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5월 27일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된 ‘안전한 해양만들기를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발표된 내용으로, 필자와 협의 하에 게재한다.                                                                       -편집자 주-

 

 
 
1. 머리말
‘세월호 침몰참사’는 불확실성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신뢰와 불신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과학기술이 고도화되고 산업화와 도시화가 발달된 현대 사회에서 재난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무엇이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일어날지는 불확실하다. 이번 참사는 대통령이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강조한 데서 드러나듯이, 선진국 수준의 재난대응체계가 존재하는 데도 선박의 전복사고에 대응해 1명의 인명도 구조하지 못한 실패 사례이다. 사고해역이 여러 악조건을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초동대응의 실패는 재난대응체계에 대한 신뢰상실을 넘어 컨트롤타워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유명무실화, 국무총리에의 책임귀속과 사퇴, 해양경찰청 해체, 안전행정부와 해양수산부의 기능 축소 등으로 사건이 연쇄되면서 국가에 대한 신뢰 위기에까지 이르러 있다. 이에 대처해 대통령은 신뢰회복을 위한 수습책으로 잘못된 관행의 정상화를 내세운 ‘국가개조론’과 강력한 컨트롤타워인 ‘국가안전처’ 설립 등을 약속하고 있다.

체계는 세계 복잡성이 축소되어 단순화된 것이다. 현대 사회는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기능적으로 분화되고 그로 인해 고도로 복잡해졌다. 그 때문에 일반 시민은 체계에 의한 복잡성 축소가 일어나야 비로소 사건을 인식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는 정상과 비정상의 구별, 안전과 위험의 구별을 통해 재난 사건의 복잡성을 단순화해 무엇이 문제인지를 인지하는 소통을 여는 준거가 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 당하여 정상과 안전에 준거해 정당성을 확보했던 정부의 정책이 비정상과 위험에 준거한 항의 담론에 의해 흔들리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산업화와 도시화의 결과로 미래에 일어날 수도 있는 다양한 재난에 대응한 재난관리체계의 구축은 국가의 책무에 속한다. 재난은 평소 사소한 이상 징후나 관행으로 간주해 간과했던 것들이 누적되어 예측하지 못한 요인들과 상호작용하며 우연적으로 진행된 연쇄 사건들에 대한 통제력을, 관련 당사자들이 상실했기 때문에 일어난 돌발적인 대형 위해사고이다. 언제, 어디에서 이런 위해사고가 일어날지 알 수 없고, 어떤 결과들이 나타날 가능성은 있지만 그것이 나타날 가능성의 정도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손실과 관련해서는 언제나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현대 사회는 이에 대응해 불확실성으로 야기되는 두려움과 공포, 불안으로부터 해방되고자 끊임없이 불확실한 것을 확실한 것으로 바꾸려고 노력하게 되고, 그 인위적 산물이 재난관리체계이다.

재난관리체계는 재난발생 시의 복잡한 사건 전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사고 후 피해자의 물질적-정신적 피해를 정상 상태로 ‘복구’하기 위해 위기관리조직과 위기관리 매뉴얼로 단순화해 놓은 것을 넘어서, 평상시에 철저한 위험관리를 통해 있을지도 모르는 재난을 사전에 ‘예방’하고 훈련을 통해 ‘대비’하는 것이 사후 관리보다 피해 최소화에 더 효과적이라는 인식에서 예방-대비-대응-복구의 순환체계로 구성된다. 그 결과 사람들은 사고 초기에 재난대책본부가 설치되고 위기관리 매뉴얼에 따라 가용할 수 있는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을 총동원해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최소화할 것으로 기대하게 된다. 따라서 전복된 세월호에서 생환한 사람이 전무하다는 것은 그 책임을 ‘정상’과 ‘안전’을 강조했던 현 정부에 귀속시키게 하고, 그 책임 귀속이 정부의 무능력과 무책임, 부패, 민관유착, 잘못된 관행 등을 파헤치는 계기가 되면서 국가에 대한 신뢰가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안행부, 해수부, 해경, 해운사, 선급기관, 해운조합 등은 재난대응체계와 관련된 법제도와 조직에 의해 승객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모든 가용한 자원을 동원해 해상재난에 대응하도록 구조화되어 있다. 따라서 재난에 따른 인명과 재산의 피해가 기대한 만큼 최소화되지 못했다면, 이들 제도와 조직에 대한 신뢰는 상실될 수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관료의 무능력과 무책임, 부패의 고리가 드러나면서 국가는 신뢰의 위기에 노출되어 있다. 과연 대통령이 제안한 국가개조론과 국가안전처 신설이 국가에 대한 신뢰의 회복에 기여할 수 있을까? 이 두 가지 정책과제는 사실 현 정부가 출범 초부터 추진해온 ‘비정상의 정상화’와 ‘국민 안전’의 정책 기조를 이름만 바꾼 것에 불과하다. 현 정부는 “과거의 비정상적인 것들을 정상으로 되돌려 기본이 바로 선 국가”로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국정 철학에 따라 모든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에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공직기강 확립을 요청해왔다. 또한 현 정부는 행정안전부의 이름을 안전행정부(이하 안행부)로 개명하고, 재난총괄기구이던 소방방재청에서 인적재난 및 사회재난 부분을 떼어내어 안행부의 하위 부서로 개편하며, 컨트롤타워인 안행부 중심으로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을 대대적으로 개정하는 등 이른바 ‘강력한 재난대응체계’를 올해 2월에 출범시켰다. 바로 이 ‘비정상의 정상화’와 새로운 재난대응체계가 1개월여 경과 후 막상 닥친 대형 해상재난에서 무력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따라서 야당과 시민사회는 정부의 해결책을 현실의 소요를 잠재우기 위한 정치공학적 전략으로 간주할 것이고, 특히 야당은 6월로 임박한 지방선거를 의식해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을 비판하는 정치적 공세를 펼칠 것이다.

정부는 공권력을 동원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을 귀속시키기 위한 수사를 다각도로 벌이고 있고, 대통령은 책임자를 찾아내 처벌할 것을 약속하고 있다. 책임자처벌은 재난피해자 유가족들의 요구를 수용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물론 책임 귀속은 선원과 해운사, 해경, 해수부, 안행부 등 다각도로 이루어질 수 있다. 문제는 책임 귀속과 처벌이 해양사고의 재발을 막을 수 있는가, 국가에 대한 신뢰, 나아가 사회적 체계에 대한 신뢰 회복에 기여할 수 있는가이다. 재난사고의 원인을 개인 혹은 조직에서 찾거나 그 행위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물어 처벌하는 일련의 조치들은 “원인이 없다면 결과도 없다”는 전제로부터 출발한다. 하지만 선장·선원 같은 인물이나 해경 같은 조직에의 원인 귀속과 엄중 처벌은 수많은 목숨이 수장된 엄청난 재난에 대한 가능한 반응이긴 하겠지만 재난이 일어난 원인에 대한 다양한 반응가능성 중 하나일 뿐이다. 그것으로는 빈번하게 발생하는 재난에 대응하는 데 충분치 않다. 여기서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날 수밖에 없던 사회구조적 원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재난대응체계가 실패한 것인지를 밝히는데 주력하고자 한다. 이러한 접근은 국가에 대한 신뢰 회복의 가능성을 찾는데 그 목적이 있다.
 

