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선원의 무덤

 
 
한국해양재단이 주최한 ‘제 7회 해양문학상’ 수상작의 일부를 올해 신년호부터 주최측과의 협의하에 연재하고 있다. 1월에는 최우수상을 수상한 박정혁씨의 ‘소년과 바다’(수필)를 게재했고, 본호에서는 우수상을 수상한 남순백씨의 소설 ‘파도의 노래’를 싣는다. 소설의 특성상 원고분량이 길어서 남순백씨의 수상작은 4회(3-6월)에 걸쳐 연재한다.
‘파도의 노래’는 필자가 △선장의 고독한 독백 △바다와 결혼한 사나이 △구멍난 뱃사람의 주머니 △살아있는 선원의 무덤 △파도의 노래 △하나로 통하는 바다의 신비... 글을 나누어놓았는데, 본 호에서는 이중 살아있는 선원의 무덤 부분을 편집했다.                                                                         -편집자 주-

작은 모텔 방이었다. 때에 절인 담요며, 이불이며, 베개가 이리저리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나뒹굴고 있었다. 처음 들어선 사람이라면 우선 매캐한 냄새에 코부터 막았을 것이다. 누렇게 퇴색된 낮은 벽에는 윗도리며 속옷들이 역시 아무렇게나 들쭉날쭉 걸려 있었다. 낮게 달린 형광등은 총명을 잃은 지 벌써 오래였다. 다만 자기의 마지막 의무라도 다하려는 듯이 희미한 빛을 던지고 있었다. 이런 으스름함 속에서 몇 사람이 고스톱을 치고 있었다. 각자 앞에 놓인 판돈이래야 구겨진 천 원짜리 몇 장씩이 고작이었다. 늘 깔기도 하고 덮기도 하는 허름한 담요 위에는 화투장 외에 빈 소주잔과 가득 찬 재떨이도 놓여있었다. 화투를 치는 사람들도 정작 화투보다는 소주잔에 더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이미 빈 잔을 자꾸 입으로 갖다 대는 것으로 봐서 그랬다.

또 그 옆에는 벌써 술이 취해 자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혼자서 안주 없는 소주잔을 기울이는 사람도 있었다. 화투장을 잡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환갑이 되었을까 말까 정도의 초로의 노인도 한명 섞여 있었고, 나머지는 그 노인보다 서너 살씩은 적어보였다. 그러나 대부분 머리가 벗겨지기도 하고, 오래 동안 세수를 하지도 않은 것 같았고, 주독(酒毒)으로 눈두덩은 수북하게 붓고, 얼굴이 바람 든 무속처럼 푸석푸석하여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것이 이들의 나이이기도 했다. 이들의 분위기는 너무나 한가하다 못해 지루할 정도였다. 만약 술에 반쯤 취하지 않은 성깔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벌써 화투판을 뒤엎고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 버리고 말았을 것이지만 이들은 모두 고만고만했다.

이곳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인숙이란 간판을 달고 있었는데 손님이 너무 없자 주인은 시대에 너무 뒤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지, 들어오는 현관의 약간의 인테리어를 바꾸고 간판만은 다른 곳과 비슷하게 모텔이란 신식아름으로 바꾸어 달았던 것이다. 그러나 간판장이가 부실공사를 했던지, ‘해양모텔’이란 이름에서 받침 글자인 이응과 리을이 모두 떨어져나갔는지 아니면 불을 밝히는 전구의 필라멘트가 끊어졌는지 간판은 ‘해야모테’란 우스꽝스런 이름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어차피 새로 이곳에서 숙박을 하기 위해 찾아올 사람도 없었고 이곳을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는 형편이어서 그건 별 상관이 없는 일이기도 했다. 이 사정을 잘 아는 주인이 수리를 하지 않고 꽤 오랜 기간을 그대로 버티며 견디고 있는 것으로 봐서도 그랬다.

“고 항사 이번 항차에 김 선장이 들어온다는 말을 들었는가?”
“듣고말고.…, 모두들 시장 간 엄마가 사탕 사오길 기다리듯 잔뜩 기대들을 하고 있던데? 모두들 입만 열면 김 선장 이야기뿐이더라고…”
초로의 노인의 말에 고 항사라고 불린 유양이 물고 있던 불 꺼진 담배에 잘 켜지지 않는 일회용 라이터를 집어 겨우 불을 다시 붙이며 대꾸했다.
“이번에는 김 선장 덕에 모처럼만에 그간 목구멍에 낀 때를 좀 벗기겠네 그려.…”
초로의 노인은 빈 소주잔을 들어 마시고는 입맛을 쩍쩍 다시며 말했다. 그들 옆에 놓여있던 세 개째의 소주병이 빈지도 벌써 오래였다.
“기대하는 군사는 많지만…. 배를 타고 나간지가 얼마나 됐다고?…, 미리 김칫국부터 마셔대는 꼴들이라니?”

유양은 썩 마뜩찮은 표정이었다. 김 선장을 손꼽아 기다리는 입들은 많지만 그의 소득이 별로일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김 선장이라고 불린 사람도 이들과 함께 아지트에서 지내다가 대여섯 달 전에 배를 나갔던 것이다. 같이 동고동락을 했으니 입항하면 주머니를 뒤집어 탈탈 털어서라도 한턱을 쓰겠지만, 그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는 않을 것이란 것이 유양의 생각이었다. 기껏해야 승선기간도 짧은데다가 돈을 벌만한 끗발이 있는 자리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페루에서 일본으로 수산가공물인 동물의 사료를 싣고 오던 벌크선의 선장이 갑작스런 유고를 당했기 때문에 그 빈자리에 대타로 발탁이 되어서 부랴부랴 떠났던 것이다. 유양의 생각은 벌크선은 가끔 한 번씩 다니는 부정기선인 데다가 김 선장이 스페어 선장으로 간 것이니 미리 손가락부터 빨아댈 만큼의 실속은 없을 것이란 것이었다.

