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마저 느리게 흐르는 ‘힐링’ 큐슈지방 여행

5월 12~16일 한국해사문제연구소 주최 132명 참여
고려훼리 ‘뉴카멜리아’호 타고 부산-하카다항.. 일본 역사·문화 탐방

5월 12일 오후 5시 30분. 부산국제여객터미널은 여행객들로 분주했다. 한국해사문제연구소에서 주최하는 ‘제20회 바다의날 기념, 20차 선상세미나’에 동행하는 132명의 참가자가 한데 모인 까닭이다. 고려훼리의 ‘뉴카멜리아’호를 타고 부산항을 출발해 다음날 일본 하카다항에 도착, 5월 16일까지 4박 5일의 여정을 함께하는 다양한 연령층의 참가자들의 설레임이 부산국제여객터미널의 대합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하카다항 전경
하카다항 전경


배표를 받고 1층 대합실에서 2층 탑승동으로 이동했다. 2줄로 서서 출국 수속을 마치고 난 시간은 6시 40분. 탑승구로 향하는 길에는 소규모 면세점과 면세품 인도장이 마련돼 있다. 불과 몇년전까지만 하더라도 배편을 통해 출국하는 경우 시내 면세점이나 인터넷 면세점을 이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해상 관광이 늘어나면서 국제카페리 관광객도 자유롭게 면세점을 통해 필요한 물품을 구입할 수 있어 국제 카페리나 크루즈 관광객들의 편의성이 크게 높아지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선상세미나 참가자를 포함 250여명의 승객을 싣고 일본으로 향하는 ‘뉴카멜리아’호의 선실은 그리 넓지 않았지만 필요한 것은 갖춘 ‘아기자기’한 일본식 ‘다다미방’ 구조였다. 선내에는 일본음료와 먹거리를 판매하는 자판기가 많아 벌써부터 일본에 온 것이 아닌가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배 여행을 맞이하는 여행객의 모습은 그야말로 다양하다. 삼삼오오 로비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여객선 내에 마련된 가라오케, 오락실, 사우나 등 부대시설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비행기보다는 느리지만 나름의 정취가 있다. 일본에 도착하기도 전에, 아니 어쩌면 부산항을 떠나기도 전에 여행이 시작된 느낌이다. 느리지만 선상에서의 정취가 있는 여정.. 배 여행의 매력이 아닐까.

 

조용한 거리와 무채색의 풍경, 한적한 도시 후쿠오카
일본 불교문화와 신도문화, 남장원과 태재부천망궁
전날 불었던 강풍때문인지 밤새 배의 흔들림이 있었지만 ‘뉴카멜리아’호는 우리를 안전하게 하카다항으로 데려다 주었다. 한국보다 5℃는 높은 일본 후쿠오카의 날씨. 우리는 남들보다 먼저 여름을 맞이했다. 하카다항 터미널은 막 새로 지은 터미널인양 깔끔했다. 하카다항 옥상 전망대에 올라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버스로 향했다. 본격적인 일본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좁은 도로, 작은 차, 낮은 건물, 무채색의 거리.. 일본에서 느꼈던 첫 풍경을 담았다. 거리에 나온 사람을 찾기가 힘들 정도로 한적한 도시 후쿠오카의 한적함, 도로위의 차마저도 조용히 천천히 간다. 여행기간 내내 자동차 경적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혹자는 깨끗하고 조용한 일본의 거리풍경을 부러워하고, 혹자는 오히려 인간미가 없다며 비판한다. 어쨌거나 매일 자동차와 인파에 가득찬 도시에 사는 나에게 4~5일간의 한적한 일본의 큐슈지방 여정은 그 자체로 ‘힐링’이었다.


일본에서의 첫 일정은 동양최대의 와불상(누워있는 불상)이 있는 남장원이다. 거리마다 신사가 있을 정도로 신도神道를 주로 믿는 일본에도 불교문화는 뿌리깊게 퍼져있다. 화려한 색채가 인상적인 우리 사찰과 달리 일본 사찰은 회색 계열의 색채가 짙다. 사찰내 계단을 따라 오르니 동양 최대의 크기라는 와불상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전장 41m, 높이 11m, 무게 300톤에 달한다는 세계 최대의 청동 와불상은 ‘일본의 3대 영지순례’의 하나로 불리기도 한다.