2. 세월호 참사의 사회구조적 원인
해상안전을 위한 각종 법제도와 관련 조직이 발달해 있는데도 세월호 참사 같은 대형 참사가 여전히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선박의 안전운항을 위한 위험관리체계는 해수부와 해경으로 이원화되어 이중·삼중으로 갖추어져 있다. 선급기관은 「선박안전법」과 「해운법」, 「해사안전법」에 따라 안전운항을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선박의 건조·개조 시 복원성시험 등 안전 검사를 해야 하고, 해운조합에서 파견된 운항관리자는 선박의 출항 전에 「운항관리규정」을 바탕으로 탑승인원과 적재된 화물의 적재한도 초과 여부를 확인하고 비상훈련 실시 여부를 감시·감독할 의무가 있다. 또한 해경은 「해양경비법」에 근거해 해양경비 및 해양치안활동, 해양사고 예방활동, 사고 시 해난구조를 수행하고, 해상교통관제센터(VTS)는 구역 내에서 주변상황 및 해상교통상황에 대한 감시를 통해 해상교통의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 또한 「선박안전법」은 선박의 안전검사, 컨테이너 안전점검, 복원성 유지검사, 안전 운항을 위한 선장의 권한, 화물의 적재·고박 상태 등 안전항해를 위한 조치를 규정하고 있고,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재난에 대응해 예방-대비-대응-복구를 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선장은 「선원법」에 의해 선내의 모든 사람에 대해 절대적인 지휘·명령권을 가지며 선박에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인명의 구조에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되어 있다. 수난구호법은 해경이 해상재난에 처한 인명의 구조와 보호를 맡아 구조대·구급대의 편성·운영, 구조본부의 조치, 현장지휘를 하도록 규정해 놓았다. 그런데도 선장과 선원은 선내에 비치가 의무화되어 있는 ‘여객선비상수색구조계획서’와 ‘위기대응 행동매뉴얼’을 따르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해수부는 ‘주변해역 대형 해상사고 대응 매뉴얼’, ‘해양사고(선박) 위기관리 실무 매뉴얼’을, 해경은 ‘해상 수색구조 매뉴얼’과 ‘전복 사고 발생시 체크리스트’가 있는데도 이를 준수하지 않았다. 매뉴얼은 출동 대원과 현장 지휘관이 사고선박 도면이나 선박구조를 잘 아는 사람을 대동해 선체 내부로 진입해 수색·구조 활동을 벌이게 되어있고, 체크리스트에는 승객 또는 선원의 퇴선 여부 파악, 구명조끼 착용 여부, 당시 상황을 확인해 보고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해경 경비정은 선장과 선원을 먼저 구조해 육상으로 인계했을 뿐만 아니라 세월호가 침몰하기까지 47분 동안 현장 지휘관의 선내 진입과 퇴선 방송 지시에도 불구하고 선체 내부에 진입하지 않아 승객 300여 명은 구조와 관련된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다. 결국 초동대응 단계에서 수색·구조를 맡은 해경이 ‘골든타임’을 헛되이 흘려보낸 결과 전복된 배에서 1명도 구조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고, 정부는 그 책임을 해경에 귀속시켜 해체라는 극단적인 처방을 내렸다.

재난 상황에서는 누구도 사건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다. 위기관리 매뉴얼은 이른바 임명구조를 위한 ‘골든타임’을 적절히 활용하기 위해서 관련 조직들이 따라야 할 행동 준칙을 단순화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위기관리 표준매뉴얼’, ‘위기대응 실무매뉴얼’, ‘현장조치 행동매뉴얼’ 등 약 3,400여개에 이르는 위기관리 매뉴얼이 엄연히 존재했지만, 현실에서는 운항 이전부터 운항과정, 사고발생, 긴급구조까지 전 과정에서 매뉴얼이 지켜지지 않았다. 세월호의 관행적인 과적과 허술한 화물고정 상태, 출항 시 안전점검보고서 허위 기재와 운항관리자의 형식적인 확인의 관행, 해양경찰청의 허술한 지도와 현장지휘의 무능력, 해상교통관제센터의 업무태만, 선장과 선박직 선원의 직업윤리 상실 및 조기 탈출, 중앙재난대책본부의 무능력과 컨트롤타워 기능 실종, 안전행정부와 해수부·해군·민간기구·자원봉사조직 간의 불협화음, 전문가인 현지 해양경찰청장의 지휘권 부재, 권력자에게 지향된 공무원의 보신주의, 실종자 가족에 대한 대책본부의 무신경 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사회적 체계에 대한 신뢰가 급격히 상실되었다.
세월호 참사와 함께 드러난 이들 현실의 난맥상은 그 뒤에서 작동하고 있는 사회구조적 원인이 무엇인지를 되물어보게 한다.
 

1) 위험과 더불어 사는 현대사회에서의 정상사고
현대 사회에서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란 없다. 선진국과 후진국을 막론하고 위험을 통제하는 데 실패했을 경우 재난은 언제 어느 곳에서든지 일어날 수 있다. 세월호 같은 대형 여객선사고 역시 여가의 증가와 관광여행의 활성화에 따라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정상사고인 것이다. 재난에 선진국형, 후진국형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며, 재난에 대처하는 데 선진국과 후진국의 다름이 있을 뿐이다. 선체길이 146m, 무게 6825t에 달하는 거대 여객선이 승객 950여명, 컨테이너 박스 180여개, 차량 150여대를 선적하고도 운항이 가능한 것은 조직, 기능체계 등 사회적 체계의 작동이 그와 관련된 안전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비록 기술적으로 통제된 위험이지만 위험을 인정하는 순간 일이 잘못되는 경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국가는 선박운항과 관련된 법제도와 그에 상응하는 검사기관, 감독기관 등을 두어 안전한 운항을 보장하게 된다.

