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난 뱃사람의 주머니

한국해양재단이 주최한 ‘제 7회 해양문학상’ 수상작의 일부를 올해 신년호부터 주최측과의 협의하에 연재하고 있다. 1월에는 최우수상을 수상한 박정혁씨의 소년과 바다(수필)을 게재했고, 본호에서는 우수상을 수상한 남순백씨의 소설 ‘파도의 노래’을 싣게 됐다. 소설의 특성상 원고분량이 길어서 남순백씨의 수상작은 3회(3-5월)에 걸쳐 연재한다.
‘파도의 노래’는 필자가 △선장의 고독한 독백 △바다와 결혼한 사나이 △구멍난 뱃사람의 주머니 △살아있는 선원의 무덤 △파도의 노래 △하나로 통하는 바다의 신비... 글을 나누어놓았는데, 본 호에서는 이중 구멍난 뱃사람의 주머니 부분을 편집했다.                                  -편집자 주-

남순백
남순백
오랜 해상 생활은 파도를 친구로 준 대신에 육지 친구들을 나에게서 몽땅 데려가 버렸다. 친구는 자주 만날수록 정이 들기 마련이다. 친구를 만나는 것이 원천적으로 봉쇄된 것이 나의 생활, 배에 갇힌 선원의 생활이었다. 선원이 좋아할 수 있는 친구는 몸이 멀리 떨어져도 정을 나눌 수 있는 마음의 친구였다. 그런 친구는 참 드물었다. 어쩌다가 오랜만에 외딴 외국의 항구에서 갑자기 옛날의 친구를 만나면 반갑기는 한량없어도 그의 이름도 성도 잘 생각이 나지 않기가 일쑤였다. 뱃사람의 친구는 같은 뱃사람이기 일쑤니 뱃사람이라야 그 동료의 심정을 알 수가 있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만날 때마다 군대 얘기를 하듯이 뱃사람끼리는 대화꺼리가 일치하고 말이 통한다. 그러나 정든 고국에 돌아와도 그런 친구와 마주치기는 매우 어렵다. 서로 항차가 틀리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외톨이 신세가 되는 것이 바로 뱃사람이다.

내가 좋아하고 존경까지 했던 친구, 유양은 일찍 배를 내리고 말았다. 그는 내린 배를 다시는 타지 않았다. 그가 계속하여 해상에 있었으면 나에게 큰 힘이 되고, 더 좋은 친구가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요즘도 귀국하면 때로 그가 있는 아지트로 찾아가 그를 만나지만 이제 그는 옛날의 내가 알던 그가 아니다. 그는 이제 선원도 아닐뿐더러 허심탄회한 대화를 주고받을만한 대상도 아닌 것이다. 그는 만나면 부담이 되고 짐이 되는 친구가 되어버렸다. 그는 이제 옛정이 아니라면 피하고 싶은 친구 중의 한사람이 되었다.

나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친구는 준효다. 그는 실습 때부터 동고동락한 언제나 내 마음 속에 그의 얼굴과 마음이 새겨진 동료였다. 그는 실습 때 우연히 만났듯이 그 후에 나와 같은 배를 참으로 우연히 타기도 했다. 그것도 여러 차례였다. 그야말로 나에게 우연을 넘어선 필연의 친구였다. 세월이 갈수록 우리는 서로 믿고 의지하는 바가 컸다. 바다라는 것이 외롭고 위험했기에 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친구가 적었기에 서로는 더욱 친밀해졌다. 서로가 그리워하기를 연인보다 더했다. 우리는 한사람은 아프리카의 모잠비크에 한사람은 아메리카의 파나마에 이렇게 멀리 떨어져서 항해를 하다가도 서로의 항차를 맞추고, 항구의 입항 날짜를 맞추고, 귀국 일자를 맞추어 만나기도 했다. 이렇게 서로의 의지함은 날이 갈수록 커져서 이제는 그의 생활과 나의 생활이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와도 같았다.

그는 내가 반해버린 사나이였다. 그가 바로 바다를 닮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보면 볼수록 바다와 같았다. 그는 잔잔한 바다를 닮아서 마음이 늘 넉넉하고 온화했다. 넉넉한 마음은 바다처럼 넓어 좀체 그 끝이 드러나지 않았다. 그는 끊임없이 거세게 이는 풍랑처럼 의지가 강해 잘 꺾이지 않았다. 그는 검푸른 파도처럼 입이 무거웠으나 아침 바다처럼 마음씨는 밝았다. 그는 일을 할 때는 마치 암사자처럼 달려드는 파도와 같이 악착같았다. 그래서 그는 믿음직스러웠다.

외국에 나가면 우리나라 사람만 봐도 반갑고, 객지에서는 고향 까마귀만 봐도 반갑다. 망망한 대해에서 파도와 폭풍을 상대로 싸우다 보면 한 배에 탄 동료들이야말로 모두 한 가족 같기 마련이다. 급박한 위기가 시시각각으로 닥쳐올 때면 동료는 가족 이상이 되었다. 준효가 가까이 있으면, 그것도 같은 배에 있으면 난 긴장이 해파리처럼 풀어졌다. 그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선상 생활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와 나는 근무 파트가 틀렸지만 이심전심이 되었다. 항해와 기관은 유기체처럼 서로 함께 움직여야 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는 내 마음과 똑 같아서 수시로 배의 안전을 살피고 기관을 조정하였다. 그가 내 입 안에 든 혀처럼 행동했기 때문이다.

준효는 나와는 모든 것이 달랐다. 그는 바다와 같았고 나는 육지에 가까웠다. 성격이나 생김새부터가 닮은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우선 나는 시골 사람이라 무척 어리석었지만 그는 도시 출신답게 차돌같이 영리하고 눈빛은 똘망똘망했다. 배를 타고 있다는 공통점을 빼고는 살아가는 방법도 전혀 달랐다. 무엇보다도 그는 그 와중에도 결혼을 하였던 것이다. 그의 두 아들은 지금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내 주위의 선원들 중에서는 매우 안정된 가정을 꾸리고 있었고, 그것은 그가 아내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으로 기인하는 바가 컸다. 아내의 말에 잘 따르는 남자는 비록 남자들 사이에서는 팔푼이 소리는 들을망정 실속이 있는데 이 친구의 경우가 바로 그랬다.