“아무리 그렇다 손치더라도 그렇지. 명색이 외항선의 선장이란 직책인데? 공연히 선장인가? 예전 같으면 바로 한몫 보던 자리가 아니었는가? 취업이 어려울 때는 갑판원 몇 명만 데리고 가줘도 수입이 되었고, 업체를 잘 선정하여 선식만 실어줘도 참으로 돈이 되었지. 주머니에 돈이 떨어질 여가가 없던 것이 바로 이 자리가 아니었던가? 그래서 요정에서는 입항 소식을 먼저 알려고 난리를 피웠고, 입항하는 날은 그야말로 선장의 옷가지가 찢어졌었지. 고급 요정에서 서로 먼저 모셔가겠다고 싸움질을 하고 선장 일행은 칙사 대접을 받지 않았던가? 허허허…”

초로의 노인은 과거를 회상하며 유양의 김 선장에 대한 폄하가 못내 서운한 표정이었다. 그는 어떻게 해서라도 김 선장을 과대포장하고 싶었고, 그 포장의 화려한 껍데기 속에서나마 괜찮았던 과거의 추억을 더듬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유양의 냉소적인 현실주의 역시 만만치 않았다.
“모두 지나간 옛날이야기지. 죽은 아이 불알 만지기야. 요즘에야 허깨비 같은 뱃놈에게 껌뻑 죽을 바보가 어디 있나? 외항선을 타는 사람들의 주머니가 텅텅 빈 것은 그들이 더 잘 아는데…. 솔직한 말로 겉만 번지르르한 빛 좋은 개살구라고 비아냥거림이나 받지 않으면 다행이지…”

갑자기 저만치서 술을 마시던 영대가 유양의 말에 공감을 한다는 듯이 말했다. 세상 고민을 혼자 짊어진 듯 술을 마셔댔지만 귀는 이쪽을 향해 열어두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외항선을 타는 놈이나 어선을 타는 놈이나 모래 운반선을 타는 놈이나…, 뱃놈의 신세가 다 그렇지…. 어수룩하기가 이만저만이 아닌 바보 같은 놈들이니까. 약아 빠진 육지 놈들한테 댈라고?”
“영대, 자네는 술 다 마셨는가? 괴로워도 작작해야지. 우리 중에 누가 자네만큼 속이 썩어빠지지 않는 사람이 있겠나? 우리는 속이 편해서 이러고 있는 줄 아나?”
혼자서 소주를 홀짝이다 대화에 끼어든 영대에게 하는 훈계였다. 그의 말대로 그는 모래운반선을 타던 사람이었다. 근 십오년을 넘게 베트남에서 항만을 건설하는 우리나라 건설업체에 소속되어 건설자재인 모래를 실어 날랐던 것이다. 삼십대에서 사십대까지 베트남에서 보낸 그의 청장년 시절은 그의 황금기이기도 했다. 영대는 많은 돈을 벌었으며 그 돈을 베트남에 투자했다. 한국 간부 선원의 봉급은 베트남에서는 큰돈이었다. 그는 베트남에 살면서 현지처를 얻어서 살림을 시작했다. 물론 그는 그때까지 숫총각이었다. 한국 사람으로 투자가 불가능했기에 그녀의 이름으로 집도 사고 투자도 했던 것이다. 그는 그렇게 베트남에 정착할 결심을 했다.

“저택이었어. 풀장도 있고 테니스장도 있었지. 우리 집에는 정원사가 두 명이었어. 처가 친척들이 많더군. 우리나라의 옛날 대가족제도와 비슷했지. 모두 함께 살았지. 그래도 방은 남아돌았고 내가 버는 돈도 그대로 남아돌았지…, 매일 저녁마다 정원에서는 악사들을 불러다 놓고 파티를 했어. 미모가 남달랐던 마누라는 왕비였어.…”
늘 그는 월남에서의 생활을 이렇게 늘어놓곤 했다. 현지처는 그에게 예쁜 딸을 낳아주었다. 오랜 세월을 바다에 떠다니다가 혼기를 놓친 그는 베트남에서의 늦장가 생활이 즐겁기만 했다. 사람은 일이 술술 풀릴 때는 그것이 영원히 지속될 줄로 알기 마련이다. 자신에게만은 그 영화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사람이다. 영대가 그랬다. 그에게 있어서 그가 열심히 일하고, 가족들이 화목한 베트남의 영화는 계속되어야 마땅한 것이었다.

“우리 집 딸은 웬만한 나라의 공주보다 나았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예쁜 것이 그랬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것이 그랬어.…. 딸은 땅에 궁둥이를 놓을 여가도 없었어. 서로 안고 어르겠다고 난리법석을 피우는 바람에 아이가 찢어질 지경이었다니까.…”
그가 딸의 이야기를 할 때는 마치 그의 귀여운 어린 딸이 재롱을 떨며 금방 그 앞에 나타나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는 어린 딸을 마치 무릎에 앉혀놓고 어루만지는 듯한 시늉을 하며 말을 했다. 그는 그의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일했다. 그가 건설사의 모래운반선 항해사로서 그간 벌어들인 수입은 그의 가족이 평생을 부유하게 지낼 수 있을 만큼 충분했다. 그는 항구도시 다낭의 항만부두공사가 끝날 때까지 15년 동안을 같은 일을 반복했고, 그의 회사가 드디어 긴긴 공사를 끝내고 말레이시아의 새 공사를 수주 받아 옮길 때는 모래운반선을 타는 그도 회사를 따라가야만 했다. 그는 거기서도 월급을 받는 대로 베트남의 아내에게 꼬박꼬박 보내주었다. 그의 하나밖에 없는 가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아내는 그가 자주 베트남을 가보지 못했던 단 3년 사이에 알코올중독에 빠졌고 그런 생활 상태로 그의 재산을 거의 날려버리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그가 그녀와 재기하기 위해 월남에 이민을 신청하였을 때 그것마저 반려되고 말았다. 그렇게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그는 회사에서 해고가 되었고, 그는 월남에서 떠도는 국제 미아가 되어버렸다. 월남생활은 일장춘몽이었다. 꿈에서 깨어난 그는 빈손으로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갈 곳이라고는 그래도 아는 친구들, 동창생들이 있기에 가끔 들려서 술을 마시던 이곳 아지트뿐이었던 것이다.

