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6월 13일 ‘콤파스클럽’ 조찬회에서 발표된 강연내용이다
 
최근 영국의 Lloyd's List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개발도상국에서 Ferry 여객의 안전이 잘 보호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묻는 설문에 그렇다 11%, 잘 모르겠다 13%, 아니다(No) 라고 답변한 사람이 75%였다. 우리 국민들에게 물어보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여객의 안전이 잘 보호되고 있다는 답변이 국제적 평균치(11%) 이상이 나온다면 평균 점수 이상은 된다고 하겠다. 해운분야에서 우리는 개발도상국인가, 선진해운국인가? 

 
◎실추된 해운대국의 위상
우리는 선복량 기준으로 세계 제 5위의 해운대국이다. 우리는 그에 걸맞게 국제해운시장에서 해운대국으로서 지켜야 할 책무를 다하고 있는가?

-선원에 대한 공정한 대우(Fair treatment of Seafarerer) 문제는 IMO/ILO의 주도하에 2006년 채택된 가이드라인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해상사고의 경우 선원들을 무조건 범죄자 취급을 하기 이전에 사고와 관련하여, 의도적(intention)인 행위, 범법행위(criminal), 무모한 행동(reckless), 태만이나 부주의(negligence)가 있었는지, 혹은 우발적(accidental)사고인지 여부를 뒷밭침하는 확실한 증거가 제시되기 전까지는 죄인 취급하지 말라는 이야기인 것 같다. 소위 무죄추정의 원칙이다. 2007년 태안 앞바다에서 발생한 ‘Hebei Spirit’ 호 사고와 관련하여 본선 선장과 일등항해사(인도인)가 구금기간을 포함해서 약 550일간 국내에 연금상태 하에 있었다. 당시 남쪽으로 예인 항해 중이던 대형 크레인 바지가 예인색(tow line)이 절단되어 조선(操船)능력을 상실한 채 떠밀려 내려오다가 당시 정박 중이었던 본선에 충돌하여 유조선 선체가 파공되었고 약 10,500 톤의 원유가 유출되었던 사고다.

이 사고로 유조선의 선장과 일등항해사가 ‘협력동작 부족’을 이유로 출국이 금지된 바 있다. IMO, BIMCO, ITF, 심지어 한국해운업계도 참여하고 있는 아시아선주포럼(ASF)마저도 우리 정부를 향해 선원에 대한 공정한 처우를 규정한 IMO 가이드라인의 준수를 촉구했다.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인도에서는 한국상품 불매운동이 벌어졌는가 하면 ITF는 한국선박의 입항거부운동까지 거론한 바 있었다. 더구나 이 가이드라인을 수립하는데 한국측에서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던 것으로 안다. 이른바 ‘Hebei Two'로 칭해지고 있는 과거의 불편한 사실에 대해 우리는 뭐라고 해명을 하였는지. 최근 해기자들을 대표하는 국제단체가 우리에게 다시 이 문제와 관련된 우려를 제기한 바 있다.

-조난선박에 대한 지원의무 : 작년 연말(12월 29일) 시운전 중이던 신조선(현대미포조선에서)과 외국선박(Maritime Maisie호-화학제품운반선)이 부산항 앞바다에서 충돌, M. Maisie호가 화염에 휩싸여 있는 화면이 TV를 통해 전국에 방영된 바 있다. 화학제품을 적재하고 있는 선박에 불이 났으니 어떤 위험이 잠재해 있는지는 비전문가라도 족히 짐작할 수 있다.  충돌로 인해 선체 외판이 길이 8m에 선폭의 중간까지 크게 움푹 패여 들어간데다가 화재로 급격히 약화된 선체의 강력상의 문제 때문에 선체가 두 동강이 날수 있다는 경고가 나올 정도의 위급한 상황이었다. 선주와 선급, 그리고 선주가 동원한 세계적인 전문가 집단이 사태의 긴박성을 강조하며 긴급조치(화물의 이적)를 위해 연안국(한국과 일본)에 긴급피난처(Place of Refuge-PoR)를 요청하였다. 조난선박으로부터 요청이 있을 경우 POR 제공의무를 규정한 국제적인 가이드라인이 수립돼있다. 만일 대한 해협에서 4만 4천톤급의 선박이 두 동강이 나고 싣고 있던 케미컬(2만 7천톤)이 유출되었더라면 어떤 일이 생겼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OR 요청은 거절당했고 속수무책인 선주입장에서는 재고와 선처를 간청하며 구조예인선 6척에 의존하여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106일 동안 정처 없이 대한해협을 표류했다. 그 배는 결국 사실상 위험이 사라진 이후에야 만신창이가 된 채 입항이 허가되었고 불원 해체될 예정이다(선박과 화물은 전손처리됨). 이를 두고 님비(NIMBY)) 현상이라고 한다. 양비론이 있을 수 있는데, 문제는 동일한 사태가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는 한국 해운계와 선원들의 문제이다. 우리 해운단체와 선원단체가 두 사건에서 당국이 취했던 조치에 대해 함구할 수밖에 없었던 말 못할 사정이 있었겠지만 입장이 바꾸어 우리가 해외에서 POR을 요청하여야 할 급박한 상황이 발생하였거나 우리의 선원들이 외국에서 제 2의 ‘Hebei Two' 가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성찰(省察)해야 할 시기 : 세월호 사건을 거치면서 진위여부를 떠나 관피아 등 육상에서의 다양한 스캔들(scandal)이 거론되었는가 하면 지난번 코레일 분규 때 철도 마피아 운운하더니 이번에는 OO학교 커넥션설이 회자되기도 했다. 관피아 문제는 논외의 대상으로 하고,  해상안전과 관련하여 정부부처 내 혹은 외부 검사기관에 특정학교 출신들이 핵심기능을 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해양 안전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육ㆍ해상 관리자들은 다양한 스캔들, 커넥션에 대해서 나는 결백(Innocent)하다고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만일 극히 일부라도 그렇지 못하다면 언론에 거론되는 일부 인사들에 대해 비난하기에 앞서 자숙하는 마음으로 한번쯤 되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혹시라도 PSC검사로 인해 선박의 출항이 지연되는 것을 우려해서 ISM 심사를 잘 넘겨보려고. 정기검사에서 지적을 면하기 위해서 요령을 생각해보고, 철저한 검사를 피하기 위해 혹은 정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조금 편한 국가로 배를 옮긴 적은 없었는지... 
 

