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교육 어때?” 라는 동료들의 질문에 니는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정말 재밌고 유익하니 꼭 참여해보라고. 부디 이런 교육이 앞으로 더 늘어나고, 그에 대한 관심과 지원도 풍부해져서 우리나라에도 일본이나 유럽 부럽지 않은 해운클러스터가 형성됐으면 좋겠다.


 
 
그렇잖아도 예쁜 삼청동 골목길이 알록달록 봄 꽃들로 더없이 낭만적이었던 5월부터 뜨거운 태양과 시원한 장맛비가 번갈아 찾아오는 7월까지 진행됐던 선박금융 과정. 6주짜리 교육이라니 정말 길기도 하다 생각했었는데 막상 끝나고 보니 벌써 끝났나 싶다. 지금도 매주 화, 목요일이 되면 어쩐지 삼청동 금융연수원 215호 교실로 가고 싶어질 만큼, 선박금융 과정은 충분히 재미있고 유익했다. 

 한진해운에서는 선박금융 1기부터 꾸준히 직원들을 참가시키고 있다. 그래서 별다른 노력 없이 그저 수순대로 본 과정에 참여했던 나로서는 첫 날 타사 수강생들이 자기 소개를 하며 ‘워낙 인기 있는 과정이라 어렵게 수강권을 따냈다’ 라는 얘기를 할 때 조금 놀랐고, 난 꽤 운이 좋은 건가 보다 했다. 그리고 그 ‘운이 좋았다’ 는 느낌은 과정이 진행될수록 더 강해졌다.

입과하기전 회사 팀장님께서는 “어차피 강의 내용이야 다 아는 내용들일 거야. 그러니 공부보다도 타 선사나 금융기관 사람들과 인맥을 형성하는 게 더 중요해요” 라고 하셨다. 그러나 선박금융 수업은 나에게 큰 ‘공부’도 됐다. 알았던 내용은 더 확실히 알게 되었고, 몰랐던, 혹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내용들에 대해 정말 많이 배우고 관심을 갖게 됐다.

해운회사만 10년 넘게 다니다 보니 선박이나 해운시장에 관한 이야기들은 어쩌면 나에겐 너무나 당연하고 일상적인 것이 돼버렸었나 보다. 수업 중 금융기관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그런 ‘당연한’ 것들에 대해 던지는 질문을 들으며 ‘아 저런 게 궁금하기도 하겠구나’ 내지는 ‘그건 나도 몰랐는데?’ 싶었던 순간이 많았다. 심지어 어떤 부분에 있어선 은행원들이 해운회사 직원인 나보다 더 관심이 많고 잘 알고 계신 것 같아 내심 부끄럽기도 했다.

경제학이나 금융에 관한 수업 시간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자극과 가르침을 받았다. 입사 후 지금까지 실적분석이나 투자의사 결정과 관련된 일을 주로 맡아왔는데, 선박을 발주하거나 투자프로젝트의 금융조건 등을 검토하면서 애매모호했거나 전체적인 맥락이 궁금했던 부분이 이번 과정을 통해 많이 해소되었다.

