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4월 15일 영화로 잘 알려진 ‘타이타닉호’ 침몰 사고로 1,5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2년 뒤인 1914년 런던에서 ‘해상인명안전협약’이 채택되었다. 그 때 채택된 국제협약이 여러 가지 현대사의 곡절을 겪으면서 오늘날 국제해운의 안전문제를 책임지는 가장 영향력 있는 협약으로 진화, 발전하였다. 현재 ‘해상인명안전협약’은 162개국(전 세계 선복량의 98.8%)이 가입하고 있는 해상안전의 바이블이 되었다. 그 후 해양환경보호협약, 해상충돌예방협약, 만재흘수선협약, 선원훈련및자격협약 등 여러 가지 해상에서 인명과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협약 체계가 기틀을 다지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기준과 규칙들이 만들어졌다 할지라도 그 기준과 규칙을 잘 지키는 문제는 또 다른 문제였다. 예로부터 선박은 사람처럼 태어나면서부터 국적을 갖고 선미에는 항상 자기 국적의 국기를 게양하였다. 그 선박은 자기 국가의 영토로 간주되어 기국(旗國)의 행정권이 배타적으로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항만에서 국제협약의 기준에 미달된 선박이 입항했더라도 기국이 아닌 한 제제를 가하기 곤란한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1978년 3월 16일 ‘아모코 카디즈호’(라이베리아 국적, 초대형 유조선)가 프랑스 연안에서 좌초하면서 허베이 스피리트호의 약 18배에 달하는 22만톤의 원유를 유출시키는 초대형 오염사고가 발생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등록국의 배타적인 행정력만으로는 협약이 지켜지기 곤란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항만당국도 자국 항만에 입항하는 외국선박이 국제기준을 잘 지키고 있는지 감독하고 시정을 요구하며 심하면 출항을 못하도록 조치할 수 있는 제도가 창안되었다.

1982년 1월에 북유럽 14개국이 모여 항만국이 자국항만에 기항한 외국선박도 통제할 수 있도록 상호 양해하는 각서를 체결한 것이다. 파리에서 체결된 양해각서 이후 27개국이 가입하였고 이를  효시로 아태지역(18개국), 지중해지역(10개국), 인도양지역(17개국), 남미지역(15개국), 흑해지역(6개국), 캐리비안지역(9개국), 중동지역(6개국), 아프리카지역(14개국) 등 항만국통제 양해각서는 전 세계로 퍼져 나가 지금은 ‘해상인명안전협약’ 등 각종 국제협약과 함께 협약의 이행을 강제하는 훌륭한 제도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국제협약과 항만국통제라는 강력한 시스템으로 1910년 0.97% 이던 전손률(선박을 통째로 멸실하는 비율)이 100년이 지난 2010년 0.15%로 줄어들었다.

또한 정유업계의 슈퍼 갑인 BP, 세브론, 엑손모빌, 토탈 등 오일 메이저들은 자체적인 점검 프로그램에 따라 검사를 통과한 선박에만 화물을 싣게 한다. 뿐만 아니라 최근 라이트쉽 (RightShip.com)은 전세계 선박마다 일일이 안전등급을 매겨 이를 인터넷에 공개함으로써 안전관리가 상대적으로 미흡한 선박은 시장에서 도태되도록 유인하고 있다.

반면, 국내항 간을 운항하는 내항선은 국제협약을 그대로 적용하는 대신 협약을 반영한 국내법(선박안전법, 해양환경관리법, 해사안전법, 선박직원법 등)을 적용 받게 된다. 또한, 국내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국제협약의 모든 규정을 다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항해구역, 선박의 톤수, 엔진의 마력 등을 감안하여 어느 정도 요건을 완화하게 되는 것이다. 먼 바다로 나가지 않고 육상에서 1-2시간이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태평양이나 대서양 같은 대양보다 순탄한 기상조건 등을 감안하는 것이다.

