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해운사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2) 들어가며필자가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는 경제개발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할 때로서, 기업들의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기 시작하고 있었다. 사회초년생인 필자로서는 ‘자본주의’ 경제라는 용어의 영향이었는지 기업 성패의 첫 단추는 그 기업이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의 규모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믿고 있었다. 그 후 50여년의
연재를 시작하며필자는 한국해양대학교 교수를 정년퇴임하면서 해양한국에 ‘해운사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연재한 바 있다. 그 내용은 필자가 해운관련 업무에 종사하면서 직접 경험한 이야기와 직접 경험하지는 아니하였지만 지근거리에서 일어나는 일을 듣고, 본 이야기 등을 종합 정리한 것이었다. 이 연재가 끝난 것이 4~5년 전이다. 그 후 필자는 한국선주협회의 의
미국의 독립과 영국항해법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식민지 시대의 주종관계는 종말을 고하고, 미국과 영국은 대등한 국가관계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명목상일 뿐이고 실제로는 식민지시대보다 더 나빠진 부분도 있었다. 그러한 분야중 하나가 해운분야였다. 당시 영국은 ‘자국화자국선주의’를 골자로 하는 강력한 항해법1)을 시행하고 있었다. 식민지 시대에 이
선주(ship owner)의 특권우리나라 외항해운업체들의 이익옹호 단체로 한국선주협회가 있다. 다른 산업들도 마찬가지다. 석유산업과 관련해 석유협회가 있고, 제철업자들의 단체로 제철협회가 있으며, 시멘트 업자끼리는 양회협회가 있다. 그런데 다른 산업단체들은 모두 그 업종을 기준으로 단체명을 정하고 있는데 해운업만은 해운협회라고 하지 않고 선주협회라고 하여
잘못된 세계사의 상식세계사는 대항해 시대 이래 세계의 지배자로 군림한 백인들의 손에 의하여 쓰여졌다. 그들은 특히 십자군 원정이래 중동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이슬람 세력과는 적대적인 관계를 지속하여 왔다. 그 때문에 세계사를 기술함에 있어서 자기들의 역사를 중심으로 기술할 뿐만 아니라, 그들과 종교적으로 적대관계에 있다고 생각해온 이슬람 세계와 관련된 이야
중국과 일본, 한국이 밀려오는 서세동점의 물결에 밀려 개국을 하고, 개화의 단계에 접어든 것은 불과 10~20년의 간격을 두고 이루어졌다. 그런데 한국과 중국은 근대화에 실패하여 어려운 민족적인 고난을 감수하여야 하였는데 비하여 일본은 명치유신을 통하여 그 개화와 개혁을 촉진하였고, 비교적 쉽사리 근대화에 성공하여 서구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으로 올
- 햇빛 못보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우리 해운에는 큰 도움 줘 -세계경제와 남북문제, 그리고 그 담당국제기구인 UNCTAD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지금으로서는 시들해진 문제로 세계경제에 남북문제라는 것이 있다. 2차 대전 종전 후, 많은 식민지들이 독립하였으나, 경제사정은 식민지 시대보다 더 악화되었다. 그 이유에 대하여 선진국에서는 후진국의 경제발전단계
불행은 새로운 창조로 재탄생하기도 한다- 태안 앞바다 유류오염 사고를 보면서- 사상 최대의 참사 ‘타이타닉’호 사고사고 자체보다는 타이타닉 영화로 더 많이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는 ‘타이타닉’호 사고는 1912년에 일어났던 사상 최대 규모인 1,500명의 인명을 앗아간 사고였다. 이 사고를 계기로 세계의 여론은 들끓었고, 무엇인가 발본색원할 대책이 필요하다
잘못인식하기 쉬운 로이즈의 실체해운에 입문한 사람이라면 로이즈라는 용어를 자주 듣지만 그 실체가 어떤 것인가를 정확하게 알기는 쉽지 않다. 로이즈라는 용어가 쓰이는 곳이 여러 곳이고, 각각 그 기능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 로이즈의 기능 중 가장 중요한 기능인 로이즈 보험에 대하여도 그저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험회사와 유사한 보험의 하나로 인식하는
]사상 가장 잔인하고 용감하였던 해적 바이킹역사상 수많은 해적들이 있었고 속성상 해적은 잔인하고 야만적일 수밖에 없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잔인하고 용감하였던 해적을 꼽으라고 한다면 바이킹일 것이다. 그 후 바이킹이라는 말은 해적의 대명사 같이 되었으나, 원래는 놀만 민족의 이름이었다. 바이킹들의 원주지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지금의 덴마크 등 북부지역으로서