◎정확한 원인조사는 재발방지의 첫걸음
해양사고의 원인을 두고 ‘인재(人災)’라는 표현을 자주 그리고 편하게 사용하고 있다. 해운의 경우 사업의 계획, 선박의 설계, 건조, 보수/정비, 운영, 경영의 주체가 모두 사람이기 때문에 사고의 원인을 인재로 표현하는 것이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이러한 인재가 마치 선원들만의 것인 양 잘못 포장되고 있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특히 책임 당국에서도 모든 해양사고가 선원들의 잘못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속단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예를 들어 선박이 해상에서 충돌하면 당직 항해사의 과실, 선박이 좌초하면 선장의 조선상 잘못이고 과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면 해기자의 태만으로 인한 부적절한 적부계획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주지하듯이 해양사고는 천재 혹은 불가항력적인 사고가 아닌 한 단독원인만으로 발생하는 경우는 없다. 필유곡절이라 하듯이 해상사고가 발생하는 데는 여러 가지 원인들이 있고 그 배후에는 복합적인 요인들이 사슬(chain)을 이루며 잠재하고 있다가 마지막 단계에서 어떤 계기를 통해 사고로 이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패턴이다.

해상사고의 경우 인과관계의 사슬을 이루고 있는 요인들을 살펴보면 사고 직전단계에서 이루어진 현장의 실수(이를 즉발적 실수-active failure)와 그 이전에 누적돼온 다양한 오류와 폐단, 허점들이 집적된 상태로 잠재되어 있는 과오(이를 잠재적 잘못-latent failure)로 양분할 수 있다. 즉발적 실수는 현장에서 사고 직전에 범하게 되는 것으로 주로 해기자들에 의한 절차, 규제와 항법 위반 등이고, 후자는 일명 근인(root cause)이라고도 칭하며 그 대부분이 Top에서 혹은 매니지먼트 차원에서 비롯되고 있다. 쉽게 표현해서 전자는 선원에 의한 실수를, 후자는 누적된 폐단 혹은 적폐(積廢)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으며 그러한 적폐의 직·간접적 영향으로 마지막 단계에서 범한 선원의 실수가 방아쇠(Trigger) 역할을 하며 사고로 이어진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를 두고 ‘A straw that broke a camel's back’이라고 한다. 지푸라기 한 개 얹힌다고 낙타의 등이 부러질 리 없겠지만, 이미 얹혀 있는 적폐의 무게가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한계치에 도달해 있을 때, 지푸라기 한 개라도 얹게 되면 그 튼튼한 낙타의 등뼈도 부러진다는 의미다. 낙타가 온전하려면 등에 얹혀있는 적폐를 먼저 관리하는 것이 효과적인 접근방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부지불식 간에 지푸라기 탓하는데 익숙해져 있다. 지푸라기 제고로 근본문제가 해결될까.

적폐는 그 자체가 사고의 원인이 될 뿐 만 아니라 선원의 실수를 유발하는 근원이 된다는 점에서 더욱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적폐의 종류를 대별하여 ⓐ절차 ⓑ하드웨어 ⓒ설계 ⓓ정비관리 ⓔ실수 유발여건(Error enforcing conditions) ⓕ정리정돈(Housekeeping) ⓖ이중적 목표(Incompatible goals) ⓗ커뮤니케이션 ⓘ조직 ⓙ훈련 ⓚ방호 보완대책(Defences) 등의 11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몇 가지에 대해서만 약술하자면 ⓔ는 개인 혹은 작업장의 각종 시설과 여건들이 안전치 못한 행동을 조장할 경우, 배의 성능을 알지 못한 채 승선하자마자 바로 항해당직에 임하거나, 자격증만 보고 무능력자를 채용한 경우, 정비와 보수가 필요한 노후선에 법정 최소 인원만 배승하는 경우 등이다. ⓖ는 예를 들어 CEO가 한편으로는 시간과 비용을 요하는 안전을 강조하면서도 다른 쪽에서는 이윤추구를 위해 시간과 비용절감을 요구하는 등 모순된 메시지를 보내는 경우이며 ⓗ는 조직이 효율적으로 기능하기 위해, 혹은 안전 확보에 필요한 정보들이 상호 신뢰하는 가운데 교환되지 못할 경우, 상의하달과 같은 일방적 소통을 ⓘ는 안전과 관련된 책임체계가 정립되어 있지 않거나 만연된 적폐의 영향으로 안전에 대한 인식이 사라지고 이상조짐 혹은 경보가 간과되거나 무시되는 조직문화를 ⓚ는 안전을 위한 일차 방호벽이 무너지더라도 사고로 인한 손해를 경감하고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 설비나 장비가 부적절하여 2차 방호벽이 기능하지 못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선원의 실수와 매니지먼트의 적폐
이번 Ferry호 사고를 분석해볼 때 매니지먼트의 적폐가 여러 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선원들에 의한 실수, 이른바 즉발적 실수에는 어떤 것들을 지적할 수 있까? 이에 대한 답변은 교과서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관행을 토대로 관찰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실무적인 대책을 수립하기가 더 용이할 것 같다. 교과서적으로 접근하자면 본선의 적부관리(stowage management)는 당연히 선장(실무적으로 일등항해사)의 책임이다. 선적할 화물의 목록(manifest)을 기초로 해 화물별 목적지, 용적, 중량, 적부계수(stowage factor)와 본선의 상태(연료, 식수, 평형수의 양과 선내위치)등을 토대로 본선의 안전과 운항효율을 감안한 적부계획서(stowage plan)를 작성하고 계획대로 선적되도록 선적작업을 감독하는 것이 주 임무이다. 그 과정에서 과적이라 판단되면 선장은 육상부서와 마찰을 감수하더라도 일부 화물의 선적을 거부(shut out), 취소하여야 한다. Ferry업계의 실태는 어떨까. 안전항해를 위해(감항성 확보) 본선(선장)에서 여객과 화물을 체크하고 경우에 따라 Booking된 화물이라도 거절하여야 하는 것이 선장의 당연한 책무이지만 과연 그렇게 되고, 될 수 있는가? 부킹부터 선적까지의 전 과정을 육상에서 관리하고 선장이하 선원들은 출항시간 얼마 전에 승선, 출항하여 배를 목적지까지 조선하는, 선박의 이동만을 담당하는 경우를 상정해볼 수 있다. 작금의 현장 실무는 어느 경우에 해당할까?

