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속의 풍경 -九州 기행

 

 
 

 

떠남, 언제나 마음 설레다
한국해사문제연구소에서 주최하는 ‘바다의 날’ 기념 제18차 선상세미나 및 일본항만시찰에 회사 배려로 우리 부부가 참가하게 되었다. 처음엔 늘 개별여행을 하였던 아내는 빡빡한 단체여행 일정을 보고 다소 낯설어 했지만, 이내 전문가에게 검증된 일정임을 믿고 여유롭게 즐기기로 했다. 초속으로 꾸려진 여행 가방을 끌고 우리는 서울역으로 향했다. 직항으로 1시간여 만에 가는 일본을 오랜 시간 걸려 가느냐고 투덜대는 아내에게 나는 다시금 이 행사가 선상세미나임을 강조한 뒤, 약 2시간 30분만에 부산에 도착했다. 택시로 5분 거리인 부산국제여객터미널에 도착하니 고려훼리 카멜리아 매표소 앞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160명 규모의 참석자들의 원활한 수속을 위해 해사문제연구소 관계자들과 행사 진행자들은 동분서주하는 모습이었다.


모든 수속을 마치고 ‘뉴카멜리아호’에 승선하였다. 태어나 처음으로 훼리를 타본다는 아내가 신기한 듯 배안과 배정된 2인 객실을 둘러보자, 젊은 부부임에도 특별히 2인실로 배정해준 주최측의 배려에 감사한 마음이었다. 간단한 저녁 식사를 마치고 蘇在英 숭실대 명예교수님의 ‘일본 문화의 겉과 속’에 대한 강의가 시작되었다.


우리가 갈 일본 규슈九州의 후쿠오카 다가와의 英彦山에는 그 유명한 논개와 적장 게야무라의 사당이 있으며, 심수관가의 조선 고본 淑香傳 등 수많은 임진왜란의 유적과 유물이 전해지고 있는 곳이다. 특히 蘇在英 교수님의 강의 중 일본 문화의 겉과 속에서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라는 내용이 가장 가슴에 와 닿았다. 예의 바르면서도 겁이 많고 보수적이면서도 새로운 것을 잘 받아들이고, 예술을 즐기고 꽃과 정원 가꾸기를 좋아 하지만 동시에 칼을 숭배하고 무사에게 최고의 명예를 돌릴 수 있는 일본인.. 그게 일본인이라고 설명해주었지만 일본 생활을 경험하지 못한 대부분의 한국인으로서는 일본을 더욱 깊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부분에 대해 주의 깊게 관찰해야지만 가깝고도 먼 일본이 더욱 가까워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열정적인 강의를 통해 일본을 알게 해주신 교수님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한다. 

 

출발 18시간만에 일본에 도착하다
일상의 속도와 전혀 다른 배안에서의 한적함은 조금은 낯설었지만 곧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 배는 이미 일본 규슈 후쿠오카현에 위치한 하카타항에 도착해 있었다. 후쿠오카는 15~16세기 명나라와의 무역으로 발전하였으며 메이지明治때는 후쿠오카와 하카타가 합병되었고, 쇼와 때는 키타큐슈의 중화학공업과 지쿠호 등의 석탄광업의 발전에 따라 규슈 제일의 대도시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이번 여행은 규슈 남쪽인 가고시마나 미야자키 등이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며 규슈를 종단하는 긴 여정으로 우리 부부는 더욱 느긋한 마음으로 버스에 올라탔다. 집에서 출발한 지 꼬박 18시간 만이었다.


 
가고시마, 따뜻한 흙의 흔적을 만나다
후쿠오카에서 남쪽으로 약 3시간 30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가고시마였다. 안내문구의 설명은 이렇다.
 “가고시마는 고쓰키강甲突川의 삼각주에 자리하고 있으며, 시가지 전면의 만灣안에는 가고시마의 상징이자 일본 최초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활화산 섬인 사쿠라지마섬(최고점 1,117m)이 연기를 뿜고 있다. 뛰어난 경치가 이탈리아의 나폴리와 비슷하다고 하여 ‘동양의 나폴리’라고 일컬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점심식사를 한 뒤 따뜻하게 손을 흔들며 배웅해주는 식당 직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우리일행은 심수관 도예지로 발길을 옮겼다. 심수관은 1598년 일본에 끌려와 박평의朴平意와 함께 사쓰마도기[薩摩燒]를 연 심당길沈當吉의 14대손이다. 1946년 13대 심수관沈壽官이 죽자, 14대 심수관을 습명(襲名:선대의 이름을 계승함)하였다고 한다. 그 후 도자기 제작에 힘써 일본 도예계를 이끌었으며, 1989년 한국 명예총영사가 되었다.