요즘 들어 준효의 얼굴에 물 위에 기름 뜨듯 수심이 떠돌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그늘이 드리워져 얼굴에 그득했다. 먼저 서글서글한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더니 말 수가 뜸해지던 것이었다. 그는 얘기를 실타래처럼 길게 풀어놓던 달변의 친구가 아니었던가? 그와 때를 같이하여 행동거지가 달라지는 그였다. 식당에서도 나를 피해 다른 자리에 앉았고 어쩌다 눈길이라도 마주치면 못 볼 것을 본양 고개를 돌려버렸다. 무엇보다도 도통 말을 걸지 않았다. 말 수가 적은 사람은 무서운 사람이다. 말은 내면의 표출이라 말을 잘하던 사람이 말이 없어지면 두려워지기까지 한다. 그가 나를 피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 원인을 알 수가 없어 안타까움만 더해갔다.

그러던 준효가 하루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그의 독백을 내가 듣고 말았는지 내가 들으라고 일부러 그리 한 건지는 알 수 없으나 뜬금없는 소리였다. 마치 지나가는 바람결처럼 들리던 것이 그의 소리였다. 그러나 그렇게 말한 준효의 표정에는 눈곱만큼의 변화도 없었다. 수심이 가득한 어두운 얼굴 그대로 마치 아무 말도 꺼내지 않은 사람 같았다. 그의 평소 표정이 잔잔한 바다처럼 변화가 없기는 했다. 그래서 그의 마음의 심연은 잘 읽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떠나기로 했어.”
이게 바로 그가 내뱉은 말이었다. 너무나 오랜만에 내 귀에 들어온 그의 말인지라 내 귀가 번쩍하고 문을 크게 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두 귀가 쫑긋하고 벌떡 일어서던 것도 바로 그 때였다. 그러나 나는 그가 한 말의 귀를 찾아 한참을 헤매어야 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던 것이 모처럼만에 나온 그의 말이었던 것이다.
“떠나다니? 이 배에서 말인가?”

도둑이 제 발 저리듯이 준효의 오랜 어두운 표정과 행동으로 미루어 나에게 섭섭한 감정이 있는 것으로 지레짐작을 하는 나였다. 나의 꼴 보기가 역겨워 이 배를 떠나겠다는 말인 줄 알고 뒤가 켕긴 내가 펄쩍 뛰며 되물었던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내가 그를 붙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꿇어앉아 빌더라도 도저히 그냥 그를 놓아 보낼 수는 없는 것이 나의 입장이었다.
“아니? 바다에서.”

역시 잠자는 바다처럼 담담하게 그리고 짤막하게 그가 답했다. 이미 마음을 정한 듯 조금의 동요도 없는 것이 바로 그의 표정이었다. 오히려 안달하는 쪽은 나였다. 그의 바위덩이보다 무거운 소리에 마음이 불안해지며 안절부절 못하던 것으로 그랬다. 갑자기 오른 쪽 팔이 뚝 하고 잘려나가는 듯한 허전함이 엄습해 왔던 것이다.

“갑자기 왜 그래? 이 나이에 배를 내리면 무얼 하려고? 학비도 이제 시작인데…”
나는 걱정이 되어 담담한 그에게 다시 물었다. 그렇게 묻지 않고서는 궁금하여 도저히 그 분위기를 배겨낼 재간이 없기도 했다. 그나 나나 배에서 잔뼈가 굵어버려 이제는 참으로 어중간한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는 하지만 뱃사람은 배를 타는 것밖에 달리 할 것이 없었다. 사공이 배를 떠나는 것은 고기가 물을 떠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할 수 있는 다른 일이라곤 찾을 수가 없는 것이 뱃사람의 처지였다. 특히 육지에는 뱃사람이 할 일이 없었다. 물에 오래 젖어 지낸 사람일수록 더 그랬다. 뭍에는 배가 없기 때문이다. 다른 것을 배울 기회가 원천적으로 차단되는 곳이 바로 바다에 떠있는 배에서의 생활이 아니겠는가? 가르칠 장소도 가르칠 사람도 없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파도는 뱃사람에게 바다의 일만 하도록 강요하고 있었다. 다른 일을 할 수 없는 것, 그건 뱃사람만이 아는 뱃사람의 운명이기도 했다.

“그냥 싫증이 나서. 이만하면 많이 탔잖아?”
그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자신의 처지를 걱정해 주는 나의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한 점의 감정도 싣지 않고 군인이 상사에게 답하듯 지극히 사무적으로 그리고 간단하게 이같이 말했다. 그러나 그의 말에 흠을 잡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이만하면 싫증이 난다는 말은 충분히 공감이 갔다. 요즘 배에는 신바람 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나이쯤이면 배를 많이 탔다는 말도 사실이었다. 뱃일은 중노동이었으니까.
“그럼. 어디 갈 데라도 있는 거야?”

나는 떠난다는 그에게 애걸복걸하며 본인보다도 더 안달이 나서 이번에는 정이 듬뿍 들어간 투로 이렇게 물었다. 그제야 그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가 제대로 입을 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간 아꼈던 말들이 그의 입을 통해 밖으로 술술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간 마음고생이 심하였음이 그의 말에 진하게 배여 있었다. 그의 말문과 함께 그의 마음문도 열리고 있었다.

“집으로 가야지. 여기 있어도 별다른 전망이 없잖아. 알다시피 월급을 전부 보내줘도 집에서는 모자라기만 하다고 야단이네. 그 돈으로는 아이들 학원 수강료 대기도 만만찮다고…. 집사람이 흰소리를 하는 사람은 아니지 않는가? 정말 예전 같지가 않아. 그럴 바에야 그냥 배에서 진탕 고생만 하지 말고 집에 와서 다른 직장에 다니라는군. 아이들이 크니 아버지도 필요하고…. 그리고 요즘 육지에는 새 직장이 많이 생겼다고…”

준효는 이렇게 어쭙잖게 떠나갔다. 애초 바다에 없었던 사람처럼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완전히 그리고 조용히 사라져갔다. 그의 흔적은 내 가슴속에만 남았다. 그는 한번 선원은 영원한 선원이라고 주장하곤 했었다. 평생직장이라며 늘 선원인 것을 자랑하던 친구가 바로 준효였다. 친구가 떠나자 내 마음도 배에서 떠나려 했다. 갑자기 황무지처럼 황폐해진 것이 내 마음이었다. 바다는 황량한 벌판 같이 텅 비어버렸다. 바다를 떠나려는 내 마음을 매어 둘 곳이 없었다. 오래된 연인을 떠나보내는 것보다 더 안타까웠다. 허전하고 섭섭하여 마음이 녹아서 물이 되어 흐르는 것 같았다. 세상의 모든 것을 한꺼번에 빼앗겨버린 듯 진한 허탈감이 줄곧 일어났다. 의지하였던 친구는 언제나 마주하는 파도나 해무처럼 내 삶의 일부였음이 분명했다. 나는 친구를 뒤따라 배를 내리지 않고는 배겨내기 힘든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친구의 말대로 수입이 줄기는 많이 줄었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이 우리 선원들의 생활이었다. 내가 받는 액수가 드러나게 줄지는 않았지만 다른 직종 사람들의 수입이 가파르게 올라가니 내 몫이 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육지에 올라보면 하루가 다르게 물가가 뜀박질 하는 것도 우리들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선원의 급료가 인상된 지가 까마득했다. 급료의 오름이 엉금엉금 더뎌지던 뒤끝이어서 더 그랬다. 가끔 들리는 항구에서도 주머니의 돈은 모자라기만 했다. 돈의 가치는 곤두박질을 치고 있었다. 돈이 영 힘을 못 쓰고 끗발도 없는 것이 요즘이고 따라서 우리 선원들의 어깨에서 풍선에 바람 빠지듯 힘도 쭉쭉 빠져나갔다.