현장의 관행과 규제의 내용이 불일치하는 경우가 전기한 11가지 적폐중 양립할 수 없는 목표(Incompatible goals)에 해당하는 전형적인 사례가 아닐까. 일상의 관행과 규제가 일치하지 않으면 그 규제는 유명무실한 것이고, 이는 곧 안전의 사각지대를 형성하여 사고로 이어지게 된다. 적폐는 그대로 둔 채 사실상 매니지먼트의 결정에 대해 아무런 저항능력도 없는 단순한 ‘항해기술자’에 불과한 해기사에게 교과서적인 의무와 책임을 요구하기 보다는 적폐를 먼저 다스리는 것이 현명한 재발방지책이 아닐까.  

금번 Ferry호의 경우 Sector voyage 기준으로 일주일에 6 항차를 행했다고 한다. 이 경우 항구에서 여객관리, 화물관리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를 유추할 때 정기 컨테이너선이 부산항에 입항해서 출항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컨테이너선의 적부관리를 육상에서 하는 이유를 든다면 본선의 일항사가 적부관리를 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필요한 데이터를 반영, 육상에서 전산처리를 통해 관리하는 편이 효율적이고 이러한 전산화를 통해서 선원비의 절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고에서 원인으로 거론된 사항들은 주로 과적, 복원력, 평형수 처리 등이었으며 일부에서 대각도 전침을 한 원인으로 지적하기도 했지만 공감을 얻지 못한 것 같다. 선원들에 의한 즉발적 실수와 매니지먼트에 의한 적폐의 차이를 충분히 납득시킨 후 필자가 대형선사 해사본부 책임자들과 대명 해기사들의 참석 하에 행하여진 세 차례의 현장강의에서 금번 사고의 경우 선원들에 의한 즉발적 실수는 무엇이며 매니지먼트에 의한 적폐에 해당하는 사유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논의해본 적이 있다. 대각도 전침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즉발적 실수보다는 대부분이 적폐를 지적할 만큼 시각차이는 없었다. 물론 전복사고의 원인으로 한정해서 논의된 것임을 첨언한다.
 

◎리스크 관리의 주체는 누구?
 기업의 가장 큰 존재 이유이자 목적이라 할 수 있는 이윤창출을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매출을 증대하는 한편 생산과정을 단축(시간)하고 비용(생산원가와 판매원가)을 줄여야 한다. 그러나 매출은 시장의 여건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에 경영외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 반면 안전은 거저 굴러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확보되는 것이다. 안전을 강조하다보면 이는 곧 시간과 비용을 투입하여야 하고 그러다 보면 이윤창출을 위한 시간과 비용의 절약을 상쇄하는 결과가 되어 일견, 이윤창출에 걸림돌이 되는 것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CSR)에서 해운기업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CSR의 가장 기초 의무는 자선사업, 성금 등을 통해 이익을 사회에 환원해야하는 거창한 책임보다는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본다.

이를 해운기업에 적용하자면 고객의 안전과(선원포함 여객) 재산(화물)을 목적지까지 잘 관리해서 도착시키는 것이고 타인의 재산피해나 환경오염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안전을 지키고 이윤을 창출한다는 것은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것 이라고도 할 수 있다. 즉 안전을 위한 시간과 비용을 배정하고 이윤창출을 위한 절약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은 이른바 균형의 최적화(Optimization)를 도모하는 것이며 이를 달리 표현하자면 리스크 관리이다. 이 세상에 리스크가 없는 기업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이러한 리스크를 회피하려 한다면 이는 곧 사업의 포기를 의미한다. 해운회사에서 매출증대가 영업부서의 몫이라면 안전을 담당하는 곳은 통상 해사본부라 칭하는 전문부서이고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려는 부서는 재무 혹은 선박을 운영(employ)하는 부서이다. 정상적인 조직이라면 부서 간에 생산적인 갈등은 불가피하며 그러한 갈등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 회사가 건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최고경영자(CEO)가 이러한 갈등을 어떻게 조정하고 협력관계를 이끌어내느냐 하는 것이다. 만일 CEO가 이윤추구 위주로 끌고가기 위해 ‘빨리 빨리’ 하고 사인을 보내면 안전담당부서에서는 이를 시간과 비용을 아끼라는 지시로 인식하고 선박의 안전과 관련된 업무도 ‘대충 대충’, ‘건성 건성’ 일을 서둘러 처리하려 할 것이다. 이 경우를 두고 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시간문제(waiting to happen)라고 한다. 그러다가 사고가 나면 먼저 하는 일이 보험커버 되느냐이고 그 다음은 누군가를 찾아내 문책으로 이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일차적인 문책의 대상은 당연히 현장(본선)의 당직자(해기자)일 것이고 그 다음은 육상의 안전담당 책임자가 된다. 이를 예상하고 안전담당부서에서는 위로부터 어떤 문책이 있기 이전에 알아서 선원을 우선적으로 처벌하는 순발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사고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을까?