승객들이 자신의 안전과 관련된 복잡한 사항들을 일일이 점검하지 않고 선박에 승선할 수 있는 것은 해운사와 운항감독기관, 구조기관, 선장과 선원이 해상에서 승객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고 목적지까지 데려다줄 것이라고 신뢰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적어도 자신들이 항상 감시하지 않더라도 이들 사회적 체계가 잘 작동하고 있다고 신뢰하기 때문에 선박여행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의 위험관리제도가 발달하고 재난대응체계가 갖추어졌다고 해서 재난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비록 국가가 위험을 관리하더라도 여러 가지 요인들이 겹치면서 일어나는 우발적인 사고의 위험은 상존한다. 사고가 재난이 되는 것은 사고가 예측한 대로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불안해하는 것은 재난의 발생빈도가 과거보다 높아졌다거나 해상재난이 자신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는 어떤 짓을 하거나 하지 않은 인간 행위의 직접적인 결과로서 수많은 생명이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것으로 관찰되기 때문에 위험 소통의 주제가 되고 있다. 따라서 살릴 수도 있었을 수많은 생명을 수장시킨 부실한 위기대응체계에 대한 공중의 분노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살아있는 자의 죄의식은 이 신뢰가 깨진 데 대한 정상적인 반응인 것이다.
 

2) 행정조직의 효율성 중시에 따른 부작용
관료들은 대형 재난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효율성을 이유로 유관업무를 통합하는 조직개편을 단행했고 재발방지 대책을 내놓았다. 박근혜 정부 출범 시에 안행부가 안전관리본부를 만들어 본래 통합재난관리기구로 설립되었던 소방방재청에서 따로 사회재난을 분리해1) 흡수한 것도 재난대응에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을 동원·지원하는 데 효율적이라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사고의 보고 직후 중대본이 안전관리본부 직원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지만, 이들 일반 행정직은 올라오는 보고를 통해 상황을 판단해 지시를 내릴만한 컨트롤타워의 통제 능력을 결여하고 있었다.2) 이들은 해상재난에 대처할 만한 전문지식을 결여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평소 해상재난에 대비한 훈련을 받아본 적도 없는 비전문가들이었다. 다시 말해서 사고로 마무리될 수도 있던 일을 수많은 인명피해를 동반한 재난으로 키운 것은 효율성을 중시하는 관료주의의 부작용 탓이 컸다.

게다가 일반 행정직의 순환보직 관행은 재난관련 전문가가 육성되는 것을 구조적으로 막았다. 따라서 컨트롤타워는 구성되었지만 전문성 결여로 인해 그 역할이 올라오는 다양한 보고들을 수집해 대언론 브리핑을 하는 데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탑승인원 및 생존자, 실종자 숫자의 잦은 번복과 정정 발표로 정보 통제력에 대한 신뢰를 일찍이 상실했다.

초동대응 단계에서 정작 사고현장에는 책임을 지고 수색·구조 상황을 정확히 판단해주는 사람도 없었고 상황실조차 마련돼 있지 않았다. 개정된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에 따라 안행부에 컨트롤타워인 중대본이 차려졌고 해수부가 세종청사에 중앙사고수습본부를 꾸렸다. 해경은 인천과 목포에 각각 지역사고수습본부를 꾸렸으며, 서해해경은 목포에 중앙구조본부를 설치했다. 그 결과 선박이 침몰하는 초동대응 단계에서 현장을 책임져야할 목포해양경찰서장은 서해해양경찰청장의 지휘를 받고, 서해해양경찰청장은 해양경찰청장의 지휘를 받으며, 해양경찰청장은 해수부, 해수부는 중대본의 지휘를 받는 관료주의의 위계 구조가 현장에 출동한 해경의 효율적인 수색·구조 활동에 장애로 작동했다.

이 명령체계의 혼선을 해결하기 위해 사고 12시간 후인 저녁 8시 해수부 장관은 해수부의 해양정책실장을 현장 총책임자로 임명했으나, 그도 역시 재난·구조활동에 대한 아무런 지식과 정보, 경험이 없는 고위직 관료였다. 곳곳에서 부처 간 대책본부가 난립해 지휘체계가 극심한 혼선을 보이자 급기야 사고 후 3일째 국무총리를 수장으로 하는 ‘범정부사고대책본부’가 목포에 설치되었다.3) 하지만 그것도 역시 위계상 상위권자가 지휘체계의 혼선을 해결할 것이라는 전형적인 관료주의 사고에서 나온 것이었다. 애초에 중대본과 중앙사고수습본부, 중앙긴급구조통제단에서 다시 지역재난안전대책본부, 지역사고수습본부, 지역긴급구조통제단 등으로 연계되는 기다란 서열 위주의 상명하복 체계는 현실의 재난 상황에서는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었다.

초동대응에서는 자원 동원의 효율성을 중시하는 관료주의가 오히려 현장 지휘관들에게 상관의 지시를 기다리게 만들어 지휘권과 통제권의 무력화를 초래한다는 역설이 일어났다. 각 단위에서 12개의 대책본부가 구성되면서4) 공무원들이 보고와 의전에 동원되는 동안 전복된 선박에 갇힌 인명에 대한 구조활동은 뒷전으로 밀려났던 것이다. 재난 상황에서는 현장을 가장 잘 아는 관할 조직의 장이 지휘권을 행사해야 하고 직급이나 부처의 서열이 높더라도 그 지휘에 따라야 한다. 신속한 조치와 효율적인 대응을 위해서는 지휘체계를 단순화해야한다. 사건이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시시각각 변화하는 재난 상황의 대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순화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긴급한 수색·구조 활동에서는 보고와 지시의 위계구조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결정이 점점 더 지연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오히려 치명적인 장애로 작동한다.
 

3) 관료주의의 부작용으로서의 부패 고리
관료주의에 의한 중앙집권적 지배와 통제가 만들어낸 부작용은 증축한 세월호에 대한 한국선급의 부실한 선박 안전검사와 출항시 해운협회 소속 운항관리자의 형식적인 안전점검 등 감독관청과 해운사 간의 잘못된 관행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관피아’(관료+마피아)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정부의 고위직 관료와 산하 관리·감독 업체들 간에는 은밀한 유착관계가 고착되어 있었다. 정부부처의 고위직 관료들이 퇴직 후 공기업 및 유관기관, 사업자협회 등으로 이동하는 전관예우(‘낙하산 인사’)의 관행이 생겨난 것은 지난 50여 년 동안 정부가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을 추진하면서 관료 주도의 경제성장이 지배한 탓이 컸다. 전직관료는 관리·감독의 대상인 공기업이나 유관기관, 협회·조합, 대기업, 금융기관, 건설사, 원전, 로펌, 회계법인, 대학 등 각종 사업자단체에서 수억원의 연봉과 퇴직후 생활을 보장받는 대신 ‘로비스트’ 역할을 맡고, 현직 관료는 자신의 퇴임 후를 감안해 로비에 귀를 기울이는 전·현직관료의 유착관계가 수십 년간 지속되어온 것이다.5)