선원들이 한 점 두 점 몰래 사가지고 들어오던 전자제품의 인기가 시들해졌다. 국산품이 좋아져서 물건을 힘들여 가져가도 찾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하나의 이유였고, 선원들의 손을 통하지 않더라도 수입자유화로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런 물건들이란 것이 다른 이유였다. 이런 건 이제 여간 믿기 어려운 얘기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여간 중요한 문제가 아니기도 했다. 찾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애써서 가져가도 소용이 없다는 뜻이었다. 선원의 인기가 떨어지고 설자리가 좁아지는 것이었다. 선원의 수입이 단번에 줄어들어 주머니가 마르는 것은 물론이고 모진 고생을 참아내며 손꼽아 기다리던 귀국의 재미를 송두리째 앗아가 버리는 것이기도 했다.

게다가 가끔 한 번씩 고국에 들리면 육지에 있는 친구들의 태도가 수상해졌다. 친구들이 전에 없이 퍽 여유로워졌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들은 날이 갈수록 점점 여유로워졌다. 그들의 여유는 내가 그들을 만나고 그들이 나를 만나는 반가움을 시들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 전에는 군대 가서 첫 휴가를 나온 아들을 맞듯이 버선발로 뛰쳐나와 나를 맞던 그들이었다. 내가 내미는 작은 선물 하나를 더없이 고마운 마음으로 받던 그들이기도 했다.

“이건 말이야. 남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이 만든 토목인형이야. 어때 신기하지? 이 작은 인형엔 아프리카 사람들의 시린 한숨과 아픈 슬픔이 담겨 있어…, 그들의 형제자매가 노예로 팔려가던 슬픈 역사와 함께…”
“어 정말 멋지네. 슬픔은 모이지 않지만…, 우리 딸아이가 껌뻑 넘어가겠군.”
나를 기다리던 친구들이 내가 내민 작은 소품 하나를 받아들고 고마워서 어쩔 줄 몰라 했었다. 나는 언제나 미지의 항구에 들릴 때마다 그 지역 특유의 이런 작은 소품들을 몇 개씩 사서 가져와 이렇게 친구들에게 나눠주곤 했다.

“이번에는 페루에 갔었네. 한대지방과 온대지방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는 온통 바닷가로만 이루어진 것같이 길고도 긴 지역이라 이 나라엔 수산자원이 아주 풍성하다네. 멸치 떼가 한창 모여들 때에는 배도 운항을 멈추어야 한다네. 온통 바닷물보다 멸치 때가 더 많을 지경이 되거든. 이 나라에서는 이 멸치를 건져서 우리가 젓갈을 담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것을 말려서 주로 동물의 사료로 활용한다네. 이 밖에도 이 나라엔 수산자원이 넘쳐서 이번엔 피쉬밀을 한배 그득 일본으로 실어다 주었다네. 주로 어묵 같은 것을 만드는 원료인 생선가루지…”

친구들은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듣는 초등학생처럼 귀를 쫑긋하고 재미나게 듣고 있었다. 그들은 매우 신기한 모양으로 내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저 친구가 지도에서만 보던 지구의 반대편인 남미의 그 먼 곳까지 다녀왔을까? 라고 반신반의한 얼굴을 하면서도 내가 마치 로빈슨 크루소나 되는 듯이 진귀한 눈으로 바라봤던 것이다. 그들의 얼굴에는 나에 대한 선망과 부러움이 가득했었다. 이 지루한 육지생활을 접고 당장 훌훌 푸른 바다 위로 멀리 떠나고 싶어 하는 열망에 불타고 있었다. 나는 이런 때 외항선원이 된 기쁨과 보람을 만끽할 수 있었다. 남아메리카에서부터 아시아까지의 긴 여로가 단번에 눈 녹듯이 풀리는 것 같았다.

“이건 그 페루에서 가져온 마고마카 가루일세. 이것이 세계 최고 청정지역의 산물이라 요즘 건강에 좋다고들 잘 사는 나라들에선 많이들 사가지고 가더라고…. 페루에서 나는 산삼이라고 하면서 말이야…, 이것을 보는 순간 술과 담배에 절여 지내는 자네들 얼굴이 생각났지 뭔가?…”
내가 이렇게 말하며 손바닥 크기의 가루 봉지를 하나씩 건네면 그들은 마치 고향 친구가 보내준 쌀 한 가마니를 받은 것보다 더 고맙게 받았다. 마치 이 작은 봉지 하나로 죽을병을 고치기라도 하는 듯이 어깨를 들썩였던 것이다.

“허허, 지구의 반대편에서 온 건강 가루로군. 마누라가 놀라서 자빠지겠는데?”
그러고 난후, 그 다음 날이면 약속이나 한 듯이 그들의 부인들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머나. 선장님, 고마워요. 우리를 잊지 않고 그 귀한 것을 챙겨다 주시다니? 우리 딸이 좋아서 팔짝팔짝 뛰며 어쩔 줄 모르네요. 호호호…. 오늘 저녁에는 우리 집으로 초대할게요. 약속한거에요? 꼭 오세요. 꼭이에요?…”

이렇게 여지없이 호들갑을 떨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나의 선물 공세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지만 그들의 받는 마음은 점점 시들해지더니 최근에는 아주 시큰둥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이건 나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는데 그들이 변했다고 말하기는 뭐하고 내가 세상의 물정에 따라 변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고 자책을 해야 할 일이 분명했다. 내가 어렵게 사왔다며 귀한 선물을 주섬주섬 내놓을라치면 그들이 뜬금없이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봐서 나는 눈치가 황소보다 느린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요새 이런 것 마트나 수입품 가게에 가면 다 있어. 값도 싸던데?…. 써 보니 우리나라 것이 더 좋더라고…. 아껴 두었다가 어려운 사람들에게나 주게…”

