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해운·조선업이 호황기이던 시기, 국내 은행들은 선박에 대한 비중을 늘리려고 하였다. 세계 최우량 조선소들이 즐비하였고 우량 프로젝트들도 얼마든지 있었다. 다만, 시장가격(이자율)이 낮았고 달러화를 싸게 조달할 수 없었던 시중은행들은 우량 프로젝트들에 대한 직접적인 loan 보다는 조선소의 RG 발행이나 중소선박 위주의 대출을 통하여 선박에 관심을 확대시키기 시작하였다. 때마침 아파트의 미분양율이 높아지고 국내 프로젝트파이낸스 시장도 불안한 움직임을 보이면서 선박은 좋은 대안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던 중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하였고 4년이 지난 지금의 분위기는 180도 달라져 있다. 시중은행들은 선박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버린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중소 조선소들의 몰락으로 RG의 청구가 들어왔고 용대선체인으로 인한 해운사의 부도 등 시중은행들이 선박 때문에 입은 손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은행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선박펀드업계 역시 금융위기로 인한 충격으로 투자자들이 위축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하기가 쉽지 않다고들 한다. 금융위기 이후 선박의 거래나 신조선 발주가 크게 줄어든 탓도 있으나 그보다는 투자자들의 심리가 위축된 것이 더 큰 원인으로 보인다.

유럽의 재정위기로 선박금융의 70% 이상을 공급하던 유럽계 기관들이 위축되면서 국내에 금융을 요구하는 해외 선주들이 늘어나고 있다. 선박금융의 활성화가 절실하지만 돌아선 은행의 심사역들이나 투자자들의 마음을 돌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금융위기로 많은 손실을 보았고 선박시장은 선복량 과잉으로 몸살을 앓고 있어서 금융업계가 선박을 기피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조금 과도한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지금 시점의 선박투자는 위험하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선복량 과잉의 문제가 있지만 지금 발주되는 선박은 그린쉽 기술이 적용된 ‘고연비 선박’들이다. 시장에 나가면 밀려나야 할 선박들은 기존의 구식 선박들이고 최신 선박들은 용선시장에서도 높은 가격에 우선 계약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선박의 가격은 밑바닥까지 떨어져 있다. 일본 등 아시아 금융업계는 유럽 선박금융업계의 침체를 틈타 시장의 입지를 확대시켜가고 있다.

선박의 투자 리스크에 대하여 과도하게 인식하는 것은 선박투자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고 지식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그것이 이유의 전부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나라 전체가 선박과 같은 해양산업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탓이 근본적인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조선산업이 세계 1위라는 사실은 많은 국민들이 알고 있다. 그러나 해운업 5위, 세계 5위의 항만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국민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대한민국은 해양산업 강국이 된 것이다. 조선업은 제조업이 강한 우리 산업의 틀에서 이해될 뿐 해양산업이라는 전체의 틀에서 이해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는 뜻이다.

우리민족은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에 살면서도 해양민족의 DNA는 가지고 있지 않다. 국토의 70%가 산지인 척박한 땅임에도 수천년간 농경민족으로서의 삶을 고집하여왔다. 땅에 대한 집착이 강하였을 뿐 바다에 대한 관심은 매우 부족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어도사나’라는 우리 민요의 유래를 보면 바다는 개척이 대상이 아니라 두려움과 미지의 대상이었던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장보고라는 역사적 위인이 바다를 평정하였던 사례를 제외하면 우리 역사에서 바다를 개척하려는 의지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항해시대를 열며 신대륙을 발견한 유럽이나 조상들이 바이킹이라는 유명한 해적들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해양자원, 해운, 수산업 등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는 노르웨이 같은 나라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역사이다.

대륙의 거대한 세력으로부터, 그리고 동쪽의 해양세력으로부터 우리의 공동체를 지키는데도 힘겨웠던 우리 조상들이 해양까지 넘볼 여유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배를 타고 먼바다로 나갔다면 중국으로부터 많은 견제를 받았을 것이고 어쩌면 그것은 우리의 생존에 대한 위협으로 돌아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과거의 역사는 뒤로 하고 세계화의 물결로 물리적 장애가 상당히 제거된 지금부터는 우리가 하기에 달려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우리 국민들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아직도 할 일이 많고 개척할 분야도 많이 남아있다.

문제는 우리의 역량 일부를 해양산업에 결집시켜야 하는데 지금의 인식 가지고는 환경이 열악하다는 것이다. 해양수산부도 없어졌고 조선이나 해운업은 폭삭 망한 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우선은 국민들에 대한 관심을 끌어내고 올바른 인식과 해양강국으로서의 자부심을 심어주는 것이 먼저 필요한 일인 듯하다. 그래서 해양국가로서의 문화를 만들어나가면 자연스럽게 선박에 관심을 가지게되고 금융계에서도 이에 대한 투자가 수월해질 것이다. 단지 금융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해양산업 전체를 활성화시켜 이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입지를 더욱 더 다지기 위해서이다.

문화를 만드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우선은 대중매체를 위한 홍보 등의 방법도 있을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초중고등학교의 교과서에서 우리의 해양산업과 해양국가로서의 면모를 강조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효과적인 방법론을 이 글에서 제시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선 이러한 문화를 만들자는 데에 공감대가 있다하면 방법론은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주요 대선주자들도 해양수산부의 부활을 공약으로 명시하고 있으니 분위기도 좋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도 경제대국 중 하나로 이제는 축적한 자본의 규모가 상당히 크다. 경제적으로  불투명한 시기에 그 자본들은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정기예금이나 MMF로 돈이 몰리고 있다는 기사는 이를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선박에 대해 올바른 인식과 지식을 가지게 된다면 안전하고 수익성 높은 투자처로 각광받을 수도 있고 우리의 해양산업도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투자에 대한 리스크가 과도하게 인식되어 있다는 홍보도 단기적으로는 효과적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해양국가로 발돋움하는 문화가 형성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대항해시대를 열었고 해양산업과 금융의 주도권을 놓지 않았던 유럽이 몰락하고 있다. 그 중심은 점차 아시아로 넘어오고 있다. 단기간은 아니겠지만 그러한 흐름을 부인하기는 유럽인들 스스로도 어려울 것이다. 아시아 주요국들은 이 흐름을 놓치지 않고 대응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커다란 잠재력을 가진 반도국인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돌이켜 볼 때이다.

※본고는 필자의 개인적 견해일뿐 필자가 소속된 기관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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