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몰아주기·경영권 승계통로 등 끊임없는 ‘잡음’

 
 
2월 시행 공정거래법 규제, 솜방망이 효과 우려

국내 물류업계에서 오랫동안 계속돼온 논쟁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2자물류’ 문제다. 올 2월부터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따라 일감몰아주기 규제가 본격 시행됐으나 대기업의 물류자회사들은 내부거래 규제망은 쑥 빠져나가고 경영권 승계는 가속화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화주이자 동시에 물류기업인 2자물류사에 대해서 민감한 사안이라며 ‘쉬쉬’하는 분위기다. 불황 탓에 대다수 업체들이 눈앞의 수익을 위한 물량 확보에 전적으로 매달리고 있는 상황이지만 물류시장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목되어온 2자물류 문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일감몰아주기를 규제하기 위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올 2월부터 본격 시행됐다. 지난 2012년부터 경제민주화의 바람을 타고 대기업 계열사의 일감몰아주기 문제가 이슈화되면서 2자물류 논쟁의 불씨가 되살아났다. 재계의 반발 속에서 2013년 7월 총수일가의 사익편취와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으나 물류업계는 강력한 처벌이 없다면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현대글로비스(현대차)와 범한판토스(LG), 삼성전자로지텍(삼성) 등을 비롯한 대기업의 물류 자회사들은 모그룹의 풍부한 물량을 바탕으로 단기간 업계 최고 수준의 매출액과 수익을 내는 기업으로 성장해왔다고 시장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2자물류사와 3자물류사의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2자물류사들의 시장점유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대다수 중소 물류기업 및 포워더들의 시장점유율은 급격히 줄고 있는 실정이다.

물류업체 재하청 시 무리한 ‘가격 후려치기’와 물량교환으로 비계열사 물량 취급비율을 높이는 ‘카고 스와핑(cargo swapping)’도 성토의 대상이 됐다. 최근에는 모기업 물량 외에도 조직확장 등을 통해 중소 물류기업 및 포워더들의 영역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2자물류사들은 신규사업 및 해외진출 등을 통해 모기업 보다 3자물류의 비중을 높이기 위해 애쓰고 있으나 이는 중소 물류기업 및 포워더들의 기반을 흔들리게 만드는 역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현대글로비스와 범한판토스가 2자물류사에서 탈피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종합물류기업으로의 이미지를 심으려 활발히 노력하는 반면 삼성의 물류자회사인 삼성전자로지텍은 수면 밖으로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눈에 띈다. 그러나 여전히 2자물류사들에게는 일감몰아주기로 성장한 회사, 경영권 승계의 통로 및 비자금 조성 의혹 등의 부정적인 꼬리표가 따라다니고 있다.

대기업의 계열사 일감몰아주기 관행을 막기 위한 규제가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2월부터 시행된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따르면, 자산총액 5조원 이상 대기업의 총수 일가가 상장 계열사 지분 30%(비상장은 20%)를 보유한 상태에서, 계열사에게 200억원 이상, 또는 매출의 12%에 달하는 일감을 몰아준 것으로 판명되면, 매출액의 최대 5%의 과징금이 부과된다.

동 개정안은 올 2월 14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공정위가 신규 내부거래만 제동을 걸고, 기존 내부거래에 대해서는 1년간 적용을 미룬 까닭이다. 그 사이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이었던 180여개 대기업들은 일감몰아주기를 줄이기 보다는 규제를 어떻게든 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양새다. 공정거래법 규제가 시행되어도 규제망을 빠져나가는 대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현대글로비스, 지분매각으로
일감몰아주기 규제망 피해
현대글로비스는 대주주의 지분매각으로 일감 몰아주기 규제망을 피하게 됐다. 현대글로비스의 2013년 내부거래금액은 3조원 가량으로 전체 매출 10조원 가운데 30%를 차지할 만큼 규모가 커서 규제 1순위 대상으로 꼽혀왔다.

그러나 현대글로비스는 지분매각을 통해 공정거래법 규제대상에서 제외됐다. 2월 5일 현대글로비스의 최대 주주로 있던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은 블록딜(시간외 대량매매)을 통해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대거 팔아치웠다. 정 회장 부자의 지분 총 13.39%를 국내외 기관투자자에게 매각함으로써 이들의 지분율은 29.99%로 낮아지게 됐다. 지분 매각 전 대주주 지분율은 43.39%로 일감몰아주기법에 해당됐으나, 지분매각으로 29.99%가 되면서 총수 처벌기준인 30%라는 규제의 선을 피하게 된 것이다.