“나는 내 딸을 데리고 와야 해. 그러자면 돈을 벌어야 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모래운반선을 모는 일뿐이야…”
그는 늘 이렇게 맹세를 했지만 일단 술이 들어가고 나면 그의 재산을 탕진한 술독에 빠진 그의 월남 현지처와 조금도 다르지 않게, 그의 굳은 맹세는 넘치는 술이 되어 흘러넘쳤고, 부서진 파도의 물거품처럼 부서져버렸다.
“나는 빨리 직장을 구해야만 해. 누가 나에게 배를 좀 소개시켜 줘…, 이젠 아무 배라도 탈거야…”
그가 늘 이렇게 애원을 했지만 그를 태워줄 모래운반선은 없었다. 그의 마음은 일을 하고 싶어 했지만 그를 보는 누구의 눈에도 그는 일을 해낼 것으로 믿음이 가지 않았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월남에서의 화려했던 과거를 이야기하며 소주잔을 기울이는 것뿐이었다. 그래도 이 아지트에서는 그에게 술도 주었고 그의 되풀이 되는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했다. 그것은 퍽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모두들 동일한 슬픈 운명의 소유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마누라가 보고 싶어…. 오 오 귀여운 내 딸, 라이따이한으로 핍박받고 있을 불쌍하고 귀여운 내 딸…”
정이 많은 영대는 술이 취하면 넋두리처럼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는 아직도 베트남의 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베트남은 그에게 영화를 맛보게 했고 또 인생의 허무와 쓴맛을 가르쳐 주었지만, 그는 그 흘러가버린 영화를 생각하느라 정작 필요한 인생의 쓴맛을 배우지는 못했다.
“제발 정신 좀 챙겨라. 너를 이 꼴로 만든 그런 나쁜 년일랑 이제 입에 담지도 마라”

여자라면 이가 갈린다는 듯 유양이 핀잔을 주었다. 유양은 기분이 좋을 때나 술이 취하여 정신이 없을 때라도 여자 얘기와 가정 얘기는 아예 입 밖으로 한마디도 내뱉지 않았다. 이런 면에서 그는 심지가 굳은 편이었다. 그런 만큼 그가 외항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부인이 춤바람이 나서 가정이 산산조각이 났을 때, 다시는 배를 타지 않겠다고 한 맹세도 그대로 굳게 지키고 있었다. 이곳 아지트의 친구들이 이렇게 빈둥대다가도 심하게 쪼들리면 그 놈의 돈에 쫓겨서 돈을 벌려고 아무 배라도 닥치는 대로 타고 나가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어떤 친구는 울산이나 거제도의 조선소에 가서 새로 건조한 선박의 시운전이라도 며칠씩 도와주고 돈푼이라도 벌어오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연근해로 출어하는 어선이라도 잠깐 타서 궁핍을 면하곤 하였지만 유양은 어림도 없었던 것이다. 친구들이 그런 그에게 권유라도 할라치면 그는 한마디로 거절했다.
“난 배 많이 탔어. 지긋지긋하게 탔지. 마누라가 지겨워서 도망 갈 때까지 그렇게 지겹도록 탔으니 말이야. 더는 않 탄다고!”
이렇게 한마디 내뱉고 나면 할 말을 다했다는 듯 돌부처처럼 입을 굳게 닫아버렸던 것이다.
 

“영감, 네 차례야. 잔소리 말고 빨리 해”
이제까지 입을 닫고 화투장만 뚫어지게 들여다보고 있던 일우(一愚)가 이들이 하는 김 선장 이야기가 지겹다는 듯이 버럭 소리를 내지르며 화투를 빨리 치라고 재촉을 했다. 그는 일행들 중 가장 최근에 아지트에 온 친구였다. 늦게 온 만큼 세상의 고민을 더 많이 가져오기라도 한 듯 신경질을 부려댔다. 그는 오자마자 아무리 친구들이라고는 하지만 연신 화를 내고 신경질을 부리는 바람에 눈치도 없고 주변머리도 없는 사람이라고 핀잔을 주었으나, 알고 보니 며칠 사이에 머리숱이 듬뿍듬뿍 빠져서 대머리가 될 정도로 많은 고민을 하고 있어서 주위의 동정을 받기도 했다.
“범 새끼는 데려다 길러도 사람 새끼는 안 키우는 법이여. 하여튼 옛 어른들의 말이 틀린 게 한마디도 없다니까?…”

그가 오면서부터 하는 말이었다.
“뱀은 물을 먹고 독을 만들고 소는 물을 먹고 우유를 만들지. 좋은 놈 나쁜 놈은 이렇게 다르다니까…”
“나는 정신이 나간 사람이여. 정신병원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께…”
그는 또 이런 말들도 했다. 이런 선문답 같은 말을 늘어놓는 바람에 아지트에서는 그를 비밀이 많은 사람이라고들 했다. 어떤 사람은 그를 이해 못할 물위의 철학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차츰차츰 그의 이력이 드러나자 사람들은 그의 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같은 뱃사람으로서 단지 자신들보다 조금 더 한이 많은 사람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 친구는 그 이름 그대로 근심걱정이 제일 많은 사람이 틀림없어. 허허허…”
사람들이 이렇게 웃어넘기는 일우는 어려서 아버지가 병으로 죽고 홀어머니 밑에 오남매가 있었는데 일우는 그 맏이였다. 일우에게는 두 명의 남자 동생과 두 명의 여자 동생이 있었는데, 그가 주경야독하다시피 억지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배를 타고 나간 사이에 어머니는 어떤 젊은 남자를 만나 개가를 하더니 종적까지 감추고 말았다. 일우는 네 동생의 생활비를 대고 공부를 시키는데 자신의 번 돈과 청춘을 모두 바쳤다. 그 덕분으로 동생들은 모두 잘 성장하여 남동생들은 장가를 가고 여동생들은 시집을 갔다. 정작 맏이인 본인만은 총각으로 남겨둔 채로…

