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법과대학의 해상법 교수인 김인현씨가 안식년을 맞아 올해 1월부터 싱가폴 국립대학의 펠로우 및 방문교수로 싱가폴에 체류 중이다. 싱가폴 현지에서 그곳의 해상법과 해운산업을 체험하고 있는 김인현 교수에게서 ‘싱가폴 해상법 교실’이라는 주제로 싱가폴 현지의 생생한 관련 이야기들을 기고받아 연재한다.                                                                           -편집자 주-

 

싱가폴 해상법 개관

김학소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원장
김학소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원장
순서가 뒤바뀐 것 같지만 전체적인 싱가폴 해상법의 큰 그림을 그려보자.  계약법과 불법행위 중에서 제정법이 없는 부분은 커먼로(판례)가 곧 법이다. 그런데 해사공법 등 다양한 조약을 반영한 제정법이 무언가 있을 것 같았다. 시중에 나와 있는 단행법은 모두 영국 교수나 변호사가 작성한 것이라서 싱가폴 해상법책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Halsbury's Law of Singapore을 찾아보니 소상한 설명이 있었다. 제17(2)권은 선박의 등록, 압류제도, 책임제한제도 등이 포함되어 있고 제17(3)권은 충돌, 오염, 공동해손 등이 나와 있다. 운송법은 carrier라는 제목으로 Halsbury 제3권에 포함되어 있다.  


싱가폴도 영국과 같이 상선법(Merchant Shipping Act)에 의하여 많은 부분이 규율된다(싱가폴 항만청<MPA> www.mpa.gove.sg). 선박등록, 선장 및 선원, 선박에 대한 소유권, 선박소유자책임제한등의 제도가 모두 여기에 담겨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IMO 등 국제조약은 싱가폴이 이들을 비준하면서 모두 자국의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도록 입법화했다. 조약의 내용을 원문 그대로 첨부(schedule)하면서 벌칙조항 등 추가하고자 하는 2-3개 조문만을 두는 입법을 하면서 조약을 국내법화한다. 선박충돌예방규칙(COLREG), 선주책임제한제도(LLMC), 유류오염손해배상조약(CLC) 등이 모두 그러한 예이다. 이러한 입법방식은 우리나라와 다르면서도 장점이 많다. 조약자체가 영어로 되어있기 때문에 이를 그대로 첨부(schedule)로 하면서 추가하거나 조약 집행에 필요한 벌칙조항들만 국내법에 직접규정하게 된다. 국내법과 국제조약의 상이에서 오는 해석과 적용의 문제점을 피할 수 있게 된다. 


 
세부적인 검토
(1) 선박의 등록
우리나라는 선박의 소유권 등을 위한 등기제도(법원)와 행정을 위한 등록(국토해양부)이 이원화되어 있지만 싱가폴은 등록하나로 모두 처리된다. 우리나라는 편의치적을 허용하지 않지만 싱가폴은 반드시 자국국민이 소유하지 않은 선박이라도 등록을 허용하는 편의치적국가이다(상선법에 의하여 규율됨).

 

(2) 선주책임제한제도
싱가폴은 말레이시아와 같이 1957년 선주책임제한조약을 비준하여 사용하여왔고 낮은 책임제한금액 때문에 선주들에게 좋은 법정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싱가폴도 2005년 5월 6일 1976년 조약을 비준하게 되었다(1996년 의정서 미가입), (상선법에 의하여 규율됨). 우리나라는 1976년 조약(1996년 의정서 미가입)의 비체약국이지만, 상법 해상편에 1976년 조약의 내용을 반영하고 있다.

 

(3) 용선계약
용선계약의 당사자 관계(선박소유자와 용선자)를 규율하는 단행법은 없고 계약자유의 원칙에 일임되어 있다. 이 점은 우리나라와 유사하다. 이와 관련하여 많은 판례법이 형성되어있고 영국의 판례가 많이 인용된다.

 

(4) 운송계약
우리나라는 선하증권과 관련된 국제조약에 가입하지 않았지만 싱가폴은 헤이그 비스비규칙을 비준한 국가이다. 선하증권소지인에게 운송인에 대한 제소권을 인정하는 선하증권법(Bill of Lading Act), 해상운송계약법(COGSA)에는 헤이그비스비규칙을 그대로 첨부(schedule)하여 추가하고 있다. 


 
(5) 해상위험- 선박충돌, 공동해손, 해난구조, 유류오염
우리나라는 해상위험과 관련한 내용이 상법 해상편에 규정되어있다(유류오염은 단행법인 유류오염손해배상보장법에서 규율함). 싱가폴은 상선법에서 규율한다. 싱가폴은 우리나라와 같이 1992년 유류오염민사책임협약(CLC)와 국제기금(IOPC)협약 및 2010년 선박연료유협약 체약국이다. 