특히 심수관가家는 한국성을 고집하며 400여 년 간 가업을 계승해오고 있는 사쓰마도기의 종가로 유명하다. 아담한 대문을 들어서 고즈넉한 심수관 도예지를 산책하며 둘러보는데 통유리로 된 창문 안에서 도기제작 과정을 볼 수 있었다. 한차례 관광객 무리가 지나간 뒤, 우리부부는 고요해진 도예지에서 잠깐이나마 옛 도예가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 목적지는 시로야마 전망대이다. 시로야마 전망대는 서울의 남산과 비슷한 곳으로 600여종의 아열대 식물이 무성하게 자라는 곳이라고 한다. 이곳은 또한 일본 서남전쟁의 마지막 격전지로 일본 개화기 때의 정치가인 사이고 다카모리가 자결한 동굴도 볼 수 있었다.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한 사이고 다카모리, 그의 죽음 이후 일본은 반정부운동의 중심이 자유민권운동으로 방향을 선회하여 근대화에 빠르게 진입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전망대에 오르니 멀리서 다음 목적지인 사쿠라지마섬이 한눈에 들어왔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배를 타고 사쿠라지마섬으로 향했다. 총면적 77㎢, 일부는 활화산 지대인 사쿠라지마섬은 가고시마만 북부에 있는 섬이었으나 1911년 화산폭발로 육지와 연결되었다고 한다. 기이한 용암의 흔적과 바위, 그리고 잿빛의 흙을 아내는 신기한 듯 보고 만지고 밟고 야단이다. 찬란한 도기로 탄생되는 흙과 활화산의 흙, 옛 숨결을 간직한 다양한 흙의 흔적을 뒤로 하고 첫 숙박 장소인 이와사키호텔로 향하였다. 구불구불 산길을 돌고 돌아 드디어 도착한 호텔은 무척 한적하고 편안한 호텔이었다. 객실 베란다에서 마을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이색적인 온천 수증기와 푸르른 수풀을 보니 어린 시절 일본 애니메이션 장면들이 떠올랐다. 유카타로 갈아입고 일본 가이세키 정식이 준비된 홀에서 우리는 처음 만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 이후 호텔 근처 계곡 온천을 찾은 우리 부부는 낯선 유황냄새에 조금은 역했지만 익숙해지니 곧 몸이 노곤해지는 것이 마치 피로회복제가 온몸으로 쓰며드는 느낌이었다. 역시 이것이 일본 온천이구나 싶었다.

 

기리시마 신궁
기리시마 신궁

천국의 자연, 지옥의 이동거리
여행의 힘, 든든한 아침을 먹고 국립공원인 에비노고원으로 향하였다. 다시 버스를 타고 꼬불꼬불한 길을 1시간 여 달리자 가라쿠니다케산, 시라토니산 등으로 둘러싸인 해발 1,200m의 고원지대인 에비노고원이 나타났다. 공원의 이름이 새우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에비(새우)노고원은 작은 동산과 동산을 연결하기 위한 다리가 이곳저곳에 놓여 있어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아내는 일본의 우거진 나무와 오래 세월의 흔적인 이끼를 보고 연신 감탄을 한다. 아쉽고 짧은 산책을 마치고 우리일행은 기리시마 신궁으로 향했다.
가고시마현 기리시마 시에 있는 기리시마 신궁은 540년 긴메이 천황시대에 창건되었다고 하며, 일본 건국 신화와 관련이 있는 신사로서 하늘에서 내려온 신이라는 니니기노 미코토瓊瓊杵命를 숭배하는 신궁이라고 한다. 넓은 경내는 수령 700년이 넘은 삼나무가 있는데 그 장엄함에 숙연해지는 듯하다. 주홍색 본전 옆에 있는 2그루의 벚나무는 쇼와천황이 참배하면서 기념수로 심은 것이라고 한다. 경내에는 일본 신사나 절에서 기도하기 전에 심신을 정결히 하기 위해 손을 깨끗이 씻는 용도로 개수대가 있는데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것을 약수 물이 있는 것으로 오인하여 물을 시원스럽게 마신다고 한다. 우리 부부처럼. 그리고 물을 먹는 순간 참 달게 느껴지더니 이야기를 듣고 나니 속이 왠지 불편한 느낌이었다.
신궁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신앙심이란 것에 대하여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역사상 신앙이 독실한 나라가 모두 부유하고 문명이 개화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티베트처럼 너무 종교에만 몰두하고 외부의 변화에 둔감한 나머지 중국에 먹혀버린 것을 보면 종교가 인간의 발목을 잡게 될 때 얼마나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는지를 똑똑히 알게 해준다. 중세 유럽과 현대 중동지역의 암흑과 피의 역사로 물들이게 한 근원도 결국 종교 때문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일본인들의 자유분방한 종교 인식이 부럽기까지 하다. 이들의 종교 인식은 고대 로마인들을 많이 닮은 것 같다. 일본 신궁의 규모 있는 신사 건축물 등을 보면 독특하면서 왠지 고급스럽고 정제된 느낌도 든다. 정말 잡신들의 공연장 같다는 생각도 든다. 다음 일정에 쫓긴 우리는 다시 버스에 올라타고 3시간 정도를 달려 미야자키로 향했다.