그들의 변화는 최근 들어 부쩍 그들이 앞서서 밥값을 내고 술값을 지불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갈수록 그들의 단순한 식객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생각뿐이었다. 육지 친구들 앞에서 점점 작아지는 나의 모습이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험한 바다에서도 독수리처럼 활개를 치던 내가 고향에 와서 이렇게 주눅이 들고 움츠려들다니? 그건 단지 주머니 사정 때문이었다. 언제부터인가 그들은 마치 나의 주머니를 들여다본 듯이 그래서 나의 계산 같은 것은 기다릴 필요도 없다는 듯이 나를 앞질러 계산대로 서둘러 가더니 두툼한 지갑을 자랑스럽게 꺼내들고 빳빳한 지폐를 스스럼없이 쑥쑥 내밀었던 것이다.
“배에서 무진 고생하는데…, 단단한 땅 위에 편히 앉아서 버는 우리가 내야지!”
그들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 귀에는 다르게 들리던 것이 또 그들의 말이었다.
“요새 뱃놈이 무슨 돈이 있겠어? 주머니가 텅텅 비었을 걸…”

마치 이렇게 비아냥거리던 소리로 들렸던 것이다. 이제는 뱃놈이 돈을 그물로 끌듯이  잘 벌어 와서 기분이 내키면 돈을 물 쓰듯 펑펑 쓴다는 말은 케케묵은 옛말이 되어버렸다. 따라서 뱃놈은 통이 크고 기분파라는 수식어도 함께 사라져 버렸다. 선원은 이제 더 이상 젊은이들이 되고 싶어 하는 선망의 대상이 아니었고, 급속하게 직장의 순위에서도 밀려나고 있었다. 돈을 못 쓰는 사람은 속이 좁게 보이고, 통이 작아 보인다. 구두쇠처럼 인색하게 보이기까지 하는 것이 바로 돈의 씀씀이다. 요즘 바로 내가 그렇게 변해가고 있고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물고기처럼 바다에 사는 동안에도 세상은 빠르게 변해갔다. 게다가 다른 나라보다 훨씬 더 빨리 변하는 것이 국내의 물정이었다. 그것은 가을 날씨처럼 변덕스럽게 잘도 변했다. 해외 송출을 한번 나가면 짧아야 1년 길게는 3년 이상이 걸렸는데 돌아오면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이건 과히 상전벽해였다. 그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정신을 차리는데도 적잖은 시일이 걸렸다. 나는 배위에 앉아서 당달봉사처럼 두 눈 빤히 뜨고 세상의 변화를 놓쳐버렸다. 그 변화를 진작부터 눈치는 챘지만 별 비중을 두지는 않았던 것이 화근이었다. 과거의 영화에 젖어 ‘설마’하던 것이 이렇게 빨리 현실이 될 줄을 몰랐던 것이다. 귀향을 했을 때는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반성을 하다가도 배를 타고 떠나 바다위의 나의 일상으로 돌아가면 곧 그것을 잊어버리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가랑비에 옷이 젖듯 자그만 변화는 쉬지 않고 야금야금 내 주위를 파고들었다. 그때 심각하게 생각하고 행동을 취했어야 했다. 동료들이 하나씩 둘씩 배에서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 시초였는데 말이다.

이렇게 제 때에 제대로 눈치를 잘 채고 행동에 옮긴 동료들이 많았다. 바로 해양경찰로 옮겨간 친구들도 그들 중의 한 무리였다. 이때만 해도 항해사나 기관사 면장이 있으면 그 면장의 종류와 승선기간에 따라 해양경찰로 특채가 잘 되었다. 해양경찰이 생기고 확대되던 던 초창기라 해기사를 구하가가 매우 어려웠고, 그만큼 경기가 좋은 해기사들이 박봉인 경찰로 가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경찰로는 절대로 가고 싶지 않았다. 그건 순전히 돈 때문이었다. 경찰로 옮겨서 받는 봉급은 당시 선박회사에서 받는 것의 삼분의 일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해상에서 배를 탈 바에야 세계를 누비며 월급을 많이 받는 쪽이 낫겠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고, 주위 대부분 동료들의 생각이기도 했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해양학교 동기였던 동주와 몇 녀석들은 재빨리 경찰 배로 옮겨 탔다.

“난 공무원이 좋아. 경찰 공무원은 더 좋아. 내 애인도 공무원이 최고라고 하더군.…, 적게 벌어도 한군데 정착하여 안정된 생활을 하는 것이 내 꿈이었어. 공무원을 아무나 하나? 이번 기회는 바로 나를 위해 생긴 게 틀림없다고. 공무원이 되면 흔들리지 않는 딴딴한 땅위에서 애들도 많이 낳을 거야.…”
동주는 이렇게 말하며 경찰로 가는 신청서를 썼다. 그는 전혀 망설이지 않았다. 우리 모두는 겉으로는 그에게 좋은 결정을 했다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바보라고 비웃었다. 그가 없는 자리에서는 대놓고 비아냥거리는 친구들도 있었다.
“쥐꼬리보다 적은 공무원 월급으로 아이는 더도 말고 세 명만 나아서 키워 보라지.…”
“밥 팔아 똥 사러가는 꼴이라니? 돈이 없어 순시선 밑바닥을 박박 긁다보며 과거 생각이 절로 날걸? 허허허…”

모두들 이렇게 빈정대었던 것이다. 배를 타는 사람들 치고 가정이 그렇게 윤택한 사람은 가물에 콩 나듯 드물었다. 오로지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험한 파도에 목숨을 담보로 한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돈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동주의 형편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고 돈에 대한 집착도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후의 세상은 동주의 편을 들어주었다. 지금에 와서야 동주의 처지를 보며 나야말로 미래를 볼 줄 모르는 단견의 사람이었음을 뼈가 시리도록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그 녀석을 만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내가 나의 월급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느낄 무렵, 그래서 배에 머무는 것이 점점 지겨워질 무렵, 제주 근해에 정박해 있는 우리 배를 검색하러 올라온 그 녀석을 만났던 것이다. 동창들을 만나면 간간히 녀석의 소식을 듣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대면을 하기는 그가 경찰로 가고 난 뒤 실로 근 이십년이 지났을 때였다. 녀석이 경찰 순시선에서 여러 명의 부하들을 지휘하여 우리 배로 들이닥쳤던 것이다. 녀석의 가슴팍과 어깨에는 번쩍거리는 무궁화 계급장이 두 개씩이나 붙어 있었다. 우리가 말똥이라고 부르는 큼직한 것이었다.
“어허 친구, 드디어 선장이 되었군 그래…, 이 무지무지하게 큰 배의…”  그는 우리 배 옆에 고목에 매미처럼 바짝 붙어 있는, 아직까지 경고등의 요란한 불빛을 쏘아대며 왱왱왱…, 소리를 질러대고 있는 자기가 타고 온 작은 순시선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돈도 무진장 많이 벌었겠군? 쥐꼬리만한 우리 경찰 박봉에 비하면 말이야. 그 많은 돈을 어디다 다 갈무리하고 있나? 혈혈단신 노총각님께서? 하하하…. 서(署)에 편안히 앉아 있다가 어제 밤 꿈이 좋아서 오랜만에 나와 봤더니, 당장 귀한 동창생 친구를 다 만나다니, 이거 큰 수확이군 그래. 하하하…”
“……”