흔히 우리는 고대 동서교역의 메인 루트를 낙타 등에 짐을 싣고 사막 길을 거쳐서 다니던 교역로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관한 여러 가지 글과 출판물이 나오고, TV 등에서 다큐멘터리도 많이 나와서 우리의 관심을 끌기도 한다. 그러나 실크로드가 메인이었던 시대는 한(漢)대로부터 당(唐)대까지로, 당의 말기인 8-9세기 이후는 남해의 해상교통로가 중심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을 우리는 자주 한다. 로마 발전의 큰 요인이었던 강력한 로마군과 로마에 의한 도로 건설 중 로마의 길에 대하여 살펴본다.로마군은 항상 도로를 만들 수 있는 공병대를 대동하였다. 공병대는 점령지와 로마를 연결시키는 도로를 건설하는 것이 그 임무였는데, 전투가 없을 때는 군단에 선행하여 길을 만들기도 한다. 물론 정복지의 주민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인 언어--?문명 생활을 하는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무엇인가? ‘불을 이용할 줄 알게 된 것’, 혹은 ‘도구를 사용할 줄 알게 된 것’ 등 여러 이유를 들고 있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가장 큰 차이는 인간은 ‘정보전달의 수단인 말’을 할 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말을 사용할 줄 알게 되면서 사람들은 다른 동물에 비하여
▲ 중국의 제철소 전경일본연합철강제철소는 4월말~5월초 일본의 긴 휴가기간 이후 중국 강재시장변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관련업계는 5월에 중국시장 제품 가격은 하락세가 나타날 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3월 중하순에 이르러 열연코일 등 중국의 강재제품 가격은 상승세를 유지했고, 3월 말경, 조정기간에 들어섰으며, 4월초 이후로는
컬럼버스가 美대륙에서 가져온 것은 좋은 것만이 아니다 선원들이 가지고 온 매독컬럼버스가 유럽에서 돌아오자 신대륙의 이야기로 전 유럽이 떠들썩하였을 것이다. 신대륙에서 가져온 진기한 보물들도 세인의 눈길을 끌고도 남았다. 그러나 컬럼버스 일행이 신대륙에서 가져온 선물 중에는 아주 반갑지 않은 것도 끼어 있었다. 매독이었다. 컬럼버스 일행이 돌아온 흥분이 채
이 칼럼은 중국 해운및 항만 관련내용을 중국현지에서 입수한 자료를 근거로 작성됩니다. 이번 호에서는 중국항구들의 기상에 대한 현지자료를 실었습니다. <편집자 주> <상해항구(上海港)>-바람: 한해 중 東-北-東 바람이 가장 많이 불고, 東風과 東南風도 자주 분다. 11월부터 2월까지는 西北風이 많이 불고, 4월부터 8월까지는 東南風이
운송인이 운송한 화물을 항만(또는 ICD)의 화물보관장소에 보관하도록 하였다가 수하인이 화물을 인수해가고자 할 때, 수하인은 운송인으로부터 화물인도지시서인 Deliverly Order(이하 DO)를 교부받아 보관장소에 가서 이 DO를 제시하면 보관업자가 수하인 또는 그의 대리인에게 화물을 인도한다. 이 DO는 운송인과 화물보관업자간의 화물보관계약이 체결된
TIR Carnet은 우리나라에서는 국제도로운송수첩이라고 번역되고 있다. 근거가 되는 것은 “TIR Carnet에 의하여 보증된 상품의 국제운송에 관한 관세협약(The Customs Convention on the International Transport of Goods under Cover of TIR Carnet)”이라는 조약이다. 이 조약은 1950
컨테이너 내륙기지다. 컨테이너 운송의 특징은 한번 컨테이너에 화물을 쟁이고 나면, 그 상태로 최종목적지까지 운송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운송수단을 여러 차례 바꿔가면서 운송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컨테이너의 복합일관 운송이고 컨테이너시스템이 다른 운송 시스템에 비하여 가진 뛰어난 장점이다. 그런데 이 컨테이너 시스템은 한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지금의
해운이나 물류에 종사하다 보면 커먼 캐리어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된다. 이 용어는 지금 그렇게 실용적으로 많이 사용되지 않으나, 해운업의 발전과정에서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운송 특히 해상운송의 사회적 기능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커먼 캐리어란 불특정 다수의 고객을 대상으로 운송서비스를 제공하는 운송인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므로 그대로 운송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