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조범선에서 철제기선으로의 전환

전술한 타이타닉호의 “신도 이 선박만은 침몰시킬 수 없다”는 장담은 당시로서는 과장 광고만은 아니었다. 나무에 비하여 수십 배 강도가 높은 강철로 선박을 만들었으므로 웬만한 폭풍우나 파도에 끄떡도 하지 않을 자신이 생겼고, 자연의 힘을 이용하는 범선이 기관동력으로 움직이는 기선이 되면서 전천후 항해가 가능하게 되었다. 목조 범선시대에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하였던 불가항력에 의한 사고는 거의 걱정을 안 해도 될만하게 된 것이다. 19세기말이 되면서 국제사회가 안정기에 접어들어 해적선도 거의 사라졌다. 선박의 안전을 해할만한 자연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인적 요소도 거의 사라진 것이다. 이러한 자신감이 바로 타이타닉호와 같은 인간의 오만을 불러왔다.

 

목조범선시대까지만 해도 통계제도가 제대로 정비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정확한 해난 통계는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대체 매우 높았다는 것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한번 모항을 떠난 목조범선이 다시 그 모항으로 돌아올 확률은 그리 높지 아니하였다.  돌아올 시기도 정확하게 예측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다. 그러다가 강제기선으로 대체되면서 해난사고는 현저히 줄어들었고, 한 항구를 출발한 선박이 목적항에 도착할 시기도 어느 정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해난사고는 더 이상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기에 충분한 상황이 되었다. 만약 타이타닉호의 사고만 없었다면 사람들은 더 이상 해난사고는 없다고 믿고 그 문제를 잊어버릴 상황이 지속되었다.

 

여전히 높은 해난사고율

그러나 상황은 실제와는 달리 발전되어 갔다. 어느 날 되돌아보니 거의 없어졌다던 해난사고가 다시 급증하고 있었다. 어느 자료에 의하면 1971년 현재 500총톤이상의 전 세계 상선량이 2만 9,500척이었다. 이 중 이 해에 사고로 전손 처리된 척수가 175척이었다. 부분적인 피해를 입은 사고는 4,174건이나 되었다. 전손 사고율은 0.6%였고, 부분적인 피해를 낸 선박은 7.3%나 되었다는 계산이다.

 

해난사고 통계(1971년)

해난사고 원인        전손사고 척수      분손사고 척수
기상요인                      54척             455척
좌초                          40척             656척
충돌                          20척            1,200척
접촉                          11척              766척
화재 및 폭발                  42척              340척
기타                           7척              757척
행방불명                        1척

자료 출처 : P.M, Alderton 저, Sea Transport, P. 190, 1980년.

 

다음 그래프는 위 통계와 같은 저서에 나타나 있는 것으로 주요해운국의 국가별 전손사고율을 도표화한 것이다.   

위 통계와 그래프를 분석해 본 결과 세계상선 전체의 평균보다 높은 전손율을 기록한 국가는 그리스와 라이베리아가 대표적인 국가였고, 세계 평균보다 낮은 전손사고율을 기록한 국가는 영국이었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유도할 수 있다.


1) 철제기선이 일반화된 현재에도 해난사고는 의외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이를 결코 무시할 수 없다.
2) 해운업에 관한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고 비교적 현대화된 선령이 낮은 선박을 보유한 영국이 좋은 해난사고 기록을 유지하고 있다.
3) 편의치적국이 일반적으로 세계 평균보다 높은 해난사고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4) 그리스는 오랜 해운업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보유선박의 20%에 가까운 선박이 20년 이상이 된 노후선이다. 이것은 당시 전 세계 선박중 20년 이상 된 선박이 10% 정도였던 것에 비하여 노후선을 현저히 많이 보유하고 있다. 이는 자본비를 크게 줄일 수 있어 채산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으나, 사고면에서는 나쁜 기록이 나올 수밖에 없다.  

