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주요 일간지와 경제신문 일부에 서울대학교 조선해양공학과의 수시전형 응시자가 모집인원에 미달된 사안이 보도되었다. 어느 일간지에서는 일본 동경대학교 선박공학과의 인기가 떨어진 이후 일본 조선산업이 몰락했다는 사실과 함께 한국의 조선산업이 같은 전철을 밟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까지 제기하고 있다.

기사는 학생들의 기피 원인이 지방에서 일하는 3D 직종에 조선업 성장률이 주춤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부제목을 제시하고 있다. 기사 내용이 꼭 짚어서 틀린 곳은 없지만 한 대학의 입시 경쟁률이 산업의 쇠퇴를 암시하는 듯한 뉘앙스에는 지나친 비약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하대, 부산대 등 오랫동안 인재를 배출하고 관련 연구를 진행해온 대학들의 조선관련 학과도 산업에 대한 기여도가 서울대보다 낮은 것이 아니지만 서울대가 가지는 사회적인 상징성 때문에 이번 미달 사태는 다소 충격인 모양이다.

사실 공과대학의 입시 성적이나 경쟁률은 유행을 타기 마련이다. 한 산업이 호황이면 관련 학과도 높은 성적을 가진 최고의 학생들이 몰렸다가 불황기에 접어들면 기피학과가 되고는 한다. 정부의 중화학공업의 육성정책이 한창이던 1960~70년대에 전국의 조선공학과는 높은 인기를 누렸다. 그 당시 조선공학을 전공한 국내 최고의 두뇌들이 기술개발을 이끈 것이 우리나라 조선산업 성공의 큰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공과대학의 입시가 산업의 흥망과 연관이 있다는 점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의 불황에 의한 인기도 하락이 일본 조선산업과 같은 전철을 밟게 되는 것 아닌지 하는 우려는 산업에 대한 이해가 다소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산업의 수명주기 이론을 알고 있다. 태동기(또는 도입기), 성장기, 성숙기, 쇠퇴기 등으로 산업의 주기가 분류된다. 특정산업이 어느 주기에 속하는가를 판단하는 중요한 근거 중 하나는 산업의 성장률이다. 산업이 성숙기에 접어들면 시장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고 산업의 성장률은 둔화되거나 약간의 마이너스를 기록한다. 그리고 쇠퇴기가 되면 산업은 마이너스 성장을 지속하며 사양화된다.

아마도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 - 수주의 극심한 침체, 전 세계적으로 도산하는 조선소들, 선가의 하락 등을 놓고 판단하면 조선산업은 성숙기를 지나 쇠퇴기의 산업이 아닌가 하는 판단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느낌들이 대학의 입시경쟁률과 산업의 쇠퇴를 연결시키며 불안해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쇠퇴기 산업과 시황주기의 불황은 구분되어야 한다. 쇠퇴기 산업은 진출 가능한 목표시장 자체가 축소되거나 근본적으로 경쟁력을 잃어 더 이상 시장에서 경쟁할 수 없는 산업이다. 한국 조선산업은 그 어느 경우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선박의 공급과잉과 유럽의 재정위기 등으로 수요가 위축된 불황기에 직면하였을 뿐이다. 전 세계 바다에는 역사상 가장 많은 선박이 떠있고 지금도 역사상 가장 많은 선박이 건조되고 있다. 시장의 조정은 있겠지만 전 세계 선박시장이 축소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유럽사태가 진정되면 다시 신흥국들의 경제개발이 시작될 것이고 자유무역의 흐름에 따라 해상교역량은 예전보다 확대될 것이다. 경쟁력 측면에서도 중국의 저가 공세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품질과 연비 등 종합적인 경쟁력을 고려하여 중국이 한국보다 앞선다고 판단하는 선주나 브로커는 없다.