현대글로비스는 2001년 현대차 탁송을 담당하는 사업부에서 분사돼 한국로지텍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됐다. 정몽구 회장이 10억원, 정의선 부회장이 15억원을 각각 출자했으며 이후 현대·기아차 물류를 독점하면서 초고속으로 성장했다. 출범 첫해는 매출 1,985억원, 순이익 65억원에 불과했으나 2014년 매출액 13조 9,220억원, 당기순이익 5,362억원의 기업으로 커졌다. 2003년 글로비스로 사명을 변경했고 2011년부터 현대글로비스라는 사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현대글로비스는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3자물류 및 해운업에 적극적으로 사세를 확장해나가고 있다. 국책사업인 북극항로 운항에 나서는가 하면 카타르 국영기업의 골재 해상운송계약을 따냈고, 가장 최근에는 유럽 물류기업 ‘아담폴’을 인수해 주목받았다. 또 20억원을 단독출연해 중소물류업체를 지원하는 ‘물류산업진흥재단’을 만들기도 했다. 현대글로비스 측은 “지난해 상생경영을 위해 국내 중소물류기업에 일감을 개방한 결과 국내물류 부문은 지난해 매출 1조 1,566억원을 기록하며 7.3% 하락했다”고 밝힌 바 있다.

LG상사가 인수한 ‘범한판토스’…총수 지분율 30% 이하

범한판토스는 올 초 LG상사에게 인수되면서 공식적으로 LG그룹 산하 기업으로 자리잡게 됐다. 1월 20일 LG상사는 범한판토스의 지분 51%(102만주)를 총 3,147억원(주당 30만 8,550원)에 인수했다. 범한판토스는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6촌 동생인 구본호 부사장과 구씨의 어머니 조원희 회장이 전체 지분 중 97%를 보유한 LG 방계회사라 할 수 있다.

LG상사는 전량을 인수하지 않고 경영권 인수를 위한 최소한의 지분 51%만 확보했다. 나머지 지분 46% 중 14.9%는 구본호 부사장이 그대로 보유하며, 31.1%는 구본무 회장의 장남인 구광모 (주)LG 상무 등 LG와 우호적 관계인들이 1,919억원에 인수했다. 구 상무의 지분은 7%대로 알려졌다.

LG상사가 범한판토스를 인수하면서 대기업의 일감몰아주기에 반대하는 정부 시책에 역행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범한판토스는 그동안 LG그룹과 지분이 섞이지 않은 방계사로서 일감몰아주기 논란에서 직접적으로 거론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LG상사는 총수 일가의 지분율이 30% 이하이므로 계열 간 거래 물량이 늘어난다 해도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구광모 상무 등 LG 직계기업 오너들은 범한판토스의 지분을 19%만 인수해 공정거래법상 일감몰아주기 처벌 규정을 피하게 됐으며 나머지 지분 12%는 LG그룹과 계열분리된 범 LG가 오너들이 인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LG상사가 범한판토스 인수에 대해 “사업 경쟁력 강화 및 안정적인 신규 수익원 확보” 차원 이라 설명한 것도 눈길을 끈다. LG상사는 글로벌 사업역량을 활용해 범한판토스의 해외사업 경쟁력을 높이고, 기존 컨테이너 물류 중심에서 자원·원자재 등 벌크 물류로 사업영역을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일부 시장 관계자들은 범한판토스가 LG상사를 모회사로 삼아 합병시너지를 얼마나 빠르게 나타낼 것인지에 주목하고 있다. 이와 관련 범한판토스는 언론의 노출을 피하는 조심스러운 분위기 속에 별 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물류업계는 범한판토스도 일감몰아주기로 성장한 대표 회사로 보고 있다. 1977년 범한흥산으로 출발해 2006년 범한판토스로 사명을 변경했으며 매출액의 절반 이상이 LG전자·LG디스플레이·LG화학 등 LG그룹 계열사들의 물량이다. 2013년 기준 매출 1조 2,872억원, 영업이익 282억원, 당기순이익 493억원(개별기준)을 거두었다.

물류업계는 LG상사의 범한판토스 인수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분위기다. 기존에도 범한판토스가 LG 계열사의 물류를 담당해왔기 때문에 인수 후에도 기존 물류시장에는 별 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다. 한 중견 물류업체 관계자는 “LG상사가 범한판토스를 인수한 것은 큰 관심 사안이 되지 않는다”면서 “범한판토스는 우리 경쟁사가 아닐 뿐 아니라 물량의 60% 이상이 LG계열사 비중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사실 범한판토스는 우리 화주사이기도 하여 말하기 민감하다”면서 더 이상의 언급은 피했다.

비자금 조성·경영권 승계 자금통로 ‘꼬리표’
2자물류사의 비자금 조성 문제와 편법적 경영권 승계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대기업의 물류자회사는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전형적인 경영권 승계 수단으로 지목돼왔다. 오너 또는 일가가 대주주로 참여하는 물류회사를 설립한 뒤 그룹사의 전폭적인 일감몰아주기로 회사를 폭발적으로 성장시킨 이후 배당금과 지분매각으로 현금을 확보해 2세 경영진이 주력 계열사의 지분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활용되는 것이다.