정부가 지도·감독을 하는 국가 개입주의가 오래 기간에 걸쳐 산업체뿐만 아니라 금융계, 교육계, 건설계, 언론계, 문화계 등 사회 전반을 지배하면서, 퇴직 관료의 재취업을 통한 사회 지도층의 은밀한 유착관계, ‘엘리트 카르텔’이 잘못된 관행과 부패의 고리를 만들어냈다. 공공기관이나 사업자단체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보장받기 위해 고위직 관료들과 그들의 미래의 일자리를 약속하는 공모를 했던 것이고, 그 대가로 정보를 유출하거나 거래알선·청탁을 공공연히 자행하고 관리·감독이 느슨해지는 일종의 ‘봐주기 식’ 회피 행동이 양쪽의 적나라한 이해관계에 의해 관행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러한 엘리트 카르텔의 형성은 집단에 책임을 전가시킴으로써 개별 행위자의 윤리의식과 책임의식은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런 민관유착 구조에서는 재난에 대비한 매뉴얼 작성과 훈련마저도 표준에 따라 작성되거나 짜인 각본에 의한 모의훈련으로 실시되는 등 전형적인 ‘보여주기 식’ 회피 행동으로 일관했다. 재난예방 조치인 안전 교육과 안전 점검, 재난대비 훈련은 허위 보고 등의 요식행위로 이루어졌다. 1972년부터 매년 5차례 전 국민이 동원되어 실시되는 민방위훈련은 국가의 재난재해 등 위험상황에 대비해 세월호 사고 전까지 393차례에 걸쳐 반복적으로 실시된 훈련인데도 빈번히 터지는 대형 재난사고에서 그 효과를 입증한 바가 없다. 제도상으로는 예방과 대비, 대응을 하도록 되어 있는 등 재난관리체계가 선진국 수준으로 갖추어져 있지만 현실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4)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한 규제 완화와 기업의 기업윤리 결여
1970년대 이후 고도성장 단계에서 기업들이 권위주의 정부의 보호 아래 노동자들을 저임금 상태로 몰아넣으며 해외수출을 통한 이윤창출에만 몰입한 결과로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 안전을 경시하는 ‘기업윤리의 상실’이라는 기대하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 IMF관리체제 하에서 도입된 신자유주의 정책이 경영의 합리화를 명분으로 한 기업의 구조조정과 외주화를 허용하고, 정부의 간섭과 통제를 받던 영역을 민간부문, 즉 시장경제에 맡기는 규제완화를 단행한 것이 기업윤리를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특히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경제성장에 정책의 최우선 가치를 두고 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적극적인 규제완화를 단행한 것이 기업들로 하여금 과거의 권위주의 정부처럼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도 좋다는 신호로 읽힌 것이다. 그 결과 기업들은 관행적으로 위험관리 업무를 외주화하거나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등의 비윤리적 행위를 공공연히 저지르고 있고, 그에 따라 위험 사고는 과거보다 더 빈번히 터지고 있으며 불안정한 고용이 비정규직의 직무에 대한 책임감과 구속력을 떨어뜨리고 있으며 안전교육과 훈련도 겉돌게 한다.

1~2년의 단기 계약직이 많은 것은 기업이 2년 이상 근무 시 비정규직 보호법에 따른 정규직 전환을 회피하려 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위험관리 업무를 외주화하는 것은 인건비 절감을 명목으로 하지만 사고에 대한 책임회피를 위한 것이다. 산업재해의 희생자가 주로 비정규직에 집중되는 것은 그 반증이다. 노동자들은 저임금에 장시간 노동과 고용불안에 처해 있지만 사회안전망은 취약하기 이를 데 없다.
정부의 규제완화 조치가 기업윤리의 약화와 어떻게 연계되는지는 세월호 참사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세월호는 취항 시부터 노후선박 구입 및 선실 증축에 따른 복원력 약화에 대응한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허용기준치보다 2~3배 이상 화물의 과다적재와 부실한 화물고박, 평형수 조절 등의 편법·불법 운항을 관행적으로 하고 있었다. 해운사인 청해진해운은 안전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했을 뿐만 아니라 선장과 선원을 5명중 3명꼴로 비정규직으로 채용하고 있었다. 특히 선박 침몰시 본사는 승객의 생명과 안전을 도외시 한 채 사고정황 파악에만 급급해 이윤추구에만 몰두하는 비윤리적인 기업의 생리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 배경에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연안 여객업 활성화를 명목으로 완화시킨 선박관련 규제 20여건이 있다. 2009년 이명박 정부는 영세한 여객사업자의 부담 경감을 이유로 선령제한을 25년에서 30년으로 완화했다. 노후 선박은 선체나 기관실의 노후화로 안전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데도 해운사들은 시행 전 29.4%에 불과하던 15년 이상 노후선박 수입비중을 63.2%로 대폭 늘렸다.

카페리의 과적 및 적재 기준도 승인받은 차량이나 화물에 제한되던 것을 유사 차종이나 컨테이너로 완화했고 쐐기로 고정해 단단히 묶어야 했던 화물고박을 갑판에 고정된 사각밧줄로 묶도록 규제를 풀었다. 현 정부는 대통령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는 명목으로 규제완화를 직접 챙겼고 ‘선원법 시행령’을 개정해 선박안전 관련 규제를 적극적으로 완화했다. 선장이 선박에 이상이 있으면 서면으로 이를 보고해야 하는 의무를 없앴고, 선박 최초 인증심사 때 해운사가 해야 하는 내부심사도 없앴다. 선박검사원과 선박수리를 위해 승선하는 기술자는 선박의 안전을 검사하는 중요한 업무를 맡고 있지만 선원이 아니므로 정규직이 아닌 파견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한 것이다. 또 선장의 휴식 시간에는 1등 항해사, 운항장 등이 선장의 조종 지휘를 대행할 수 있도록 했다. 구난과 구조는 외부 민간업체에 외주화를 주도록 바뀌었다.
 

