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나서야 한다. 그러나 통폐합 처방은 아니다-

 
 
왜 이 글을 쓰는가!
- 80년대 해운산업합리화의 경험 -

필자는 30여년 전인 1980년대 세계해운업의 구조적인 불황기에 한국선주협회 전무직에 있었다. 그때(1982년말) 불황이 닥치자, 업계에서 선주협회에 비상벨이 울려왔다. 부랴부랴 불황 대책을 마련하여 정부와 협의 후 내린 처방이 소위 해운업체의 통폐합 단행이고 그후 선가원리금 상환을 유예하는 방식으로 불황을 극복하도록 한다는 처방이었다. 당시 이 방안에 여러 가지 모순이 많았지만 워낙 상황이 급박하였으므로 업계는 이를 그대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긴급처방을 조치함으로써 그래도 해운업체중 반수 정도는 건질 수 있었고, 은행의 손실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었다. 그때 그 불황중 이러한 처방이나마 명백하게 채택 실행한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었다. 아무 처방도 하지 못하였던 유럽의 소위 전통해운국(traditional schiping country)1)들은 이 불황의 태풍이 휩쓸고 간 후 해운업은 쇠퇴산업으로 전락하였다. 이제는 영국을 해운대국이라 불러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이번 불황과 80년대 당시의 불황은 닮은 점이 너무 많다. 한국은 80년대 불황에서 정부가 나섬으로써 손해를 최소화하는데 성공한 국가다. 필자의 이 경험을 살려 이번 불황에 대한 정부의 현명한 처방을 촉구하기 위하여 이 글을 쓴다.

사상초유의 대폭락   
2008년 상반기까지 해운은 초호황 시장을 몇 년동안 누렸다. 80년대의 해운업 불황을 경험하였던 필자는 그때 심각한 위기국면이 닥쳐오고 있음을 육감으로 느꼈다. 필자만이 아니라 해운의 과열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더러 나오기도 하였으나 호황에 도취한 해운업자는 이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전진만 계속했다.
위기는 의외로 빨리 닥쳐왔다. 2008년 상반기까지 초호황이었던 BDI지수가 급락하기 시작하였다. 10,000을 중심으로 오르내리던 BDI지수가 갑자기 1,000대로 떨어진 것이다. 이는 운임이 10분의 1로 떨어진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지금은 1,000대 이하에서 좀체로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런 불황은 해운사상 초유의 일이다. 해운업뿐만 아니라 어느 산업도 가격이 하루아침에 10분의 1이하로 폭락할 경우 살아남을 수 있는 산업은 시장경제 구조하에서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이런 대폭락의 불황상태가 어언 4년간 지속되고 있다. 전세계의 해운업체들이 속속 도산하고 있다. 사실 이런 대폭락 하에서는 살아남을 후 있는 해운업체가 거의 없다고 해야 할 것이나, 그래도 지금까지 견디는 것은 다음 몇 가지다. ①회사에 따라 다르지만 호황기에 불황을 대비하여 어떤 형태로든 자금을 유보해 놓은 회사들이 있으나, 이것도 거의 바닥이 드러난지 오래다. ②시황에 관계없이 안정적인 경영이 가능하도록 고안된 장기운송계약을 비교적 많이 가지고 있는 해운업체거나, 다른 산업을 가지고 있거나, 시장의 다양성 등으로 불황의 심도가 덜한 기업의 경우, 자금경색이 상대적으로 작을 수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나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여기서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지금의 시황에서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해운업체는 10분의 1 미만일 것이다.

버리느냐, 살리고 볼 것인가? 선택의 문제다
그대로 두면 파산할 것이 명확하게 보일 때,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둘 중의 하나다. 죽도록 버려둘 것인가? 살려서 손해를 최소화할 것인가, 선택의 문제다.
업계 사람들이 들을 경우, 화낼 소리겠지만 현재 처한 상황으로 보아 죽도록 버려두는 것도 생각해 볼만한 안일 수 있다. 그러나 살릴 수만 있다면 살려서 손해를 최소한으로 줄여보는 방법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먼저 양 처방의 손익을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해운사가 파산할 경우의 손실   
해운업체가 파산할 경우 예상되는 손실의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1) 파산할 경우,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할 일은 보유자산(보유운항중인 선박)을 매각하여, 은행대출금을 회수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불황 하에서 지금 선박을 매입할 사람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억지로라도 매각할 경우, 선박을 담보로 하여 대출한 대출 원금의 반도 회수하기 어려울 것이다.
2) 해운사가 파산할 경우, 당해회사가 차입한 운영자금은 거의 회수가 불가능할 것이다.
3) 파산할 경우 보유운항 중인 선박에  법상 보장된 우선변제특권을 가진 채권자들이 자기 채권을 변제받기 위하여 압류할 것이다. 이 압류를 풀기 위해서는 매각선가 중 상당부분을 지출해야 할 것이다.
4) 파산할 경우에도 선원의 체불임금은 지급하여야 하는 것이 법제도다.

이상을 감안할 경우 지금 자금회전이 안된다고 파산으로 갈 경우, 은행대출금의  많아야 3분의 1정도만이 회수가 가능할 것이다.

살릴 경우의 방안과 손실
 파산이 아니고 살릴 경우의 처방과 그에 따른 손실은 다음과 같다.

