모든 부조리와 부패의 중심이기도 하다. 경제와 사회의 환경이 변화하고 있다. 경제면에서는 경쟁이 치열하고 빈부격차가 확대되며 점차 투기사회화 한다. 사회적으로는 실업이 증가되고 공평의식과 함께 투명성도 증대되고 있다. 사회가 복잡다변화 되어 걸출한 한 사람(One Man)이 경영하는 시대는 끝이 났다.
잘못된 기업모델을 들라면, 대기업주의, 다각화, 정권유착이다. 모든 기업은 속성상 대기업이 되고 싶어 한다. 대기업이 되려면 다각화가 필요한데, 방법은 새로운 업종을 개발하거나 다른 기업을 흡수하는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정권유착이 따라온다.
 

2. 모델 컴퍼니 구상
아파트를 분양할 때도 모델 하우스가 있지만, 기업을 위한 모델 컴퍼니(Model company)는 없어 이를 구상해 보았다. 기업은 사람과 자본의 토대 위에 세워지는데, 기업이 거센 외풍 속에서도 존속하려면 기업의 방위력인 안정적인 주주가 필요하다. 국가로 말하면 국방장관 같은 역할이다. 유한양행 모델과 사주조합 육성이 안정주주의 근간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는 비영리법인 설립이 좋은 방안이었으나 이번에 세법이 개정되어 기업이 비영리법인을 설립하더라도 5% 이상은 과세한다. 비영리법인을 통해 창업자의 설립취지를 살릴 수 길도 이젠 여의치 않다. 톨스토이의 고민이라는 것이 있다. 말년에 자신의 저작권을 모두 사회에 기부하자, 아내의 반대와 가족의 외면으로 정작 자신은 갈 곳이 없어 벤치에서 얼어 죽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기업의 흥망사를 살펴보니 그래도 전문특화기업들이 살아남았다. 다음으로는 CEO 선임제이다. KSS해운에는 CEO 선임을 위한 7인 추천위원회가 있다. 그 구성원은 사외이사 4인, 퇴임사장, 창립자추천인, 사주조합추천인이며, 입후보가 없는 교황선임 방식이다. 따라서 CEO에 선임되지 않은 사람도 회사에 계속 다닐 수 있다. 사실 선임된 사람이나 안 된 사람 모두 회사로선 기여도가 큰 사람들이기에 그들이 그 일로 회사를 떠난다면 회사로선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다음으로는 이익공유제이다. 우리나라의 보너스는 엄밀하게 말해서 상여가 아니라 거의 통상임금 수준이다. 예를 들어 기본급의 400%, 600% 하며 미리 정해놓고 급여와 함께 지급하고 있다. 성과금 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정부도 그런 식으로 지급하는 상여를 통상임금에 넣어버린 것이다. 진짜 보너스는 이익이 나면 더 주고 이익이 나지 않으면 주지 않는 것이다. 주주에게 지급하는 배당 같은 개념이다. 바로 이점을 착안하여 이익공유제라는 것을 만들었다. 외국에선 벌써 오래전에 시행하고 있는 제도이다. 캐나다 중소기업의 20%가 시행하고 있고, 독일 같은 나라에선 일반화 되어 있다. 우리나라도 동아기전(DY)이라는 회사가 이미 2000년부터 시작하였다. 
 

3. 이익공유제의 기대효과
이익공유제(Profit sharing)란 종업원들과 이익을 공유하는 제도인데, KSS해운의 경우엔 통상 600%의 상여금 중에 400%를 기본급여로 편입하고 나머지 200%는 결산후 이익연동제로 전환한다. 손실이 발생하면 상여금은 없고, 50억원 이하의 이익이 발생하면 10억마다 20%씩 상여금이 늘어난다. 50억원 초과 100억원 미만은 10억원마다 10%씩, 100억원 초과 150억원까지는 10억원마다 20%씩, 그리고 150억원 초과일 경우에는 10억원마다 10%씩 상여금이 늘어난다. 미실현 평가손과 평가익 및 부동산매각 등 1회성 손익을 제외한 법인세차감전 손익으로 계산한다. 그리고 이익공유 임금이 임금총액 비율 30% 내의 조정권은 이사회에 위임하기로 하였다. 실제로 202억원의 이익이 발생하여 전년대비 200%의 성과금을 지급하더라도 전년도의 비용으로 손비 처리된다. 그 이유는 이익배당이라 하더라도 국제회계기준(IFRS)에 따라 전년도 손비로 처리되기 때문이다. 