5) 개별화된 사회에서 전문가집단의 직업윤리 결여
사고 발생 직후 해운사와 선원은 왜 승객을 구조하기 위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는가? 승객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선장과 선원이 승객을 위험에 방치한 채 먼저 탈출한 것은 그들의 전문화된 직업활동에서 요구되는 직업윤리와, 전문가로서 자신의 행위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책임윤리가 결여된 행동이었다. 또한 해경이 침몰하는 선박에 대한 초동대응에 부실했던 것이나 중대본이 현장에서 이뤄지지 않은 부풀려진 ‘수색작업 발표’들을 이어갔던 것6) 안행부의 고위직 관료들이 비전문가이면서도 중대본을 장악하고 있던 것이나 사망자 명단이 적힌 상황판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려던 것, 실종학생가족 합숙소의 탁자에서 교육부장관이 즉석라면을 먹는 부적절한 처신을 한 것, 모든 방송 및 신문이 재난현장을 5일 동안 생중계하고 학생이나 아동에 대한 무분별한 취재와 왜곡된 속보경쟁, 부정확하고 자극적인 내용전달, 절제를 잃은 취재행태를 보인 것도 모두 직업윤리의 결여에서 나온 것이었다.

선장과 선원이 관제센터의 승객퇴선 명령과 구명벌 투하 요청에 불응했던 것이나 해경 경비정이 현장 지휘관의 선내 진입과 퇴선 방송 지시에 불응했던 것은 전문가들의 직업윤리와 책임윤리의 결여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있음을 의미한다. 전문가집단의 직업윤리가 약한 것은 압축적 근대화 과정에서 권위주의 정부가 경제성장 일변도의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정당한 노동자들의 분배 요구를 이기적인 파렴치한 행동으로 몰아 탄압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 50년 동안 무수히 많은 직업군들이 새로이 등장했지만 전문가집단은 자신의 무제한적인 욕구와 기대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전문가집단은 자신들의 직업활동이 미치는 사회적 결과를 고려하지 않은 채 개별화되어 자신의 이익, 자기집단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추구했다. 민주화 이후에도 경제성장의 정책기조가 유지되면서 대기업은 직장인들에게 회사를 위해 비윤리적 행동을 마다하지 않을 것을 요구했고, 기업의 지시에 대한 불응이나 내부고발은 당사자만 희생되는 자기파괴적 행동으로 간주되었다.

“직장은 밥을 먹여주지만 윤리가 밥 먹여주지는 않는다”는 적나라한 직업윤리 결여가 기업가와 직장인 모두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는 탐욕의 괴물로 만들었다. 1997년 IMF관리체제를 기점으로 정부가 시장의 경쟁원리를 사회 모든 영역에 정책적으로 강요하면서 구조조정과 외주화, 비정규직 양산으로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되었고, 노동자들은 고용 불안정과 취업난 속에 불안이 극대화되면서 연대 의식을 잃고 점점 더 개별화되어 갔다. 관료, 교육계, 법조계, 언론계, 군대, 실업계를 가릴 것 없이 전문가집단은 욕구와 기대에 대한 자기절제를 내면화하지 못했고 직업윤리를 확립하지 못했다. 이런 직업윤리의 결여가 “선실에서 대기하라”는 지시에 따른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의 대거 희생을 낳았다.
 

6) 비판적 의견을 억제하는 권위주의 문화
학생들의 대거 희생은 비판적 의견을 억제하는 권위주의 문화의 탓이 컸다. 학교의 권위주의 문화에 익숙해 있는 학생들이 방송지시에 순종했다가 탈출시도도 하지 못한 채 수장되었다는 것은 윗사람의 잘못된 지시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우리의 권위주의 문화를 되돌아보게 한다. 선박이 빠르게 기울면서 탈출이 힘들어질 수 있는 상황인데도 퇴선 명령을 내리지 않는 선장에게 선원 중 누군가는 퇴선 명령을 내릴 것을 요구해야 했다. 하지만 선장과 선원 간 권위주의 문화가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와 교신한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가 직접 승객 구조 및 퇴선 명령을 내리지 않고 선장에게 판단을 위임한 것도 권위주의 문화의 소산이다.

권위주의 문화는 안정적인 사회관계에서는 집단적 동질성을 공유하는 ‘우리’에게 무조건적인 수용과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어 집단적 결속을 강화시키는데 유용하긴 하겠지만, 재난 상황에서는 오히려 윗사람의 잘못된 판단으로 많은 인명 피해를 야기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윗사람이 잘못된 행동을 할 때 아랫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못하게 만드는 권위주의 문화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서 행동할 수 있는 사람들의 자발성을 약화시킬 뿐 아니라 ‘우리’ 밖의 사회적 체계에 대한 신뢰를 저하시킨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노란 리본의 물결과 침묵시위는 사회적 체계에 대한 신뢰가 급격히 상실되는 위험에 처해 있음을 암시한다.
 

3. 재난대응체계의 한계
‘세월호 침몰사고’는 항상 예상치 못한 영역에서 대형 사고가 발생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사소한 사고도 예상치 못한 영역에서 발생할 경우 통제력을 상실하기가 쉽고 대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해수부의 운항관리 및 선박 안전관리의 부실, 목포 해상교통관제센터의 조기 사고파악 실패, 특히 선장과 선원의 무책임한 탈출행동과 대기방송, 해경의 초동대응 실패(전복 이전 내부진입 시도 부재, 7시간 지연 후 수중 구조인력 투입, 54시간 경과 후 뒤늦은 잠수인력 선체 진입 등), 수색·구조과정에서의 해경과 해군·민간기구 간의 불협화음, 재난대응 지휘체계의 혼선과 무능력 등이 겹치면서 해수부와 안행부, 전문가인 사고지역 해양경찰청장의 지휘권 부재, 권력자에게 지향된 현장의 공무원의 보신주의 등이 재난대응체계를 무력화시켰던 것으로 지적된다.

일부 전문가들이 주장하듯이 과연 세월호의 수색·구조의 실패가 법제도의 미비 때문인가? 컨트롤타워가 국무총리 산하로 격상되어 지금보다 인적, 물적 자원에 대한 더 강한 통제권을 갖게 되고, 위기대응 매뉴얼에서 명령체계, 대응방식 등 부족한 부분을 보완한다면, 재난대응체계는 인명구조에 실패하지 않을 수 있을까?
 

1) 감독기관의 운항 및 안전관리 부실
한국선급과 한국해운조합의 선박의 운항 및 안전관리의 독점은 양자의 업무 수행의 부실과 부패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를 애초에 없애버렸다. 두 조직에 대한 유일한 감독관청인 해수부가 고위직 관료의 퇴직 후 전관예우에 의한 낙하산 인사 등으로 유착되어 있는 상태에서 실질적인 선박의 안전 검사와 출항시 안전점검은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했다. 이처럼 선박 건조 및 출항과 관련해 해운업자와 감독관청 간에 잘못된 관행이 자리 잡아 왔어도 대형 참사가 터지기 전까지는 외부에서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세월호가 적정화물 허용치인 1077톤의 2배 이상인 2142톤을 적재한 상태에서7) 화물을 고정·결박도 하지 않은 채 마지막 화물을 실은 지 3분만에 출항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감독기관의 운항 및 안전관리가 해운업자와 감독관청 간의 잘못된 관행 때문에 부실하게 이루어진 탓이다. 화물과적으로 인해 그만큼 배의 균형을 잡아줄 평형수는 필요량 1565톤의 반도 안 되는 761톤 밖에 채워지지 않았다.

