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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칼럼] 독도와 찢어진 신문
[404호] 2007년 04월 26일 (목) 17:35:25 최홍배 교수 komares@chol.com

 

▲ 한국해양대 최홍배 교수

2007년 4월16일. 미국 동부의 주립대학 버지니아 공대에서 발생한 엽기적 살인 사건은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문구에서 인간의 잔인성만이 뇌리에 박히는 일이었다.

 

비슷한 나이의 학생을 둔 학부모들은 한편으로는 희생자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 유족들이 겪고 있을 슬픔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들에게 그러한 불행이 일어나지 않았음을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 같다. 인터넷 등을 통하여 실시간으로 알려지는 ‘추측성 내지 상업성 보도’가 홍수를 이루면서 이 사건의 본질을 다루는 시각과 기사는 자연히 독자의 관심 속에서 멀어지고 만다.


꼭 1년 전, 2006년 4월. 독도 문제로 인해 대한민국과 일본 사이에 공군 전투기와 해군함정이 출동하였다. 이러한 군사적 긴장관계로 인해 독도를 지키기 위해 군대에 가 있었던 자식의 안위를 걱정하는 부모들이 가슴을 얼마나 졸이고 있었는지를 기억하는 분들이 지금 얼마나 있을 것인가? 우리는 2002년 4월. “대~한~민~국~, 짝짝짝, 오 필승코리아”를 통한 월드컵 4강 신화는 잘 기억하고 있다. 그렇지만 당시 북한(North korea)과의 서해교전으로 인해 꽃다운 젊은 군인들이 희생되었음을 기억하고 있는 분들 역시 지금 얼마나 있을 것인가?


희생된 유가족들은 지금도 매년 4월이 오면 끔직한 아픔과 기억으로 “그 해 4월은 정말 잔인하였다”고 평생을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외 대부분의 사람들은 “망각의 동물”에 충실하며 내일을 맞이할 지도 모른다. 혹자는 “그것이 바로 세상의 진리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왜 버지니아 공대 사건을 보면서 “스토킹, 과대망상, 우울증, 정서장애, 복수심, 총기문화, 1.5세대” 등과 연관하여 모든 논객들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 결국, 필자는 서론, 본론, 결론 어느 것도 찾기 어려운 혼미한 상태에서 마치 ‘찢어진 신문’을 읽고 있는 기분이 든다.


망자는 말하기를 “나는 앞으로 오랫동안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예수님처럼 죽는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원래 “죽은 자는 말이 없다”가 정설이었는데, 이렇게 죽고 난 이후에도 자신의 행동을 궤변으로 정당화(?)할 수 있다는 것이 어처구니가 없다.

 

 그러나 이렇게 무책임하기 그지없는 망자의 헛소리를 공익을 대변한다는 언론매체들이 여과 없이 그대로 전달하는 지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쨌든 그는 수많은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형언할 수 없는 시련과 고통을 주었고, 살아남아있는 우리들에게 반드시 풀어야 할 영원한 숙제를 던지고 갔다. 결국 사건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스스로의 안목을 키워야 할 것 같다.


필자가 미국 워싱턴대학교에서 독도를 연구하는 도중에 독도영유권 주장에 대한 한일 양국의 논점을 비교하기 위해 시대별로 칠판에 그 주장을 적어 둔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 일을 계기로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주장하는 친일학자로 오해를 받게 된 적이 있었다. 이유인 즉, 연구실을 청소하는 한국인이 “지난번에 여기 있던 한국인 최모 교수가 도대체 정신이 있는 사람인가요? 아니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이곳에서 몇 년 간 연구하고 간 것 아닌가요?”라고 다른 방문학자(Visiting Scholar)에게 말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반문을 하니, 자기가 청소를 하다가 우연히 칠판에 17~18세기와 1905년에 독도는 일본땅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확인하기 위해 연구실에 들어가 칠판을 보니, 한국측 영유권 주장은 이미 지우개로 지워져 읽을 수가 없었고, 일본측 내용만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청소를 하던 그 한국인은 ‘찢어진 칠판’을 읽고서 친일교수라고 말하게 된 것이었다.  


2007년 4월 버지니아 공대 사건은 60여명의 피해자가 발생하였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사람의 목숨을 숫자의 많고 적음에 초점을 두는 것은 곤란하다. 이번 사건으로 단 한 명이 희생되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경악해야 한다. 사람의 생명은 오직 하나로서 대체성 개념이 아닐 뿐만 아니라, 희생자의 부모에게는 자식의 생명이 자신에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지금 애끓는 비보를 알리고 있는 신문을 찢고 싶은 심정이다. 우리는 이라크 전쟁을 비롯한 국제 영토분쟁과 테러리즘에 의한 인명경시 풍조가 만연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지금의 상황이 그대로 존속하는 한, 제 아무리 신문을 찢는다고 하더라도 제2의 인명 희생을 막을 수는 없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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