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선주사의 사례

 
 
강한 회사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기업이 강한 기업이라는 얘기가 있다. 세계적으로 가장 생존본능이 강하고 해운업에 적합한 유전자를 가진 집단이 그리스 선주라고 한다면 이들과 쌍벽을 이루는 집단이 일본선주, 그중에서도 에히메 선주다. 5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선사가 거의 없는 우리나라 중소해운업체의 현실에서 일본의 중소선사를 대표하는 에히메 선주들의 생존전략에 대하여 알아보자.
 

에히메 선주의 실태
도서국가인 일본은 전국에 걸쳐 동경과 요코하마 등의 수도권, 오사카나 코베의 한신권, 오카야마, 히로시마, 야마구치, 후쿠오카, 도쿠시마, 에히메, 오이타, 나가사키 등의 지역이 해운산업의 거점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에히메현 이마바리시를 중심으로 입지한 에히메선주 또는 이마바리 선주(Ehime Owner)라고 불리는 외항선주집단은 매우 특이한 존재이다. 약 50개사가 일본 외항선 척수 31.2%(2014년, 일본선사 보유 외항선은 3316척)에 달하는 1035척을 보유하고 있다. 동경이나 한신권의 선사가 대형 운항선사이거나 그 계열사임을 고려하면 에히메 선주의 점유율은 압도적이라고 할 것이다. 에히메선주가 보유한 선박 1035척의 자산액을 척당 300억엔으로 볼 경우, 3조 1050억엔이나 되고, 용선료수입은 일일 13000달러라고 할 경우, 연간 4911억엔으로 에히메현에 소재한 조선소의 2013년 매출액 5천억엔과 합할 경우, 1조엔에 달한다. 2013년 부산시의 지역경제총생산액은 70조원이라는 점에서 인구가 18만명에 불과한 이마바리시에서 해운조선관련산업의 경제효과는 엄청나다.  

에히메 선주의 역사는 12세기로 거슬러 올라 갈 정도로 오래되었는데 세토내해의 해적의 본거지였고 근대화과정에서는 일본 각지로 소금과 석재를 수송하면서 내항해운을 시작하였다. 1967년에는 에히메현 내에만 1051사가 있었다. 내항해운으로 자금축적을 이룬 일부 사업자를 중심으로 1950년대 후반부터 외항으로 진출하였다. 세노기선瀨野汽船이 1956년 850톤의 근해선을 투입하면서 시작된 에히메 선주의 외항진출은 에히메은행의 전신인 에히메상호은행이 적극적으로 후원하면서 참여 업체가 많아졌다. 그리고 1960년대 후반에는 운항과 소유를 분리하여 대형 운항사업자에게 대선업에만 전념하는 형태로 근해선에 진출하는 사업자가 많아지고 근해선이 포화상태에 달하자 원양으로 진출하면서 오늘날의 에히메 선주가 만들어졌다. 에히메 선주의 비즈니스모델은 지역금융기관으로부터 조달한 자금으로 주로 지역의 중소조선소에서 선박을 건조, 운항선사와 용선계약을 맺고 대선하여 용선료 수입을 얻고, 용선료수입 및 매선이익으로 융자금을 상환, 매선이익으로 신조선을 발주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종합상사가 주도권을 쥐고 운항선사가 조선소에 발주한 선박을 에히메 선주에게 매각하는 경우도 있는 등 다양하고 선박관리나 선원배승을 선주가 직접 행하거나 외주하기도 한다.

에히메 선주의 시작패턴은 4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선원생활부터 시작한 선대가 창업해서 3대이상에 걸쳐 이어가는 가업형, 둘째는 창업자의 차세대가 분리독립한 분가형, 세번째는 조선소나 기계업체가 선박을 소유하는 해운관련업체의 신규참여형, 네번째는 전혀 관련 없는 수건제조업자가 절세나 사업다각화 차원에서 진출하는 것과 같은 이업종업자형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은 선원생활부터 시작한 가업형이다.

에히메 선주가 보유한 선종은 벌크선과 컨테이너선이 80% 이상이다. 이들 선박은 특수선에 비하여 비교적 염가이고 운항관리나 수선이 용이하고 선박척수가 많아 시장에서 매각이 비교적 용이하다. 선적은 압도적으로 파나마가 많은데 이는 브로커나 변호사가 많아 수속이 용이하고 세제나 법률이 확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에히메 선주의 선박을 용선하는 운항사는 일본의 대형선사가 대부분이다. 7~8년 전부터 외국선사에 용선하는 사례도 늘고 있지만 대한해운의 도산을 비롯한 외국선사가 경영상문제로 계약기간 이전에 반선하는 사태가 많아지면서 에히메 선주의 일본대형선사 의존도를 더욱 강하게 하고 있다.
 