그 동안 진짜 의미도 모르면서 표면적인 계산만 했었구나 싶었다. 그 중에서도, 어렵게만 느껴졌던 경제학을 너무나 쉽고 재미있게 강의해 주신 유일선 교수님, 제목만 들어도 거부감이 들 정도로 복잡하고 어려운 환율과 파생상품 얘기를 술술 이해가 가도록 명쾌하게 풀어주신 이성돈 교수님, 선박금융계약의 구조와 절차를 알기 쉽게 설명해주시고 지금도 해운업 발전을 위해 애쓰고 계신 정우영 변호사님, 그리고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해 선박금융 대출에 대해 알려주시고 조별 과제를 통해 실습까지 할 수 있게 해주신 현용석 팀장님의 수업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언급하지 못한 다른 강사 분들도 딱딱하고 지루한 이론 위주의 강의가 아닌 오랜 실무 경험에서 우러나온 살아있는 강의를 해주셨기에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수강생들의 만족도도 높았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해운업과 금융업 종사자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하는 강의이다 보니 난이도 조절이 힘들었던 것 같다. 금융 지식이 부족한 나에겐 금융 관련 수업의 속도가 너무 빨라 쫓아가기 어려운 적도 있었다. 반면에 해운에 관한 수업은 같은 내용이 많이 반복되는 느낌이었다. 자연스러운 복습의 효과가 있어 좋기도 했지만, 그래도 가능하다면 다음 번에는 좀 더 전문적인 지식의 전달이 필요한 강의는 그 시간을 늘리고 같은 내용의 반복은 최소화 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수업 이외에 현장학습도 두 차례 있었다. 첫 현장학습은 대우조선해양 거제 조선소 방문이었는데, 신입사원 연수를 포함해 이미 국내외 조선소에 몇 차례 가봤고 신조선 시운전도 참관해 본 나에게도 조선소의 방대한 규모와 짓고 있는 배들의 엄청난 크기는 새삼 놀라웠다. 이래서 우리나라가 세계 1위 조선강국이구나 느껴지는 시간이었다고 할까. 다만, 해운업이 불황이다 보니 상선보다도 해양플랜트 건설 쪽에 무게가 실려 있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했다. 대우조선해양 의전담당 직원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버스를 타고 편안히 조선소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조선소 방문이 처음인 금융기관 종사자 분들은 좀 더 가까이서 오랫동안 둘러보고 싶었다는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하셨다. 나 또한 세상에서 제일 큰 컨테이너선 - 머스크의 18,000TEU선 - 이 지어지는 모습을 더 가까이서 보고 싶었는데 차창 너머로 뒷모습 정도만 볼 수 밖에 없었던 건 안타까웠다.
 
 
 
두 번째 현장학습은 선박금융 과정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해외 워크샵이었다. 스무 명 남짓의 연수 동기생들과 한국해양대학교 이기환 교수님, 금융연수원 정춘복 부장님, 문영성 팀장님, 한국해사문제연구소 강영민 전무님, 원경주 이사님 그리고 해양한국 편집국장이신 이인애 이사님이 함께 했다. 인천에서 출발해 중국 청도와 상해 곳곳을 4박 5일간 둘러보고 돌아왔는데, 처음에 일정표를 받아봤을 땐 꽤 여유로운 워크샵이 되겠구나 생각했었으나 막상 가보니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기에 바빴다. 중국이란 나라가 워낙 넓다 보니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렸던 것 같다.

7월 9일 오후, 인천국제여객터미널에서 위동항운 ‘골든브릿지’호를 타고 청도를 향했는데, 난생 처음 보는 여객터미널의 모습이나 여객선 내부 풍경이 무척 흥미로웠다. 기관실이나 브릿지는 내가 봤던 우리 회사 컨테이너선의 축소판 같은 모습이었다. 13시간 만에 도착한 청도에서 유명한 칭다오 맥주 박물관, 소어산, 5.4 광장 등을 둘러보고 당일 저녁 비행 편으로 상해에 도착했다.

상해는 정말......크고, 넓고, 높고, 화려했다. 상해에 사흘 있다가 돌아오니 서울이 너무나 초라해 보일 정도였으니까. 상해에서의 주요 방문지는 상해항운교역소, 세계금융센터 그리고 양산항이었다. 상해항운교역소에서는 늘 숫자로만 봤던 상해발컨테이너운임지수SCFI를 만드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 SCFI 가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를 들어보는 귀중한 시간을 가졌다.