주주총회에서 나온 어느 주주의 질문이다. “해운업은 자본집약적인 장치산업인데, 사람의 이익 공헌도가 얼마나 되겠나?”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해운원가 면에서 선사들의 연료비와 항비는 거의 같다. 선가와 금리 및 보험료도 거의 비슷하다. 다만 간접관리비와 인건비 및 생산성이 다를 뿐이다. 경쟁력은 관리하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그래서 호텔왕 메리어트(Mariott)도 “사람이 먼저다”라고 말했다.
이익공유제를 시행하면 다음과 같은 기대효과가 나타난다. 1)모든 임직원들의 주인의식과 경영마인드가 팽배해진다. 2)확고한 기업투명성이 확립된다, 3)기업내 부정행위나 무임승차(free rider)가 배제된다. 4)불황시 30% 임금삭감으로 감원 없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5)이익공유금은 유연임금(flexible wage)의 성격으로 통상임급이 아니다. 6)가계소득 증대로 정부의 기업소득 환류정책에도 호응하게 된다. 7)이는 공급측 김영란법이라고 할 수 있어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근절책이 될 수 있다. 

이와 같이 이익공유제를 실시하면, 종업원들의 사기가 올라가 신바람 나는 모델 컴퍼니가 만들어질 것이다. 즉 안정주주, CEO 선임제, 이익공유제가 실시되면 신바람 나는 모델 컴퍼니가 구축될 것이다. 이런 모델 컴퍼니 구상으로 300년 지속 가능한 기업을 만들 수 있다. 이런 구조 아래 지속적인 자세(constant attitude)가 신뢰를 쌓아 고객만족의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4. 전략적 사고와 대정부 건의
이익공유제가 널리 보급되어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리려면 세 가지 정책적 사고가 전제되어야 한다. 첫째, 백지에서 출발해야 한다. 둘째, 산, 숲, 나무의 순으로 그림을 그려야 한다. 셋째, 장기적인 시야를 가져야 한다. 밀레의 명화 ‘이삭줍는 여인들’을 예로 들면, 종업원들은 들판의 이삭을 줍겠지만, 임원들은 들판을 바라보아야 한다, 한 해 농사뿐만 아니라 5년, 10년, 30년 앞을 내다보고 일해야 한다. 종업원들 같이 이삭줍기만 해선 안 된다. 멀리보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차제에 정부당국에 건의하고 싶다. 첫째, 이익공유제에 의한 상여금은 결산 후의 이익배당이므로 금융소득으로 보아야 한다. 둘째, 이 제도를 권장하고 장려하기 위해 종합소득세에 제외시켜 분리과세 해야 한다. 예전에 부진한 신용카드 사용을 권장하기 위해 신용카드 공제제도를 신설하도록 건의하여 관철시킨 적이 있다. 지금은 신용카드 보급률과 사용률이 90%, 50% 이상이다. 소득공제 때문이다. 이 점을 착안해야 한다.

인간의 속성상 소득이 늘어나는 것은 좋지만, 조금이라도 줄어들면 못 참기 때문에 이익이 난다고 해서 상여금을 주면 다음 해에 뒷감당을 못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그러나 인간의 성선설性善說을 믿자. 이익이 났을 때 이익을 공유했다면, 손해가 나면 이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국민들도 이젠 성숙했다고 생각한다. 손해가 났는데도 내 몫을 챙기기만 한다면, 기업은 존속할 수가 없다. 기업이 망하면, 일자리가 없어져 결국은 같이 망한다. 배가 고프다고 종자씨와 씨암탉을 잡아먹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제도가 성공하려면 종업원과 임원 및 주주의 상호신뢰가 전제되어야 한다.

요즘 알리바바그룹 마윈 회장의 말이 화두가 되고 있다. 연이은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고 맨주먹으로 거대기업을 일군 마 회장은 사업의 우선순위를 고객, 사원, 주주에 두어 이익을 나누고, 3세기에 걸치는 102(1+100+1)년 이상 존속하는 기업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마 회장의 경영철학과 박 회장의 이익공유제가 지향하는 목표가 일맥상통한다. 이익공유제가 우리나라의 성숙한 기업문화 조성에 크게 기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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