 

안전의 경제성과 공권력 개입의 필요성

사고도 경제성을 따져보아야 한다는 결론이 된다.  
안전율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단순하게 “사고를 내지마라” “조심 하라”는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고, 여러 가지 조치가 필요하다. 이 조치에는 비용이 수반하게 마련이다. 이 비용은 안전율을 제로 상태에서 일정수준까지 향상시키기 까지는 그리 큰 비용이 소요되지 않는다. 안전율 향상에 따른 이익(해난사고를 줄이는데 따른 경제적 이익)이 안전율 향상에 소요되는 비용보다 크다. 안전에 대한  In Put 보다 Out Put(In Put<Out Put)이 더 크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안전문제를 기업에게 맡겨놓아도 과학기술의 발전에 수반하여 자동적으로 안전율이 향상된다.

 

그러나 일정수준까지 안전율이 올라가면 그 후부터는 안전율의 향상이 더디어진다. 그러한 관계를 도표화한 것이 위 그림이다. 이 그림에 의하면 안전율 제로에서 상당한 수준까지는 안전율의 향상에 따른 비용곡선이 매우 가파르게 올라간다. 투입하는 비용에 비하여 그 효과가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안전을 위한 여러 가지 조치들이 경제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일정 수준까지 올라가면 이 상향곡선이 매우 완만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투입된 비용에 비하여 안전율의 향상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100%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비용과 거의 평행선을 긋게 된다. 투입하는 비용에 비하여 생산되는 결과가 작아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교통기관 종사자, 특히 교통기관을 운영하여 사업을 하는 운송관계기업들의 경우, 더 이상 안전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으려 한다. 안전의 경제성이 상실되는 것이다(In Put>Out Put). 이 단계가 되면 안전문제를 교통종사자나 운송관계 기업의 자율에만 맡겨놓을 수 없게 된다. 공권력이 안전문제에 개입하여 안전에 관한 여러 가지 의무를 강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외에도 안전문제에 관한 한 국가공권력이 개입해서라도 안전율을 향상시켜야 하는 이유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첫째, 해난사고의 피해가 당사자의 문제로 한정되지 않고 해양오염피해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선의의 제3자나 공공의 이익에 막대한 지장을 준다는 사실에 관하여는 전술하였다.
둘째, 전혀 예상하지 못하거나 설마 그런 일이야 있겠느냐고 생각하던 대형 재난이 현실화되는 경우가 많다. 사고는 아니고 테러였지만 9.11 테러 같은 것이 바로 그런 예다. 이러한 대재앙은 일어날 확률이 백만분의 1이나 천만분의 1일지라도 그에 철저하게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임무는 국가가 하는 것이 당연하다.
셋째, 예상이 가능한 사고, 예를 든다면 협수로에서의 좌초 같은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사고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를 피하는 지름길은 선원으로 하여금 경험과 교육 훈련, 그리고 적정수준의 기술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소요되는 비용은 매우 저렴하다. 그러나 공권력으로 강제하지 않을 경우, 이를 소홀히 할 염려가 있다.

 

사고원인의 변화 - 불가항력에서 인적과실로

가장 큰 변화는 사고의 원인이다. 목조범선시대에는 악천후로 인한 사고나 바다의 특성에 따른 여러 가지 위험이 원인이 되어 일어나는 소위 불가항력이 사고 발생원인 중 가장 비율이 높았다. 그중에도 천재지변(Act of God)은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사고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강제기선으로 대체되면서 불가항력에 의한 해난사고는 많이 줄어들었다. 강제기선으로의 선박 대체에 더하여 통신제도의 발달을 위시한 각종 과학지식의 보급도 불가항력에 의한 해난사고의 감소에 큰 도움을 주었다. 해양에 대한 정밀한 조사를 바탕으로 제작된 정밀한 해도의 보급도 한몫을 하였다.