문제는 안전기준이 잘 지켜지는지 끊임없이 감시하고 감독하는 중층적인 확인제도와 규정을 어기거나 불안한 요소가 발견되었을 경우 즉각적으로 선박을 정지시키거나 궁극적으로는 사업영위 자체가 힘들어지도록 하는 메카니즘이 부재하였거나 미약하였다는 점이다.
세월호 사건은 너무나도 비통하고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망연자실하고 있어서만은 안 된다. 국내법을 제정하면서 고려했던 각종 여건들을 다시 한 번 전면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여 지나치게 완화한 내용이 있는지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 또한 정해진 법규들이 효과적으로 지켜질 수 있는 제도도 창안해야 한다. 이를테면 소비자인 승객을 대표하여 서비스의 안전품질을 수시로 체크하고 하시라도 위험요소가 발견될 경우 운항을 정지시킬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일종의 소비자운동을 벌이는 방법도 고려해볼 만하다.

세계 해상안전제도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안타깝게도 대형 해난사고가 하나의 매듭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나무가 곧게 위로 뻗을 수 있는 것은 아마 중간 중간에 단단한 매듭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쪼록 세월호 사건이 내항선 분야의 안전수준이 한 단계 쭉 벋어 나갈 수 있는 매듭이 되기를 바란다.

더불어 같이 생각해볼 문제는 외항해운산업이 처한 현실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각국의 경쟁적인 상호교차 감시감독과 시장 자체적인 견제로 안전과 환경에 대한 관리수준으로 우수하게 평가받은 기업체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에서 정부, 선급, 업계가 서로 협력하여 세계5위로 성장시켜놓은 우리 해운산업에 ‘세월호사건’라는 비극으로 인한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사실 우리 외항 상선대는 양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쑥쑥 커나가고 있다. 전세계 주요 항만에서 실시한 우리나라 선박에 대한 검사성적이 해를 거듭할수록 좋아지고 있는 것이다. 검사결과 지적사항이 있어 출항에 차질을 빚은 비율이  ’06년도에 1.9%에서 ’12년 0.8%에 이어 작년에는 0.3%로 매우 우수한 평가를 유지하고 있다. 이미 수년전부터 아시아, 유럽 지역에서 최우수등급으로 분류되어있으며 특히 까다로운 점검으로 명성이 높은 미국에서도 ’13년도에 최우수 등급에 이름을 올렸다.
이렇듯 양적인 성장에 더하여 질적으로도 우수한 평판을 들을 수 있게 된 데에는 해운산업 자체의 노력에 더하여 한국선급의 적극적인 도움이 있었다. 한국선급에 입급한 선박이 안전하고 원활하게 운항할 수 있도록 기술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이다. 더 나아가 전세계 선급시장에서 유수의 타선급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성장해 나가기 위한 노력을 경주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외항해운산업계는 세월호 사건의 후폭풍으로 또 다른 세월호 사건을 겪고 있다. 사고 이후 일부언론의 억측보도와 그로 인한 여론의 흐름은 마치 외항해운업계가 정관계 로비를 통해 안전기준을 하향시키고 그로 인해 안전에 소홀한 것 같은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것이다. 불안한 것은 이러한 착시현상이 우리 외항해운 서비스에 대한 국제적인 신뢰를 무너뜨리고 전세계 화주로부터 외면당하는 단초가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거듭 밝히는 바, 외항해운산업의 안전수준은 누구에게 로비함으로서 양보되는 것이 아니다. 국제적인 기준을 엄수하고 각국 정부, 또는 화주들의 중층적인 검증단계마다 이를 입증해 보임으로써 만이 국제해운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외항해운산업이 생산하는 국제운송서비스를 구매하는 고객은 안전하고 효율적인 운송을 바라는 전세계 화주들일 뿐이다. 끊임없이 안전수준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길 말고는 다른 지름길이 없는 것이다.

세월호 희생자의 명복과 마지막 한사람만이라도 생환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과 똑같은 마음으로 빈다. 내항해운의 비극적 사건이 해운불황의 위기를 극복하고 세계 3위의 해양국가로의 도약을 염원하며 안간힘을 쏟고 있는 외항해운산업마저 침몰시키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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