일본의 불교문화를 접했으니 이제 일본인이 50% 이상이 믿는 신도문화를 체험하기로 한다. 태재부천망궁은 일본의 유명한 학자인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를 ‘학문의 신’으로 모시는 신사이다. 수능을 앞둔 우리나라 부모들이 교회나 절에서 백일기도를 올리는 것처럼, 일본 수험생이나 부모들도 합격이나 학업 성취를 기원하기 위해 이 곳을 많이 찾는다고 한다. 신사 내부는 마치 잘 꾸며놓은 정원과 같았다. 신사 안의 유치원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보니 그들의 동심이 전해지는 듯 하다. 신사 출구에는 길게 뻗어진 거리에 많은 상점들이 있는데, 이 곳에서의 명물인 ‘우메가에 모치떡’을 맛보길 권하고 싶다. 일본식 ‘아기자기함’이 무엇인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유후인 민예촌거리는 흡사 우리나라 파주 헤이리 거리와 유사한 느낌을 주었다. 작은 상점들이 줄지어 있고 작은 공예품과 팬시용품을 구매하기에 좋다.


후쿠오카를 떠나 도착한 곳은 일본의 전통적인 온천 관광지인 뱃부이다. 온천 관광지인 만큼 온천과 관련한 다양한 볼거리가 많았다. 유황냄새가 가득했던 가마도 지옥에선 관광객들이 직접 발을 담그며 온천수를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이 인기였으며, 인근의 유황재배지인 유노하나는 유황온천 체험과 함께 목욕관련 상품이 관광객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숙소 역시 온천호텔이다. 일본식 전통 의상을 걸치고 뜨거운 온천물에 몸을 담그니 첫날 여행의 피로가 한 순간에 풀리는 듯 하다.

 

미나미 아소 열차
미나미 아소 열차

2년전 모습 보여줬던 아소산, 폭발위험
입산금지로 아쉬움, ‘미나미 아소’ 열차, 여행지 현지주민 일상 속으로 안내
일본 여행 두번째 아침이 밝았다. 가벼운 조식을 먹은 후, 큐슈올레를 산책한다. 우리나라 제주도의 올레길을 수입해 큐슈올레라고 이름지은 산책코스 중 약 40분이 걸리는 뱃부코스를 걸었다. 오랜만에 흙길을 디디며 길게 뻗은 나무들 사이로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으로 땀을 식히니 한결 기분이 좋아진다. 아침산책이 얼마만이던가. 문득 한국에 있는 가족 생각이 났다.


이날 여행의 백미는 일본 최대의 칼데라 화산인 아소활화산을 관광하는 것이었다. 2년전 가고시마 여행 당시만 해도 케이블카를 타고 아소활화산의 칼데라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아소활화산의 위험 레벨이 ‘3레벨’까지 올랐기 때문이다. 3레벨은 화산 폭발이 가능한 레벨로 입산이 금지된다. 어쩌면 수년내 아소활화산의 폭발이 발생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입산하지 못했지만 아소산 박물관 체험을 통해 자연의 섭리와 위엄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본다.


아소산 일대는 수천년동안 화산이 폭발하고 지층이 움직이는 과정을 반복해 특유의 자연환경을 갖고 있다. 속으론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아소산이지만 겉으로는 드넓은 초원이 형성돼 있어 한결 평화롭다. 우리나라에선 쉽사리 볼 수 없는 푸른 초원 풍경이다.