 

불가항력에 의한 사고가 줄어들면서 해난사고의 발생빈도도 현저히 낮아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결과 해난사고의 원인 중 비중이 낮아서 별로 눈에 띠지 않던 인적과실에 의한 사고비율이 통계상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되었다. 발표되는 해난사고의 원인에 대한 통계를 보면 60-70%가 선원의 과실로 인한 사고로 분류되고 있다. 육상관리인원의 과실까지 합치면 이 비율은 훨씬 더 높아질 것이다. 미국의 코스트 가드가 1957, 58, 59년 3개년간 미국해역에서 발생한 충돌사고 398건을 정밀 분석해 본 결과 그 중 390건이 인적과실에 의한 사고였다고 한다. 충돌사고만 놓고 본다면 98%가 선원의 과실에 의한 사고다. 또 하나 유의할 것은 사고원인의 통계에는 맹점이 있다. 그것은 사람이 자기변명을 한다는 점이다. 해난사고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보지 않는 해상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사고의 원인이 되는 인적과실은 주로 선박의 당직을 서는 브릿지에서 일어난다. 일단 사고가 나면 사람의 속성 상 일단 자기 책임을 피하고 싶어 여러 가지 핑계를 대고 변명을 한다. 육상에서 사고를 처리하는 사람으로서는 이 변명을 뒤집을 반증 자료를 확보하기 어렵다. 선원의 변명을 사실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해난사고의 90%이상이 인적과실에 의한 사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는 의견을 내는 전문가도 있다. 변명이 통하기 어려운 해상 충돌에서의 인적과실이 전술한 바와 같은 것을 감안하면 이 의견도 무시해선 안 된다.   
 
인적과실 증가의 원인

전술한 토리 케년호 사고를 계기로 해난사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사고의 원인 중 인적과실로 인한 사고가 많다는 것이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해난사고의 원인 중 90%이상이 실질적인 인적과실에 의한 사고라면 조금만 주의를 더하여 인적과실을 줄인다면 그만큼 사고를 줄일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인적과실이 왜 증가하는가? 그 원인을 규명하고 예방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2차 대전후 특히 인적과실이 증가한 이유는 다음과 같은 원인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① 선원직업의 매력감퇴와 선원 자질의 저하

경제수준이 향상되고, 빠른 교통과 통신이 발전하면서 종전에 비하여 선원직의 매력이 크게 저하되었다. 100여년 전까지만 해도 대형선의 선장은 어느 사회에서나 그 사회의 지도급 인사로 대우를 받는 존재였다. 보수도 육상직에 비하여 고임금이었다. 선원직은 인기직종이었고, 선장이 된다는 것은 젊은이의 희망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경제수준의 향상으로 육상에도 고임금 직종이 늘어나면서 선원직은 상대적으로 인기가 적어졌고, 통신제도의 발달로 선장에게 주어졌던 선박운항 및 영업과 관련된 여러 가지 권한도 육상으로 많이 이관되었다. 무엇보다 경제수준이 향상되면서 가족을 떠나 해상의 선내라는 좁은 공간 안에서 생활하여야 하는 선원직에 청년들이 싫증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인기직이던 선원직이 비인기직종으로 전락하면서 선원의 이직이 증가하고, 선원직을 희망하는 젊은이들의 질도 저하되어갔다. 이런 저런 사유로 선원의 자질이 전반적으로 크게 저하되었다.

 

② 편의치적선의 출현과 제3국 선원의 승선

편의치적선 제도가 정착되면서 제3국 선원이 편의치적선에 많이 승선하게 되었다. 편의치적선에 승선하는 선원들의 국적을 보면 경제와 교육 시스템이 상대적으로 낙후된 저소득 국가의 선원들이 많다. 그들은 이력서상의 학력이나 교육수준에 비하여 실질적인 자질이 낮은 경우가 많다. 그러나 편의치적국에서는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별 다른 조치를 하지 않고, 형식적인 구비서류만 갖추면 면허를 발급하고, 승선을 허용한다. 그 결과 자격미달인 사람들이 선장이나 고급해기사로 취업하는 경우가 많다. 심한 경우, 선박운항과 관련된 아주 기초적인 지식을 갖추지 못한 경우도 있다.      