가뜩이나 해기자(seafarers)의 수급관계가 어려워지고 있는 여건 하에서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보면 새로운 선원을 구하기는 고사하고 현재 있는 선원들도 떠날 채비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안전을 위해 노력을 해도, 이윤을 위해 안전을 희생시켜도 결과가 동일하다면 안전담당 책임자는 어떻게 처신하여야 할까. 복지안동 자세로 아주 현명하게(?) 지내다가 사고가 나면 운수소관으로(?) 생각하고 표표히 떠나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런 현상은 반드시 한 지붕 안에서 일하는 CEO와 임ㆍ직원사이에서만 생기는 것이 아닌 것 같다. 흔히 ‘Back-seat Driver'라고 칭하듯이 실제 핸들은 운전석에 앉아 있는 Driver(사장)가 잡고 있지만 만일 뒷좌석에서 실적만을 기준으로 평가하려는 높은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오랫동안 핸들을 잡다보면 어느 곳이 언제부터 교통체증이 걸리고 어디가면 손님이 많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지만 그런 경륜을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그 Driver 역시 그저 Back seat Driver가 시키는 대로 운전을 하면서 때가 되면 물러나겠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을 게다. 우리 주변에도 그러한 조직이 실존하고 있으며 그런 조직일수록 주기적으로 문패가 바뀌는 현상을 종종 볼 수 있다.

Top에서 달가워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현장 실무선에서 안전확보에 철저를 기하기 위해 비용과 시간을 들이는 경우, 조금 점잖은 표현을 하자면 그런 경우를 두고 세간에는 ‘융통성이 없는 사람’ ‘꽉 막힌 사람’으로 분류하는가 하면 눈치껏 적당히 하며 요령을 피우는 사람을 능력자로 평가하는 풍토가 없지 않다. 

시간과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매직은 아직 없는 것 같다. 안전을 위한 시간과 비용을 투자로 보는 시각과 낭비로 보는 시각 차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존재하고 있다. 이 양자간 균형을 도모하고 조정하는 역할이 CEO의 중요한 책무중 하나이며 그 균형 여하에 따라 회사의 안전문화가 좌우되는 것이 현실이다. CEO의 의사결정에 따라 행동하다가 그 결과로 사고가 발생하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되돌아보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찾아 그 결과를 재반영하는 것이 재발방지를 위한 지름길임은 모두가 공감하는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실천이 안될까?

해양안전 캠페인 차원에서 배에 올라가서 선원들을 도열시킨 가운데 ‘안전제일’ 하며 구호를 외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안전관리는 Top-down 방식이라야 한다는데, 공감한다면 이러한 캠페인은 CEO 주관하에 임원회의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제대로 된 순서가 아닐까. 이러한 책무 때문에 글로벌 기업의 CEO들은 주기적으로 리스크(Risk) 관리, 위기(Crisis)관리 교육을 받고 있다. 기업의 안전관리, 리스크 관리의 주체는 바로 CEO 자신이다.
 

-인간의 실수를 근절하겠다는 발상은 오만 : 인간은 조물주의 미완성 작품이라고 하듯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그 만큼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실제 우리 모두는 과거 실수를 해왔고 지금도 실수를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선원들도 인간이기에(as humanbeing) 실수를 하게 돼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여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실수를 사전 교육, 훈련이나 예측을 통해 실수를 할 여건을 개선하고 줄이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사고의 예방을 위해서 선원들의 실수를 근절하겠다고 채찍을 드는 경우, 실수를 범한 선원들에 대해 마치 고의적인 의도(criminal intention)라도 있었던 것처럼 가혹한 비판과 함께 강력한 형사처벌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행정재제를 하고 형사처벌을 한다고 하더라도 실수에 의한 사고는 근절할 수 없다. 금번 가칭 세월호 관련법이라는 이름하에 봇물처럼 발의된 법안들의 취지도 해기자들에 대한 처벌 강화를 요구하고 있는 반면 적폐를 다스리기 위한 근본적인 처방은 거의 보이지 않고 있다. 해기자들에게는 면허 취소와 정지만으로도 실수의 대가를 톡톡히 치룬 것이며, 이에 동의하기 어려울지 모르나 적어도 형사처벌이 선원들의 실수를 줄였다는 객관적 검증자료는 본적이 없는 것 같다.
 

◎현 시스템하에서 사고의 원인조사 미흡
해양사고를 조사하고 원인을 규명하는 것은 사고를 통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교훈을 얻고 이를 재발방지에 활용하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서 사고의 다양한 원인들을 규명하고 사고에 대한 기여도와 비중을 중심으로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가 아닐까. 과거 사고들을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선원들에 의한 실수보다 매니지먼트에 의한 적폐가 안전에 더 큰 위협이 된다는 것이 정설이고 금번 Ferry호 사고에서도 재확인된 사실이다.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관련분야에 대한 전문지식과 현장경험을 종합하여 객관적으로 독립적으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해양사고의 경우에는 해사관련법 뿐만 아니라 선박의 설계, 강도등 조선 공학적 전문지식, 현장경험과 실무, 인성(人性)과 관련된 지식 그리고 해운경영의 실태를 이해하여야만 즉발적 실수와 매니지먼트의 적폐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고 이를 토대로 재발방지책이 수립되는 것이 정석이다. 미국의 NTSB, 영국의 MAIB(Maritime Accident Investigation Branch), 독일의 BSU, 일본의 JTSB 등이 바로 그러한 목적하에 설립된 독립된 전문가 조직이다.

