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해운업에 대한 사법처리를 보면서-


해양수산부는 만들어 놓고, 성공한 해운인은 구속하고
얼마 전 한국 사람으로 해외에 나가 해운업에 대성한 사람이 그의 사업의 일부를 국내에서 영위하였는데 우리나라에 내야 할 세금을 내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로 천문학적인 금액의 벌금을 선고받고 다시 그 사주인 피고가 징역형을 선고받고 그 자리에서 법정 구속되었다는 기사를 읽은바 있다. 필자는 그분하고 일면식도 없고 그의 죄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아는바가 없다. 그러나 거의 평생을 해운업과 관련된 직업에 종사하였고, 인생후반에는 해운업과 관련된 학문분야에서 종사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사태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붓을 들어 몇 가지 당국자들이 참고할 만한 의견을 개진하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  대선 공약으로 해양수산부의 부활을 공약하였고, 그것이 실행되어 해양수산부가 설립되었다. 이것은 해양수산 산업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겠다는 통치권자의 강한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 해외에서 고생 끝에 세계적인 대 해운기업을 일으키는데 성공한 해운업체 CEO를 구속 한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해운업을 하지 말라는 공권력의 공식신호로 필자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다국적 기업성이 강한 해운업의 전지구적인 활동 메커니즘을 어느 정도 아는 필자로서는 지금 문제가 된 케이스의 경우, 위법성 논란에 앞서 대부분 문제가 된 행위들이 거래 관행으로 정착된 행위라는 점이다. 국제적 관행으로 정착된 행위들이 실정법상의 법조문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천문학적인 벌금을 부과하고, 기업의 최고경영자를 감옥에 가둔다면 이는 우리나라에서는 해운업을 하지 말라는 것과 같은 말이다.

 

국제상거래는 국제관행을 지키지 아니하면 하기 어렵다. 국제거래관행과 법조문 사이의 구조적인 모순을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인가를 한번쯤은 심사숙고해야 한다.  해운업은 국제성이 강한 산업이고, 완전경쟁시장에 노출되어 있다. 불과 0.1%의 차이로 국제경쟁에서 지고 이기고가 결판이 나는 산업이다. 정착된 국제관행을 벗어나서 나만 독야청청하기 어려운 사업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흔한 말로 일벌백계니 뭐니 해서 툭하면 잡아가둔다면 해운업자들이 어떻게 해야 하나? 다음 셋 중의 하나다. 첫째는 정부 공권력이 하라는 대로 하다가, 경쟁에 패퇴하여 사라지거나, 기업을 팔아 치우는 것이 둘째요, 셋째는 자기 회사를 외국으로 송두리째 도피시키는 방법이다. 여러분들이 해운기업의 CEO라면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해운업자를 나가라고 등 떠미는 사법당국 
해운업은 다국적 기업의 대표적인 사업이고, 국제성이 강한 산업이다. 동시에 옛날과는 달리 해운업은 사업수행에서 국가적인 색채가 가장 엷어진  산업이기 때문에 간단한 문서 한 장으로 사업의 국적이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 있는 산업이다. 그런 예를 보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대표적인 정기선사였던 APL과 SEALAND사가 각각 싱가포르 및 덴마크 선사에게 팔렸다. 이 두 선박회사가 어느 나라 해운회사일까? 또 보도에 의하면 일본의 대표적인 선사들이 싱가포르 등 외국으로 영업본부나 운항본부 그리고 선박관리부서를 줄줄이 옮기고 있다. 이들 선사가 일본선사인가 싱가포르 선사인가, 어느 것도 정답이 아니다. 그대로 글로벌 기업일 뿐이다.

 

또 몇 해 전 우리나라 대표적인 해운회사가 경영난으로 운항하던 선대 중 자동차운반선대를 모두 외국인에게 팔았다. 그런데 이것을 산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회사를 설립하고, 운영하고 있다. 이 회사가 우리나라 해운기업인가 유럽나라의 해운회사일까? 이러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해운업의 국적을 바꾸기가 다른 산업과 달리 쉬운 이유는 선박, 그 중에서도 국제항해에 종사하는 상선은 생산수단인 선박이 움직이는 것을 전제로 하는 시설이기 때문에 활동 중인 상선은 적어도 활동시간 중 반이 바다위에 떠 있고, 나머지 반 정도의 시간은 항만에서 일한다. 항만에 체류 중인 시간 중 90%이상 외국 항만에 머문다. 이러한 속성 때문에 해운업을 다른 나라로 이적하는데는 문서 몇 장이면 된다. 다른 제조업 같이 공장을 이전하고 종업원이 이사 가고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선원도 다국적화 하여 본사가 어디 있든 선박에 승선중인 선원의 국적은 전혀 관계가 없다.


옛날에는 선박의 국적을 이전하는 것이 약간 시간과 절차상 문제가 될 수도 있었으나, 2차 대전 후에 나타난 편의치적선제도를 지구상의 선박의 70~80%가 이용하고 있으니 선박의 국적이 애초에 문제가 되지도 않는다. 편의치적선에 승선 중인 선원은 처음부터 다국적 선원이다. 가장 최후까지 남았던 해운업의 국적요소는 선박의 국적의 편의치적화, 자사선에 승선중인 선원의 다국적기업화로 전통해운국에서 상선의 공동화가 일어나자, 유럽의 전통해운국들이 마지막 잡고 늘어진 것이 본사 사무실만이라도 국내에 두어달라고 매달린 것이다. 그것이 1990년대 이후 서구제국에서 일어난 해운클러스터 운동이고, 톤세제도다. 자기들을 선진국으로 키워준 해운업이 완전히 싹까지 없어질 것을 우려한 선진국의 마지막 몸부림도 약효는 별로 없었다. 지금은 영국해운이니, 독일해운이니 하는 말이 지상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이러한 해운업을 우리나라에서만 제발 외국으로 나가라고 등 떠밀고 있으니 이것이 해운대국을 건설하겠다고 없어졌던 해양수산부를 다시 부활시킨 대한민국이 맞는가. 이러한 분위기가 계속 된다면 누가 우리나라에서 해운업을 하겠는가? 사법당국자가 보면 기업경영자들이 위법과 탈세를 밥 먹듯이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기업가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사법당국의 칼끝이 자기를 향하는 것이다.      

 

그리스 해운정책에서 배워라
그리스는 일찍부터 해운대국으로 성장한 나라다. 필자가 오래 전 해운업과 관련된 공직에 있을 때 여행 중 그리스에 들러 그리스 정부의 해운국장을 만난 일이 있다. 그리스가 세계적인 해운국이라고 하지만 그리스 선박은 거의 없고, 그리스인이 가진 편의치적선만 많이 있다. 이러한 그리스에서 해운국이 무엇을 할지 궁금하여 물었더니, 그리스에는 해운업자나 해운인은 많지만 그리스 국적의 선박은 없다. 해운국이 하는 일은 해운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해운인들이 해운업을 하면서 왜 그리스안에서 해운업을 하지 않는지를 알아내어 그들의 사업을 그리스 안으로 가지고 들어오도록 설득하고 유인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해운업에서 조금씩이라도 세원이 잡히기도 할 것이나, 세수입은 부수적인 것이고, 가장 바람직한 것은 그리스인이 보유한 선박을 국내로 이적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최재수 전 한국해양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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