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무실, 제도개선 필요하다”

 
 
정부, 국책금융기관·시중은행 5곳 참여로 선박제작금융 지원
2건·3,000억 지원에 그쳐, 실효성 있는 대책 절실

정부의 선박제작금융 지원 정책이 표류하고 있다. 4조원 규모의 대형 지원책을 내놨지만 실적도 미미하고, 조선업계와 은행업계 모두 난색을 표하고 있어 유명무실한 정책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9월 2일 조선사에 제작 금융을 지원하는 ‘선박제작금융 지원책’을 발표했다. 조선업계의 자금난을 풀어주기 위한 방안이었다. 정책금융공사·산업은행 등 2개 국책금융기관과 국민·우리·신한·하나·외환은행 등 5개 시중은행이 참여하는 동 제도는 총 4조원 규모로 기존 수출입은행이 진행했던 제작금융과 더불어 악화된 조선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을 구원투수가 될 것으로 기대됐다.

정부가 밝힌 선박제작금융은 선박이나 해양플랜트 등을 수주한 조선사들이 대금을 받을 때까지 제작에 필요한 자금을 대출해주는 제도이다. 대출 금리는 일반 운전자금과 비슷한 연 5% 수준이며, 선박제작에 필요한 자금에서 선수금을 뺀 만큼 대출할 수 있다. 대출금액은 선박을 선주에게 인도하고 나서 30일까지 상환해야 하며, 집행기간은 2014년까지이다. 지금까지는 수출입은행이 선박제작금융을 도맡아했으며 올해 1.9조원 규모였던 제작금융 규모가 3조원까지 확대됐다.

이처럼 공적금융기관과 시중은행이 참여한 선박제작금융 규모가 크게 확대됐지만 지금까지는 최악의 위기를 맞은 국내 조선업계에 실질적인 도움이 안되고 있다는 평가다. 업계에 따르면 이번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진행된 선박제작금융은 정책금융공사가 STX조선해양에 1,000억원, 산업은행이 현대중공업에 2,000억원을 지원한 것이 전부이다. 조선사의 한 관계자는 “2건의 지원내용만 봐도 조선사를 살리겠다던 이번 정책이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알 수 있다. 두 건 모두 국가 금융기관이 대기업 조선소에 지원했다는 점은 이번 정책의 한계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헤비테일 부담 덜 수 있어 대형 조선사 “환영”
사실 이번 정책에 대해 가장 먼저 환영의 뜻을 비친건 대형 조선사들이었다. 헤비테일 방식의 수주가 증가하면서 건조자금 마련을 위해 대규모 회사채 발행과 자산 매각 등에 나섰던 대형 조선사들은 제작금융 확대로 자금운용에 숨통이 트일 것이란 예상에서였다. 헤비테일 방식은 기존 선박대금 결재 방식에 비해 선수금과 중도금의 비중이 낮고 선박을 인도할 때 받는 잔금의 비중이 높은 방식이다. 조선사 입장에선 선박 인도일에야 건조비용을 받을 수 있어 현금의 확보가 힘든 상황으로, 선박 건조단계에서 원가에도 못미치는 금액을 중도금으로 받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번 정책이 이미 수주능력을 갖춘 국내 대형조선사에 치우친 것이라는 점. 제작금융을 받기 위해서는 수주 후 선박건조에 들어가야 하는데, 중소 조선사의 경우 RG 발급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이러한 제작금융은 ‘있으나 마나’한 정책이기 때문이다.

중소조선 외면정책? RG 발급, 여신한도 확대 필요
업계에서는 정부가 조선업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을 원한다면 자금 여력이 있는 대형조선사에만 국한되지 않고 중소조선사를 살릴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중소조선업계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RG(Refund Guarantee) 발급이다. 선사로부터 선박을 수주하기 위해선 RG 발급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RG는 선주가 조선소에 선박을 주문할 때 지급하는 선수금에 대해, 만약 선박이 계약대로 인도되지 못할 경우에 은행이나 보험사에서 선수금을 선주에게 대신 지급하는 보험인데, 조선소가 RG를 발급받지 못하면 수주단계에서부터 선사의 외면을 받기 대문이다.

여신한도 확대도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조선업체의 금융권의 지원이 결정되더라도 여신한도가 이미 차 있는 경우가 많아 지원자금을 유치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이나 삼성중공업 등 국내 대형 조선사들의 여신한도도 이미 한계점에 달한 상황에서, 중소조선사의 사정은 말할 필요가 없다”고 전했다.

은행권 반응도 ‘싸늘’.. “선박금융 참여하기엔 리스크 부담”
그렇다면 은행권의 반응은 어떨까. 국가 주도로 대규모 선박제작금융 지원정책이 나왔지만 시중은행의 실적은 ‘제로’인 상태이다. 애초부터 은행권의 조선업 금융지원은 단지 ‘액션’에 불과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왔었다. 대내외 경기 침체와 바젤3 시행을 앞둔 은행권이 막대한 리스크를 떠안으면서 조선업 지원에 나서기는 힘들 것이란 분석에서였다.

실제로 이번 정책에 참여한 시중은행들은 물론 다른 은행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시중은행들은 국책기관에 비해 자금 조달비용이 많이 들어 저금리로 큰 금액을 제공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어렵다”면서, “가뜩이나 자금사정이 안좋아 부실채권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데 굳이 은행권이 나설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도 “국가 정책이기 때문에 대형 은행들이 그저 이름만 빌려준 것일 뿐, 선박제작금융에는 큰 관심이 없다”면서 구체적인 대답을 회피했다.

RG 발급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가장 큰 이유는 내년부터 시행되는 바젤3(Basel 3) 협약때문이다. 바젤3 협약이 적용되면 은행들의 BIS 비율(자기자본비율)은 8%로 유지되지만, 기본자기자본비율은 6%로 늘어난다. 결국 총 자산대비 보유자산을 늘려야 하는데, 위험부담이 큰 중소조선사에 대한 RG 발급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의견이 대다수이다.

정부 주도하에 선박제작금융이 시행됐지만 아직까지의 성적은 ‘낙제’ 수준이다. 그러나 조선업계는 정부가 전향적인 자세로 조선업을 돕기위해 나섰다는 것에 대해선 환영하고 있다. 그간 눈에 띄는 움직임이 없었던 정부가 조선업을 위해 발걸음을 내디뎠다는데 대한 기대이다.

우리나라와 세계 조선 1위를 다투고 있는 중국은 국가주도의 적극적인 선박금융 정책으로 조선업 살리기에 팔을 걷어 붙이고 있다. 중국은 중국은행·중국수출입은행 등 국책금융기관을 총동원해 선박제작금융 지원을 확대했으며 ‘국수국조’ 원칙에 따라 대규모 선박펀드도 조성하고 있다. 조선업 관계자는 “이번 지원책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업계나 은행권이나 회의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추후 더 좋은 대책이 나올 것으로 믿고 있다”라며, “정부가 움직임을 보인만큼 업계가 필요한 점을 파악해 지원제도를 개선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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