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냐~”

마산 오동동 기생들의 삶, 술, 사랑 노래
한복남 씨, 6·25전쟁 때 부산 피난 가 작곡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냐
오동주 술타령이 오동동이냐
아니요 아니요 궂은비 오는 밤 낙수 물소리
오동동 오동동 끝임이 없어
독수공방 타는 간장 오동동이요
 

통통 떠는 뱃머리가 오동동이냐
사공의 뱃노래가 오동동이냐
아니요 아니요 멋쟁이 기생들 장구소리가
오동동 오동동 밤을 새우는
한량님들 밤 놀음이 오동동이요
 

백팔염주 경불소리 오동동이냐
똑딱똑 목탁소리 오동동이냐
아니요 아니요 속이고 떠나가신 야속한 님을
오동동 오동동 북을 울리며
정안수에 공들이는 오동동이요
 

 
 
야인초(김봉철) 작사, 한복남 작곡, 황정자 노래의 ‘오동동 타령’은 스윙풍의 4분의 4박자로 경쾌하면서도 부르기 쉬운 추억의 가요다. 옛 마산시(현재 창원시 마산회원구) 오동동午東洞지역의 질펀한 기생들의 삶과 술, 사랑, 푸른 합포만과 끈끈하게 이어지는 남녘의 구수한 민요풍 노래다. 오동동 권번에서 배출된 기생들의 애환을 담은 곡이기도 하지만 물 좋고 인심 좋은 마산의 정취를 잘 담아내고 있다. 이곳의 권번은 한 때 유명했던 기생학교다.

‘오동동 타령’ 음반은 1955년 작곡가 겸 가수인 한복남 씨가 운영했던 도미도레코드사가 내놨다. 노래를 작곡한 곳은 손광식 전 경향신문 사장의 고향 부산 집에서 였다. 한 씨 아들이 손 사장 집에서 하숙생활을 한 게 인연이 됐다. 6·25전쟁으로 북한서 피난온 한 씨는 손 사장 집 대청에서 기타를 치며 악보를 완성한 것이다.
 

음반 나오자 종일 전축 틀어놓으며 홍보
이 노래는 그 무렵 다른 가요들과 마찬가지로 레코드제작과 더불어 전국 주요 음반판매점에 큰 글씨로 가사를 써 붙여놓고 종일 전축을 틀어대는 방법으로 홍보해 히트곡이 됐다.
노랫말도 재미있다. 가사 중 ‘오동추야梧桐秋夜’는 오동잎 지는 가을밤이란 표현이다. 오동동梧桐動은 노래 배경지 마산 오동동이 아니라 의성어다. 오동나무가 흔들리거나 달 밝고 실바람마저 없는 한밤에 오동잎 하나가 똑 떨어지는 소리를 나타낸 것이다. 달콤한 동동주 위에 밥알이 동동 뜨는 모습이란 얘기도 있으나 신빙성이 덜 하다.

 
 
이 노래는 몇 년 전 매스컴을 타 눈길을 끈 적 있다. ‘노래탄생지가 마산의 오동동이다’는 근거와 증언들이 잇달아 지방언론에 소개된 것이다. 무용가 김해랑(1915~1969년)선생의 수제자인 정민(본명 정순모, 1928년 일본 고베출생)씨가 2006년 1월 5일 별세하면서 그의 생전증언들이 뒷받침됐다. 정씨는 2003년 7월 7일~9월 3일 마산MBC ‘사람, 사람들’ 프로그램에 나와 “한국근대무용체계를 잡은 김해랑 선생의 춤 원류가 오동동 권번에서 가르쳐진 무희들 춤”이라고 밝혔다. 이런 지역적 분위기에서 만들어진 노래가 ‘오동동 타령’이란 설명이다. 그는 방송에서 “오동동 권번에서 배출된 기생들 애환을 담은 노래가 ‘오동동 타령’이란 사실을 노래를 취입한 황정자, 황금심으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이는 일제강점기 때와 6·25전쟁을 앞뒤로 요정들이 몰렸고 여러 형태의 술집들이 생겨나면서 유흥가의 상징지역으로만 알려졌던 마산 오동동의 숨겨진 문화적 가치를 나타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정씨는 “오동동 네거리에서 왼쪽 조금 위(지금의 요정골목)에 권번이 있었다”며 “내가 어릴 때부터 가극단 활동을 해 우리나라 초기가수들과 대부분 교류했다. 가수 황정자, 황금심이 ‘오동동 타령’은 마산 오동동 노래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황금심이 정민 씨와 일본 집(적산가옥)에 1~2년 함께 있었다는 증언도 남겼다.
 