 

(6) 선박압류
1999년 선박압류조약과 유사하게 해상클레임(선박운항과 관련하여 발생한 손해배상책임)에만 선박에 대한 압류가 가능하다(High Court <Admiralty Jurisdiction> Act). 싱가폴에서 우리나라와 같은 선박의 가압류는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압류예방신청(Caveat against Arrest)라는 제도에 따라 선박소유자(채무자)는 선박이 입항시 압류되지 않도록 입항 전에 미리 조치를 취할 수 있다.

 

(7) 해상보험
1993년 영국법적용법(Application of English Law Act)에 따라 영국해상보험법(MIA 1906)을 받아들여 사용한다. 대학의 강의도 영국법위주이다.

 

(8) 분쟁해결절차
우리나라는 해사법원과 해사중재가 없지만, 싱가폴은 해사법원(2002년 설치)과 해사중재(SCMA)(2009년 설치됨)가 크게 발달해 있다.

 

한중일 선박소유자책임제한절차의 불안정과 해결방안
싱가폴 국립대학교 법과대학의 펠로우는 연구성과를 발표하여야 한다. 현재 한국과 일본에서 동일한 사건에 대한 책임제한절차가 동시에 진행되는 비정상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는 바 이에 대한 설명과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나의 주제였다. 2012년 2월 8일에 리쉐라딘 회의실에서 나의 발표가 있었다. 거빈 교수가 브라질 출장 중이라 마부르 교수가 사회를 보았다. 약 20여명이 참석하였다. 부핑양호 사건(한국-일본 동시진행)과 허베이 스피리트호 사건(한국-중국 동시진행)에 대하여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일본이 1996년 의정서에 가입하여 책임제한액수를 증액하는 바람에 채권자들이 일본을 선호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해결방안으로 제시된 것은 1976년 책임제한조약 (LLMC)에 한국과 중국이 가입하는 것이다. 제12조 제2항에 의하여 책임제한절차는 한 곳에서만 진행되게 된다. 다른 방안으로는 1996년 의정서에 가입하여 책임제한액수가 동일하게 되도록 하여 책임제한액수가 높은 법정을 찾아가는 유인을 없애는 것이 있다. 장기적으로는 해상관련사건에 모두 재판관할과 관련된 조약을 만드는 것이 좋다고 결론을 맺었다.
 
해상법전문과정
싱가폴 국립대학 법과대학에는 학부의 학생들 이외에도 해상법 전문 법학석사(LLM)과정이 있다. 현재 20명 정도의 학생이 등록하였는데, 중국, 싱가폴, 인도, 말레이시아, 노르웨이 및 독일 등 각지에서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글로벌 비즈니스 법학석사과정(LLM in Global Business Law)(뉴욕대학과 공동개설)이라는 이름의 뉴욕변호사 과정과 해상법 전문과정(LLM in Maritime Law)을 동시에 할 수도 있다. 지원자들은 일단 뉴욕대학에서 입학허가를 받게 된다. 글로벌과정의 이수학점은 20학점이다. 계약법, 회사법, 법조윤리, M&A, 반독점규제법등과 같은 과목이다. 여기에 더하여 싱가폴국립대학 석사과정의 4과목을 듣는다(통상의 LLM은 6과목을 들어야한다). 그런 다음 뉴욕주법원의 명령에 따라 뉴욕에서 100시간 세미나에 참석하여야 한다. 이렇게 되면 뉴욕주 변호사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작년에는 34명이 재학하였고 17명이 시험을 보아서 13명이 합격하였다. 올해는 두 번째로 24개국에서 44명이 등록하였다. 22명이 시험을 볼 예정이다. 여름에는 뉴욕대학 교수들이 와서 집중강의를 한다. 이렇게 하면 뉴욕대학과 싱가폴국립대학에서 동시에 학위를 받게 된다. 


미국 변호사자격을 취득할 목적을 가지는 우리나라 학생들이나 실무자들은 위 두 과정을 동시에 이수하면 해상법은 영국법을 중심으로 한 해상법을 배우면서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글을 마치면서
영국의 해상법은 오랜 전통과 안정성을 가지고 있지만, 해상법을 적용하게 만드는 해운 및 물류의 실물이 영국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큰 약점이다. 반면, 아시아에 위치한 싱가폴은 영국법의 전통을 지키면서도 해운과 물류의 실물을 동시에 가지고있는 장점이 있다. 정부의 해상법 활성화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 싱가폴국립대학 법과대학의 해상법 교수와 개설되는 강좌 및 학생들의 열정은 싱가폴을 장차 세계해상법을 주도할 국가가 되게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싱가폴의 해상법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필자의 5번에 걸친 연재가 이러한 목적에 조금이라도 기여하였다면 큰 보람이다. 연재를 허락하여주신 해양한국 관계자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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