해양사고의 원인을 조사하고 심판하는 기구로 우리에게도 해양심판원이 있다. 관련법을 살펴보면 조사의 범위를 제한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과거의 사례들에 비추어 볼 때 조사·심판의 대상은 사실상 선원들에 의한 즉발적 실수(항해과실)에 한정되어 있고 그보다  해양사고에 더 큰 위협이 되고 있는 매니지먼트의 적폐(주로 상사과실)에 대해서는 조사한 사례가 없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것이 현실이라면 사실상 근절이 불가능한 선원들의 실수를 심판의 대상으로 하면서도 막상 안전관리상 우선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적폐에 대해서는 방치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실제 일본의 경우를 보더라도 해난심판소만으로 재발방지를 위한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판단하에 2008년 10월 1일부로 선원들에 대한 징계기능은 해난심판청(심판소를 개칭함)에 두고 선박사고의 원인 규명기능은 기존의 항공ㆍ철도사고 조사위원회로 이관시켜 육해공을 총망라한 일본운수안전위원회(JTSB)를 설립하였다.

선박충돌의 경우 JTSB는 양측간의 과실비율을 논하지 않고 각각의 잘못된 점에 대해서만 지적하며 징계기능은 없다. 조사대상은 해기자, 법인 기타 관련정부부처를 포함 필요시에는 사고와 관련되어 있는 당사자 모두를 상대로 전방위 조사를 행할 수 있다. 법적으로 해난심판청보다 훨씬 강력한 조사권한이 부여되어 있으며 해심제도가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면 JTSB는 사실관계(fact)를 조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에도 항공ㆍ철도사고 조사위원회가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해양사고의 주원인인 적폐를 조사하기 위한 기능을 기존조직과 통합하거나, 해양사고만을 위한 별도 조직을 설치하든 어느 쪽이든 현재와 같은 적폐에 대한 사각지대는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다.  
 

◎수색과 구난능력
해운클러스터 구축은 해운산업 전체를 위한 공용 인프라를 구축하자는 개념으로, 개별회사와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해운계 전체를 위해, 선사들이 모두 참여하여 업계에 필요한 공동설비를 구축하는 것이다. 개별선사와 민간섹터에서 할 수 없는 일은 당연히 정부 차원에서 그러한 인프라를 구축해주는 것을 선진해운국의 예에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컨테이너 터미널의 경우, 호안공사, 부두, 야드등 이른바 인프라 스트럭처(Infra structure)는 정부나 지자체에서, 관리동이나 갠트리 크레인 등 수퍼 스트럭처(Super structure)는 입주선사가 조성 혹은 설치하는 예, 연안여객선들을 위해 정부가 공용 여객터미널을 건설해서 업계가 공동으로 사용토록 하는 것 등이다. 수색과 구조 인프라 역시 그런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실태가 어떤 수준인지는 이번 사고를 통해서 적나라하게 노출되었다. 대한해협에서 선박이 동력을 상실하였고 날씨는 어두워지고 기상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데 표류하는 선박과 선원의 안전을 위해 선주나 해운업계가 취할 수 있는 비상조치는 준비되어 있을까. 해경 경비정을 부르면 된다고 강변할지 모른다. 물론 그것도 막바지 수단이 될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닐 뿐만 아니라 장기적 측면에서 정상적인 해결책은 아닌 것 같다.

실제 해운계에서 취하고 있는 조치는 우리 해경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선박에 알리고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전문 구조회사와 접촉하는 일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에게는 그런 전문기능이 부재하다. 일부에서는 ‘우리회사’ 가 그런 회사이며 우리에게도 충분한 능력이 있다고들 주장하지만 과거 우리 해역에서 발생한 대형 선박사고에 동원된 구조회사들은 대부분 이웃나라의 회사들이며 그들은 한국선박의 구조활동을 거의 독식하다시피 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보는 시각에 따라 전문구조회사(salvage company)를 설립하자는 제안에 대하여 사고가 없으면 적자운영이 불가피한 것 아닌가 라고 회의적인 입장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해난구조는 인명과 재산의 구조, 그리고 해양오염등 환경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공익적, 인도적 차원의 행위로 인식해야 하며 구조임무를 상업적 시각에서만 접근할 대상은 아니다. 세계 제1의 선사인 머스크라인이 자회사로 전문구조회사를 운영하는 것이 구조를 통해서 부를 축적하겠다는 취지일까? 물론 손익차원에서 분석해보더라도 반드시 손실을 감수하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생태계와 자연보호에 대한 인식이 강해짐에 따라 선박이 조난에 처할 경우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인명과 환경보호이다. 근래 발생한 대형사고의 유형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구조행위가 이른바 Golden Hour 내에서 이루어지지 못할 경우 엄청난 환경재해를 초래하거나 선박이 전손처리 되는 경우가 비일 비재하다. 보험업계가 분석한 결과를 보면 근래 발생한 대형 사고의 경우 성공한 구조에 소요되는 비용(구조비)이 구조된 재산 가액의 19%에 상당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어 상업적 측면에서도 81%의 이익을 창출한 결과가 된다. 이런 배경 때문에 보험업계가 전문구조회사 설립운영에 선주 이상의 관심을 갖고 있다. 