아소산을 내려와 작은 역사에 도착했다. 아소산 일대를 달리는 열차인 ‘미나미 아소’ 열차를 탑승하기 위해서이다. 이 열차는 아소산 남부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통근을 책임지는 열차로 총 길이 17.7km의 비교적 짧은 거리를 운행한다. 열차를 타고 현지 주민들과 섞여 20여분을 달리는 동안 이 곳 사람들의 일상에 들어왔다는 느낌에 여행의 기쁨을 만끽했다. 관광지를 둘러보는 여행도 좋지만, 여행지역 사람들의 생활을 체험하는 여행은 더 큰 기쁨을 준다. 옛날 ‘비둘기호’를 연상케 하는 작은 열차에서 영화 철도원을 떠올리게 하는 제복 입은 차장의 모습, 남색 교복을 입고 수줍게 웃으며 우리를 바라보던 여학생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빗방울 맞으며 돗단배에서 뱃놀이의 ‘운치’, 임진왜란 역사 현장 탐방
복잡했던 몸과 마음을 싹 비워낸 ‘힐링’.. 여행은 ‘휴식’이다.
3일째 일본여행은 뱃부를 출발해 야나가와와 아리타, 가라츠로 이동해 과거 조선과 일본의 역사를 탐방할 수 있는 코스였다. 새벽부터 내리던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며 일본여행 처음으로 덥지않은 날이었던 그 날, 우리는 우비를 쓰고 비를 맞으며 일본 전통 뱃놀이를 체험했다. “비맞으면서 무슨 뱃놀이 체험을 해”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가와구다리’라고 불리우는 뱃놀이는 생소하고도 즐거운 체험이었다. 10명 정도가 탈 수 있는 작은 돗단배에 옹기종기 앉아서 야나가와 시내를 관통하는 수로를 따라 물과 함꼐 흘러간다. 배 후미에 서서 큰 노를 혼자 저으며 배를 움직이는 노년의 뱃사공은 운치있게 노래를 한 곡조 뽑아 제낀다. 비도 오고 바람도 시원하고 풍경도 좋다. 술한잔 걸쳤다면 이만한 신선놀음이 또 있을까 싶었다.


뱃놀이를 마치고 아리타로 이동했다. 어느새 비는 잦아들었고 우리는 이삼평 기념비로 향했다. 임진왜란때 일본으로 끌려간 우리 도공들은 탁월한 기술력으로 일본의 도자예술을 이끌었다. 이삼평은 임진왜란때 이곳으로 끌려와 일본계 도자기의 원조인 가키에몬 양식의 조상의 되고 신神으로 떠받들여진다. 이삼평기념비를 모신 신사가 바로 도조신사이다. 자신들이 일으킨 전쟁의 포로를 신으로 받드는 일본의 정서가 ‘아이러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들의 ‘실용적’(?)인 사고가 무섭기도 하다.
 

이어 가라츠로 이동해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모 히데요시가 조선침략을 위해 전초기지로 활용한 나고야 성터와 박물관을 탐방했다. 과거 조선침략의 전초기지로 웅장하게 축조됐던 나고야 성터는 이제 성벽 일부와 터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임진왜란의 출병장소로도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일본 다이묘 시대의 단면을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원래 마쓰라토의 필두인 하타 가문의 친지로 있는 나고야씨의 성이었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나고야성의 호화로움과 해군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입지에 반해 이 성을 임진왜란의 출병장소로 정했다고 한다. 영화를 좋아하는 이에겐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영화감독인 구로자와 아키라의 현지 촬영지 중 하나로 기억되는 곳이기도 하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후쿠오카 시내 중심부에 있는 힐튼 호텔로 향했다. 이 호텔은 대형 야구돔구장인 ‘야후돔’과 연결돼 있어 우리에게도 크게 친숙한 구장이다. 한국의 대표 야구선수인 이대호 선수가 야후돔을 홈구장으로 이용하는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4번타자로 뛰고 있기 때문이다. 마침 그날 소프트뱅크의 홈경기가 야후돔에서 펼쳐졌다. 시간이 늦어 직접 관람하지는 못했지만, 야구장 주변의 야구관련 용품매장을 돌아다니며 일본의 야구열기와 야구관련 제품의 인기를 느낄 수 있었다. 다양한 야구관련 제품과 인형, 피규어, 유니폼 등이 유혹했지만 가격의 압박으로 구입하진 않았다.
 

일본에서의 마지막 아침식사를 마치고 하카다항으로 향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4박 5일간 여행이 저물고 있었다. 흔히들 ‘좋은 여행’은 여행지를 돌아다니며 많이 배우고 느끼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4박 5일간의 후쿠오카-뱃부-아소-야나가와-가라츠 등 큐슈지방 여행에서 난 무엇을 배우고 느꼈을까. 적당히 느린 거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부딪히는 소리마저도 귀를 열게 했던 한적한 마을, 무채색의 건물과 녹색의 넓은 초원.. 같은 일본이라도 대도시인 도쿄에선 느낄 수 없었던 큐슈의 고즈넉한 풍경들. 여행을 통해 새롭게 배운 것보단 여행을 통해 복잡하고 무거웠던 몸과 마음 그리고 머리 속을 깨끗히 비워낸 느낌이다. 여행은 ‘휴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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