진도VTS가 조기에 세월호의 사고를 파악하지 못한 것은 2010년 7월 해상교통관제센터가 이원화되어 여수VTS와 함께 관할권이 해수부에서 해경으로 이관되면서 VTS 관제구역 통과 시 선박의 보고의무가 없어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 해경은 관제구역에 선박의 진출입시 보고를 의무화하고 있지 않다. 인천, 부산, 마산, 제주 등 15개의 VTS는 여전히 해수부 관할로서 선박의 입항보고를 의무화하고 있다. 세월호가 맹골수로를 통과하면서도 멀리 떨어진 제주VTS에 조난신고를 한 것은 평상시에도 보고 의무가 없는 진도VTS보다는 제주VTS와 교신을 해온 탓이 컸다. 진도VTS가 첫 조난신고 후 12분이 지난 다음에 세월호와 첫 교신을 한 것은 해경의 보고의무 해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2) 사고 발생 직후 선장과 선원의 잘못된 대응
침수 시작부터 침몰 때까지 선장과 선원이 승객에 대한 아무런 구호조치도 하지 않고 승무원 전용통로를 통해 가장 먼저 탈출한 행동은 해양사고 시의 조치, 비상배치표 및 훈련, 선내 안전·보건 및 사고예방 기준, 선원의 교육훈련 등을 규정해놓은 선원법을 위반한 것이었다. 해운사가 침몰 상황에서 선원들과 승객 구조에 대해 논의하지 않고 화물과적을 은폐하기 위해 화물적재량 조작을 지시한 것이나 선원들이 승객들에게 퇴선 명령을 하지 않고 대기명령만 반복하다가 이후 후속조치 없이 자기들만의 탈출을 공모한 것은 직업윤리와 책임의식이 결여된 행동이었다.
 

3) 초동대응 단계에서 해경의 무능력과 무책임
해경은 해양재난 발생 시 초동대응에서 인명구조를 우선해야 하는 데도 세월호와의 교신과정에서 승객에 관한 어떠한 구조조치도 지시하지 않았다. 즉, 해경은 세월호와 교신이 계속된 사고 초기 20여 분간 승객들을 간판으로 대피시키거나 퇴선 명령을 내리라는 구호조치에 대한 지시를 하지 않았다. 해상교통관제센터(VTS)도 해양사고에 대한 전문적 판단을 내릴 만한 위치에 있음에도 결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식에서 선장에게 결정을 위임했다.

또한 해경 긴급구조단은 세월호의 침몰 직전까지 47분 동안 한 차례도 승객에게 퇴선 명령을 내리지 않았으며, 선박 내부로 진입해 승객 구조를 하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사고 현장에 도착한 해경 경비정은 객실에의 접근통로가 있는 선미 쪽으로 접근해 승객의 구조활동을 해야 하는 데 오히려 선수 쪽에서 탈출하는 선원들을 먼저 구조했다. 해경은 엉뚱하게 물에 뛰어든 승객만 구조하였을 뿐 해경의 어느 누구 한명도 선체 내부로 진입해 승객에게 퇴선 명령을 내리거나 구조행위에 뛰어들지 않았다. 해경 경비정은 목포해양경찰서장의 선내진입 및 퇴선 방송지시, 그리고 ‘해상 수색구조 매뉴얼’을 무시하고 선체 내부에 진입해 구조활동하는 것을 일찍이 포기했다. 먼저 구조한 선원들을 앞세워 내부 진입을 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주변해역 대형 해상사고 대응 매뉴얼’에 따르면 해경장은 본청에 해상중앙구조본부를 설치하고 상황판이 비치된 해경 상황실에서 수색구조 상황을 실시간 보고받아 지휘해야 하는 데도, 헬기를 타고 사고 해역으로 이동하느라 초동대응 단계에서 무려 3시간 동안 해경장의 구조 지휘에 치명적인 공백이 생겼다.
 

4) 재난정보의 통제력 결여와 컨트롤타워의 부재
사고 당시 세월호는 선박의 위치를 알려주는 자동식별장치(AIS)가 꺼져있는 상태였다. 따라서 진도VTS와 서해해경의 레이더망과 근처해역을 지나던 선박들의 레이더망에 세월호의 위치정보가 나타나지 않았다. 또한 세월호는 침몰 직전까지도 조난통신에 사용되는 채널 16번으로 구조요청 교신을 하지 않았다. 채널 16번으로 교신을 하면 사고 해역을 지나는 모든 선박에 구조요청을 할 수 있는데도, 오히려 기본채널인 16번을 채널 12번으로 변경해 제주VTS 및 진도VTS와 교신함으로써 재난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통로가 애초에 차단되었다.

전체 재난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정보관리인데도 중대본이 정보통제력을 상실하고 우왕좌왕한 것은 재난대응체계 자체가 실종자 가족과 유가족의 불신을 받는 원인이 되었다. 생존자와 실종자 가족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으며, 앞으로 어떻게 구조가 진행될 것인지 하는 것이 가장 긴급한 사항이다. 따라서 모든 정보는 언론에 배포되기 전에 생존자와 실종자 가족에게 먼저 공유되도록 관리되어야 하는 데도, 중대본은 대언론 브리핑에 매달려 스스로 재난피해자들의 불신을 만들어내었다. 초동대응 단계에서 중대본의 탑승자·구조자·실종자 수의 잦은 변동 등의 오보, 정부 부처마다 난립한 10여개 대책본부8)의 정보 혼선으로 인한 정보 통제력의 상실은 정부의 위기 대응력에 대한 신뢰를 크게 상실하게 했다. 이들 대책본부는 상호간 정보 공유가 되지 않은 채 제각기 다른 정보와 지시를 내놓으며 초동대응 단계에서 혼란을 가중시켰다. 세월호 사고소식이 전해 진 직후인 오전 11시 안산에 세워진 경기도교육청대책본부는 ‘전원구조’ 소식을 전했고, 중대본와 해수부, 해경은 사고 당일에만 구조인원을 전원에서 368명, 164명, 175명으로 계속 정정했다.