일본의 Nippon Salvage와 Fukada Salvage 회사는 설립한 지 100년이 넘는 국제 수준의 전문 구조회사들이다. 설립 당시(1890~1910년) 그들의 선복량은 300만톤 정도였다. 특기할 것은 Nippon Salvage의 경우 대주주 Top-5가 전원 일본의 손해보험회사들이라는 점이다. 우리의 선복량은 작년 10월 기준 약 5,000 만 총톤이다. 해운세 면에서 우리와 비교 상대가 될 수 없는 대만에도 대형예인선(Ocean Tug)을 5척이나 보유한 전문구조회사(1986년 설립)가 있다. 우리의 구난체제는 제 5위 해운 대국의 위상에 걸맞는가?

전문구조능력 확보는 누가 주도하여야 할까. 가장 바람직한 방안은 해운계 스스로가 그 필요성을 인식하고 선주들이 주도하는 것이지만, 주지하듯이 우리 해운계는 과도한 경쟁심리인지 혹은 견제인지 서로 얼굴을 맞대고 공통관심사를 논한다거나 공동 인프라를 건설하는 일에는 익숙해져 있지 않을 뿐 만 아니라 작금의 해운계 현실이 새로운 인프라 구축을 위해 자금을 동원할 정도의 여유를 갖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를 향해 지원을 요청하기에는 아직 그 필요성에 대해 크게 공감하고 있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며 지금이 그러한 전문기능의 필요성을 가장 공감하고 있는 시기인 만큼 의지만 있으면 대안은 가까운 곳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외국의 재난관리와 수색 구조 활동의 실태 :
조난당한 선박의 승객, 선원을 구조하여야 할 책임은 선주 혹은 여객운송사업자가 일차적인 책임을 부담하되 이와는 별개로 위기 관리차원에서 정부가 주도하는 경우, 또는 민관이 합동으로 긴급대응에 임하는 경우가 통상 관례라 할 수 있다. 문제는 그러한 능력을 구비하였는지 여부다. 미국의 USCG, 일본의 해상보안청 등은 세계 제 7위의 해군력(USCG), 위장된 해군력(일본)이라 할 만큼 막강한 기동력, 화력, 장비를 갖추고 있으며 유사시에는 즉시 현장에 투입, 수색 구조에 임할 수 있을 정도로 힘(power), 기술(전문성), 재원(자금) 그리고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 자국에 입항하는 해외선박에 대하여 유사시 긴급동원 할 수 있는 구조회사와 방제회사(소화, 방제)를 계약을 통해 사전에 확보하고 관련증빙서류와 함께 사업주 혹은 배상책임의 주체로서 부담하여야 할 법적 책임을 보상하는 보험과 함께 지급을 보증하는 보증서(Certificate of Financial Responsibility, 혹은 Letter of Undertaking))를 함께 제출토록 의무화하고 있다(Salvage Concomitante 라 칭함). 이는 유사시 USCG의 판단하에 긴급개입과 대응을 통해 구난업무를 수행하고 소요되는 자금에 대해서는 정부의 기금(혹은 FEMA의 지원)을 선 동원하되 관련 비용은 COFR 혹은 LoU에 의거 후일 관련 보험자로부터 직접 회수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러한 미국의 체제는 1989년 알래스카에서 발생한 Exxon Valdez 호 오염사고 이후 제정된 The Oil Pollution Act-1990을 토대로 마련된 강력한 오염방지 내지는 방제를 위한 각종 규제들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해양사고에 관한 미국의 대응시스템은 연방재난관리 기구인 FEMA는 재난으로 인한 이재민의 구호와 보호, 시설복구, 현장지원 등을 담당하고 현장의 활동은 USCG의 주도하에 행하도록 되어 있으며 일본의 경우도 기본적인 역할 분담체제는 미국의 그것과 유사하다. 요약해서 행정기구에서는 이재민의 보호, 구제, 피해복구를 담당하고 현장에서의 구난 방제 업무는 전문가들이 담당하는 형식으로 효율중심으로 역할을 확실하게 분담시키고 있다.

우리의 경우 법(수난구호법)에 규정되어 있는 수색 구조체제는 해경이 주도하도록 되어 있으나 문제는 금번 Ferry 사고를 통해서 재확인된 것처럼 필요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미흡하다는 사실이다. 수색과 구조에 필요한 장비, 기동력, 전문성 등을 구비하는 것은 해경 자체의 노력으로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 아닌 만큼 이번에 들어난 취약점을 이유로 해경만을 탓하기 보다는 국가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선결과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혁신적 대책이 필요하다
-땜질 처방으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 이번 사고를 통해 법과 시스템 그리고 운영(사람)상 문제가 들어난 만큼 근본적이고 획기적 대안 수립을 검토해야 할 때다. 구명설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과적을 하면, 불법개조를 하면, 그때는 이러 이러한 제재를 가하겠다는 식의 처방만으로 잠재되어 있는 근본원인이 근절될 수 있을까. 여객안전 감독관을 두면, 감시자를 배로 늘리면 해결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면 이번 사고의 근원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결과는 아닐까.