안 1 : 선가 원리금의 상환을 호황이 올 때까지
유예하는 방안
80년대의 불황 대책은 선가원리금의 상환을 2년간 유예해준 것이 전부다. 이것만 해주면 살 수 있는 업체에는 이 방안이 가장 좋은 방안이다. 그대로 파산으로 갈 경우보다 백배가 낫기 때문이다.

1) 이 방안은 잘만 되면 채권을 모두 회수 가능하고, 은행의 자금회전에 지장을 주는 문제만 남을 뿐 은행의 직접 피해는 거의 없다.
2) 물론 불황이 장기화하여 궁극적으로 파산하는 경우 손해가 더 커질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을 수 있지만 장기화로 인한 실질적인 손실은 선박의 진부화로 인한 선박가치 하락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도 현재 매각하는 것보다 시황이 회복되었을 경우의 선박시장가치가 훨씬 클 것이므로 손실이 그렇게 크지 않을 것이고, 어떤 경우에도 현재 파산절차로 들어가는 것보다는 백배 현명한 선택이다.
3) 다만 지금의 불황정도로 보아 이 조치만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해운사가 얼마나 될 것인가가 문제다.

안 2 : 선박과 해운사를 분리하여 관리하는 방안
해운사에 따라서는 선가 원리금 상환 유예만으로 현상유지가 어려운 경우가 많을 것이다. 운영자금 누적이 많거나 챠터체인(charter chain)에 묶여 정상 운영이 어려운 해운선사의 경우 당해선사의 선박담보채권만 유보한 채 선박의 운항관리권을 다른 회사로 위탁하여 선박만 살리는 방안도 고려하여야 한다(이 안은 일부 시행중)
결론 : 안 1을 원칙으로 하되, 필요할 경우 안2도 병행

정부가 나서야
필자는 지금 해운업체가 지고 있는 은행부채를 비롯한 부채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모른다. 정확한 것은 아니었지만 80년대 불황기의 해운업체 채무가 4조원 정도였다. 이것을 감안 할 경우, 최소한 100조원은 넘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더 이상 처방 없이 지금과 같이 방치할 경우, 불황이 회복되기까지 은행이 짊어져야할 손실이 몇 십조원은 될 것이고, 애써 가꾸어온 세계 5위라는 자랑스러운 한국해운이 완전히 무너지고 백지에서 다시 시작하여야 할 상황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은행으로서는 지금으로서는 방치하는 것 이외에 다른 처방이 없다.

그러니 정부가 나서서 적극적인 해결책을 강구하여야 할 것이다. 이 명제는 태풍이 몰려오고 있는데 태풍이 휩쓸고 자나가도록 그대로 방치할 것인가, 아니면 피해를 최소화하고, 태풍이 지나갔을 때 다시 옛 모습을 찾도록 하기 위해서 정부가 나서서 서둘러 대책을 강구하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와 같은 정부가 하여야 할 명제라고 생각한다.

지금 필자의 눈에는 태풍이 오는데 정부는 관계기관이 알아서 하라는 태도로 보여 안타깝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행정부 내에서는 대통령이 앞장서서 금융기관을 총지휘하고, 국회의 협조를 받아야 해결이 가능한 범정부적인 문제다. 이 문제의 해결은 세계 1위의 우리나라 조선산업도 살리는 지름길임도 명심하여야 한다. 

80년대 불황대책 : 은행부실화 방지     
80년대 불황의 대책의 배경은 해운업 불황으로 인한 은행부실화 방지대책이었다.
1983년인가 해운불황으로 큰일 났다는 소리가 업계에서 나오기 시작한 얼마 후  약 1주일 동안에 중소 해운회사 3개가 연쇄 도산하였다. 은행이 깜짝 놀라 살펴보니 불황으로 선가는 바닥으로 곤두박질 친 상태이고, 운항 중이던 선박은 해외에서 압류되어 오도가도 못하는 상태였으며, 사주들은 해외로 도피한 후였다.
그리고 해운 불황 때문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연쇄도산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당시 해운에 대한 여신을 가장 많이 준 은행이 산업은행이었다. 서둘러 해운업체에 대출된 금액을 추산해보니 대체로 약 4조원 정도이고 그 중 반 정도가 산업은행이 대출한 것이다. 그렇다면 산업은행만으로도 2조원 정도의 부실채권이 발생할 위험에 직면한 것이다. 재무부 출신이었던 당시 산은 총재가 재무부 장관을 찾아가 사실을 보고하고 정부차원의 특별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산은이 부실화될까 걱정이라고 하자, 정부가 부랴부랴 대책수립에 나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산은의 자본금이 1조원이었다고 한다. 그런 은행이 2조원의 부실채권을 안게 되면 자본잠식 상태에 돌입하게 된다. 그래서 서둘러 대책수립에 나선 것이다.

필자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백척간두에 선 해운업을 어떻게든 살려보고 싶다는 일념에서이지만, 이 문제는 우리나라 은행의 부실화 방지를 위해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대책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해 둔다.  
그리고 한가지만 덧붙일 것은 어떤 처방을 내더라도 해운업체의 통폐합과 같은 백해무익한 처방을 끼워넣지 말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이 글의 내용은 본지의 논지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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