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 지난 6월 BDI 4,000을 넘어섰던 드라이 시장은 이후 하락세가 계속되고 있다. 9월에도 BCI가 4,000대에서 2,000대로 떨어졌다. 그나마 파나막스와 핸디막스에서 소폭의 상승세가 나타나기는 했으나, 전반적인 드라이 시장의 분위기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특히 새로운 수요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인도되는 신조선과 기존의 중고선으로
건화물선 중고선 매매시장을 살펴보면 9월 중반까지 중고선 매매선가는 별 변동이 없는 상태에서 다수의 선박이 매각 협상을 진행, 순조롭게 매각활동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중반 이후에 접어들면서 수요와 공급 사이의 불균형 탓에 수프라막스와 파나막스 사이즈 선박을 중심으로 매각활동이 소폭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같은 현상은 4/4분기를 앞두고
한국해운 60년사를 편찬하는 작업에 필자도 참여하였고, 정리과정에서 1960년대 초에 정부에 의하여 중형선(당시로서는 대형선) 몇 척을 신조하였다는 사실은 알았으나 구체적인 자료를 구하지 못하여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 정도만 정리하고 넘어갔다. 그 후 우연한 기회에 KCTC의 회장이며 해운업계 원로중의 한분인 신태범 회장님이 이 사업의 첫 번째 제안자이자
이 글은 한국해양대학교가 세 차례의 폐교위기를 딛고 근 70년간 한국해운업계의 동량인 우수한 해기사들의 산실로서 존속해온 배경에, 해양대학을 창립하고 초대학장을 비롯해 네차례 학장을 역임한 海堂 이시형선생의 공헌이 지대함을 기록한 前 한국해양대학 학장 손태현 교수의 논문이다.<나라발전에의 공헌-海堂 李時亨과 韓國海洋大學>라는 제목의 이 논문은 서
드라이 6월 중순 2008년 9월 이후 처음으로 BDI 4,000을 넘어섰던 드라이 시장은 이후 하락세로 돌아섰고, 7월에도 하락세의 분위기가 이어졌다. 파나막스와 핸디막스가 생각보다 선전하며 상승세를 보였지만, 중국과 메이저 광산 업체간의 철광석 가격 협상이 아직 성사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여름철 비수기의 도래로 인해 하락세를 보였다. 물론 7월 중순
건화물선 매매시장을 살펴보면 6월 초 급등세를 보이던 BDI가 다시금 3,000포인트선 아래까지 하락하기도 했으나 점차 회복세를 보였다. 매각활동 역시 케이프 사이즈와 중국 바이어 등의 영향으로 활발한 수준을 유지했다. 7월 첫 주에 가장 주목받은 선박은 1989년 일본 건조의 ‘RHINE ORE(23만 3,016DWT)’로써 바이어가 알려지지 않은 채 2
들어가며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경제개발계획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하였다. 경제발전의 필수요소인 사회간접자본적 성격이 강한 해운업도 예외가 아니어서 정부와 민간 공히 해운업의 발전에 대한 의욕은 대단히 강하였다. 그러나 의욕과는 달리 해운발전의 여건은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우리나라는 1945년 해방이후 몇몇 뜻있는 해운선각자들이 해운업을 발전시키
드라이 6월을 상승세로 시작했던 드라이 시장은 2008년 9월 이후 처음으로 BDI 4,000을 넘어섰다. 케이프와 파나막스를 중심으로 FFA에서 강세가 이어졌고, 이러한 분위기는 장기 PERIOD성약으로 이어지며 드라이 시장의 회복으로 이어지는 듯 했다. 특히 이러한 상승세는 일본과 한국의 철광석 가격 협상에 따른 시세 차익을 노리는 중국의 개입으로 인해
건화물선 중고선 매매시장을 살펴보면 BDI가 큰 폭의 상승세와 하락세를 반복하며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건화물선 매매시장 역시 낮은 선가에 선박을 확보하려는 바이어들로 인해 여전히 분주한 모습이다. 6월 첫 주에 가장 주목받은 선박은 2004년 일본 건조의 ‘QUEEN LILY(7만 6,500DWT)’로써 바이어가 알려지지 않은 채 3,100만 달러
드라이 4월과는 달리 5월의 드라이 시장은 서서히 긍정적인 분위기로 바뀌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올 해 처음으로 BDI 2,500을 넘어섰다. 아직 세계 경기 침체의 회복 신호가 확실하게 나타나지는 않고 있지만, 대서양 GRAIN에 대한 수요 증가와 태평양/대서양간 운임 및 용선료의 차이로 인한 장거리 항해가 늘어난 이유로 가용 선복이 다소 타이트해지는 모습