한때 조선산업이 사양산업으로 불리었던 때는 또 있었다. 1980년대이다. 1,2차 석유파동으로 오랜 불황이 지속되던 때이다. 그 오랜 불황 끝에 당시 세계 조선산업을 주도하던 일본은 중요한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80년대말의 조선산업 구조조정이 그것이다. 당시 일본 조선업계는 조선산업을 성숙산업으로 판단한 듯하다. 인건비 때문에 한국과의 가격 경쟁에서 밀리던 일본은 그 당시의 기술만 가지고도 시장을 선도하리라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더 이상 설계에 비용을 들이지 않고 당시까지 개발된 설계를 표준화하여 저비용으로 선박을 찍어냄으로써 한국의 저비용 구조에 대응하려 했던 것이다. 설계인력을 퇴출시키고 대형 도크들도 폐쇄하는 등 일본의 조치는 단호했다. 그리고 한동안은 그들의 전략이 성공하는 듯도 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경제개발이 본격화된 2000년대에 들어 시장은 대형화를 요구했고 일본의 설계는 인기가 하락하였다. 한국은 일본이 대형 도크를 폐쇄한 이후 90년대에 오히려 대형화 설비에 투자하였고 기술개발을 선도하였다. 한국의 투자는 마치 IT가 아니면 모두 굴뚝산업으로 사양화될 것 같았던 90년대 말 IT붐 시기에도 지속되었다. 그리고 결국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규모로 확대된 시장을 석권하게 되었다.

치밀하게 재고 따지기를 좋아하는 일본의 대실패이며 묵묵히 다져온 한국의 대승이다. 일본 조선업계는 2000년대에 들어와 땅을 치며 후회했고 재기를 노리기도 하였으나 방법이 없었다. 산업은 단기적 안목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기도 하다.

지금 고비용 구조를 가진 한국의 상황이 당시 일본과 비슷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많은 상황이 다르다. 중국 조선산업이 양적으로 크게 팽창하였지만 품질, 기술력 면에서 당시의 한국만큼 위협적이지는 못하다. 다만 중국의 국력으로 메우고 있을 뿐이다. 또 무엇보다 한국 조선업계의 행보는 일본의 당시와는 크게 다르다. 여전히 많은 기술투자를 하고 있고 산업을 축소하려는 움직임도 없다. 그리고 환경규제 등 그린쉽의 이슈가 시장을 좌우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중국과의 경쟁력 격차는 더 벌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천혜의 조건을 가진 조선소들과 최고의 기술인력, 무엇보다도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묵묵히 제 길을 걸어온 저력이 있어서 조선산업이 사양화되는 일은 없을 것으로 확신한다.

다시 이야기의 처음 출발점이었던 대학입시로 돌아와 보자.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의 미달은 산업이 불황국면이라는 점 외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혹시나 그 학과를 지망하다가 최근의 분위기 때문에 망설이는 학부모나 학생이 있다면 그대로 진학하라고 권하고 싶다. 어쩌면 주식시장에서 블루칩을 싼 가격에 살 수 있는 것과 비슷한 기회일지도 모른다.

사실 필자 역시 오늘의 화두였던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출신이다. 그것도 사양산업으로 낙인찍혔던 80년대 중반 학번이다. 그때의 상황은 지금보다 훨씬 지독했고 무척이나 인기도 없었다. 큰 뜻을 품고 진학한 것이 아니라 다른 학과의 높은 경쟁률을 피하려는 당시 유행했던 ‘눈치작전’의 산물이었다. 그 운명적인 눈치작전의 결과로 지금은 조선산업을 연구하는 연구자가 되었다. 비록 입학은 같은 눈치작전이었으나 여러 동기들이 조선소에 취업하였다. 그들은 지금 세계 최고의 조선소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실력을 가진 엔지니어로 활동하고 있으며 세계 최고의 조선산업을 끌어가고 있다. 아마도 중국 조선업계는 그런 수준의 엔지니어 몇 명만 보유하는 것이 소원일지도 모르겠다. 하나같이 남의 말에 신경쓰지 않고 자기길을 걸어온 친구들이고 그들은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다음세대로 산업을 이어주게 될 것이다. 그 친구들이 자랑스럽다.

※본고는 필자의 개인적 견해일뿐 필자가 소속된 기관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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