“그래, 이 큰 배에 마약이나 금궤 같은 것은 좀 숨겨서 들여왔겠지? 나를 위해서 말이야. 귀한 친구!”
“실어 나를 화물이 줄어들어 선복량의 반도 못 채우는 판일세. 기름 값은 천정부지로 솟아 이곳에 며칠 동안 꼼짝 않고 정박할 테니 충실한 사냥개 같은 자네 부하들에게 이 잡듯이 뒤져서 천천히 찾아내라고 하게!”
“우리 선장님께서 요즘은 궁상도 많이 느셨군 그래! 바닷물보다 더 짠 소리를 해대다니? 하하하…”
“……”

“그럼 중국산 참깨라도 좀 실어오시지 않으셨나? 요즘은 그게 유행이라던데?”  “자네야말로 짭새가 아닌가? 바다의 똥파리…, 개 코보다 냄새를 잘 맡을 텐데? 어서 다니면서 깨소금 냄새를 맡아서 참깨를 찾아내 주게. 그러면 내가 오늘 단단히 한 턱 내지. 하하하…, 그리고 말이야 찾는 김에 돈 좀 되는 것도 찾아주게. 시시한 중국산 썩은 참깨 포대 말고, 묵직한 북한산 핵무기 부품이랑 대륙간 탄도미사일 같은 값나가는 것으로 말일세. 하하하…”

동주는 이렇게 넉살좋게 너털웃음을 웃으며 나에게로 왔다. 자신의 일에 만족하고 있음이 그의 온몸과 자세에서 묻어나오고 있었다. 그는 자신만만했다. 그러나 우리와 헤어지던 그 때 동료들이 그를 향해 빈정거리던 말은 아직 잊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약속대로 부산에 잘 정착을 했다네. 그리고 아이도 다섯 명을 낳았지. 약속대로 말이야. 하하하…. 아들 둘 딸 셋. 이만하면 약속을 지키지 않았는가?”
“……”

“큰 딸은 지난해에 시집을 보냈고, 큰 아들은 이름을 태풍이라 지었다네. 막내딸은 이제 겨우 햇병아리 중학생이 되었다네. 난 요즘 그 녀석이 떠는 귀여움 보는 재미로 산다네. 허허허…, 고 귀여운 것…”
나는 동주가 나를 노총각이라고 하는데 먼저 뒤가 켕기었고, 경찰로서 정착을 했다는 데는 부러움이 일더니 급기야 녀석이 자녀를 다섯 명이나 낳아서 가정을 멋지게 꾸려가고 있다며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데는 기가 눌리다 못해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려 했다. 녀석은 내가 가지지 못한 아킬레스건만 집요하게 공격해대는 것 같았던 것이다. 
 
이렇게 동주처럼 한사람 두 사람 내 곁을 조용하게 그러나 용감하게 떠나갔지만 나는 그때마다 그들을 오히려 안타깝게 여기며 아픈 마음으로 보내었던 것이다. 직장을 바꾸는 그들이 걱정스럽게만 생각되는 나였다. 많은 세월이 흐른 뒤 그렇게 떠난 사람들이 육지의 다른 직장으로 옮겨서 지금은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위치에서 잘 살고 있는 것을 보고서야 나는 그들의 선견지명이 옳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외국을 다니면서도 늘 뉴스를 통해 고국의 경제발전 속도를 알고는 있었지만 나는 다만 그 발전상 자체에 희열을 느꼈지 그것이 이렇게 나와 연관이 될 줄은 모르고 지냈다. 나는 바다만 아는 여간 아둔한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눈이 좋았다. 뱃사람에게 눈이 밝다는 것은 축복이었다. 함교에 서면 수평선 저 멀리까지도 망원경 없이 나안으로 살피던 나였다. 파도의 높이를 정확하게 맞추는 것이 나의 눈짐작이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을 보는 눈은 어두웠다. 그 중에서도 세상의 변화와 물정에는 더 까막눈이었다. 구멍 난 나룻배에 물이 찰 때까지 부지런히 노 젓기만 하는 사공처럼 나는 미련하기도 했다. 작은 변화들이 작은 소리를 내며 하나씩 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럴 수도 있다고 수긍했다. 약간의 변화라고, 이 까짓 것쯤이야? 하고 얕보았던 것이다. 변화가 올 때마다 그냥 대수롭잖게 넘어가 버리기 일쑤였다. 지금까지의 비교적 안정되고, 화려했던 과거를 생각하며 이런 것쯤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다시 회복될 것이라고 방심했고, 곧 선원이 환영받던 그런 세상이 당연히 다시 올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방심과 믿음이 차차 체념으로 바뀌는 데는 오랜 세월이 걸리지 않았다. 귀국을 해 보면 모든 물가가 널뛰기를 했던 것이다. 부동산 가격은 다락같이 치솟았다. 그래도 아파트를 한 채 미리 사두었기에 망정이지 그도 아니었으면 삶의 의욕까지 잃어버리기 십상이었던 것이다. 아파트 가격이 오르는 것에 비하면 이제 내가 받는 월급은 점점 잔돈 부스러기가 되어 갔다. 잔돈푼을 벌기 위해서 이런 험한 일을 해야 하나? 하고 생각하면 일할 의욕이 떨어졌다. 육지 친구들의 월급은 물가에 연동되어 덩달아서 착착 잘도 올라갔지만 외국 배를 타는 우리들의 월급은 거북이걸음에다가 오르는 것도 새 발의 피에 불과했다. 격차는 자꾸 벌어졌지만 친구들의 소득을 따라잡을 희망의 싹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문제는 구르는 눈 덩이처럼 점점 커져갔다. 사방엔 문제만 무성했다. 하찮은 것들까지도 어느 순간에 해결이 불가능한 중요한 문제가 되어 부상했다. 국내에 산업화가 가속화되어 알찬 일자리가 늘어나자 선원들이 육지의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 빈자리는 동남아의 값싼 노동력이 밀려와서 채우기 시작했다. 선박은 자동화되어 일손이 줄어들었지만 고급 인력을 구하기는 점점 어려워졌다. 모든 것이 사회의 변화에 따른 것이라 나에겐 불가항력이었지만 그 결과는 나에게 바로바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이렇게 한 가지 변화가 다른 변화를 연쇄적으로 자꾸 만들어 나갔다. 변화는 변화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디지 못하겠다는 맹렬한 기세였다. 변화가 나를 향해 빨리 변하라고 아우성을 질러댔다. 그래도 나는 듣지 못했다. 유구한 세월을 변화를 모른 체 출렁이고 있는 바닷물만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바다에만 탐닉하는 편집광이었다. 그래서 다른 것에는 신경을 쓸 여가가 없었다. 오직 바다 위에 떠다니는 배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 사이에도 바깥세상은 끊임없이 변화를 계속했다. 세상의 변화는 나 같은 선원쯤이야 전혀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바다에 떠있는 나는 그만 변화로부터 외톨이가 되고 말았다. 육지의 탈바꿈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상륙을 할 때마다 육지는 낯설고 어색했다. 나는 소외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점점 작아지는 왜소한 나를 발견한 것도 그 때였다. 화려한 육지의 변화였지만 나는 된통 물을 먹고 말았다. 물 위에 떠있는 뱃놈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랬다.
 

