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길’ 교역으로 서양이 세계를 지배한 역사 ‘흥미’

 
 
  "근대 이전의 서양은 동양에 비해 뒤진 문명이었다. 18세기초 중국과 인도가 세계 경제의 70% 이상을 차지했다. 유라시아대륙에서도 영향력이 크지 않았던, 유럽은 동양보다 앞선 ‘해양력’과 ‘바다이용 전략’을 통해 아랍과 아시아가 주도했던 세계경제 네트워크에 참여할 수 있었다. 바다를 단순한 ‘길’로 보지 않고 ‘네트워크’로 바라보았기에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해운불황과 세월호 참사 등으로 인해 부정적인 사회인식이 확산돼있는 해운업에 대한 대국민 홍보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시점이다. 이러한 때 KBS에서 동서양의 근대사를 통해 바다와 해운, 해양력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4부작 다큐멘터리 ‘바다의 제국’을 방영해 주목받았다.

1월 29, 30일과 2월 5, 6일 4일간 저녁 10시에서 시작해 각각 55분간 방송된 다큐멘터리 ‘바다의 제국’은 세계사를 바꾼 교역이야기라는 부제아래 △욕망의 바다 △부(富)의 빅뱅 △뒤바뀐 운명 △거대한 역전을 소제목으로 해 4부작으로 방영됐다.

특별기획으로 제작된 ‘바다의 제국’은 기원전 일명 실크로드라는 ‘사막의 길’을 통해 처음 만났던 동양과 서양이 8세기경 ‘바다의 길’로 교류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은 역사를 조명했다. 근대 이전까지만 해도 동양에 비해 뒤떨어진 문명을 가졌던 서양이 바다 길을 통한 동양과의 교류를 계기로 세계를 지배하게 된 역사를 되짚어줌으로써 바다와 해운의 중요성을 인식시켜준 방송프로그램이었다.

제작진은 동·서양이 만났던 바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으며 서양의 나라들이 어떻게 부국이 될 수 있었는지, 바다를 통한 교역이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근대세계의 형성과정을 ‘교역과 자본축적’이라는 경제적 측면에서 보여주었다. 이 근대의 세계사는 국제교역에 참가했던 나라들의 부침과 괘를 같이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형성과정이기도 하다. 특히 세계사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던 주요 교역품인 후추, 면화, 설탕, 차 등을 중심으로 서양의 자본축적 과정과 바다와 해운의 역할을 보여주었는데, 지금은 너무 익숙해 사소해보이기까지 한 일상용품들을 둘러싸고 동양과 서양이 충돌했고 세계사가 소용돌이쳤다는 점은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다.

여기에 특수영상과 최첨단 CG기술을 활용해 중세 바다를 안방에서 재현한 점은 보는 이의 재미를 더해 주었다. 다큐멘터리를 후원한 선주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14개 나라와 각국의 바다가 현존하는 최고의 장비를 이용해 카메라에 담겼다. 항공촬영, 초고속촬영, 미속, 하이퍼랩스 등 특수촬영을 병행해 수려한 영상을 화면에 담았는데, 이를 위해 영화 ‘명량’과 ‘해적’에서 바다의 특수영상을 담당했던 팀이 합류해 근대 바다의 이미지를 영화수준으로 복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4부작으로 방영된 다큐멘테리의 내용은 훑어보면, 1부 욕망의 바다는 후추(향신료)를 통한 동서양의 교류와 역사를 바꾸어놓은 흥미진진한 스토리이다. 인류의 근대사를 열었다고 평가받고 있는 ‘대 항해시대’는 서구의 앞선 문명과 개척정신의 결과라기 보다 후추에 대한 결핍과 종교적인 이유에서 시작됐다. 얼핏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근대 이전의 서양은 동양에 비해 뒤진 문명이었다. 18세기초 중국과 인도가 세계 경제의 70% 이상을 차지했다. 유라시아대륙에서도 영향력이 크지 않았던, 유럽은 동양보다 앞선 ‘해양력’과 ‘바다이용 전략’을 통해 아랍과 아시아가 주도했던 세계경제 네트워크에 참여할 수 있었다. 바다를 바라보는 동,서양 관점의 차이가 훗날 세계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이 방송의 골자이다.

2부 부富의 빅뱅에서는 설탕을 통한 서양의 동양과의 교역내용과 그것을 통한 부의 축적, 대형농장 등 산업화의 탄생이 소개됐다. 동양과 마땅히 교역할 물건이 없었던 서양은 삼각무역을 선택했다. 네덜란드는 아시아에서 삼각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해나갔으며 영국이 이 무역방식을 본격적인 산업에 적용했다. 영국은 설탕의 세계적 상품성을 알고 노예무역과 아메리카 식민지를 연결하는 설탕플랜테이션 산업을 시작하며 엄청난 부를 얻었다. 서양은 바다를 단순한 ‘길’로 보지 않고 ‘네트워크’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3부 뒤바뀐 운명에서는 면직물을 다루었다. 17세기 초, 네덜란드와의 ‘향신료’ 경쟁에서 밀린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수입한 상품이 인도산 면직물, ‘캘리코’ 였다. 면직물은 화폐로 사용될 정도로 세계적으로 환영받았으니 오늘날의 자동차와 아이폰 같은 상품이었다. 면직물을 자국에서 생산하려는 노력은 방적기와 같은 공장제 생산으로 이어져 초기산업혁명의 중요한 계기가 마련됐다. 때마침 풍부했던 석탄 매장량과 증기기관의 개발로 영국은 인도를 누르고 세계 최대의 면직물 수출국가가 됐다. 플라시전투 이후에 영국의 식민지가 된 인도는 면직물 원산지에서 수입국으로 전락하기에 이른다.

4부 거대한 역전은 차와 아편을 통한 바다 패권의 역사를 소개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발견한 ‘은’은 유럽과 중국의 본격적인 교류에 이용됐다. 당시 유럽에는 ‘중국열풍’이 불었다. 18세기 초 유럽의 ‘차’소비가 급증하면서 유럽의 대 중국 무역역조현상이 심각한 수준에 직면했다. 중국 차를 사기 위해 필요한 ‘은’ 부족에 시달리던 영국의 동인도회사는 ‘아편’을 교역품으로 택했다. 아편무역을 시작하면서 영국은 중국과의 무역역조를 해결했지만 청나라 정부의 강력한 제재에 직면해 ‘아편전쟁’이 벌어졌고 영국이 승리했다. 대항해시대 이후 시작된 동양과 서양의 문명교류는 아편전쟁을 계기로 새로운 분기점을 맞았다. 이 전쟁을 통해 국제질서는 해양력을 앞세운 유럽중심의 체제로 재편됐다. 근대의 바다에서 완성된 세계질서의 기본틀은 21세기인 현재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중국의 경제적 부상에 따라 한중일 동아시아의 역할이 세계적 화두가 되고 있다. 특히 동아시아가 서양을 넘어 세계경제를 이끌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높은 현 시점에서 KBS 다큐멘터리 ‘바다의 제국’을 통해 유럽이 아시아를 추월했던 근대 세계사를 보는 재미는 꽤 쏠쏠했다. 이 다큐멘터리를 계기로 세계 5위의 상선대 보유력을 가지고 있는 한국해운이 국가경제에 기여도가 크다는 점이 좀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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