이러는 사이에 일우의 나이는 마흔을 넘어섰고 그 때까지의 인생은 몽땅 동생들에게 바친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기뻤고 가슴이 뿌듯했다. 동생들이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부모 이상의 흐뭇한 마음이 들었으며 동생들도 그렇게 그를 대했다. 특히 매제 두 명은 마치 입안에 든 혀처럼 그를 잘 따랐다. 큰 매제는 증권업에 종사하고 있었고 작은 매제는 부동산업을 하고 있었다. 그가 버는 돈은 현금은 큰 매제가, 돈이 좀 더 모이면 작은 매제가 부동산에 투자하여 잘 관리하고 있었다. 일우는 나이가 들 때까지 배만 잘 타고 있으면 노후는 탄탄하게 보장되는 것으로 걱정할 것은 없었다. 자기의 돈은 원금은 물론 이자에 이자까지 새끼를 쳐서 구르는 눈 덩이처럼 잘 불어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형님 물거리가 좋은 부동산이 하나 나왔습니다. 이건 계약만 하면 바로 대박입니다. 월세만 받아도 형님의 평생은 탄탄대로입니다.” 

얼마 전에 입항을 하였을 때였다. 작은 매제가 반색을 하며 이렇게 권하는 것이었다.
“이 사람아, 내가 뭘 아는가? 태평양 물위에 파도처럼 떠돌다가 방금 온 사람 아닌가? 전문가인 지네가 어련히 알아서 하려고? 자네만 믿네.”
이렇게 대답을 하고 말았던 것인데 작은 매제는 덜렁 큰 건물을 계약을 하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당장 수억대의 선금과 중도금이 필요하다고 발을 동동 구르는 그였다. 까짓 것 큰 매제에게 얘기해서 저축된 돈을 얼마간 찾아서 지불하라고 느긋하게 말을 하는 그였다. 그런데 새끼를 숨겨둔 꿩처럼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하는 작은 매제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초조한 자세를 풀지를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그것이…, 형님이…”

작은 매제는 반벙어리처럼 자꾸 이 말만 되풀이 하는 것이 아닌가? 이건 무슨 꿍꿍이속이 있기는 있는 모양인데, 큰 매제는 여러 번 전화를 해도 도통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평소의 그의 태도와는 딴판이긴 했다. 불렀다하면 버선발로라도 뛰어오던 사람인데 말이다. 사람이 이렇게 갑자기 변할 수가 있나? 하는 원망이 일었으나 당장 답답한 것은 일우 자신이었다. 뭔가 석연찮은 일이 벌어진 모양인데 하고 올가미처럼 목을 죄어오던 것도 바로 그때였다. 날이 갈수록 짙은 안개로 시야는 제로에 가까웠다. 배는 방향을 잃었고 파도는 높게 일었다. 매제의 죽을상이 풀리기는커녕 점점 더 심해져갔고, 큰 매제는 역시 함흥차사인 것으로 그랬다. 목마른 놈이 샘 판다고 이때 난파선의 키를 잡을 사람은 일우밖에는 없었다.
“그래 당장 필요한 선금과 중도금이 모두 얼마인가?”

일우는 회사에 가서 퇴직금을 정산하고, 신용으로 대출도 내고, 자신에게 있던 돈을 딸딸 긁어모았다. 일단 계약한 집을 담보로 담보대출도 받아 겨우 그 돈을 마련하여 작은 매제에게 건네주었다. 단 며칠 사이에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일어난 일이었지만 그 여파는 컸다. 그 돈이라면 과히 그가 평생 배위에서 벌어들인 것보다 더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태는 갈수록 태산이었다. 큰 매제는 일우의 돈을 증권에 투자하여 몽땅 날리고 지금은 깡통 계좌밖에는 남은 게 없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그건 최근에 있은 일만도 아니었다. 여동생 부부는 그의 돈으로 투자를 하여 투자가 잘되어 남으면 저희들 것이고, 투자가 잘 못되어 손해가 나면 일우의 몫으로 돌렸던 것이다. 어쨌든 그들은 일우의 돈으로 잘 살았던 것인데 일우는 그들의 호구였었다. 그래서 그들은 겉으로는 돈을 잘 관리하고 있는 것처럼 너스레를 떨고 있었던 것이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더니 작은 매제 역시 이번에 계약한 건물이 값이 내려 지금  당장 반값에 내어놔도 임자가 없다는 것이었다. 일우는 그를 믿고 평소와 같이 건물의 껍데기만 보았지 계약의 내용도 잘 살피지 않았던 것이다. 매제는 건물 매매의 수수료를 챙기기 위해서 그를 완전히 물 먹인 것이었다. 사람을 믿는 것 이건 뱃사람들의 멋이자 자주 범하는 우였다. 이런데다가 빌린 돈의 이자를 갚을 날은 가난한 집 제삿날처럼 자주 다가왔다. 밤낮으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도 해결책은 역시 돈밖에 없었다. 그러나 돈은 이미 그의 수중에는 없었고, 남은 것이라곤 빚밖에 없었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그는 돈 걱정과 배신감에 몸서리를 치기 시작했다. 분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 잠도 오지 않았고, 입맛도 싹 가셨다. 비운으로 울던 그에게 마지막 소원 한 가지가 이루어졌는데 그것은 바로 정신을 읽고 쓰러져버리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인데 그는 쓰러졌고, 결국 그가 정신을 차린 곳은 정신병원이었던 것이다.