에히메 선주의 경쟁력
에히메 선주의 특징은 선대규모의 지속적인 증가라고 할 수 있다. 에히메 선주가 보유하는 외항선은 2004년 527척, 2008년 767척, 2014년 1035척으로 증가하였다. 에히메 선주 중에 10척 미만을 보유한 선주가 44개사, 10척이상을 소유한 선주도 25개사로, 1사당 보유척수는 단순평균하면 2004년의 8.2척에서 2014년에는 15척으로 증대하였다. 선주사가 10척이상을 보유하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안정경영의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10척이상을 보유하는 선사가 25개사나 있다는 점은 매우 특이하다고 할 것이다. 에히메 선주 중에서 60척 이상의 선박을 보유한 대규모기업은 세노기선, 닛센해운日鮮海運, 토운기센洞雲汽船, 쇼에이기센正榮汽船 등이다.

에히메 선주들도 초기에는 운항수익과 매선차익을 노리는 업자가 많았지만 실패하는 업자도 많았고 환율이 360엔에서 120엔수준으로 낮아지면서 선주도 전략적으로 생존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에히메 선주의 발전 배경에는 편의치적화에 의한 운항원가의 절감과 일본정부의 선주에 대한 우대세제, 남양재의 수입 증가, 에히메현에 있는 이마바리조선소와 같은 지역중소조선소의 건조능력 증가와 할부판매방식과 같은 적극적인 금융, 대형선사와의 공생관계구축, 지역은행의 적극적인 지원 등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후자의 두 가지라고 할 것이다. 

 첫째로 에히메 선주의 성장을 촉진하는 계기가 된 것이 바로 대형운항선사와의 공생관계 구축에 있다. 소유와 운항을 분리해 대선업에 전념하면서 성공을 거둔 에히메 선주들은 자국의 대형선사들이 필요로 하는 선박을 공급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일본해운은 이른바 운항 3사라고 불리는 NYK, MOL, KLINE의 3사를 정점으로 1100여개의 선주사들이 군집을 이룬 형태를 갖고 있다. 2000년대에 들어서 대형선사들은 선박보유로 인한 부채비율 증가로 인한 신용도 하락을 피하기 위하여 에히메 선주에게 선박을 소유, 건조하게 하고 이를 장기 용선하였다. 이른바 오프밸런스(off balance)이다. 에히메 선주가 필요한 신조자금은 대형선사가 소개한 금융기관을 통하여 조달하게 하여 에히메 선주는 자기자금 10% 내외로 선박을 소유할 수 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일본은 저금리였고 선가도 낮았기 때문에 에히메 선주도 자국의 대형선사의 요구에 쉽게 대응할 수 있었다. 또 타국 통화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의 엔화자금으로 선박을 건조하면 경쟁력이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해외 대형운항사도 에히메 선주에게 의존하는 업체가 나타났다. 예를 들어 쇼에이기센의 주거래선사에는 일본 3사 이외에도 BOCIMAR, NOL, OOCL, YANG MING 등이 있다.