사업자의 영세성을 이유로 여객의 안전을 타협의 대상으로 할 수 있을까. 외국에서 처분하려는 노후여객선을 도입해서 우리 여객을 태워도 된다는 정책을 국민이 동의할까. 이번 사고를 이유로 선령제한을 단축할 필요까지는 없다, 노후선이라고 하더라도 관리만 잘하면 문제될 것 없다. 어디서 자주 들어본 이야기 아닌가.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이번 사고는 동종업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아주 예외적인 사고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다. 과연 다수가 공감할까? 이처럼 황망한 참사를 겪고 도처에서 해결책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보도에 의하면 젊은 세대를 상대로 여론조사를 해보니 10명 중 7명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고 하는데 엄청난 불신을 그대로 두어서야 되겠는가?
근본적인 개혁 없이 땜질 처방과 감시 감독 인원을 증원하여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은 신중해야 할 것 같다. 사람이 바뀐다고 해서 늘린다고 해서 될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이 국민의 인식이라는 점을 싫지만 현실로 인정하여야 한다.
 

-개혁적 수준이라야 한다 : 내항의 문제 혹은 여객선만의 문제라고 생각하는지. 차제에 Solas와 ISM 코드등 안전관련 국제협약을 항해거리의 장단, 국내여객, 국제여객 구분 없이 일괄적으로 적용한다는, 대 전제하에 비현실적이고 실행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으면 그런 부분만을 수정 보완하여 실행해보는 것은 어떨지. 한마디로 국제수준의 안전코드를 그대로(Full code) 적용하기는 시기상조라고 생각되면 이를 단순화(Simple code)하여 국내여객 혹은 구조상 일반 여객선에 비해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크다고 할 수 있는 Ferry에 대해서만이라도 일괄 적용하는 것을 검토해보아야 할 시기가 된 것 같다. 사업자 선정의 기준은 최소 안전기준을 이행할 능력을 기본요건으로 해야 하며 안전기준을 특정사업자의 능력에 맞추려 하다가는 제2, 제3의 사고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아무리 찾아봐도 그러한 적임자를 찾을 수 없다면, 사업자가 재정적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선다면, 그 부분에 한해서 국고를 지원하더라도 여객의 안전에 관한 한 내ㆍ외항을 차별화하는 정책은 더 이상 합리화하기가 어려운 상황 아닌가. 어차피 이번 사고를 통해서 보았듯이 방법상의 문제일 뿐 결국 엄청난 국민의 세금이 투입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 아닌가. ‘선 집행, 후 구상’이라고 하지만 기대처럼 될지 의문이다.   
 

-Crowd Control 대책이 급선무다 : 이번 사고의 원인중 하나로 검찰과 해경에서 지적한 사항이 과적이다. 당연히 대책이 나와야 한다. 과적(overloading)과 정원초과를 통제하는 일을 리스크 관리(R/M) 용어로 Crowd Control이라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산발권제를 도입한다고 한다. 즉 승선여객의 수와 화물의 명세(Manifest)를 터미널에서 전산처리하겠다는 방안만으로 대책이 될까. 선박의 안전(stability)은 발항 당시의 본선 상태를 기준으로 하여야 할 것이고 그중 가장 중요한 요소는 Weight distribution 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터미널 게이트를 통과한 여객과 화물의 명세 이상으로 중요한 요소가 이들의 선내 배치일 것인 바, 당연히 화물과 여객을 받아들이기 이전의 본선 상태(Ballast, 연료, 기타 식음료 등 저장품 등의 무게와 위치)도 합산하여 배치되어야 한다. 이들 요소들을 종합하여 육상에서 Crowd control하는 것은 불가능할까. 초대형 컨테이너의 Bay Plan 작성과 특별히 다른 사유가 있을까.
 

◎안전교육의 부재
선원들의 조기 퇴선과 최초 도착한 경비정이 선내로 진입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고후 최초로 현장에 도착한 경비정은 선측에 접근하여 기울어져 있는 선박의 상단에 나와 있는 승객을 경비정으로 옮겨 태웠고 선장과 선원 일부가 그 가운데 포함되어 있었다. TV 화면으로 보면 해경들은 평범한 해상근무복을 착용하고 있었을 뿐 로프나 해머 등 최소한의 구난도구도 갖추지 않은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선원들은 제몸 챙기기에 바빴고 해경 역시 선측 창문을 부순다거나 선내 진입 시도 같은 기초적 구조활동도 하지 못했고 보도에 의하면 육상 지휘부의 요청(?)에 대해 들어갈 수 없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였다고 한다. 상명하복의 정신에 반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을지. 결국 이 두 가지 행동은 많은 국민들의 비난과 공분을 초래하게 되었고 선원들에 대해서는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 적용문제까지 거론될 정도로, 어떤 측면에서는 본 사고의 가장 핵심이 되는 쟁점으로 부각되었고, 언론에서는 이른바 Virkenhead호 사고까지 인용하면서 Seamanship의 실종과 함께 비겁하고 파렴치한 행동으로 단죄하기에 이르렀다. 

생과 사의 기로에 서 있는 인간에게 직무상의 책임 범위는 어디까지 일까. 위기에 처한 선박에서 촉박한 시간과 구명설비 부족 등으로 선상인원 전부가 일시에 탈출하기 어려울 경우 그 순서를 정해두고 이를 모범적인 Seamanship의 표상으로 삼고 있다. 이른바 WCF(Woman, Children First) Rule 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하나의 규범이지 법적으로 강제하는 의무사항은 아닌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생과 사의 기로에 서서 인간은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살펴보기 위해 2012년 스웨덴의 Uppsala University에서 1852년~2011년에 이르는 3세기 동안 30여개 국가에서 발생한 대형 재난사고(인명사고) 18건을 분석하여 그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여기에는 금번 Ferry 사고 이후 언론에서 자주 거론되었던 HMS Virkenhead 호(1852년)를 비롯, RMS Titanic 호(1912년), 1차 세계대전 중 희생된 RMS Lusitania호(1915년), MS Princess of the Star호(2008년)사고 등이 포함되어 있다. 지면의 제약상 건별 소개는 생략하고 종합분석을 거쳐 내놓은 보고서의 제목이 “Every man for himself" 이었다. 한마디로 죽음에 대한 공포와 Good Seamanship의 간극을 보여준 것이라고 하겠다.
 