“내 한평생은 반은 네 동생들에게 바쳐야했고, 나머지 반은 두 매제들에게 빼앗겼지 뭔가? 난 마지막 배역을 맡은 재수 없는 배우였어. 인생 막장이자 돌아올 수 없는 종착역을  연기했지. 배위에서 파도놀이를 하면서 말이야…, 흐흐흐…”
정신병원에서 주는 약을 모두 버리고 말았다는 일우는 소주가 제일 좋은 약이라고 말하면서도 취하기만 하면 전후좌우도 모르는 애꿎은 아지트의 동료들에게 신경질을 부려대고 악을 바락바락 쓰기 일쑤였다.
 

“영감 뭐해? 네 차례라니까? 돈이 싫어졌나?”
초로의 영감은 입맛을 쩍쩍 다시며 화투장을 딱지 치듯 힘껏 내리쳤다.
“그래, 돈도 싫다. 곧 죽을 영감에게 돈이 뭐가 필요하겠나? 네 혼자 다 처먹어라”
영감이라 불린 사람은 기분이 매우 나빠진 것 같았다. 김 선장에 대한 기대가 허물어져서 그런지 영감, 영감, 하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그런지는 잘 구분이 되지 않았다. 친구들이 그의 겉모습을 따라 영감이라고 부르고는 있었지만, 실제는 그들과 동기였고 나이도 동년배였던 것이다. 그는 영감이란 소리를 들을 때면 평소에는 그냥 무덤덤하게 잘 넘어갔지만, 문득 암울했던 그의 포로생활이 생각날 때에는 인상이 변하고 행동도 거칠어지곤 했다. 갑자기 우울해지는 것도 그때였다. 그는 포로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인질이란 말이 맞지만 그는 늘 포로라는 말을 사용했다.
 

영감이 북유럽의 핀란드 헬싱키 항에서 냉동선의 일등 항해사로서 아라비아 해를 향하여 급히 배를 몰던 때는 지금으로부터 약 십오년 전이었다. 겨울이 긴 북구에도 여름이 시작되어 영감은 브리지에서 짧은 반팔 와이셔츠 차림으로 순풍을 맞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은 급했다. 항해 일정이 빠듯했기 때문이다. 냉동실에는 핀란드산 훈제연어고기가 빈틈없이 차곡차곡 그득 실려 있었다.
“옛날 해적의 나라가 정말 많이 변했군요? 세계 제일의 복지국가가 되다니요”
역시 반팔 차림으로 여유롭게 시원한 바람을 쐬던 동료 항해사가 말을 걸어왔다.

“그러게 말일세. 세계 제일의 연어 수출국이 아닌가? 국민소득이 십만 달러가 넘는데 그 팔 할 이상이 바로 수산물의 수출 덕분이고, 그 수출품 중에서도 양식연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다고 하더군. 지금은 잡는 어업에서 기르는 어업으로 빠르게 진행 중이야. 우리나라도 빨리 변해야 할 터인데…”
영감도 이번에 연어를 실으러 오면서 대충 공부하고 그간 주워들은 이야기로 전문가처럼 응수를 했다.
“해적 떼로서 바다를 제패하더니 이젠 수산물로서 세계를 제패하다니 과연 바이킹의 후예답군요? 대단한 민족 아닙니까? 바다를 제패하는 나라가 세계를 제패한다는 말은 헛된 말이 아닌 것 같아요.”
영감은 이제는 사라진 해적 떼에 대해 운운 하는 것이 썩 내키지는 않았으나 핀란드나 노르웨이 같은 북유럽 국가가 해적인 바이킹의 후예라는 것은 지나간 역사적 사실이 분명하기에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오직 동료 항해사를 채근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지금 우리가 가는 곳은 요즘 산유국들이 즐비하여 달러가 가장 많이 넘치고 있는 아라비아 해역이야. 한시라도 빨리 도착하여 그들의 식탁에 우리가 싣고 가는 싱싱한 연어를 올려 줘야 할 터인데…. 기관부에도 잘 구슬려서 속력을 올려 보자고! 회사에서 운행 단축수당도 듬뿍 걸어놨으니까…”
“오우 케이! 선임 항해사님!”
이렇게 배는 순풍에 돛 단 듯이 거침없이 달리고 있었다. 유럽의 해역을 지나는 동안 초여름의 날씨는 맑고 쾌청했다. 바다는 늘 이랬다. 겨울이 오는 바다는 파도가 높고 우울했지만 여름이 시작되는 바다는 파도가 잔잔하며 즐거웠다. 좋은 날씨 덕분에 며칠 후에는 유럽을 지나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게 되었던 것이다. 영감이 탄 배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최단거리 코스를 찾아서 항해를 하고 있었다. 아프리카를 돌아야 했던 길을 수에즈운하로서 수십 분의 일로 거리를 단축하고 있는 것이다. 수에즈운하를 통과하는 데는 약 15시간 정도가 소요되었으니 이대로라면 내일 아침이면 아덴만으로 나가게 되는 것이었다. 선원들은 밤잠을 잊고 자기 부서에서 열심히들 일하고 있었다. 비록 냉동식품이긴 하지만 회사에서는 아라비아 여러 나라 특히 두바이 같은 관광 중심국에서의 긴급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항해 일정을 당기면 그 당긴 일정만큼 충분한 수당을 주겠다고 약속을 한 바도 있어서 선원들은 모두 상기되어 있었다. 이처럼 돈이 당장은 쓸모없는 배 위에서 조차도 돈은 언제나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덴만에 들어섰을 때였다. 이곳은 공해상이라 어느 나라도 해상 검문을 하지 않는 곳이었다. 주로 이슬람 국가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 해당 국가의 항구에 입항하면 주류를 검사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속력이 상당히 빠른 경찰 순시선 한 척이 그의 배를 급히 따라붙으며 멈추라고 신호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는 해적이 출몰하는 경우가 드물었기 때문에 영감을 비롯하여 선원들은 선장의 지시에 따라 한 점의 의심도 없이 서서히 배를 멈추었다. 설사 따르는 그들이 해적이라고 하더라도 멈추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헬싱키 항에서의 말이 씨가 되었던지 그들이 바로 해적이었어. 우리 배에서 긴 사다리를 내려주자 배에 오른 십여 명 남짓한 새카맣게 생긴 놈들은 우선 총부터 쏘기 시작했어. 마치 아이들이 장난감 총을 쏘듯이 말이야. 그러나 우리 배에는 이런 경험을 한 선원이 단 한 사람도 없었어. 우리는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랐지”