해마다 마산 오동동에선 ‘오동추야 문화축제’
‘오동동 타령’ 무대로 알려진 마산 오동동에선 2009년 3월 14~15일 ‘제1회 오동추야 문화축제’가 개막돼 해마다 펼쳐지고 있다. 오동동상인연합회가 주최하는 축제는 마산아구를 알리기 위한 아구가요제 등이 다채롭게 열린다.
마산은 ‘술의 도시’로 이름나 있었다. 수질, 기후, 풍토 등의 요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던 까닭이다. 일제강점기 땐 청수주조장과 수많은 청주공장들이 있었다. 광복이후 1970년대 초반까지 ‘삼강’, ‘백광’같은 국산청주를 만들었으며 ‘마산공동탁주’로 이어지는 막걸리양조장도 많았다. 요즘엔 ‘화이트소주’와 ‘하이트맥주’가 나온다.

특히 오동동엔 여러 형태의 주점이 파생되면서 술집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기생집, 요정, 통술집, 나래비집(일명 방석집) 등 오동동의 통술골목에서 흘러나오던 술타령은 주객들 마음을 흔들었다. 그중에서도 마산의 멋과 맛을 살려내는 곳은 국내 원조인 ‘통술집’이다. 통에 넣은 채 빚은 술이나 한 통의 술 또는 안주 한 상을 통째로 받는 술집을 뜻한다. 식당인지, 술집인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마산사람의 인심을 통째로 내놓는 곳으로 술꾼들에게 인기다. 마산어시장과 가까운 오동동일대는 해산물을 주로 내는 통술집이 30여 곳 있다. 창원시가 2013년 11월 19일 통술골목에 ‘오동동 소리길’(140m)을 개통했다. 소리길에 들어서면 ‘오동동 타령’, ‘마산항 옛 친구’, ‘비 내리는 마산항’ 등 통술집에서 흘러나왔던 옛 가락 6곡을 들을 수 있다. 골목벽엔 3·15의거, 말 등 마산을 테마로 한 벽화도 그려져 있다.

마산어항의 중심 선창이었던 오동동은 구마산의 가운데로 상남동 곁에 있고 남쪽으론 마산만에 닿는다. 합포현의 관할지역으로 조선 태종 때 창원부에 들어가고 1910년엔 마산부제가 이뤄지면서 마산부 외서면으로 들어갔다. 1914년엔 행정구역 통합으로 동성리, 오산리, 상남리 일부를 합쳐 오산과 동성의 앞 글자를 따 오동리라 해 다시 마산부로 들어갔다. 일제강점기 땐 오동동은 상남동과 함께 우리나라 사람(조선인)들이 살던 곳이다. 주민들은 상남천을 따라 발달된 주거지에 몰려 살아 지금에 이른다.
 

마산 ‘9경 5미’ 전국적으로 유명
1980년대 전국 7대 도시였던 마산은 몽고간장과 무학소주로도 유명하다. 1905년 창원시 마산합포구 자산동에 일본인 야마다 노부츠케山田信助가 세운 야마다山田 장유양조장인 몽고식품, 1929년 3월 소화주류공업사가 전신인 무학소주가 가동되고 있다. 1946년 국립마산결핵요양소로 문을 연 국립마산병원도 전국의 결핵환자들을 맞고 있다. 마산의 9경으로 무학산, 돝섬 해상유원지, 저도연륙교, 국립3·15민주묘지, 어시장, 마산문신미술관, 마산항 야경, 팔용산 돌탑, 의림사 계곡이 꼽힌다. 마산을 대표하는 5가지 먹거리는 아구찜, 전어회, 복요리, 미더덕, 국화주다. 아구찜은 마산이 원조며 미더덕은 전국출하량의 70%를 차지한다. 따뜻한 남녘의 봄바람을 맞으며 친한 벗과 ‘오동동타령’을 안주삼아 마산의 멋과 맛이 가득한 9경 5미를 즐겨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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