아내는 여행이란 ‘사람여행’이라고 믿는다. 현지 사람들의 삶과 흔적, 그리고 예기치 못한 만남에서 오는 따뜻함을 사랑한다. 빡빡한 일정임에 서로 친해질 기회가 없던 우리 일행은 장시간의 이동거리에서 어느새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최연소 참가자인 박별양(생후 9개월)과도 친해진 우리 부부는 별이의 해맑게 웃는 모습에 매료되어 여행의 끝난 지금도 별이 어머니에게 사진을 부탁하며 별이의 생활을 궁금해 하고 있다. 


드디어 다다른 아오시마섬은 미야자키현 미야자키시 중심부에서 남쪽으로 약 15km 떨어진 태평양 상에 있는 둘레 약 1.5km작은 섬이다. 섬 주변은 ‘도깨비 빨래판’이라고 불리는, 해식海蝕 작용에 의하여 빨래판 무늬로 파인 바위로 둘러싸여 있다. 이 곳은 1934년 ‘아오시마 융기해상隆起海床와 기형파식흔奇型波蝕痕’으로 국가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고 하며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것은 도깨비들이 밤마다 이곳에서 몰래 빨래를 한다고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해안선 모습들이 전부 빨래판 모습을 하고 있는데 정말 기막힌 장관이다. 그리고 이동한 해안선을 따라 해안절벽에 건축된 우도신궁으로 이동했다. 신화속에 등장하는 젖바위도 보고, 동전을 던져 넣으면 행운이 온다는 바위에 동전을 넣어 골인시키기도 하며 짧은 투어를 마치고 헤이와다이공원(평화대공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헤이와다이공원은 미야자키 시내 중심부에는 기초면적이 무려 1,070㎡, 9,900㎡ 부지에 달하는 높이 37m의 거대한 탑이 우뚝 솟아 있었다. 바로 ‘평화의 탑’이다. 일본 기원 2600년을 기념하고 나아가 세계 평화를 염원하며 쌓아올렸다는 명분은 그럴싸하다. 그러나 정작 이 탑을 세운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면 평화대공원이라는 아름다운 명칭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1940년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던 당시 그들의 위용을 과시하려고 점령지에서 가져온 돌을 기단으로 하여 세운 것이라 한다. 태평양을 향하고 있는 탑 정면에는 ‘핫코이치우(세계를 하나로, 우리 것으로 한다)’라는 글귀가 새겨 있어, 당시 일본인의 세계 정복에 대한 야심과 그로 인해 평화 아닌 평화를 상징하게 된 이 탑의 아이러니를 반증하고 있다. 그야말로 아시아 전역에 대동아 기를 꽂으러 나섰던 제국주의 시절 일본의 야심을 감지해볼 수 있는 역사적 산물이다. 이곳은 또한 손벽을 치면 독특한 새소리간은 울림이 탑 쪽에서 퍼져 나온다. 오늘 하루 바지런히 관광지를 둘러본 뒤 지친 몸을 이끌고 쉐라톤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특별히 아내가 수도권의 유명 CC, 리조트에 판촉 지배인으로 근무하다보니 이런 특급호텔에 오면 꼭 인스펙션을 하곤 하는데 시간이 너무 늦어 잠시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오, 아소! 완전 맘에 들어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아소이다. 역시 특급호텔의 조식은 훌륭했다. 종류보다는 메뉴 하나하나에 정성과 맛이 깃들여 있어 천천히 즐기고 싶었으나, 바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버스에 황급히 올라탔다. 아침에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며 볼멘소리를 하는 아내에게 단체활동에서는 서로를 배려해야 함을 이해시켜야 했다.