건화물선 중고선 매매시장은 BDI가 큰 폭의 상승세를 이어나가며 2,600포인트 선까지 돌파하는 모습을 보였다. 중국 바이어들의 매각 소식 또한 증가해 마켓 상승에 대한 기대감을 부추겼다. 그러나 이 같은 상승세를 이어 나갈 뚜렷한 상승요인이 나타나지 않아 아직까진 조심스러운 움직임을 보이는 듯하다. 5월 첫 주에 가장 주목받은 선박은 총 5척의 EN BL
▲ 최 재 수前 한국선주협회 전무해무청의 해체 이유1948년 정부수립 당시 해운행정은 교통부 해운국이 수행하여 왔다. 지금과 달리 해운국 기능에 조선업무도 포함되어 조선과가 있었다. 1955년 2월 17일에는 해운과 수산 기능을 통합한 해무청을 신설하여 해운(조선포함), 항만, 수산, 및 해양경찰 업무를 담당하였다. 이는 이승만 대통령의 평화선 선포(195
드라이 지난 3월 초부터 하락세를 보이던 드라이 시장의 분위기는 4월 중순을 지나면서 약 한달 만에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하락세를 보였던 드라이 시장이 부활절을 기점으로 가용 선복이 부족한 듯 보이면서 상승세로 돌아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잠시 숨 고르기하는 것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아, 향후 분위기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다만 하락세가 멈
건화물선 중고선 매매시장을 살펴보면 4월 중반까지 계속해서 하락세를 거듭하던 BDI가 반등에 성공하며 다시금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다. 매매시장 또한 부활절 연휴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많은 매매 성약소식이 들려왔다. 4월 첫 주에 가장 주목받은 선박은 1993년 일본 건조의 ‘ENERGY(6만9,255 DWT)’로써 중국 바이어에게 1,510만 달러에 매각되었
▲ 윤 석 희 변호사 법률사무소 지우1. 서론이번호에서는 운송인(복합운송인을 포함한)이 발행하는 선하증권 이면약관에 기재된 Himalaya Clause에 대하여 검토해보고자 한다. 이는 해상운송인과 화주이외에 제3자(대부분 하역업자나 터미널 운영업자)에 대하여 운송인이 주장할 수 있는 포장당 책임제한 및 time bar 등의 항변을 부여하는 규정으로, 위
▲ 최 재 수 前 한국선주협회 전무우여곡절 끝에 정부는 수립하였으나, 당시의 경제여건상 경제자립은 요원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정부 수립 2년도 채 못 되어 6. 25가 발발하면서 경제는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들었다. 그러한 극한 상황에서도 유일한 생명선이고 젖줄이 있었으니 그것은 미국을 위시한 선진국들의 경제원조였다. 이 경제원조 조차 없었다면 그 처참한 상
들어가며 6. 25 사변 당시 우리나라 국방부장관으로 재직하였던 신성모는 국가운명이 경각에 달린 위급한 전쟁 상황하에서 우왕좌왕하면서 전국(戰局)을 크게 그르쳤을 뿐만 아니라, 본인이 직접 관련되지는 아니하였지만, 그의 휘하기관에서 국민방위군사건이나 거창양민학살사건 등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사건이 잇달아 터졌을 뿐만 아니라 그 수습 과정에서도 별로 설득력
드라이 지난 2월까지 드라이 시장의 상승세를 이끌던 케이프의 하락세가 계속되면서 파나막스와 핸디막스도 3월 중순을 지나면서 하락세로 돌아섰다. 중국의 철광석 재고량 증가와 철광석 가격 협상 시점이 가까워지고 있는 것 때문인지 중국의 수입은 서서히 감소하는 분위기였고, 이는 케이프 시장의 하락세로 이어지며 전반적인 드라이 시장에 긍정적이지 못한 영향을 주었다
건화물선 중고선 매매시장을 살펴보면 3월 중순까지 2000 포인트선을 유지하며 상승기반을 다지는 듯 보였던 BDI가 다시금 하락세를 거듭하며 1700 포인트선을 기록하고 있다. 현대식 벌커선에 대한 중고선 매매는 여전히 활발한 모습이다. 3월 첫 주에 가장 주목받은 선박은 97년 한국 건조의 ‘CHLOE(16만89DWT)’로써 바이어가 알려지지 않은 채 2
4. 제자나 후배가 진정으로 이시형 선생을 존경하는 이유이상에서 약간 결례가 될 수도 있는 이야기까지 거론하면서 해양대학과 이시형 선생, 그리고 해양대학 졸업생들의 이시형 선생에 대한 깊이를 재기 어려울 정도로 깊은 애정을 간략하게나마 더듬어 보았다. 그렇다면 이시형 선생의 어느 면이 제자들의 마음을 종교적 신념을 방불하게 할 정도로 사로잡을 수 있었는지에