나는 정말 이렇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시골에서 곡식을 빻아주던 방앗간이 어느 날 갑자기 문을 닫았다. 그동안 정미소 주인이라면 기계를 다루는 신식 직업이었고 수입이 좋아서 부자였다. 이유는 집집마다 곡식을 빻는 작고 간편한 기계가 보급되었기 때문이었다. 도시에서도 이런 현상은 많았다. 연탄공장이 문을 닫기 시작했던 것이다. 집집마다 가스가 보급되어 연탄을 사용하는 가구가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현상을 두 눈 뜨고 보면서도 나는 우리 배와는 연결지을 줄 몰랐다. 세계는 자유무역화가 진행되어 물동량이 늘어나고 있었고, 조선소에서는 조선경기가 활황 중에 있었으며, 세상은 살기가 좋아져 힘들고 위험한 배를 타려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어서 나의 앞길은 끝없이 뻗어있는 수평선처럼 전도가 양양하다고 믿었다. 나는 그런 꿈속에만 젖어있었던 것이다. 세상과 단절된 배안에서는 멋진 꿈이라도 꿔야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꾼 꿈은 과거에 대한 꿈이었다. 그 소박한 작은 꿈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만족하는 나였다. 나의 항해사 면장이 승급을 거듭하여 일등항해사가 되는 것은 큰 꿈이었고 곧 이어서 작은 배의 선장이 되고 중간 배를 거쳐 대형 선박의 선장이 되는 것은 미처 상상도 하지 못한 큰 꿈이었다.
 

선장! 외항선의 선장! 바다의 제왕! 마도로스의 사나이!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가? 거센 물살을 가르며 성난 파도를 호령하는 그 위용, 하늘의 구름도 바다의 용도 기를 펴지 못할 그 위세, 물 위에 뜬 이름 중에 가장 빛나는 이름이 아닌가? 아무리 가히 없는 넓은 바다라지만 이보다 더 멋진 이름을 찾을 수 있겠는가?

선장! 그 이름만으로도 얼마나 막강한 존재인가? 수십 년을 두고 얼마나 간절히 염원하던 나의 꿈이었던가? 아니 우리 뱃사람 모두가 꿈꾸던 희망이 아니었던가? 선장이 되던 그날,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거머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천신만고 끝에 성취한 것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나는 이미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을 넘어서고 있었다. 사람들이, 바다가, 파도가, 구름이…, 세상의 모든 것이 온통 나를 축하해 주고 있었다. 푸른 물결과 하늘에 떠있는 별들까지도 박수갈채를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만물이 새로운 위대한 선장의 탄생을 우러러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건 사실이었다. 바다에서 선장은 존경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였다. 나는 왕관을 쓰지 않은 바다의 왕이었다.

 
얼음 덩어리 같은 차가운 파도가 배를 덮치는 겨울의 얼어붙을 듯한 바다에서 배가 갑작스런 고장을 일으키고 말았다. 수십 년 만에 처음 당하는 일이다. 점검 결과 배는 이상이 없었다. 기관은 쉼 없이, 고르게 작동하고 있는데 프로펠러가 회전을 멈춘 것이다. 오직 프로펠러에 의지하여 움직일 수 있는 있는 배는 지금은 멈추어 선 채 옴짝달싹도 못하고 있었다.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배는 거대한 고철덩이에 불과했다. 우리는 물위에 떠있는 쇳조각 위에 안전하게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처지인 것이다. 그 큰 덩치는 파도에 밀리며, 점점 거세지는 파도에 롤링과 피칭은 심해지고 있었다. 대양 한가운데의 난바다여서 구조를 요청해도 그 손길이 언제 닿을지 감감할 때, 이때쯤이면 우리는 각 부서마다 이미 해볼 만한 비상시를 위한 노력은 다해본 뒤인 것이다.

우리는 전부서가 갑판에 모여서 어떤 모험이라도 감행해야 하는 것이다. 첨단 장비 시대에도 가장 원시적인 방법이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이다. 그것은 육안으로 배의 외부를 검사하는 일이다. 지금은 프로펠러에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모두들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누가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다느냐에 있었다. 모인 사람들은 고개를 숙인 채였고 아무도 말이 없었다.
“누가 잠수를?”

내가 이렇게 말하면 모두들 다시 고개를 들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본다. 잠수를 해야 할 의무를 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는 그건 모두의 임무이기도 했다. 이때 찬바람이 몰고 온 바닷물의 흩뿌려진 알갱이는 바늘 끝처럼 얼굴을 찔러댄다. 모두들 눈을 감는다. 누군가가 용감하게 나서길 기대하고 있는 눈치가 분명하다. 이건 특별한 돌발 상황이었고 위험했다. 살을 얼리는 추위는 물론이려니와 혹시 상어 떼라도 출몰한다면? 그러나 누군가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모두들의 고개가 숙여지고 있었다. 머릿속에는 저마다 가족들의 모습이 떠오르고 있을 것이다.
“나이프!”