-승객들은 왜 탈출하지 못했을까? 보도에 의하면 많은 승객들이 상황이 나빠지고 있는데 선실에 계속 머무르고 있었고 선원들은 본선이 기울기 시작하자 승객들에게 그냥 그대로 선실에서 대기하라고 방송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비상상황 하에서 반드시 준수하여야 할 네가지 기본 수칙에 비추어 볼 때 명백한 잘못이다. 수칙은 ⓐ상황을 있는 그대로 승객들에게 알릴 것 ⓑ승객들을 정위치(right place)시킬 것 ⓒ승객들에게 구명복을 착용시킬 것 ⓓ선장이하 선원들은 구조를 위해 필요한 합리적인 조치를 다했다고 판단될 때 퇴선할 것 등이다. 처한 상황과 본선의 구조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획일적으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여기서 ‘정 위치’ 라 함은 퇴선이 결정되는 시점에서 가장 빨리 구명정 혹은 선외로 탈출이 가능한 장소를 의미하고 있다. 당연히 이 수칙은 출항당시 혹은 직후에 승객들에게 주지시켰어야 하고 승객들도 승선후 가장 유념하여야 할 사항이 바로 비상대응 요령이다. 잘못된 방송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 그 순진함이 해운인 모두에게 부담과 죄책감을 느끼게 한다.
 

◎이번 재난이 남긴 교훈과 실천 방안은 무엇?
금번 Ferry 사고와 유사한 사고가 1987년 유럽에서 발생한 바 있다. 벨기에의 Zeebrugge와 영국 Dover항을 연결하는 ‘Herald of Free Enterprise’ 호가 Zeebrugge항 앞에서 전복, 594명의 인원중 193명(35%)이 희생된 사고로 원인은 선원의 실수로 선수부 램프(차량의 진출입 통로)를 열어둔 채 출항하다보니 출항 직후 해수 유입으로 선박이 기울기 시작, 불과 90초만에 전복한 사건이다. 급격한 전복으로 SOS를 보낼 여유도 없었지만 전복후 30분만에 영국과 벨기에의 구조헬기가 현장에 도착 구조대원들이 선측 유리창을 파괴하고 상당수의 인원을 구조하였지만 희생자 중에는 악천후로 구조가 중단되는 동안 저체온으로 사망한 인원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사고 직후 현장을 방문한 대처 수상은 구조대의 활동에 대해 ‘위대한 용기와 프로정신’이라고 구조활동을 격려하였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사실은 사고 이후 당사자들이 보여준 태도와 영국이 취한 후속조치이다. 사고 이후  법적조치들과 관련하여 조사당국은 「조사의 목적이 진상을 파악하기 위함이지 처벌 목적이 아니다(To establish facts, not to blame)」라고 했고 담당판사는 관련회사의 적폐(積廢)를 지적하며 조직전반에 걸친 태만(negligence)과 적당주의(Disease of sloppiness)를 비판하였다. 본사고가 외견상으로는 선원의 부주의(램프를 닫지 않은, 즉 개문발차)에서 비롯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족들은 Employee(선원)보다 Employer의 처벌을 요구하였다. 본건 사고를 계기로 하여 ISM-Code의 채택, 만재흘수선 조약(Loadline Convention)의 개정, 객관적 원인조사를 위해 MAIB를 설립하였으며 법인의 적폐를 다스리기 위해 이른바 기업의 과실치사죄(Corporate manslaughter)법이 채택되었다.

이법은 H.O. Free Enterprise 호 사고를 계기로 기업이 안전 관리상 중대한 위반으로 인해 인명을 사망케 하였을 경우 해당 기업을 처벌하여 재발을 방지토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논란을 거쳐 2008년 4월에 발효되었으며 영국적 선박, 영국 영해 내에서 발생한 모든 선박의 인명사고(사망)가 그 적용 대상이다. 법을 위반한 법인에 대해서는 벌금(금액은 무제한)과 함께 판사의 재량하에 의도적으로 기업의 명성(reputation)에 손상을 주는 조치를 명할 수 있다(publicity order). 예를 들어 위반한 기업으로 하여금 구체적인 위반사실, 유죄선고의 내용과 법원이 명령한 개선책을 함께 공시하도록 명할 수 있다. 대중을 상대로 한 크루즈나 Ferry 선사의 경우 이와 같은 불미스러운 사실이 회사의 대외홍보 광고에 함께 실리게 될 경우 그로 인한 타격을 감안할 때 선주나 운항회사의 입장에서는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며 이는 곧 회사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 기업에 대한 제재뿐만 아니라 관련 임원 역시 사실상 관련업계를 떠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개인이나 기업 모두에 치명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당연히 안전관리를 경영상 최우선 과제로 다룰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번 Ferry호 사고는 H.O Free Enterprise호 사고와 비교할 때 사고의 원인, 피해의 규모, 혼란스러운 사후관리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그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를 노출하였으며 IMO등 국제사회가 그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전체 국민들이 우리의 안전수준과 사후관리능력에 대해 실망하고 총리가 사퇴하고 정부조직이 개편되는 등 정치권의 구도가 흔들릴 정도로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면 언제, 어떤 대가를 치러야 달라질 수 있겠는가. 문제의 대책을 선원들에게서 찾으려 하기보다는 매니지먼트 차원에서, 정책당국 차원에서 성찰과 함께 만연된 안전 불감증과 조직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적폐를 다스릴 수 있는 개혁적이고 획기적인 법적, 제도적 조치가 취해져야 할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저작권자 © 해양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