 

③ 편의치적국이나 개발도상국의 규제의무 태만

17세기 이래 국제관습법으로 정착된 해양법에 의하면, 공해 상을 항행하는 모든 선박에 대한 배타적 관할권은 그 선박이 등록한 국가에 속하고, 그 선박 소속국은 당해 선박에 대한 사회적, 기술적 규제의 의무를 진다. 이 해양관습법은 그 후 조약으로 성문법화된 해양법에서도 거의 그대로 수용되었다. 그러므로 선박의 안전항해와 관련된 기술적인 규제나 사회적 통제는 그 선박이 등록된 국가의 의무사항이다. 그러므로 각 국가는 자국에 등록하고 자국기를 게양하고 국제항해에 종사하는 선박의 안전항해에 대하여 규제하고 단속하여 국제적인 기준을 준수하도록 지도할 의무를 지고 있다. 그러나 편의치적국의 경우, 얼마간의 세수입을 목적으로 외국선의 등록을 받아준 것에 불과하므로 자국등록선박에 대한 사회적 기술적 규제를 할만한 의지도 능력도 실익도 없다. 그러므로 형식상으로는 법령이나 제도를 만들기는 하나 실효성 있는 실질적인 규제는 거의하지 아니하고 방치한다. 개발도상국들도 편의치적선과 대동소이하다. 

 

전술한바와 같이 기업은 안전에서도 경제성을 따질 정도이므로 안전문제를 기업의 자율에 맡기는 경우, 만족할 수준의 기준을 계속 유지하기 어렵다. 그래서 공권력이 개입하고, 필요할 경우, 강제로 시행하도록 하여야 하는데 이러한 공권력의 개입이 사실상 방치된 상태가 된다. 특히 편의치적선이 세계상선대의 거의 절반을 점하게 된 현 상황에서는 다양한 국제조약과 규칙들이 잘 정비되어 있음에도 이들 규정이 사문화되는 결과가 된다. 편의치적국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개발도상국도 해운업에 많이 참여하는데 이들 국가도 편의치적국과 유사한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결론적으로 보면 안전문제에 국가공권력이 개입해서라도 안전과 관련된 엄격한 기준을 설정하고 시행하여야 하는데 이것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이에 대한 불신의 결과 나온 새로운 안전대책이 항만국통제이다.

 

④ 과학기술 발전의 역작용

과학기술이 너무 빨리 발전하는 것도 문제다.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각종 기기들이 선박이나 항만에 보급되고, 아주 위험한 화물도 운송하게 된다. 그러나 많은 선원들이 이러한 기기나 화물, 그리고 장비의 이용방법을 잘 모르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1980년대 초, 구라파의 여러 나라들이 공동으로 항만국통제제도를 마련하여 시행하기 위하여 실태조사를 한 일이 있다. 그 조사의 일환으로 주요항만에 입항하는 편의치적선이나 개도국 선박의 선장과 선원들에게 설문조사를 한 일이 있다. 그 결과 많은 선장과 고급해기사들이 자기 선박에 장착된 안전관련 장비와 기기들의 조작방법이나 용도 등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선박에 따라서는 주요장비의 조작방법을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경우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조사대상 선박에 승선중인 선원의 대부분이 구명뗏목의 펴진 상태를 한번도 보지 못하였다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비상시에 자기 목숨을 구할 유일한 수단인 구명뗏목의 펴진 상태를 모른다면 비상시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사용할 경우, 아주 유용한 기기나 장비도 잘못 취급할 경우, 흉기로 변한다. 정규 학교를 나와 해기사 시험에 합격한 해기사도 적정한 인터벌을 두고 보완교육을 시켜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⑤ 해기사의 부족과 과당경쟁

