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선계약상 ‘안전항(Safe Port)’의 이해

2014년 2월호 지면에서는 영국법원의 ‘Ocean Victory’호 판결을 중심으로 정기용선자의 안전항 지정의무 기준과 책임범위에 대해 살펴본 바 있다. 본 11월호에서는 영국법 상 전반적인 ‘안전항’의 정의에 대해 살펴보고 안전항 관련 클레임 예방을 위한 조언을 제시하고자 한다. 

 
<계약조항의 중요성>

국제적 거래의 특성상 대부분의 용선계약은 영국법을 준거법으로 하며, 영국법상 계약은 당사자간의 합의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므로, 선주와 용선자간 안전항에 대한 책임관계 역시 용선계약서의 조항 해석을 바탕으로 한다. 다수의 표준 용선계약서상 용선자의 안전항 지정 의무는 명시적으로 삽입되어 있지만, 경우에 따라 안전항 지정 의무가 없거나 단순히 안전항 지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수준의 의무만이 언급되는 경우도 있다.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표준 정기용선계약 양식인 NYPE 19461), NYPE19932), 또는 BALTIME3)에는 명시적으로 용선자의 안전항 지정의무가 언급어 있는 반면, 탱커 표준 정기용선계약에 사용되는 SHELLTIME 44)양식의 경우 용선자의 의무는 단순히 안전항 지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수준의 의무만 언급되고 있다. 한편, 항해용선계약서 양식 GENCON 19945)에는 별도의 안전항 지정의무가 언급되어 있지 않다. 안전항의 법리는 정기용선계약이나 항해용선계약에 공통적으로 적용된다.6)

계약서상 명시적으로 용선자의 안전항 지정의무가 언급되는 경우 당사자간 그 책임관계가 명확하나7), 그렇지 않은 경우 용선자의 묵시적 안전항 지정의무 존재에 대한 다툼의 여지가 있다. 안전항 지정의무가 명시된 조항 없이 지명된 항구 (Named Port)를 전제로 체결된 용선계약의 경우 해당 항구의 위험을 선주가 인수한 것으로 간주되는지 여부나8), 일정 지역구간(range) 중 용선자의 항구지명권을 전제로 계약하는 경우 용선자의 묵시적인 안전항 지정의무가 존재하는지는 여부는 다툼의 소지가 있다. 이와 관련한 해석원칙으로 용선계약 상 용선자의 항구지정 범위가 넓은 경우 그에 상응하여 용선자의 안전항 지정의무도 커지는 반면, 구간 내 지정 항구가 특정된 몇 개의 항구로 제한되는 경우 그에 상응하여 예상되는 해당 항구의 위험을 선주가 인수했다고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불명확성을 피하기 위해서는 매 용선계약의 체결 시, 관련 조항에 명확한 안전항 문구를 삽입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안전항의 정의>
영국법 상 안정항의 정의는 1958년의 The Eastern City9)판결에서 제시되었고 이후 안전항 여부를 결정하는 보편적 기준으로 활용되고 있다. 해당 정의에 따르면 “안전한항구란, 특별한 상황의 발생에 따른 위험을 제외하고, 해당 시점에 해당 선박이 안전하게 입항, 정박 및 출항을 할 수 있으며 일정수준의 항해기술능력으로 해당 항구의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항구”를 말한다.
본 정의는 안전항에 대한 일정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나 최종적인 안전항 여부의 판단은 구체적인 사실관계와 적용법리에 따르게 되므로 사고 발생 시 여전히 특정 항구가 안전항인지 충분한 확신을 가지고 판단하기는 어려운 단점이 있다. 따라서, 사고의 발생 시 P&I 클럽 및 변호사 등 전문가들과의 협의가 필요하다. 