할 수 없다. 극한 상황, 위험한 상황에서는 선장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 이때 필요한 사람이 바로 선장이다. 나도 싫다. 솔직히 두려웠다. 그러나 다른 승조원들보다는 더 용기가 있어야 하고, 그 용기가 5분은 더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나이프를 입에 물고, 영화의 한 장면을 생각하며 선미로부터 뛰어 내렸다. 나는 나이도 제일 많았고, 스쿠버다이버는 더욱 아니었다. 얼음처럼 찬물을 자맥질을 하여 들어가자 과연 직경이 십 미터도 넘는 거대한 프로펠러에 넓적다리보다 굵은 로프가 휘감겨져 있었다. 이 망망대해에 어디서 떠내려 온 로프일까? 나이프로는 턱도 없었다.
“수중 전기톱!”

내가 수면 위로 부상하며 소리쳤다. 물위로 내민 젖은 머리는 더 추웠다. 당장 머리카락이 하얗게 얼어붙었다. 입에서는 하얀 수증기가 난로위에서 끓는 주전자처럼 뿜어져 나왔다. 아래 위 턱이 떨려서 마주치며 저절로 딱딱딱…, 둔탁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는 자맥질과 부상을 거듭하며 가쁜 숨을 토해 내면서 드디어 장작을 쪼갤 나무토막처럼 톱으로 로프를 짧게 여러 동강으로 잘라내었다. 마치 찰싹 달라붙은 문어다리를 잘라내듯이…. 이제 다시는 다른 배의 프로펠러에는 절대로 걸리지 않을 것이다. 다행히 상어는 오지 않았다. 이것은 모험을 넘어선 당장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이런 일을 수없이 해내면서도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용감했지만 그것은 단지 배 안에서 뿐이었다. 누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는 모른다. 분명한 것은 나는 절대로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은 앞뒤가 꼭 막힌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었다. 그래서 해외를 두루 다니며 내가 우리나라 사람 중에서는 가장 먼저 신문명을 접하는 확 트이고 깨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야말로 선진문명에 가장 먼저 눈을 뜬 선구자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오늘의 결과는 가장 뒤쳐진 사람이 되고 말았다. 내가 우둔해서 그런가? 뽕나무밭이 변하여 바다가 되는 세상인데 나는 조그만 냄비 속에서 혼자 우쭐대며 깨춤을 추고 있었던 것일까? 새벽은 새벽에 눈 뜬 사람만이 볼 수 있듯이 나는 신문명을 제일 먼저 향유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는데 결국 나는 신기루만 쫓고 있었던 것일까? 선원은 세상 물정에 어두울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 우리는 다만 바다와는 다른 육지의 변화에 적응을 못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즐겨 부르던 파도의 노래가 잘못된 것일까?
 

우리는 바다를 땅이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보통 땅이 아닌 생산성이 매우 우수한 비옥한 옥토라는 것이 우리들의 생각이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배워왔고 그렇게 실천했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바다가 땅이기 때문에 큰 나라가 틀림없다고 믿었다. 그것은 우리 뱃사람들의 신앙이었다. ‘바다를 지배하는 나라가 세계를 제패한다.’는 말은 우리들의 상식이었다. 그것은 세계의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앞장서서 바다를 옥토로 일구는 큰 일꾼인 항해사였다. 나는 한 다랑이씩 바다를 개척하고 있었다. 당연히 우리나라에서 그런 일을 하는 외항선원이야말로 최고의 인기 직업이어야 했고 실제로 그랬었다. 그것은 절대로 변할 수 없는 요지부동의 진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터였다.

그랬던 것이 갑자기 변해버렸던 것이다. 지금은 수백 년 동안 면면히 진리로 인정되어 내려온 그 진리마저도 변하는 세상이다. 내가 진리라고 굳게 믿었던 그 믿음 자체마저 변해버렸다. 오래 동안 기억을 상실했던 사람이 단번에 기억을 되찾은 듯 어느 날 번쩍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위가 싹 변해 있었다. 다시 맞이한 세상은 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변화는 역시 좋은 것임에 틀림없다. 변화는 지루하지 않아서 좋고, 새로워서 좋고, 앞으로 나아가는 발전적인 것이어서 좋다. 그러나 변화는 그 변화에 발맞추어 따라갈 수 있을 때에 좋은 것이다. 제 때에 변화를 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퇴보다. 나의 경우가 그랬다. 나의 변화는 뒤쳐진 변화, 거꾸로 가는 변화였던 것이다. 금덩이가 돌덩이로 변하는 변화였다. 억울하지만 현실이 이미 그렇게 되어 있었다. 같이 길을 걷다가 한 사람이 빨리 가면 다른 사람은 전과 같은 속도로 가도 뒤쳐지는 이치와도 같았다. 나도 변화를 따라가려고 무던히 애쓰며 스스로 변화하고는 있었지만 다른 쪽인 육지 쪽의 변화가 엄청 더 빨랐다.

거대하고 급속한 변화의 물결이 육지에서 일어났다. 그것은 경제발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내가 배를 타고 해외로 향할 때는 아직 육지는 잠자고 있었으며 기지개도 켜지 않고 있었다. 그냥 여느 날과 같은 새벽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육지였다. 그때의 육지는 깊은 겨울잠에 빠져 꿈쩍도 않는 곰과도 같았다. 그 곰이 깨어났던 것이다. 내가 배에서 파도와 씨름하고 있을 때 곰이 눈을 비비며 일어났으나 나는 눈치를 채지 못했다. 긴긴 겨울잠에서 깨어난 곰은 맹렬한 기세로 먹이 사냥을 나섰으나 나는 그것도 모른 채 배의 키를 굳게 잡고 아직 변화가 일지 않고 있는 여러 나라를 헤매며 다니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난 고국에는 먼저 일자리부터 늘어났다. 모두들 고무신을 벗어던지고 운동화 끈을 단단히 맸다. 놀던 사람들과 빈둥대던 사람들도 하다못해 허드레 일자리로라도 빨려 들어갔다. 일하던 사람들은 좀 더 좋은 일자리로 옮겨갔다. 늘어난 일자리만큼 일꾼들의 수입도 덩달아서 불어났다. 자격이 있고 숙련된 노동력은 부르는 게 값이었다. 그러나 단 한군데 안타깝게도 우리 선원들은 그 변화의 열차에 함께 동승하지 못했다. 단지 출렁대는 바다의 높은 파도에 갇혀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선원들은 육지의 직장인들과 정반대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풍어가 되어 들뜬 어부의 마음을 생선 값이 내려 망쳐놓듯 숫자가 줄어들어 귀할 줄 알았던 선원의 시세가 하루가 다르게 하락해 버렸다. 게다가 환율마저 내려가 달러가 맥을 못 추자 해외에서 급료를 받는 선원의 몸값은 더 헐값이 되어버렸다.

