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기인 태극기의 태극문양을 살펴보자. 미적으로도 아름답고 역동적인 느낌도 있다. 미국의 유명 콜라회사가 자사의 상징으로 사용하기도 했던 이 예쁜 문양에는 그 아름다움을 넘어 매우 심오한 뜻이 담겨 있다.


태극은 음(-)과 양(+)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만물의 창조와 상생의 도가 이루어지는 우주의 원리이다. 태극문양을 살펴보면 음과 양을 상징하는 두 개의 문양이 어우러진 모습을 하고 있다. 붉은 색은 한점에서 시작되어 점점 폭이 넓어지다가 가장 넓어지는 곳에서 푸른색의 시작점인 꼭지점을 만난다. 푸른색 문양의 시작과 끝도 마찬가지이다. 동양철학을 공부한 분들의 해석은 양의 기운이 시작되어 점차 확산되고 기운의 정점에 이르렀을 때 음의 기운이 바로 그 꼭지점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음의 기운의 정점에서 양의 기운이 태동되며 점차 확산되어 가는 것이다.

 

이는 컴컴한 밤이 계속되어 정점에 이르는 한밤중에 새벽의 기운이 태동하고 밤의 정점을 끝으로 점차 날이 밝아오는 원리와 같다. 한낮의 태양이 정점을 기하여 점차 뜨거운 기운과 빛을 잃어가며 밤이 되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이야기지만 이러한 음양의 변화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세상은 항상 변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기운이나 패러다임이 너무 강하여 영원히 갈 것 같이 느껴지지만 그들의 정점에서 새로운 기운이 태동하고 점차 커지며 세상이 바뀌는 것은 동서고금 어디에서나 일어났던 일이며 수천년의 역사가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도 그렇다. 2000년대 초중반 중국의 경제개발이 가져온 인플레이션 없는 성장이 지속되었다. 중국은 거대한 국가이고 무궁무진한 잠재력으로 그 호황은 오랫동안 힘을 발휘할 것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미국은 호황의 한켠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을 유동화시키며 불황의 기운을 태동시켰고 남유럽국가들은 호황을 즐기며 발생한 적자를 서유럽에서 빚으로 메우며 또 하나의 불황의 기운을 키워 나갔다. 호황 뒤 어김없이 침체와 불황은 찾아왔다.


사실 세계경제는 지금까지 많은 크고 작은 호황과 불황 사이클을 반복하여 왔다. 호황뒤 침체가 올 것을 예상하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그것이 언제일지, 얼마나 큰 것일지 짐작이 어려울 뿐이다. 그런데 그 보다 더 큰 문제는 변화를 대비하는 사람들의 자세가 아닐까 한다.


해운, 조선산업은 이러한 변화에 유독 크게 반응하는 특성이 있다. 호황 뒤 침체가 시작되면 운임과 신조선 가격이 다른 산업에 비해 더욱 급격히 하락한다. 불황의 기간도 길고 폭도 깊다.


이러한 길고 깊은 불황의 원인 중 하나는 조선·해운사간 거래의 특성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해운사가 선박을 발주하면 조선소에서 건조하여 인도되기까지 최소 2년 이상이 걸린다. 그러니까 2년 앞의 시장을 보고 발주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선주들이 매우 합리적인 사람들이라면 조선경기가 해운경기에 2년 정도 선행하는 특성이 나타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현실은 거의 동행한다. 해운경기가 좋으면 조선경기도 좋고 해운경기가 하락하는 시점에서 조선경기도 하락한다. 해운경기의 정점에서 가장 비싼 가격에 가장 많은 선박이 발주된다.


문제는 바로 이 시기에 발주되는 선박들이다. 이들이 건조되어 시장에 인도되는 동안 해운경기는 침체에 접어들고 비싼 가격에 매입한 선박은 돈을 못 벌고 애물단지가 되어 버린다. 선주들 입장에서는 미칠 지경이겠지만 침체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만약 선주들이 호황의 정점에서 불황의 기운이 태동된다는 사실을 인지한다면 얘기는 달라질 것이다. 선박의 발주를 줄이고 현금을 확보하고 선대규모도 줄여나가면서 불황의 길이와 깊이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선주들의 이러한 태도가 체계화된다면 경제의 선행지표가 될 수도 있다. 선박의 발주가 줄어드는 시점에서 약 2년 후 본격적인 경제침체가 시작된다는 의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산업, 금융기관들도 이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일이 요원한 것일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호황의 기쁨이 커질수록 선주들이 냉정을 유지한다면 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 들뜬 기분에 확장을 서두를 것이 아니라 지금 태동하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를 감지하고 변화를 내다보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해운실무에 약한 한 연구원의 공상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그리스 선주들 중 일부는 이러한 행동에 능숙한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선주들의 무모한 신조선 발주를 결과적으로 부추기는 세력이 있다. 바로 금융기관이다. 호황때 은행은 금융제공에 관대한 특성이 있다. 물론 자금이 잘 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심사역들의 심리적인 원인도 있지 않을까 한다. 호황기에 선주들은 자금이 풍부하다. 그래서 신용등급도 좋다. 심사역들은 호황기의 들뜬 분위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기도 쉬울 것이다.

 

덕분에 선주들이 금융제공을 받는 것도 용이하고 이 찬스를 놓치면 선박발주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계산을 할 것이다. 그러하니 앞으로의 변화에 대비하기 보다는 당장의 기회를 살려 선박을 발주하고 보는 관행이 되풀이되는 것이 아닐까? 실제로 침체기에 들어서 선가가 싸질 때를 기다리면 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

 

시황이 좋지 못하기 때문에 선주들의 현금 흐름도 나빠지고 그래서 신용등급도 하락하고 심사역들은 냉정해져서 금융획득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금융기관이 이러한 변화에 대처하는 자세를 고치지 못한다면 선주들의 힘만으로 되풀이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많은 연구와 진지한 논의, 냉정한 판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선주, 해운사, 조선소, 은행 모두 각자의 입장에서 변화에 대처하는 자세의 미숙함으로 우리 모두 큰 어려움에 빠진 듯하다. 이 불황의 깊이가 어디일지, 끝은 어디일지 막막하기만 하다. 그렇지만 좌절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수천년 또는 수만년을 되풀이해온 우주의 진리는 이 막막함 속에 어딘가에서 밝은 기운이 태동하고 있을 거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할 일은 이 불황을 버텨나가는 것과 이번에 얻은 교훈을 토대로 변화에 대처하는 자세가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어떤 점이 미숙하였는지 반성하고 냉정하게 고쳐나가는 일일 것이다.


더 눈을 크게 뜨고 더 큰 변화를 바라보자. 이번의 위기는 대항해시대 이후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침략하고 착취하며 힘을 키워온 서구사회가 드디어 몰락하는 보다 큰 사이클의 변화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의 한숨 속에 어디선가 태동하고 있는 희망의 기운이 우리 아시아 국가들에게는 생각보다 더 큰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본고는 필자의 개인적 견해일뿐 필자가 소속된 기관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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