보통 때는 말이 없던 영감이 술이 거나하게 취하면 몸서리를 쳐가며 마치 녹음기처럼 읊어대는 그때의 긴박했던 상황이었다.
“놈들은 먼저 우리를 하나의 선실로 몰아넣더군. 다행히 그쪽 말을 떠듬떠듬 말하는 선원이 있어서 겨우 의사소통은 이루어지고 있었어.…”
놈들은 선원들을 가둬놓고는 저희들의 필요에 따라 필요한 사람만을 불러내어 명령을 했다. 놈들은 용의주도했다. 전혀 허점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놈들의 태세이기도 했다. 주방장에겐 식사를 만들라고 하고, 통신장을 협박하여 회사에 선원들의 몸값을 지불하라고 무전을 치게 했다. 영감의 배가 피랍되었다는 소식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전 세계로 퍼져나갔지만 어떻게 손을 쓸 수는 없었다. 그들은 거기서 인질로서 마치 중죄인처럼 만 이년을 그렇게 지냈다.

“놈들은 아이들이 총 놀이를 하듯이 사람 앞에서 총을 쏘아대는 바람에 우리는 모두 제 정신이 아니었어. 자칫 잘못하다가는 총알이 내 머리통에 날아와 박힐 것 같기도 했어. 완전히 미친놈들의 눈빛이었는데 간담이 내려앉아서 앞이 잘 보이지를 않더라고…. 놈들은 날아다니는 파리를 보고도 총을 쏘더라고…. 때마침 정부에서는 해적과는 협상을 할 수 없다는 방침을 정하는 바람에 회사에서도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더군. 그런 방침이 아니었다고 해도 회사에서 그들이 요구하는 그 많은 돈을 감당할 능력도 없었고…, 그러면 놈들은 또 우리를 불러내어 분풀이로 구타를 하기 시작하는 거야. 마치 샌드백을 두드리듯이 말이야”

영감은 치를 떨었다. 이를 뽀드득 갈기도 했다. 인질로 잡혀있던 그 기간의 고초가 그의 얼굴에 그대로 그려지고 있었다. 협상이 장기화되자 할 수 없이 배에서는 연료 때문에 기관을 멈추어야했고 따라서 선실의 에어컨도 꺼졌고 냉동실에서는 얼음이 녹기 시작했다. 바깥 날씨도 더운데다가 배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바다 한가운데서 이글거리는 태양 볕을 그대로 받아 완전히 한증막이었다. 햇빛을 머금은 바닷물에서도 뜨거운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우리는 더워서 죽을 지경인데 그놈들은 잘 참아내더군. 더운데 사는 놈들이라 그런지 혹독한 훈련을 받아서 그런지 아니면 본래 더위보다 더 지독한 놈들이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러나 더위는 더위고 더 참을 수 없는 것은 바로 냄새였어. 냉동실에서 연어가 썩기 시작했던 거야. 날이 갈수록 냄새는 심해졌어. 생선 썩는 냄새가 온 배 안에 가득 차더니 선실에도 달라붙는 것 같더라고. 냄새가 너무 지독하니까 도저히 숨을 쉴 수조차 없었고 머리가 빠개지는 것처럼 아파오더군.”
영감은 코를 막았다. 헉헉거리며 입으로만 숨을 쉬기 시작했다. 머리를 감싸 쥐었다. 때마침 술기운이 올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마치 그 지독한 냄새가 영감의 머릿속으로 침투하는 것 같았다. 머리카락이 전혀 없는 대머리도 벌겋게 달아올랐다. 얼굴보다는 대머리에 먼저 땀방울이 송송송…, 맺히기 시작하더니 곧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숨이 막혔던지 코에서 손을 뗀 영감이 방바닥에 있던 걸레를 집어 들어서 대머리의 땀부터 닦기 시작했다. 더러운 걸레에서 나는 냄새쯤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얼굴과 목의 땀까지 훔쳐내며 이야기를 계속하기 시작했다.

“만 이년 동안 그렇게 지냈어. 저승에 갔다 온 셈이지. 놈들은 저승사자보다 더 무서웠어. 그때 놈들이 장난삼아 던진 칼이 내 넓적다리에 와서 꽂히더군. 피가 꽂힌 칼 옆으로 분수처럼 솟았어. 놈들이 히죽거리며 웃더군. 옆의 선원들이 응급처치를 하려고 했으나 놈들이 못하게 말렸어. 탕탕탕…, 연신 총을 쏘아대면서 말이야. 개새끼들…, 그러나 사람의 인체는 묘했어. 계속 피가 솟아나서 이제는 정말 죽을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꽂힌 칼을 빼내도 피가 더 이상 흐르지 않고 멎더군. 상처가 시커멓게 변하면서 말이야. 그러나 덕분에 이렇게 병신은 되었지만…. 결국 목숨은 건졌잖아? 허허허…, 이렇게 구차하게 살아갈 목숨을 말이야…,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영감은 다시 소주 한잔을 그득 부어서 쭉 들이켰다. 그는 늘 안주타령은 했지만 실제로 안주는 잘 먹지 않았다. 특히 뱃사람답지 않게 생선을 입에 대지 않았다. 연어 썩는 냄새에 질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영감이 되었지. 자네들이 영감, 영감하고 즐겨 부르듯이 말이야. 거기 포로로 있는 동안 아무래도 일 년에 세 살씩은 더 먹은 것 같아. 아마 그 이상일지도 모르지…”
 