 
<입항 시점의 안전항>
용선자의 안전항 지정의무는 해당 선박이 항구에 입항하는 시점의 안전을 의미한다. 따라서, 비록 항해명령이 내려지는 시점에 도착항의 위험이 존재하더라도 실제 입항하는 시점에는 그 위험성이 사라지는 것이 예상된다면 해당 항구로의 항해명령은 유효하다. 반면, 정당한 항해명령 이후에도 상황의 변경으로 해당 항구에 위험이 발생하는 경우 용선자는 대체항구를 지정해야 할 의무가 발생한다.10)
 
<안전하지 않은 항구로의 항해를 거부할 권리>
용선자의 항해명령 시점에 판단했을 때, 해당 항구가 향후 입항시점에 안전하지 않을 것이 예상된다면 선주는 해당 항해명령을 계약 위반으로 간주하고 항해수행을 거부할 수 있다.11) 또한, 입항시점에 해당 항구가 안전할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합리적인 시간 동안 용선자의 명령수행을 보류할 권리도 가지고 있다. 반면, 같은 맥락에서 명백한 위험이 예상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선주가 아무런 항변 없이 용선자가 지정한 항구로 항해를 수행한다면, 경우에 따라, 선주는 불안전항으로의 항해 거부권 및 해당 항구 입항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권을 포기한 것으로 간주될 가능성도 있다.12) 다만, 용선자의 항해명령에 따라 안전하지 않은 항구로 입항한 것을 무조건 선주의 구상권 포기로 볼 수는 없으며, 선주는 용선자가 계약조건과 같이 안전항 지정을 할 것을 믿고 항차를 수행할 권리가 있다.13) 따라서, 용선자의 명령에 따른 특정 항구로의 입항이 예상위험의 정도를 고려했을 때 불합리하지 않은 경우에는 선주는 여전히 용선자를 상대로 안전항 지정의무 위반에 대한 구상권 행사가 가능하다.
 
<해당 선박에 대한 안전항>

특정 항구의 안전항 여부에 대한 판단은 해당되는 특정 선박을 기준으로 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선박에 안전한 항구일지라도 해당되는 특정 선박에는 안전하지 않은 항구로 판단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존 입항 선박들의 크기보다 큰 선박이 입항하여 해당 항구에 해당 선박을 수용할 수 있는 예인선 등 추가적 시설이 부족하거나 별도 해당 선박에만 적용되는 추가적 위험이 존재하는 경우 해당 항구는 다른 선박에는 안전한 항구일지라도 해당 선박에는 안전하지 않은 항구가 될 수 있다.14)
 
<물리적으로 안전한 항구>
상기 정의에 비추어, 안전항이 되기 위해서는 해당 항구가 일정한 정도의 수심을 유지해야 하며, 해당 선박을 수용할 수 있는 접안 시설을 갖추고, 다수의 선박이 안전하게 대기하고 이동할 수 있는 공간, 인력 및 기반 시설이 있어야 한다. 또한, 선박의 안전한 작업을 방해하는 강한 바람, 파도 등이 없거나 또는 그러한 기후환경을 대비할 수 있는 시템이 존재하여야 한다. 
 
(1) 안전한 입항
용선자가 담보한 안전항의 범위는 단순한 지리적 항구의 범위를 넘어서 해당 항구로의 진입 구간을 포함한다. 다만, 해당 구간이 항구로부터 멀어질수록, 항구로의 진입 경로가 다양할수록, 그리고 사고의 발생이 그 항구의 특성과 무관할수록 용선자의 책임 범위는 적어진다. 따라서, 항구로 통하는 수로에 설치된 교각의 높이제한15) 및 결빙16) 등으로 인한 입항의 제한 상황은 안전하지 않은 항구에 해당한다.
 

(2) 안전한 정박
대부분의 경우 사고는 한가지 요소로만 발생하지 않으며 여러 가지 요소가 혼합되어 발생한다. 또한, 해당 항구의 강풍, 파도 등 자연적 요소뿐만 아니라, 해당 항구에 예견되는 위험들을 대비할 수 있는 충분한 시스템이 존재하는지 여부 역시 안전항의 판단기준이 될 수 있다.17) 18) 19) 
 

(3) 안전한 출항
용선자의 안전항 지정 의무는 입항 및 항만 내 정박뿐만이 아니라 작업 후 출항 시의 안전성까지 포함한다. 따라서, 양하작업 후의 선박의 흘수(draft) 변화에 따른 출항제한20) 및 기온 변화에 따른 결빙 역시 용선자의 귀책 사유에 해당한다.
한편 안전항(safe port) 대신 안전한 선석(safe berth) 를 기준으로 용선계약을 체결한 경우, 용선자의 안전한 선석(berth) 지정의무는 좁게 해석되어 해당 항구 (port)가 아닌 단순히 선석(berth) 만을 의미하며 항구 내 선석으로 이동 구간을 포함하지 않는다.21)
 