안행부는 중대본을 설치하고 가동했지만 해상재난에 대한 전문성 결여로 인해 수색·구조 상황을 실시간 보고는 받고 있었지만 상황판을 보고 구조현장을 지휘할 수 있는 능력을 처음부터 결여하고 있었다. 결국 중대본의 역할은 대언론 브리핑에 제한되었고, 그마저 탑승인원 및 생존자, 실종자 숫자의 잦은 번복과 정정 발표로 인해 신뢰를 잃어버렸다. 17일 이후 중대본은 공식 브리핑을 하지 않아 스스로 컨트롤타워 기능을 포기했다.
 

5) 민관군 협력체제의 부재
해난사고가 발생하면 「수난구호법」에 따라 해경이 수난구호 협력기관 및 수난구호 민간단체와 협조체제를 구축해 생존자 구조 및 실종자 수색 작업 등 구조구난을 지휘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과정에서 구조책임자인 해경의 현장 지휘자는 침몰중인 선박의 내부에 침투해 실종자 수색에 참여하기 위해 사고 당일부터 대기하고 있던 해병대 출신 민간 잠수사들과 17일부터 대기한 해군 최정예 잠수요원인 특수전전단(UDT)과 해난구조대(SSU) 대원들의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데 실패했다. 초동대응 단계에서 많은 민간 잠수사들이 자원봉사에 나섰지만 이를 활용하지 않았으며, 알파잠수기술공사의 다이빙벨의 투입도 계속 지연되었다.

이명박 정부가 민간업체를 해난구호에 투입하는 이른바 ‘해난구조의 민영화’를 단행한 결과로, 해경이 독점 계약을 체결한 민간 구난업체인 언딘 마린 인더스트리를 투입시키기 위해 해군과 민간 잠수사들의 협력을 차단한 것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사고 발생 13시간이 넘은 상황에서 비로소 해군과 군함을 포함한 모든 인력과 장비의 총동원령이 내렸고, 해군 구조함은 선체가 완전히 전복된 이후인 17일 새벽에야 도착했다.
 

6) 재난피해자에 대한 대책본부의 무신경
사고 이후 생존자와 실종자 가족, 사망자 가족, 친구, 동반자 등에 대한 사회·심리적 지원이 결핍되어 재난피해자들이 무관심 속에 방치되었다. 재난 시 그들은 심리적 공황 상태에서 다니던 직장과 생계를 팽개치고 현장으로 달려오기 때문에, 그들의 기초적 위생 상태 유지(음식, 식수, 휴식, 숙면), 구호활동에 대한 실질적 지원(물자 지원, 법적 지원, 기술적 지원), 언론으로부터 재난피해자의 비밀과 사적 정보의 보호, 재난 이전의 생계활동으로의 복귀, 현장 및 집에서의 의료처치에 사회심리적 지원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4. 결론
각계각층의 전문가와 시민사회가 참여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사회구조적 원인이 무엇인지,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초동대응 과정에서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심층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가 자기 내부의 문제를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국회가 사고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사고에 대한 정보를 공유해 투명성을 확보한다면, 잃어버린 국가의 신뢰가 회복될 수 있는 개연성도 높아질 것이다. 세월호 참사 조사위원회의 구성에 대한 야당과 전문가집단, 시민사회의 요구가 있었는데도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국가안전처 신설과 해경 해체를 결정한 것은 매우 권위주의적인 정치행보이다. 이 결단을 통해 과연 신뢰가 회복될 것인지 아닌지는 추후 사건의 진행과정에 달려있다. 대통령은 해양경찰이 상시적으로 행하던 고유 업무인 해상안전 확보, 해양경비, 해양환경 관리, 해상 교통안전 관리, 유사시 국방업무 보조 등을 분할해 경찰청과 국가안전처로 흡수시키라고 지시했다. 그렇다면 수사정보 기능은 경찰청으로 넘기고 해양 구조구난과 해양경비 분야는 신설하는 국가안전처로 넘기는 업무분할 정책이 과연 해양재난의 초동대응에서 획기적인 개선을 낳을 방책인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사회구조적 원인과 초동대응 단계의 실패가 무엇인지를 되짚어보는 성찰이 필요하다.

정부가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는 ‘국가안전처’ 신설은 인적·물적 자원 동원의 효율성을 중시하는 전형적인 관료주의의 발상으로 안행부가 밟은 전철을 또 다시 밟을 가능성이 있다. 세월호 참사에도 불구하고 전혀 학습이 되지 않는 이런 고위직 관료들의 발상은 또 다른 재난 가능성을 예고하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컨트롤타워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 기구에 해양재난 전문가가 없던 데서 비롯되었다. 초동대응에서도 제도와 기구는 갖추어져 있었지만 작동이 안 되는 사태가 일어났던 것이다. 실패의 원인을 찾아내 그것을 보완하는 수준을 넘어서 재난관리체계 전체를 바꾸는 결단은 부처간 업무조정의 혼란과 이동한 구성원들 간 내부갈등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국가안전처 신설이 없던 해양재난 전문가를 새로이 생겨나게 할 일은 만무하기 때문에, 전문가의 보충은 현재의 소방방재청과 해양경찰청을 중심으로 보완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또한 초동대응시 현장 지휘자가 국가안전처의 지도감독을 받는 것이 또 다른 길고 복잡한 명령라인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닌지 헤아려봐야 한다.

나아가 관료주의 강화를 통한 문제 해결은 전관예우(‘낙하산 인사’)의 강화로 이어질 위험을 그대로 안고 있다. 강력한 권력을 가진 국가안전처가 장기간 존재할 경우 고위직 관료와 관리·감독 대상 간에 그들의 권력과 부를 유지하기 위한 은밀한 유착관계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성급하게 국가안전처 신설을 밀어붙여 안행부의 중대본처럼 검증되지 않은 ‘관료주의의 옥상옥’을 만들기보다는 정부·국회·시민사회가 참여하는 범국가 차원의 사고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사고의 원인과 대처과정에서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정확히 파악한 후 충분한 논의를 거쳐 종합적인 재난대응 대책안을 내놓는 것이 미래의 위험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현대사회에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처 방안이다.

