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나배이샌즈 쇼핑센터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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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멘붕’이라는 말이 심심치않게 등장한다. 인기있는 코미디 프로그램의 한 코너로 등장하기도 하고 사람들 사이에서도 히스테리나 비정상적인 행동에 대하여 이 표현을 쓰기도 한다. 멘탈(mental)의 붕괴, 즉 정신적으로 무너진 상태를 뜻하는 이 말은 최근의 물질지향적이며 정신적으로 황폐해진 현실을 비꼬아 희화한 말이다.


이 말은 주로 웃자고 사용하는 단어이지만 그 탄생의 배경이 된 우리의 현실은 웃을 수만은 없는 살벌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흉폭해지는 범죄, 사라져가는 도덕심, 날로 높아지는 이기심, 점차 희박해지는 배려심, 무너지는 신뢰 등등……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가 등장하고 2차대전 이후 자본주의의 전도사라 불리는 미국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면서 자본, 즉 돈에 대한 추구는 전 세계 사람들의 생활과 정신세계마저 지배하고 있다. 여기에 대항하던 공산주의 진영마저 체제의 열등적 요소를 극복하지 못하고 무너져버린 지금은 자본주의적 문화와 체계가 최고조에 이르고 있는 듯하다.


자본주의 체제 그 자체가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이 체제는 사람들로 하여금 동기를 유발하고 과학기술을 발전시켰고 물질적 번영을 이루었다. 사람들이 편리한 삶을 살도록 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문제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선(善)으로 생각하는 경쟁이 시간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이 과정에서 사람들의 정신세계가 황폐해진다는 점이다. 이미 정신적 세계의 많은 부분이 붕괴되었는데도 우리 사회와 세계는 더욱 더 치열한 경쟁을 요구하고 있다.


경쟁의 강도가 가장 높고 물질적 이익의 추가가 최고의 선(善)으로 치부되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멘붕’의 강도가 가장 강할 듯하다. 특히 우리기업들은 짧은 시간 안에 큰 성과를 이룬 만큼 물질적 발전에 비하여 정신적 균형감각이 크게 상실된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유독 한국에서는 기업윤리라는 개념조차 없다는 탄식이 나온 것도 한두해 전의 일이 아니다. 기업윤리가 필수과목으로 되어있는 미국의 경영대학이나 대학원에 비하여 한국의 경영학 강의에서는 기업윤리를 가르칠 교수조차 없다는 지적이 십수년째 나오고 있다.


반드시 학교에서 이러한 가르침이 없다 하여도 한국에서는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정신적 유산으로 한동안은 그 균형이 유지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근 기업가들은 큰 잘못을 하여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인식, 기업이 정치적으로까지 사회를 지배한다는 인식 등이 팽배해지면서 이러한 유산의 한계를 이미 넘은 것으로 보인다. 이뿐만 아니라 아무리 강조해도 안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환경파괴를 은폐하고 이익만을 거두려는 기업의 거짓말, 각종 불법과 탈법이 관행처럼 여겨지는 기업의 문화, 파견직, 일용직 등 비정규직원들의 눈물 속에서 수조원의 순이익을 거두고 이를 자랑스런 성과로 여기는 기업 CEO들의 오만함 등등 기업에서의 정신적 붕괴는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윤리적 붕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듯하다. 얼마전 한 신문사에서 개최한 지식포럼에서 미국 CFA협회장이 금융의 윤리를 주제로 한 강연이 있었다. 그의 주장은 미국의 금융 종사자들의 이기심과 비윤리적 행동으로 고객들로부터의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는 것이다. 즉 자신들의 인센티브와 많은 이익을 위하여 고객의 돈을 책임감있게 다루기보다는 위험을 쉽게 감행하고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의 부족 등으로 고객들에게 많은 손실을 안겼고 이에 대해 죄의식도 희박하다는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 결과 고객들은 안전자산만을 선호하는 현상이 빚어졌다. 이는 투자를 제한하여 경제의 활력을 감소시키고 사람들의 노후생활을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고 지적하였다. 만일 전 세계에 투철한 윤리의식을 기반으로 한 금융기관이 설립된다면 대박이 날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한마디로 윤리의식이 희박해지면서 오히려 윤리가 돈이 되는 시대라는 의미이다.


윤리의식이라면 너무 막연한 느낌이지만 비즈니스 세계에서의 윤리라 함은 고객에 대한 책임감, 파트너들간의 양보와 배려심, 모든 주체들 간의 신뢰 등등 기업가들이 흔히 경영 철학이라고 떠드는 말들 중에 대부분 포함되어 있는 가치들일 것이다.


우리 해운기업들도 한번씩 자신들의 사업을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지금은 불황이라 서로 살아남기 위해서 너무 각박한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혹은 작은 이익을 탐하기 위하여 다른 기업이나 고객들에게 못할 짓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등등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들이 장기적으로 이익이 될 것인지도 찬찬히 고심해 보면 좋을 것이다.


한때 국내 대형 화주들이 일본계 해운업계에 장기운송을 맡겨 큰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국가적으로도 이들 화주들에게 비난의 목소리가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목소리도 있었다. 2007~2008년 벌크선 부족 사태 때 국내 선사들이 장기고객인 국내 대형화주들의 편의를 무시하고 당장 운임이 천정부지까지 높아졌던 스팟시장에 역점을 두었다는 서운함이 반영된 결과라는 것이다. 확인된 바는 없으나 만일 사실이라면 이 또한 눈앞의 이익때문에 서로의 장기적 신뢰가 깨지면서 손해로 이어진 경우가 아닐까 한다.


교과서에도 나오는 설립자의 책임의식과 윤리의식으로 아직도 고객들의 신뢰를 얻고 탄탄하게 자리잡고 있는 국내 제약회사도 있다. 윤리의식은 당장 눈앞의 이익이 희생된다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결코 기업에 손해를 끼치지는 않을 것이다. 더구나 이러한 멘붕시대를 살면서 윤리는 오히려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 우리 기업들이 새겨보았으면 좋겠다.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은 다소는 대립적인 성격이 있어서 한쪽만을 강조하다 보면 다른 한편이 무너지기 마련이다. 어느 한쪽은 선이고 다른 쪽은 악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지나치게 정신세계만을 강조하며 물질적 발전을 천시하여왔던 조선왕조는 앞선 무기와 과학기술을 앞세운 제국주의 세력에 무너지고 말았다. 우리 민족은 수십년의 고통스러운 세월을 보냈지만 축적된 정신문명의 덕으로 정체성을 잃지 않고 다시 독립할 수 있었다. 이후에는 자본주의 체제에 잘 적응하며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물질적인 발전을 단시간에 이루어냈고 이제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부강한 나라가 되었다. 우리의 역사만을 놓고 생각해보아도 어느 하나가 선이고, 악이라 할 수 있는가? 이들은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배부른 돼지가 되느니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고 했던 유명한 명언에서 적당히 배부른 소크라테스가 되는 길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본고는 필자의 개인적 견해일뿐 필자가 소속된 기관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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