며칠 후에 아지트에서 모든 사람들이 기다리던 김 선장이 입항을 했다. 그는 입항 하면서 오늘은 단단히 한턱 쓰겠다고 미리 공표를 했다. 이제까지 진 신세를 이 기회에 갚겠다는 것이었다. 김 선장의 입항 소식은 골고루 퍼져 중앙동에서도 자갈치에서도 부산역에서도 여러 아지트에서 많은 왕년의 바다 사나이들이 식당으로 꾸역꾸역 모여들고 있었다.
이 아지트는 어제 오늘에 생긴 것은 아니었다. 단지 오늘날과는 그 용도가 달랐을 뿐이었다. 선착장에서 집이 먼 사람들이나 집이 부산이 아닌 외지의 선원들이 아침 일찍 출항을 하기 위해 이곳에서 하룻밤을 지내기 위해서 사용을 하기도 했고 아니면 폭풍우로 입항 시간이 늦어 집으로 가기 곤란한 선원들이 묵어가는 곳이 바로 이 아지트였다. 이곳은 때로 선원들끼리 만나 밤이 이슥하도록 어둠을 밝혀가며 한잔 술을 나누는 장소로도 활용되었고, 오랜만에 만날 수밖에 없는 선원들이 만나서 회포를 풀기도 하는 곳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곳은 만남의 장소였다. 긴긴 항해에서 돌아오면 마땅히 만날 사람이 없어도 혹은 맞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통하는 친구와 동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다리만 건너면 모두가 아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기도 했다. 또 그곳은 소식의 진원지였다. 새 소식과 묵은 소식이 골고루 섞여서 활개를 치며 다니고 있었다. 십년 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의 소식을 거기서는 들을 수 있었고, 나를 찾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그곳에 가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온갖 새롭고 묵은 소식들과 잡다한 소문이 난무하는 곳, 그래서 아지트는 재미가 있었고 쓸모가 있었다. 모든 선원이 그리로 발길을 향하면 그곳엔 숨길 것이 없는 따뜻함이 있기에 모두가 즐겨 찾는 곳이 바로 이 아지트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바다가 점점 어려워지면서 승선을 하지 못한 실직자들과 배를 탔으나 세상 물정이 어두워 재산을 몽땅 탕진한 사람들과 남편이 배를 타고 나가서 곁에 없다는 이유로 마누라가 바람을 피우는 등으로 가정이 풍비박산이 난 사람들과 배를 타다가 장애를 입은 사람들과 노름으로 애써 번 돈을 모두 날려버린 사람들과 가정이 있어도 생활비가 없어서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과 사기를 당한 사람들과…, 갖가지 이유로 오갈 곳이 없어진 선원들이 한두 명씩 모이기 시작하던 것이 이제는 이렇게 많이 늘어나게 된 것이었다. 분명한 것은 이들은 모두 선원이었고 대부분이 평생을 바다에서 보낸 사람들이란 것이었다.

이 아지트는 주로 부두와 선착장 주변에 몇 군데 있던 것이 이제는 점점 늘어나 자갈치와 남포동, 중앙동 그리고 부산역 주변으로까지 많이 퍼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들은 특별한 수입이 없었기 때문에 주로 뱃사람 특유의 끈끈한 의리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 승선을 하는 옛 동료들이 이곳에 들러 몇 달치 여관비를 대납해 주고 가기도 하고, 이들이 자주 이용하는 식당이나 술집에 들러 술값과 식비를 맡기고 가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옛 동료라는 정 때문에 이들에게 용돈을 주기도 하고 특히 이등 항해사에서 일등항해사로, 일등항해사에서 선장으로 또는 기관사에서 기관장으로 이렇게 상급 직책으로의 승진 때는 축하금을 스스로 이 아지트의 친구들에게 듬뿍 내기도 하였다. 그들은 이 아지트의 친구들에게서 인정받는 것을 큰 자랑으로 여겼다. 또 아지트의 일원이었던 사람이 혹시 승선이라도 하는 날에는 이번의 김 선장의 경우처럼 번 돈이 마치 공동의 소유라도 되는 것처럼 함께 쓰기를 아까워하지 않기도 했다. 이곳의 많은 사람들은 오랜 승선으로 인해 혼기를 놓치는 바람에 독신들이 많았으며 이럼에도 불구하고 돈이 쪼들리면 굶기를 마치 밥 먹듯 하기도 하는 이들이었다. 그럴 때는 안주 없는 깡소주로 술잔을 나누며 다음 항차에 들어올 친구를 기다리는 것을 낙으로 삼기도 했다. 이처럼 이들의 문화가 매우 독특한 것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러나 아지트는 밤낮 조용한 날이 없기도 했다. 나름대로 이들의 과거는 모두 돈푼께나 만져보고 물 쓰듯이 돈을 써보기도 하는 등 화려하기까지 했으며 적어도 수십 개국을 돌아다니며 외국의 문화에 익숙한 핑계로 잘난 맛에 살고 있기도 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처지를 비관한 이들은 술이 취해 공연히 난동과 싸움을 일삼기도 했는데 갈 곳은 없고 오라고 하는 곳은 더욱 없었기에 하루 종일 드러누워서 빈둥거리다보면 불평불만이 불같이 일기 마련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모두들 아픔이 많았다. 물론 자기의 부주의로 인한 것이어서 하소연 할 데가 없기는 했지만 그래도 청춘을 바쳐 고생한 보람도 없이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친구나 친척의 약은 꾐에 빠져 평생 모은 것을 날리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사회 부적응으로 세상을 저주하며 알코올중독자가 되거나 정신이상자가 되는 경우가 흔했으며 오랜 고독한 해상생활로 인해 자신에 대한 방어막을 잘 형성하지 못하므로 인해서 육지생활 특히 처자식과의 가정생활에 부적응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이들은 각기 아지트별로 흩어져서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동기라는 이유로 또는 선후배라는 이유로 아니면 같은 배나 같은 선박회사의 배를 탔었다는 동료라는 이유 등으로 해서 바다는 무한히 넓지만 선원이 사는 세상은 좁다는 말과 같이 서로를 친지들처럼 잘 알고 있었다.
 

