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주요 산업은 제조업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 제조업들은 대부분 기술기반이 없이는 성공하기 어려운 업종들이다. 기술적 기반이나 장벽이 없다면 다른 개발도상국에 쉽게 자리를 내주어야 하겠지만 우리 산업들은 대부분 제자리를 지키고 발전하고 있다.   

우리 산업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자원도 자본도 없이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들과 경쟁하여 그들을 시장에서 밀어내며 성공한 사례들도 많이 있다. 일례로, 조선산업의 경우는 일본인들이 그렇게 빨리 쫓아올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다고 이야기할 만큼 빠른 발전속도를 나타냈다. 조선산업 뿐 아닐 것이다.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반도체, 디스플레이, 통신기기 등 여러 분야에서 한국인들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탁월한 발전 능력을 보여주었다.

우리나라 산업이 이처럼 경쟁력을 갖추고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답은 너무나 명백하다. 우수한 인적자원이다. 그 중에서도 과학기술자들의 기여도는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과학기술자 양성에 있어서 아주 큰 기여를 한 것 중 하나가 가장 강력한 경쟁국인 일본인들이 만든 만화영화라면 그들은 어떤 기분일까? 지금 대부분의 40대가 기억하는 ‘마징가Z’라는 TV 시리즈 만화영화가 그것이다. 물론 그 만화영화가 우리나라 과학기술에 기여했다는 사회학적 실증연구나 과학적인 근거는 없다. 그러나 필자는 경험을 통해서 그 만화영화가 얼마나 많은 학생들로 하여금 과학자의 꿈을 가지게 했는지 알고 있다. 필자 역시 그 중 한명이었고 공대에 진학하여 친구들을 사귀다 보니 그런 친구들이 한두 명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1970년대 마징가Z는 가히 신드롬 수준이었다. 특히 그 당시 초등학생들에게는 더욱 그러하였을 것이다. 길을 지나다 사람이 없는 풀장을 보면 그곳에서 마징가Z가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전쟁이 나면 국회의사당 지붕이 열리면서 마징가Z가 출동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만화의 내용은 단순하고 지금 보면 유치하기까지 하다. 헬박사라는 지구 정복을 꿈꾸는 악인이 매주 다른 신형 전투로봇을 개발하여 지구를 공격한다. 처음에 군대가 출동하지만 형편없이 대패하고 만다. 그리고는 마징가Z를 책임지는 김박사의 명령으로 조종사인 쇠돌이가 출동하고 악한 무리의 로봇들을 제압하고 평화를 지켜낸다.

매주 헬박사의 로봇만 달라질 뿐 변함없는 스토리의 이 만화영화에 어린이들은 열광했다. 마징가Z를 만들고 운영하는 과학자들은 영웅이고 우상이었다. 만화에서 그들은 군인들, 정치가들이 아무런 대책없이 당황하고 우왕좌왕 할 때 과학의 힘으로 지구의 평화를 지켜내는  차원이 다른 사람들이었다. 만화속 과학자들은 어린이들에게 에디슨보다도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아마도 그 당시 남북한이 대치되고 있었던 안보적 상황과 가난한 개발도상국으로서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교육에 녹아들면서 마징가Z는 우리나라 어린이들에게 유독 과장된 효과를 일으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과학자를 꿈꾸던 많은 아이들은 꿈을 간직하고 공학과 자연과학을 전공하였고 이들은 우리 산업발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여왔다.

그런데 이러한 흐름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 듯하다. 1997년 IMF 이후 우리 사회에는 이공계 기피라는 달갑지 않은 사회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모든 것에 돈이 우선인 분위기가 점점 심화되면서 우수한 이공계 학생들은 모두 의대에 우선적으로 진학하고 과학기술자를 지망하는 학생들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심지어 한때는 명문 공과대학생들 마저 학부과정을 의학전문대학원 진학을 위한 과정으로 생각하는 경향까지 나타났다.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중국, 인도 등에서 우수한 인력을 받아들여 빈자리를 메울 수 있는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심각성은 더한 듯하다.
한동안 정부가 이공계 기피현상에 대한 대책을 내놓은 적도 있으나 핵심을 비켜간 대책으로 실효성은 크지 못한 듯하다. 정부의 대책은 주로 이공계의 장학금을 늘리고 유학지원을 늘린다는 대책뿐이었다. 이공계의 학비나 유학비용이 이공계 기피의 원인이 아닌데, 정부가 이러한 정책에 집착했던 것은 지금도 이해할 수가 없다.

학생들이 과학기술의 길을 기피하는 것은 꿈을 꿀 수 없게 만드는 현실에 있다. 교수나 국책연구원과 같이 비교적 오랫동안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자리는 숫자도 제한되어 있을 뿐 아니라 현실도 열악하다. 또한 이공계를 졸업한 많은 학생들이 진출하게 되는 기업은 살벌한 경쟁과 냉혹한 문화로 40대 퇴직자들을 양산한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현실에 일찍 눈을 뜨는 요즘 아이들이 과학기술자의 꿈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다만, 다행한 것은 아직 시작단계이기는 하지만 기업에서 과학기술자들을 우대하는 움직임이 하나씩 시작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 자동차 회사에서는 연구위원제도를 도입하여 우수한 과학기술 직원을 제한된 수의 임원승진 경쟁과 별개로 임원의 대우를 해주는 제도를 마련하였다. 진급경쟁과 같은 비효율적인 에너지 낭비를 줄이고 기술개발 업무에 전념할 수 있는 풍토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 대기업 자동차 부품사는 텔레비전 광고를 통하여 ‘우리에게는 아이돌보다 과학자가 더 많이 필요합니다’라는 광고문구로 무엇인가 프로젝트를 시작한다고 한다. 

어떠한 제도나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질지 모르겠지만 기대를 가져본다. 이제는 옛날처럼 몇 명의 영웅이나 우상을 만들어 환상을 심어주는 일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과학기술자들이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풍토가 마련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일 것이다. 주변의 과학기술자들이 사회에서 존경받으며 일의 보람을 찾는 모습에서 우리 학생들은 잃어버린 꿈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대기업을 퇴직하면 중소기업에서 기술개발에 헌신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 이러한 방안은 어떨지 모르겠다.

조선이나 해운 등 해양산업에 있어서도 앞으로 과학기술자들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조선업은 거대 자본을 무기로 달려드는 중국을 물리치기 위해서 그린쉽 기술, 융합기술 등 기술개발에 매진하여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서비스업인 해운업도 점차 달라지는 경쟁환경으로 선박의 성능관리, 최적의 운항설계 등 과학기술자들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이다. 우리 해양산업도 궁극적인 경쟁력이 그들의 손에 달려있는 것이다.     

자동차, 반도체등 다른 산업들과 마찬가지로 해양산업도 과학기술자의 양성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투자해야 할 것이다. 우리 시대의 마징가Z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고민할 때이다.

※본고는 필자의 개인적 견해일뿐 필자가 소속된 기관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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