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식 안전교육, 머리 보다 몸이 먼저 기억

 
 
비상시 물위 던지면 자동 펴지는 텐트 모양 구명보트
갑판 흰색 드럼통…생존필수품 구비, 최대 10일 버텨

6월 15일 ‘제 7회 경기국제보트쇼’가 열리고 있는 고양 킨텍스 제2전시장, 각종 레저용 보트 전시품들 사이로 멀리 대형수조가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관람객을 대상으로 한 해양안전체험이 한창이다. 수조 위로 둥둥 떠다니는 것은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잘 알려진 주황색 ‘구명벌’이었다.

구명벌(구명뗏목, Life Raft)은 여객선 마다 갖추고 있는 해상인명 구조장비로 비상상황 시 물에 던지면 자동으로 펴지는 텐트 모양의 구명보트다. 구명벌은 보통 갑판 위 좌우현 끝 선수 등에 위치해 있으므로 배를 탈 때는 위치를 잘 파악해두어야 한다.

구명벌이 담겨 있는 흰색 드럼통 같은 상자 앞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구명벌을 고정하는 안전핀을 위로 올려 제거한 후에 줄을 끝까지 잡아당깁니다. 구명벌을 바다에 던지면 내부에 탑재된 이산화탄소 실린더가 작동하여 자동 펼쳐집니다. 완벽히 팽창하면 구명조끼 착용상태에서 배에서 뛰어내려 탑승해야 합니다.” 구명벌은 수면 아래 3미터에서는 수압에 의해 작동해 자동으로 부상한다는 안내자의 설명이 이어졌다.

구명벌 안에는 생존 필수품이 들어 있다. 식수, 전등, 비상식량, 구급약, 스펀지, 컵 등을 비롯하여 노, 발연부신호, 낙하산붙이신호, 일광신호용 거울, 수밀전기등, 건전지, 배멀미용 주머니, 나이프, 안내책자 등 바다에서 조난당했을 때 필요한 각종 구명장비들이 구비돼 있다. 누군가 컵과 스펀지의 용도를 묻자 “염분이 인체에 필요하므로, 컵에 4분의 1가량 바닷물을 넣고 식수를 섞어 마셔야 한다. 흡수력이 뛰어난 스펀지로 구명벌 안에 유입되는 물을 흡수해 처리해야 한다”라는 안내자의 대답이 돌아왔다.

필수품 목록 중에 생존방법이 적힌 매뉴얼 책자를 보니 예전에 봤던 영화 ‘라이프오브파이’가 떠올랐다. 폭풍우를 만나 난파된 화물선에서 홀로 구명선을 타고 살아남은 소년의 감동적인 표류기로, 실사촬영과 CG를 결합한 환상적인 3D화면에 실제 태평양 한 가운데 표류하는 느낌을 줬던 영화다.

생존을 위해 먹는 비상식량은 수분기가 전혀 없는 과자 같았지만 오래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났다. 안내자는 인체에 필요한 영양소를 모두 넣어 만든 것이고 여기서 밖에 먹을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한 입도 안 되는 양이 엄청난 칼로리를 자랑했으나 고소한 맛에 좀 더 먹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15인용 구명벌 승선 체험
내친김에 15인용 구명벌을 직접 타보기로 했다. 우선 구명조끼부터 입어야 했다. 어떻게 입는 것인지 몰라 헤매자 담당자가 친절하게 입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흡사 텐트와 같은 구명벌 입구로 조심스레 발을 내딛으려는데 담당자의 말이 들려왔다. 보통 구명벌이 펼쳐지는 때는 비상상황이므로 그렇게 천천히 내려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안내자는 “사실은 바로 구명벌로 뛰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높은 선박에서 구명벌 주변의 바다로 뛰어내린 후 구명벌로 올라가게 될 것”이라며 비상상황 체험임을 다시금 알려주었다.

물에 뛰어들 때 주의사항은 다음과 같다. 우선 구명조끼를 입고 신발을 벗는다. 혀를 보호하기 위해 손바닥으로 턱을 감싸 잡고 검지와 중지로 코 양쪽을 막는다. 다른 한 손으로는 중요부위(급소)를 보호한다. 발을 살짝 꼬아 붙인 상태에서 수직으로 다이빙한다.

사실 바다로 뛰어드는 건 최후의 선택이다. 이날 전시회에서 제공된 자료 ‘침몰하는 배에서 살아남기’에 따르면, 승선 직후에는 구명조끼와 구명벌의 위치를 확인하고, 객실부터 갑판 구명벌까지 출구를 파악해야 한다. 배가 기울면 구명조끼를 입고 갑판 위 구명벌 근처로 집결해야 한다.

무조건 높은 곳보다는 탈출하기 쉬운 곳으로 가야하며 두 손과 두 발(4개 접촉점)을 모두 이용해 이동해야 한다. 입수 시에는 몸은 연필처럼 꼿꼿하게, 발부터 들어가야 한다. 고개를 숙여야 목 부상 위험을 줄일 수 있으며 구명조끼가 없다면 배낭과 스티로폼으로 대체가 가능하다. 침몰사고 골든 타임은 30분이다. 이를 볼 때 세월호 희생자들이 선내방송을 믿고 구명조끼를 입은 채 갑판 위가 아니라 선실에 머물러 구조를 기다린 것은 최악의 대처였다.

밧줄을 당기자 타고 있던 구명벌이 점점 수조 한 가운데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놀이기구를 타는 듯한 가벼운 기분이었으나 이것을 타고 진짜 바다 한가운데서 표류하는 중이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이어지자 갑자기 이상한 공포감이 밀려왔다. 구명벌은 비상식량과 낚시도구가 구비되어 있고 천막을 올려 입구를 닫아 해수 유입을 막을 수 있게 돼 있어 겨울만 아니면 최대 10일까지도 버틸 수 있고 한다. 하지만 거친 바다 위에서 텐트 같은 구명벌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은 여전히 불안감을 줬다. 순간 몸을 움직이려고 발을 옮기다 물컹하게 들어가는 느낌에 균형을 잃고 구명벌 속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놀란 마음에 잠시 버둥거리다가 밧줄을 당겨 출발지점으로 돌아왔다. 한편으로는 한 번이라도 타 보았으니비상 시 나와 타인의 생명을 살리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안심이 됐다. 안전한 해양문화를 정착시키려면 몸이 기억하는 이러한 체험식 안전교육이 상시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날의 구명벌 체험은 위급한 상황에서 내 머리 보다는 내 몸이 먼저 기억하고 대응할 것이란 확신을 주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월호는 침몰 순간 구명벌 대부분이 작동하지 않았다. 46대의 구명벌 가운데 단 1대만 작동했다. 제대로 펼쳐지기만 했다면 수많은 어린 생명을 살렸을 것인데 관리와 점검부실로 잘 열리지 않았다고 하니 달리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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