이번에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이 현대글로비스의 지분매각으로 1조여원의 현금을 확보한 것을 두고도 증권업계에서는 정의선 부회장이 지분 매각을 통해 마련한 자금을 활용해 그룹 지배구조의 핵인 '현대모비스' 지분 확보에 나설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LG상사의 범한판토스 인수를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만은 않다. 특히 LG그룹의 후계자로 점쳐지고 있는 구광모 (주)LG 상무가 범한판토스 지분을 사들인 것을 두고 4세들의 경영승계 자금 마련을 위한 것이 아니냐는 뒷이야기가 무성하다. 구광모 상무가 향후 범한판토스 상장을 통해 차익을 실현, 이를 승계자금으로 이용하지 않겠느냐는 해석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범한판토스 매출이 상당 부분 LG계열사에서 나오는 상황에서 손쉽게 매출을 올리고, 그 수익이 총수 일가로 다시 흘러갈 것이라는 예상이다.

구광모 LG 상무는 LG 구본무 회장의 장남으로 LG그룹의 지주사 LG의 3대주주(5.83%)이며 LG상사 지분 2.1%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LG측은 구 상무가 인수하는 지분이 적을 뿐 아니라 향후 수년간 범한판토스를 상장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2PL? 3PL? 해묵은 논쟁인가
이와 별도로 물류시장에서는 2자물류사를 둘러싼 시각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자유경쟁시장에서 2자물류와 3자물류를 구분하는 것이 더 이상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반문하는 물류업계 관계자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한 때 선진화된 물류시장을 위해서 2자물류를 반드시 없어져야 할 병폐로 보는 시선이 많았다면 현재는 2자물류사 자체를 시장의 참여자로 인정하고 공정거래를 위한 입찰경쟁으로 나가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물류업계는 2자물류 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이미 2자물류사들은 국내 물류업계를 움직이는 중심 축이자 핵심 플레이어로 조금씩 뿌리를 내리고 있어 무작정 배척할 수만은 없다는 입장이다. 물류 및 무역관련 단체에서도 이들의 참여도가 적지 않은 편이며, 이들에게 주는 감사패나 공로상도 잇따르고 있다.

2자물류사들은 정부지원 및 협력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을 뿐 아니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종합물류기업에 가장 근접하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IT 등 신규 투자에 적극적이며 해외 네트워크 투자 등에도 앞서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범한판토스는 세계적 시장조사기관인 가트너가 발표한 세계 12대 글로벌 물류기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더 나아가 계열사를 통해 거래하여 거래비용과 불확실성을 줄이므로 2자물류사의 일감몰아주기는 어쩔 수 없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상생의 길, 풀리지 않는 방정식
경기불황으로 물량 다툼이 치열해져가는 요즘 물류 및 포워더 업계는 시장의 구조적인 문제를 고민하기 보다는 당장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물량을 쫓는데 급급한 상황이다. 운송할 짐 외에는 다른 곳에 신경쓸 여력도 없어 최근 빚어진 2자물류사의 일련의 변화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듯 하다.

그러나 2자물류사의 일감몰아주기식 형태로는 상생의 길을 찾을 수 없다는 목소리는 되풀이되고 있다. 2자물류사들이 기존의 3자물류시장을 잠식해가고 있는 상황에서 중소 물류기업 및 포워더들은 글로벌화나 대형화의 주장이 무색하게 오히려 침체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는 상황이다. 물류업계는 자금력과 인력, 물량을 앞세운 2자물류사들과 경쟁해서는 살아남기 힘들다고 토로하고 있다. 따라서 중소 물류전문기업이 살아남는 방안을 자체적으로 강구할 뿐 아니라 2자물류사에 대한 일률적인 규제강화 보다는 정책적으로 국내 3자물류사들이 생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달라는 주장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물류업계가 자주 하는 이야기 중 하나는 ‘세계 유수의 자동차, 전자회사와 같은 제조기업들은 자체 물류기업을 가지고 있지 않고 제조(화주)기업과 물류기업이 수평적이고 동반자적 관계로 장기운송계약을 체결하여 상생의 길로 나가고 있는 반면 국내 물류시장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한 포워더 업체 임원은 “아랫돌 중간돌 윗돌이 있어야 집도 잘 지을 수 있는데 지금처럼 위에 대기업들만 있고 밑에 중소기업들이 받쳐주지 못하는 시장구조는 큰 문제가 된다”면서 “결국 2자물류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의 적당한 ‘제재 아닌 제재’가 필요하고 물량을 다 가져가는 개념이 아니라 공존의 개념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포워더 업체 관계자는 “정부의 개입을 통해 2자물류로 물류시장이 잠식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면서 “대기업의 계열사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위한 정부의 취지와 정책방향은 공감한다. 다만 일감몰아주기 규제 분위기가 계속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전했다.

대기업의 일감몰아주기를 규제하기 위한 공정거래법이 시행됐음에도 2자물류사들 마다 내부거래 규제망을 피할 수 있게 되면서 솜방망이 규제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2자물류사들이 3자물류의 비중을 점점 늘리며 물류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로 자리잡아가는 요즘 물류시장 관계자들에게 2자물류 문제는 쉽게 꺼내기 힘든 민감한 문제이자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 있다. 공정한 경쟁과 상생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2자물류를 둘러싼 해묵은 논쟁은 앞으로도 되풀이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적절한 정책지도가 필요한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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