높이 400M가 넘는 101층짜리 세계금융센터 꼭대기에서 유리 바닥 아래로 아찔하게 펼쳐진 상해시내를 내려다보며 중국의 발전상에 다시 한 번 놀랐고, 그 바로 옆에 세계금융센터보다 무려 200M나 더 높은 빌딩을 건설 중인 것을 볼 때는 사람의, 특히 중국 사람들의 욕망은 어디까지일 지 약간 겁이 나기도 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역시 양산항이었다. 상해항의 얕은 수심을 극복하기 위해 3,000여 명을 투입하여 돌산을 깎아 만들었다는 양산항의 모습은, 이게 정말 원래 산이었을까 의심이 들 만큼 넓고 반듯했다. 16개나 되는 선석이 일직선으로 곧게 놓여 있는 것 자체가 놀라웠고, 그 뒤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야드에 컨테이너들이 쌓여있는 모습 또한 장관이었다. 바람과 안개가 심하고 육지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있어 터미널로서 결코 좋은 입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강력한 의지로 32KM 짜리 다리를 놓아가며 그렇게 거대한 항만을 만들었다니, 역시 대륙의 스케일이란 이런 것인가 싶기도 했다.

교육 중에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2006~2008년 유례없던 해운시장 호황’, ‘금융위기와 해운시장의 몰락’, ‘선박공급 과잉’, ‘해운경기의 악순환’이다. 중국의 폭발적인 경제성장과 더불어 해운 물동량이 급증, 해운업은 사상 유례없던 호황을 맞았었고, 이에 해운사와 선주들은 너도나도 경쟁하듯 선박을 주문했었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가 왔고, 선박은 남아돌게 됐으며, 해운시장은 추락했지만 호황일 때 주문했던 배들은 계속 인도됐고, 해운사는 한정된 물량을 취급하면서 배 값과 기름값을 대느라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런 해운사에 대출해줬던 은행들 또한 힘겹긴 마찬가지라, 이제는 해운의 ‘해’ 자만 들어가도 투자를 꺼린다는 말까지 있었다. 언젠가 이 기나긴 불황이 끝나 다시 호황이 오더라도 다시는 그 때와 같은 잘못된 투자는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새삼 절실히 깨달았다. 우리 해운업계와 금융기관이 서로를 더 잘 이해했더라면, 그래서 조금만 더 앞을 내다보고 서로 도왔더라면 지금과 같은 선복과잉과 불황은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일부 그리스 선주들이 한다는 역행투자 - 불황기에 사서 호황기에 파는 - 를 우리나라 해운업체와 금융기관들도 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런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가기 위한 첫걸음이 바로 이 ‘선박금융’ 교육인 것 같다. 솔직히 회사에서 투자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만났던 은행원들은 절대 손해 안보면서 이자를 한 푼이라도 더 받아가려는 고리대금업자처럼 보였다. 아마도 금융기관에서 보기엔 확실치도 않은 사업계획을 가지고 돈만 더 싸게 빌려달라는 우리가 도둑(?) 같았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 수업을 통해 서로의 입장을 많이 이해하게 됐고,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생겼으니 앞으로의 투자는 회사와 금융기관이 서로 윈윈하는 방식으로 좀 더 부드럽게 진행되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교육 시작 전에 우리 팀장님께서 하신 말씀은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 교육 내용은 예상했던 것보다 알찼으며, 인맥 형성에는 팀장님 말씀대로 정말 좋은 기회였으니까. 내가 언제 또 이렇게 유능하고 열정적인 경쟁선사ㆍ금융기관 종사자 분들과 만나 친해질 수 있을까. 수업을 진행하신 강사님들 뿐 아니라 동기생 여러분과의 대화를 통해서도 많이 배웠고 좋은 자극도 받았다. 앞으로의 경력개발에 든든한 자산을 얻은 기분이다. 이런 교육을 수강할 기회를 거의 아무런 노력 없이 얻었으니 난 정말 운이 좋았다.

“그 교육 어때?” 라는 동료들의 질문에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정말 재밌고 유익하니 꼭 참여해보라고. 부디 이런 교육이 앞으로 더 늘어나고, 그에 대한 관심과 지원도 풍부해져서 우리나라에도 일본이나 유럽 부럽지 않은 해운클러스터가 형성됐으면 좋겠다. 해운업계와 금융기관이 서로 도와 어떤 불황에도 굳건하며 호황은 함께 누리는 진짜 해양강국. 우리 동기생 모두가 그런 나라에서 일하는 자랑스런 해운인·금융인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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