셋째날 첫 관광지는 다카치호 협곡이었다. ‘고카세 강’은 ‘아소 용암’이 침식함으로써 형성된 V자의 협곡으로, 적색을 띤 절벽이 양편에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는 높이 17미터의 절벽에서 떨어지는 ‘마나이노 폭포’는 말 그대로 경승지였다. 협곡을 따라 걷는 산책길도 좋지만 강에서 보트를 타며 즐기는 사람들을 보니 무척 부럽다며 아내는 아쉬워했다.

아소 활화산
아소 활화산

다음 여행지는 고대하고 고대하던 일본 최대 칼데라 화산 아소활화산이다. 유제품을 매우 사랑하는 아내는 넓은 초원에서 방목하는 소로부터 얻는 특A급의 요거트와 아이스크림을 먹을 생각에 신이 난 모양이다. 약 2시간을 달리자 창밖으로 풀이 천리까지 나 있는 곳 구사센리草千里에서 한폭의 수채화 같은 아소산의 정경이 나타났다. 아소활화산을 보기 위해서는 1958년부터 운행한 53년의 역사를 가진 로프웨이를 타고 해발 1,258m의 나카다케에 올랐다. 아소산은 아소오악이라고 하는 5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다카다케, 나카다케, 기시마다케, 에보시다케가 있으며, 최고봉은 해발 1592m의 다카다케이며 아소산을 대표하는 봉우리이며. 마그마가 끓고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분화구 내부를 아주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는 사실상 세계 유일의 분화구이다. 화구서역에 내려 조금만 걸어가면 이산화 유황 성분의 짙은 연기가 올라오는 분화구를 만날 수 있었다. 활화산이어서 그런지 언제 터질 줄도 모르는 독한 이산화유황까지 내뿜고 있어 분화구 주변은 목책이 둘러쳐져 있었다. 그리고 주변에는 만약을 위하여 주변에 피할 수 있는 대피소도 설치되어 있다. 또한 순간순간 변하는 일기에 따라 실시간으로 출입이 통제되는 등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분화구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로 붐볐다. 특히 규슈를 찾는 한국 단체관광객들은 거의 다 거쳐 가는 곳이어서 그런지 한국인지, 일본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이며, 덕분에 우리말로 써놓은 광고 문구까지 내 건 좌판들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이제 내려가야 할 시간이기에 산 아래로 몸을 돌려보니 탁 트인 전경에 가슴이 시원해졌다. 화산지대가 쫙 펼쳐지고 그 사이사이에 걸어 내려가야 할 길이 놓여 있었다. 내려가는 길에 보이는 돌 하나, 흙 부스러기 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신기해 보였고 영겁의 세월을 견딘 자연이 찰나를 사는 우리에게 묵묵히 그 위대함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기쿠치 계곡
기쿠치 계곡

마지막 관광지인 기쿠치 계곡으로 향해 버스는 다시 50여분을 달렸다. 기쿠치 계곡은 기쿠치강의 상류 수원지에 해당된다. 아소큐슈국립공원의 특별보호지구로 지정되어 이른바 ‘휴식의 숲’이라는 애칭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가파르지 않은 계곡길을 따라 흐르는 담수는 크고 작은 여울과 폭포를 이루고 있는데 우리는 30분 정도 삼림욕을 하는 기분이었다. 아소산 밑으로 내려와 일본 전통 다다미룸으로 이루어진 호텔에 여장을 풀고 호텔앞 마트에서 산 일본의 각양각색의 맥주를 맛보는 기분이란! 한 입 시원하게 삼킨 맥주캔을 잡고 아내가 흥에 취한다.


“오, 아소! 완전 맘에 들었어!”

 

배려는 여행자의 도덕
아쉬운 마지막 날 아침이다. 12:30분 출항하는 뉴카멜리아 호를 타기위해 다시 하카다 항만으로 향하였다. 하카다 항만 앞 면세점에 들른 우리 부부는 이미 도착한 다른 여행객들로 붐비는 곳에서 서로 밀치는 여행객들의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작은 것, 예를 들면 문을 열어준다거나 굳이 경쟁하지 않아도 될 장소에서는 순서를 양보한다거나 길을 터준다거나 등등 여행지에서의 우리의 모습이 곧 그 나라 사람들에게 인지되어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 후배들이 대접받는 수준도 달라진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여행지에서의 배려하는 태도는 미덕이 아니라 도덕이다. 승선을 위한 모든 수속을 마치고 뉴카멜리아호에 올랐다. 그리곤 아쉬움에 마음으로 후쿠오카를 향해 손을 흔든다.


“안녕! 후쿠오카 다시 볼 때는 너의 숨겨진 모습을 여실히 보여 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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