수출 우선정책으로 값싼 국산 제품이 날개 돋친 듯 세계 곳곳으로 팔려나갔다. 맹렬한 기세였다. 우리 선원들이 바쁘게 그 제품들을 실어 날랐다. 우리나라의 항구는 오가는 배들로 부산했다. 하지만 우리가 벌어들이는 달러는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줄어들더니 급기야는 새 발의 피가 되고 말았다. 우리의 몫이 줄어들자 차츰 우리는 외화벌이의 주역에서 주변인으로 밀려났다. 결국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힘든 일을 하지만 잔돈푼을 버는 뱃사람쯤으로 인식 되다가 그마저도 차츰 기억에서 흐릿하게 지워져갔던 것이다. 우리 선원들이 강한 물살을 가르며 바다 위에 새겨놓았던 흔적들은 물거품이 되어 사그라졌다.

외항선원이 끗발을 날리던 선망의 직업에서 기피직업이란 나락으로 떨어지기까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리막길은 가파르고 순식간이었다. 직업의 좋고 나쁨은 누가 뭐래도 월급이 말을 하는 것이다. 나는 두 눈을 빤히 뜨고 주머니를 털려버린 것이다. 선원의 주머니가 빈 것을 사람들은 용케도 잘 알았다. 외항선사 앞에서 송출선을 타기 위해 길게 늘어섰던 구직행렬도 어느 사이에 싹 꼬리를 감추고 말았다. 흡사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한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 배에는 동남아에서 온 외국 선원들이 득실대기 시작했다. 잘 알아듣지도 못할 말로 서툰 선박 용어를 지껄여대면서….

아. 선원의 슬픔이여! 고아처럼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우직한 바다 사니이여! 푸른 물위에 항해의 역사를 새기는 하얀 제복의 사나이들이여! 그러나 우리의 모질고 외롭고 슬픈 역사는 어디에 하소연 할 곳도 없구나!
 

그럼 도대체 나는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배 안에 드러누워서 게으름을 피우며 빈둥대고 있었는가? 넘실대는 파도와 파도타기놀이를 하며 즐기고 있었는가? 젊을 때의 번득이던 총명일랑 모두 바다 깊숙이 던져 버리고 오로지 과거에 집착하며 살았는가? 절대로 그렇지는 않다. 더욱이 그럴 수도 없었다. 바다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도 만만치도 않았기 때문이다. 오호라! 나는 취해 있었다. 다만 짠 바닷물에 길게 취해 있었을 뿐이다. 바닷물은 나의 입으로, 눈으로, 코로, 귀로, 피부로, 의식으로…, 깊숙이 침투해 들어왔다. 시도 때도 없이 배추처럼 나를 절이고 취하게 만들었다. 바다에 취한 나는 온통 바다의 일부가 되어 그까짓 바깥세상의 일쯤이야 잊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변화했다. 변화하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잘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배도 변화했다. 기술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오직 변하지 않는 것은 바다뿐이었다. 바다는 어머니처럼 배를 가슴속에 잉태하고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 출렁대고 있을 뿐이었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세상이 다 변해도 바다는 어머니의 마음처럼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 변하지 않는 바다에 나는 감사하고 있다. 바다가 나를 위해 변해주기를 기다리는 나는 어리석었을 뿐이다.  

바다와 같이 나의 가장 가까이에 세월이란 놈이 있었다. 그 세월 속에서 오늘은 어제가 되었고, 내일은 또 멋진 오늘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 그것은 바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세월은 씨줄과 날줄을 뛰어넘어가며 아주 빈틈없이, 쉴 새 없이 우리 배를 따라붙고 있었다. 한 시간, 일분, 단 일초도 놓치지 않겠다는 단단한 각오를 한 세월이란 놈이었다. 그놈이 예고도 없이 불청객처럼 불쑥 나를 방문하였다. 세상의 급박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놈은 나를 잊지 않고 있었다고 했다. 숨바꼭질을 하는 아이들이 머리카락을 숨기듯 바다에 온몸을 꽁꽁 숨기고 있는 나에게로 놈은 여지없이 정겨운 척, 반가운 모습을 하고 다가왔다. 놈은 우선 나더러 세상이 변하는 것도 모른 체 그렇게 바보같이 살지 말라고 충고부터 했다. 나는 무심한 놈에게 세상에서 잊혀진 나 하나의 존재쯤은 무시하고 그냥 지나쳐 달라고 애원했다. 그럴 때마다 놈은 정의를 앞세웠다. 자신은 무척 정의로운 존재라며 자신 앞엔 만인이 공평해야 한다는 것이 놈의 주장이었다. 놈은 세월을 이길 장수는 아무도 없다는 속담까지 들이대며 나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세월이란 놈은 먼저 귀밑머리부터 희끗하게 만들었다. 놈이 한 올씩 한 올씩 몰래 머리숱을 가져가더니 어느 새 정수리가 번쩍번쩍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모자를 쓰지 않고는 벗겨진 머리가 따가워 갑판에 나서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파도가 나의 벗겨진 머리를 비웃는 것만 같았다. 좁은 공간, 배에 갇힌 생활이 그 세월과 힘을 합하여 올챙이처럼 볼록하게 나의 아랫배를 불리고, 오장육부를 기름기로 채우기 시작했다. 보드랍던 피부는 나무껍질처럼 주름살이 잡히고 거칠어졌다. 이마에도 손등에도 예외 없이 나이란 놈이 체면도 없이 내려앉았다. 거울 속엔 애리애리하던 홍안은 간데없고 초로의 영감이 나타나 나를 마주 보고 있다. 나는 처음에는 거울을 나무랐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는 바로 나였다. 청춘을 도둑맞고 만 것이다. 바다는 나에게 일자리를 주었지만 바다에 있었기에 눈치 못 챈 세상의 변화가 나의 주머니를 털어갔고, 세월은 청춘을 앗아갔던 것이다.

털려버린 선원의 주머니, 구멍 난 뱃사람의 주머니, 그래서 얇아진 지갑이 넓은 바다에서 선원들을 내쫓고 있었다. 무작정 내쫓는 것만이 능수라는 듯 조금의 자비도 없다. 내쫓긴 선원들 중에서 그래도 젊은 사람들이야 새 직장을 찾아 무거운 발길로라도 떠날 수가 있었지만 나이 많은 사람들은 그럴 수도 없었다. 이들은 파도 위에 써두었던 흘러간 바다의 옛 노래를 흥얼거리며 삼삼오오 그들이 떠나고 돌아오던 바닷가 선착장에 모여 그래도 아름다웠던 선원생활을 반추하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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