재난대응체계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은 대형 재난시 컨트롤타워는 청와대의 국가안보실이 직접 맡고 그 대신 모든 기관이 현장 지휘자를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도록 현장 지휘자에게 전권을 주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치명적인 실패 원인은 초동대응 단계에서 해경이 전권을 쥐고 능동적인 구조 활동을 펴지 못했던 데 있다. 촌각을 다투는 긴급구조 상황에서는 자원 동원의 효율성을 중시하는 관료주의가 오히려 재난 현장을 관할하는 현장 지휘관들로 하여금 상관의 지시를 기다리게 만들어 지휘·통제권의 무력화를 초래한다는 역설이 일어난 것이다. 현장에서 아무도 소신 있게 권한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우왕좌왕하다가 누구도 책임질 결정을 내리려 하지 않는다. 따라서 직급을 높여 해결하기보다 책임과 권한을 현장 지휘자에게 집중하여, 사고 지역을 관할하는 현장 지휘자가 모든 가용한 인력과 장비의 동원령과 배치 권한 등 실제 긴급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최우선 가치를 기업의 경쟁력 강화에 두면서 자본시장의 자유화, 외환시장의 개방, 관세 인하, 국가 기간산업의 민영화, 외국 자본에 의한 우량기업 합병매수 허용, 정부 규제의 축소, 복지예산의 삭감, 재산권 보호 등의 조처들로 구체화된 결과로 기업윤리를 약화시키고 있다. 정부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지만, 정부가 물질적 성장주의의 정책기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선택과 집중이라는 신자유주의 전략을 구사하는 한 원청기업에 의한 하청기업의 착취,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가 구조화되게 된다. 모든 기업이 약육강식의 경쟁 관계에 빠진다면 소비자나 고객의 생명과 안전을 우선하는 기업윤리의 형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전문가집단도 역시 소득 불균형의 계속적인 심화로 사회 양극화가 강화되고 고용불안정에 계속 시달리는 노동환경에서는 연대 의식을 잃고 점점 더 개별화되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직업과 연관된 활동이 타인과 사회, 자연에 미치는 결과를 배려하는 직업윤리가 형성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직업윤리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전문가집단이 자기 직업 활동과 관련해 위험 사고가 발생했을 때 어떤 취약점이 있는지를 스스로 파악해 해결하려는 자발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정부가 재난에 대처하기 위해 관련 법제도와 조직, 매뉴얼을 만들어 위로부터 아래로 강요하거나 실행을 감시·감독하려고 하는 한, 규제를 받는 당사자들은 감독기관과의 유착을 통해서든 불법과 허위, 기만을 통해서든 규제를 회피하려고만 한다. 재난은 사건이 예측한대로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통제력을 잃으면서 일어난다. 따라서 모든 잠재적인 대형재난 상황에서 어떤 문제가 터질지 구체적으로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초동대응에서 긴급구조와 수습을 할 수 있도록 매뉴얼의 작성과 훈련을 통해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재난 상황에서 긴급구조 활동은 임기응변이나 순간적 기지가 아니다. 위기대응 매뉴얼은 계획과 훈련과정에 당사자들이 참여해 지역의 상황에 맞게 계속 수정되고 개선되는 방식으로 작성·재작성되어야 한다.

매뉴얼과 그 매뉴얼에 대한 규칙적인 훈련(토론, 현장 시뮬레이션 등)을 통해 기존의 수색·구조 기술을 수용할 필요가 있고, 각자가 맡은 역할의 특성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매뉴얼에는 책임과 과제를 구체적으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 민관군의 협력에도 각각의 역할과 과제를 이해하고 협력할 수 있도록 합동훈련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 다르고 동떨어진 옵션을 수행할 수 있다. 훈련 역시 모의 상황을 설정해놓고 시나리오대로 하는 기존의 ‘보여주기 식’ 훈련은 실제 재난 상황에서 무용지물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났다. 훈련은 방법론적으로 디자인되어 수행되고 참여자들에 의해 평가되어야 한다. 모든 매뉴얼은 훈련을 통해 실제적인 적용성을 검증받았을 때 재난 상황에서 비로소 작동할 수 있다.

특히 학교에서의 재난교육은 교과서 위주의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사례 중심의 토론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그 재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가는 훈련을 시켜야 한다. 그리고 학교교육도 장기적으로는 선생님 등 윗사람의 잘못된 지시에 대해서는 학생들이 이의를 제기하거나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권위주의 문화를 타파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만 시민들이 문제가 터질 때마다 국가에게 문제의 해결을 기대하는 권위주의 문화가 사라질 수 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문제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해결에 나서는 시민의식은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는 민주주의의 완성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국가가 생존자와 실종자 가족, 사망자 가족, 친구, 동반자 등의 재난피해자에 대한 사회·심리적 지원을 조직적이고 장기적으로 행해야 한다. 대형재난 상황에서는 일상적인 자원의 결핍으로 인해 대처능력의 저하가 일어나기 때문에, 재난피해자들의 정신적 갈등과 불안, 스트레스 반응은 정상이다. 따라서 지나치게 많은 심리학자와 정신과 의사가 동원될 필요는 없다. 재난피해자지원도 효율적인 대응을 할 수 있도록 지원센터의 구축과 응급대응요원 및 재난대응요원의 훈련을 통한 잘 조직된 다양한 분야의 협력적인 접근이 필수다. 재난피해자지원의 목적은 재난 이전의 생활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따라서 처음부터 언론의 접근을 차단해 재난피해자들의 인간적 존엄성과 자유, 사적 내용의 비밀을 보장해야 한다. 안전한 구조활동과 생명 기능의 유지를 위한 응급의료 처치, 심리상담, 심리적 치료가 최우선이다. 그리고 재난피해자에게 기초적 위생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음료수·음식·세탁시설·쉼터·수면공간 등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대형 텔레비전·라디오·인터넷·팩스·핸드폰 등을 제공해 인간적인 접촉과 소통의 촉진, 정보의 자유로운 교류를 보장해 신체적, 정신적, 사회경제적 편안감을 유지 또는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전 생활의 일상적 활동으로 복귀하기 위해서 추가로 구호물자, 경제적 지원, 과세·보험관계 등의 행정적 처리, 보상 문제 등의 법률적 자문 등을 지원하며, 장례절차 등의 각종 집단적 의례와 기념일 등에 대한 사회적 지원을 통해 구체적인 취약성을 극복하고 개인과 사회적 자율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대형 참사를 겪으면서 사회가 가치관과 규범의 혼란에 빠진 상태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잃어버린 신뢰의 회복이다. 신뢰는 누군가 감시하고 감독하지 않더라도 사회가 자신들이 기대한 대로 작동한다고 믿을 때 생겨난다. 따라서 정부가 너무 성급하게 대책을 제시하는 것보다는 당사자들의 참여 요구를 정치적으로 수용하는 범국가 차원의 사고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이런 대형 사고가 일어난 구조적 원인이 무엇인지, 우리 사회가 그동안 간과하고 지나쳤던 잘못된 관행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보고, 사회 구성원과 조직, 사회의 기능체계들의 자기성찰을 통해 대책안을 도출해내는 장기간에 걸친 신뢰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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