연회장에는 대략 사오십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였다. 그 수는 입구부터 들락날락하는 사람들이 많아 정확하지는 않았다. 모인 사람들끼리는 서로 과거의 배를 타던 경험담을 이야기하며 흥겨운 자리가 서서히 익어 가고 있었다. 미리부터 술에 취해서 온 사람들은 계속 술만 마셔댔고, 술이 덜 취한 몇 사람은 오늘의 자리를 마련한 김 선장을 추켜세우고 있었다. 이 자리는 인사말이나 누구를 소개하는 등의 형식적인 순서는 애당초 없었다. 서로가 모두 아는 사이인대다가 자기의 현재를 밝히기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만큼 굳이 남의 사생활에 대해서도 알려고 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일단 차려놓은 잔칫상이니만큼 시골 장터에 모인 사람들처럼 끼리끼리 둘러 앉아 일단 맛난 것으로 배나 채우고 술이나 코가 비틀어지도록 마셔보자는데 서로의 마음이 일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모두들 취기가 돌아 혀가 꼬부라졌고 그럴수록 좌중은 화기애애했다. 이런 자리가 요즘 들어서는 아주 오랜만이기에 더욱 그랬다. 한쪽에서는 벌써 구성진 노랫가락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물 위에서 한시름을 달래며 즐겨 부르던 노랫가락이었다.
 “파도에 묻은 우리의 청춘은 어디로 갔나? 물위에 쓴 내 이름은 정말 지워졌나?…”
노래를 따라서 부르는 사람들이 한둘씩 늘어나고 있었다. 이때 누군가 일어나 때 묻은 손수건을 꺼내들고 살풀이춤을 추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의 춤사위에 맞춰 박수를 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부르던 노래를 계속 부르기도 하였다. 앞에 머무르던 소주잔은 더울 급히 비워져서 옆으로 이동하였고 그만큼 흥은 점점 무러익어갔다.
“오빠 따라 바다로 가겠다던 순이가 시집가더니, 당신 올 날 손꼽아 기다린다던 마누라는 바람이 나고, 아 뱃사람의 신세여…”

흥과 함께 노랫소리가 커지자 흐느끼는 사람도 늘어났다. 이때 이런 흥겨운 분위기를 뚫고 큰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목소리마저 취해 소리에서 술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배를 타야 해. 배를 태워줘. 그래서 돈을 벌어야 해. 보고 싶은 딸도 찾고 마누라도 찾고 말거야…”
“암 배를 타야지. 영대야, 모텔 방에 가면 살찐 아줌마가 뚱뚱한 배를 준비하고 있으니 어서 가서 실컷 올라 타거래이…”
“하하하…, 허허허…, 낄낄낄…”

박장대소가 터져 나왔다. 이때 또 누군가 일어섰다. 그는 술이 취하지 않았는지 목소리가 또렷했다.
“친구들아! 오늘 우리가 모두 바보임을 드디어 알았다. 서로 똑똑한 체 해도 우리는 바보인 거야. 우리는 모두 삼십 년이나 사십년 동안을 배라는 한 구멍을 팠다. 우리는 바다를 개척하는 산업의 역군이란 이름으로 오직 한 우물을 팠지 않나? 그러면 우리는 당연히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사장이 되고, 세상에서 남부럽지 않은 부자가 되어있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뭐야? 장애자, 실업자, 파산자, 알코올중독자, 정신이상자, 노숙자,…. 아닌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구. 그래, 우리는 모두 바보, 멍청이일 뿐이야…”

분위기가 갑자기 숙연해졌다. 소란스럽던 것이 갑자기 조용해지던 것으로 해서 그랬다. 피어오르던 모닥불에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것 같았다. 앞에 놓여있던 술잔을 저 멀리 밀어내는 사람도 있었다. 노랫소리도 그쳤고 춤을 추던 친구도 슬그머니 제 자리로 가서 앉았다. 모두들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그 사이로는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모두들 자신의 과거를 반추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의 현재 모습을 보며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 같기도 했다. 이때 또 그보다도 더 힘 있고 앙칼진 목소리가 좌중을 압도했다. 유양이었다. 이제껏 한마디 말도 없이 술만 마셔대던 유양이 일어서서 웅변조의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직 그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이번에는 모두들 유양을 향해 얼굴을 돌렸다.
“친구여! 더 이상 쓸데없는 허세는 부리지 말게. 그건 만용일 뿐이야. 우리는 지금 깊숙한 무덤 속에 있어. 우린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송장이란 말이야. 다만 움직이는 송장일 뿐이야. 송장은 말이 없어야 해. 하하하…”

유양이 이렇게 소리치며 박장대소를 했다. 말라비틀어진 웃음소리였다. 어쩌다가 잔잔한 미소 정도는 지을지언정 좀처럼 웃음을 보이지 않던 그였다. 그는 그만큼 차갑고 냉정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오늘은 말을 못해서 죽은 귀신이 지핀 듯 했다.
“자, 축배를 들자고! 살아있는 무덤 속의 선원들을 위한 축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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