<정치적으로 안전한 항구 (기타 요인)> 

안전항의 정의는 단순히 물리적인 항구의 안전성뿐만 아니라 선박의 징발 등을 초래하는 정치적 위험을 포함한다.22) 또한, 경우에 따라서 에볼라23)와 같은전염병으로 인해 선원에게 치명적인 질병을 초래할 수 있는 항구 역시 안전하지 않은 항구로 판단될 수 있다.
 
<특별한 상황의 발생>
해당 항구에서 통상적으로 예상할 수 없는 특별한 상황의 발생으로 인한 위험은 용선자의 책임범위를 벗어난 위험이다.24) 즉, 다른 선박의 과실로 인한 충돌, 예상할 수 없었던 전쟁 발발로 인한 출항 불가, 현지에서 예견할 수 없을 정도의 강풍으로 인한 위험은 해당 항구 본래의 위험을 벗어난 특별한 상황의 발생에 따른 위험으로 용선자의 안전항 지정 책임에 해당되지 않는다. 
 
<일정 수준의 항해기술로 회피 가능한 위험>
비록 항구에 위험이 존재하더라도 그 위험이 일정 수준의 항해기술로 회피가 가능한 위험일 경우 해당 항구는 여전히 안전한 항구로 간주되며 선주는 그 위험과 연계되어 발생한 손실을 용선자로부터 구상할 수 없다. 즉, 해당 사고의 실질적 원인이 해당 항구의 위험이 아니라 본선의 과실인 경우 그 결과는 당연히 선주의 몫이다.25) 반면, 본선의 과실이 존재하더라도 여전히 해당 항구의 위험 자체가 일정수준의 항해기술로 피할 수 없을 만큼 상당한 경우 용선자는 여전히 안전항 지정의무 위반에 따른 책임을 부담한다.26) 또한, 본선의 과실이 존재하는 경우에도, 전체적인 상황 고려 시, 합리적으로 위험에 대응하며 발생한 과실인 경우, 여전히 해당 사고의 원인은 용선자의 안전항 지정의무 위반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입항 조력자인 도선사는 선주의 대리인으로 간주되어 도선사의 과실로 인한 선박의 사고 발생 시 용선자 구상에 제한이 있을 수 있다.  
 
<클레임 예방 가이드>
상기와 같은 안전항에 대한 제반 이슈를 고려할 때, 클레임 예방을 위해서 다음과 같은조치를 고려해 볼 수 있다. 
 
(1)  용선계약 체결 시 안전항 문구의 삽입
용선계약 체결 시, 관련 항구 앞에 단순히 “safe” 라는 단어를 삽입하게 되는 경우, 용선자의 안전항 지정 의무가 명확해 지며 이와 관련된 분규를 방지할 수 있다.
 
(2)  입항 항구의 안전성이 불확실한 경우 사전 확인 필요
선주는 일정 수준의 항해기술로도 회피할 수 없는 위험이 존재한다고 판단되는 경우 해당항구로의 입항을 거절할 수 있으며, 관련 사항이 불명확한 경우, 합리적인 시간 내로 해당 항구의 안전성 여부를 파악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특정 항구의 안전여부가 불확실한 경우 해당항구의 대리점 또는 P&I 클럽 연락사무소 등에 사전 조언을 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3)  본선의 감항성 및 안전관리 시스템 유지

안전하지 않은 항구의 위험을 대응하는 과정에서 선박의 과실이 불가피하게 개입되더라도 그 대응 절차가 합리적인 수준일 경우 해당사고의 책임이 쉽게 선주에게 전가되지 않는다. 하지만, 선박의 기본적 감항성 유지상태 및 안전관리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면 그러한 사유들은 분쟁의 과정에서 선주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항시 선박의 감항성 유지 및 안전관리 시스템의 준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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