해기사의 부족도 선원들의 전반적인 자질 저하와 인적과실에 의한 해난사고의 큰 원인의 하나다. 국제경제체제가 발전하면서 물동량은 각국의 경제 성장률보다 높은 증가율을 기록한다. 그만큼 선박이 더 필요하게 된다. 그만큼 고급해기사에 대한 수요는 증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기사의 공급은 그에 알맞게 증가하지 못한다. 특히 1970년대 이후 유럽선진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해기사 양성기관들은 지원자가 줄어들면서 모집정원을 계속해서 감축해 오다가 최근에는 거의 모든 해기사 양성교육기관이 폐교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에 상응하는 개발도상국의 선원양성기관 증가가 뒤따르지 못하였다. 그 결과 세계 전체의 선박을 대상으로 한 해기사 및 선원수급을 볼 때 해기사의 공급이 현저히 부족한 상황이다. 부원 선원의 경우, 특별한 교육 없이도 승선경험을 퇴적시키면 숙련공으로 발전할 수 있어, 수적인 수급면에서 여유가 있으나, 일정한 교육을 이수하고 해기사 면허시험에 합격해야 하는 해기사의 경우, 만성적인 공급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그 대책으로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의 대형 선사들은 해기사의 자체양성기관을 필리핀 등 개발도상국에 설립하여 자체적으로 해기사를 양성하는 실정이다. 규모로 보나 경제력으로 보아 이와 같은 자체 양성기관을 운영할 능력이 없는 중소선사들은 적정한 자격과 능력을 구비한 해기사를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제의 어느 분야에서나 수요와 공급에 불균형이 일어나면 이를 조절하기 위하여 경쟁이 일어난다. 적정수준의 경쟁은 경제활동을 활성화시키는 요소로 권장할 만 하다. 그러나 그 도를 넘어서면 과당경쟁이 되어 여러 가지 폐해가 발생하게 된다. 특히 인적자원이 부족할 경우, 자질이 약간 떨어지더라도 형식적인 요건만 구비한 사람이면 채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반면에 고용기회가 많아진 해기사들은 업무에 불성실하기 쉽다. 불성실로 인하여 해고당하더라도 바로 다른 선박에 취업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우리나라 해기사들에 대한 국제선원노동시장에서 수요가 급격하게 증가하여 해기사 품귀현상이 나타나자, 해기사의 자질이 급격하게 저하되었고, 그 여파로 많은 해난사고가 발생하였던 일이 있다.

 

선원의 인적과실 방지 위한 조약의 채택과 시행

위와 같은 상황이었으므로 해상안전대책의 초점은 어떻게 하면 인적과실을 줄일 수 있는 지름길이고, 해기사를 비롯한 선박운항요원들의 자질을 향상시키는 동시에 실제 성실하게 근무에 임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에 두게 되었다. 이를 위한 국제조치는 크게 두 가지가 이루어졌다.

 

그 하나는 선원의 근로환경과 처우를 적정수준으로 향상시켜 선원이 안전하고 좋은 환경 하에서 안심하고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국제기준을 제정하는 것이다. 이 작업은 국제노동기구(ILO)가 주로 담당하였다. 그 결과 선원의 근로환경개선을 위한 다양한 조약이 채택 시행되었다. 그러나 국제조약의 경우, 하나의 맹점이 있다. 조약은 채택한다고 바로 발효되어 시행되는 것이 아니다. 조약이 발효되기 위해서는 체약국의 비준절차가 있고, 다자간 조약의 경우, 어느 정도 당사국이 비준할 경우 발효한다는 효력 발생 조항을 따로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부분의 조약의 경우 채택을 위한 국제회의 등에서는 필요하다고 인정하고, 채택을 해놓고, 막상 비준할 때는 이것저것 이해관계를 따져 보아 부담이 된다고 생각할 경우 비준을 하지 않고 방치하는 경우가 비일비재다. 선원의 근로환경과 처우에 관한 조약도 예외가 아니어서 채택만 해 놓고 시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이러한 조약들을 일괄 발효시켜 시행을 강제할 수 있는 별도의 조약인 ILO조약 147호로 약칭되는 조약을 1974년에 채택하였다. 이 조약은 다른 조약과는 달리 토리 케년호의 사고로 인하여 해상안전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된 시점에서 채택되었고, 그 후로도 해상안전문제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을 고조시키는 사고가 연달아 발생하여 국제적인 여론이 조기 발효 쪽으로 무게가 실리자 1970년대 말에 발효되어 세계적으로 시행되었다.

 

다른 하나는 선박운항과 관련된 것으로 해기사를 중심으로 한 선박운항요원의 자격과 훈련 및 교육내용, 그리고 당직근무에 관한 기본적인 원칙 등을 조약화한 STCW 1978이 채택 발효되었다. 다른 조약들(SOLAS, MARPOL 등)은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 사이에 다 채택되었으나, STCW 조약만은 1978년에 가서야 채택될 수 있었던 것은 선원의 자격이나 교육제도 등이 국제적으로 매우 다양해 때문에 각국의 이견이 그만큼 많아서 이를 조정하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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