둘째로 지역은행인 이요은행伊予銀行, 에히메은행愛媛銀行 등의 적극적인 지원도 에히메 선주의 경쟁력의 원천이다. 에히메현내 주요 금융기관의 총대출잔액에서 이마바리시 소재기업에 대한 대출비율은 약 1/3에 달하는데 그 중에서 80%가 해운조선기업 관련이라고 알려져 있다. 지역은행의 관여는 단순히 융자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이요은행은 1980년대에 이미 런던사무소를 만들고 세계 해운시황정보를 입수하여 에히메 선주 등의 고객에게 정보를 제공하였다. 현재 약 4천억엔을 해운조선산업에 대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요은행은 에히메 선주에게 에히메현의 조선소에 발주하도록 권유하면서 해운과 조선산업의 공생발전을 도모하는 등 지역밀착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한 바가 크다. 에히메은행의 경우도 해운을 지역의 중심산업으로 보고 심사부내에 선박파이낸스실을 설치하고 선박금융 담당자는 현내의 선사나 동경의 운항사, 상사, 브로커, 조선소 등에 파견되어 해운전문지식을 습득하여 선박금융전문가로 양성하고 있다. 지역은행들은 중복융자로 인한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협조융자보다는 1선박 1은행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최근의 해운불황에 대처하는 법
최근 10년간의 해운불황에서 에히메 선주의 강점은 특히 두드러진다, 2008년을 피크로 해운경기는 악화되고 그와 함께 1달러=70엔의 초엔고는 일본해운을 압박하였다. 산코라인의 도산, MOL을 비롯한 대형선사의 적자로 대표되는 해운업의 곤경을 극복하기 위해서 일반적인 선주들은 대형선사에게 구원을 요청하거나 은행에 차입금 변제조건완화를 요청하는 선주가 증가하였다. 하지만 에히메 선주들 사이에서는 이런 요구가 전혀 없었다. 왜냐하면 에히메 선주의 경우, 호황기에 벌어들인 자금이 풍부하였고 설사 축적이 없다고 하여도 팔 수 있는 선박이 있기 때문이다. 안정경영을 위해서는 보유자금과 매각가능선박이 얼마나 있느냐가 중요한데 이러한 점에서 역사와 전통이 있는 에히메 선주는 다른 곳에 비하여 확실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 에히메선주들은 1980년대 후반의 플라자합의 이후로 급속한 엔고, 금리의 급등, 해운사황 악화로 아무런 도움이 없던 시절을 경험했기에 20034년 이후의 해운호황에도 머니게임에 치중한 여느 나라의 선주들과는 달리 견실경영을 최우선으로 삼아왔다. 고난의 경험에서 “해운시황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경계감을 늦추지 않았다. 1960년대의 해운집약, 1980년대 초반의 해운불황과 같은 과거의 대불황을 알고 있는 경험이 강점으로 작용하였다.

선주의 경영을 크게 좌우하는 4가지의 요인은 용선료를 결정하는 해운시황, 금리, 환율, 선원비 등의 선박경비이다. 현재는 이 4가지 모두가 선주에게는 불리한 상황이다. 왜냐하면 과잉선복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상태에서 2017년까지 선복수급의 불균형이 계속될 것이고 해운시황의 회복도 그 이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에히메 선주들은 현재의 곤경에 어떻게 대처하려고 하고 있을까? 에히메 선주들은 해운시황이 상승국면에 있을 때 선복교체를 마치고 시황하락이나 초엔고의 시기에는 무리한 투자를 자제하였다. 최근에는 해운시황은 불황이지만 신조선가 또한 하락하였고 엔고에서 엔저로 급속하게 전환되면서 에히메 선주의 경영실적도 개선되었다. 보유선복의 선령이 높아져 교체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보유자금이 풍부한 에히메 선주는 다시 투자를 활발하게 하고 있다. 일본대형선사의 경우, 선복과잉, 해운불황에 따른 채산성 악화로 새로운 선주로부터 용선할 여력이 없고 높은 용선료로 계약한 선박이 채산성을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에히메 선주만이 일본 대형선사가 요구하는 고효율의 낮은 용선료를 제시할 수 있는 선박을 공급할 수 있다.
 

5. 시사점
일본의 중소선사가 그리스 선주와 쌍벽을 이룰 정도로 발전하였는데 반하여 우리나라의 선사들은 그렇게 될 수 없을까? 에히메 선주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첫째, 에히메 선주들은 한 우물을 판 업체가 성공하였다. 해운업으로 돈 벌었다고 다른 일을 하기 보다 대를 이어가며 가업인 해운업을 발전시켜 나갔다. 자녀들도 선사의 바닥에서부터 출발하면서 기본을 익혔다. 둘째, 안정경영을 최우선으로 하고 투기를 하지 않았다. 자본비와 운항비에 적정이윤을 더한 용선료 수준을 정하고 과다이윤을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형선사, 화주와 장기에 걸친 공생관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셋째, 대형선사와 중소선주의 공생관계를 철저히 하였다. 대형선사는 선박보유리스크를 분산하기 위하여 자국의 중소선주를 적극 활용하고 모든 파이를 독식하려고 하지 않았고 중소선주도 장기계약을 우선하였다. 넷째, 지역은행과 지역조선소와 협력하여 해운업을 지역산업화하였다. 이요은행이나 에히메은행의 협력이 없다면 오늘날의 에히메 선주도 없었을 것이다. 부산시를 동북아시아의 해운도시로 만들겠다는 정부정책이 성공하려면 중앙의 선박금융기관을 억지로 부산에 모을 것이 아니라 부산의 지역금융기관이 선박금융 전문은행으로 발전하기 위한 노력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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